동산 혜일 대종사
04/09/2018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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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山 慧日 大宗師

東山스님의 行狀

동산스님은 1890년 2월 25일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상박리에서 출생하였다.

 속성은 진양 河씨요 이름은 慧日, 법호는 東山이다. 스님은 13세까지 漢學을 배우고, 계속해서 서울의 중동학교와 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하시다가 24세되던 해에 출세간의 뜻을 세우고 범어사에서 龍城스님께 출가 득도得度하였다.

한엄漢巖선사에게 四敎를 배우고 영명혜일永明慧日 강백에게 大敎를 수료하였다.

1934년 8월에 범어사 금어선원의 동쪽 대숲사이를 지나다가 마침 불어오는 서풍에 

대숲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홀연히 깨달으니, 120근의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조사의 공안이 心地에 분명히 응하고 西來의 비밀한 뜻이 밝고 밝았다.

이 경지를 용성화상께 말씀하였더니 스님께서 흔연히 認可하였다.

1954년에 스님은 용성화상의 法印을 傳受하니 그 계송은 

“將此海東初祖 寶印以爲戒脈輿正法眼 

藏正傳之信付與東山善自護持令不斷絶”이라 하였다.


1954년에 전국 비구의 선봉에서 불교정화를 지도하고,  67세에 네팔에서 열린 제4차 세계불교대회에 한국대표로 효봉스님, 청담스님과 함께 참석하였으며, 

1956년8월 13일에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에 추대되었다.

1965년 음3월 범어사에서 說戒를 마치시면서 대중에게 

 <다시는 이 자리에 오르지 못한다>고 선언하시고 같은해 음 3월 22일 약간의 불편함을 보이시다가 다음날 23일에 돌연히 入寂하신니,  世壽는 76세, 法臘은 53세였다.

火浴場에서 영골靈骨 2과二顆를 얻어 금정산 남쪽에 탑을 세우고 그 안에 모셨다.


대중에게 보이다(示衆)

이 주장자를 주장자라 하면 주장자 하나를 더하는 것이요  또 주장자가 아니라 한면 머리를 끊고 살기을 구하는 것과 같다. 이 말은 환하게 일러준 말이요, 여간 가깝게 이른 소리가 아니다.  이 말 한 마디에 물론 生死를 잊고 한 번 뜀에 바로 부처님의 자리인 *如來地에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채야하고, 이 소리를 알지 못하면 한 마디 답할 수 있겠는가?

잠간동안 묵묵히 계시다가 주장자를 한 번 치시고 게송을 말씀하셨다


정착청산각.   玎着靑山脚하니,    푸른산이 다리를 치니

동해가 거두언   東海가 擧頭言이로다    동해바다가 머리를 들고 이르는 도다


또 주장자를 세번 내리치고 말씀하시기를

인종교상래   人從橋上來하니,    사람이 다리를 쫓아오는데

교류수불류   橋流水不流로다    다리는 흘러도 물은 흐르지 않도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꿈도없고 생각도 없을 때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어서 安心立命하는고?

이 곳에서 대중의 根機를 따라 참선을 하다가 유유히 죽거나, 똑바로 서서 죽는 좌탈입상坐脫立亡하는 길이 있으며, 또 한 가지는 모든 부처님의 몸을 내는 곳이있다.

이곳에서 가려낼 줄 알아야 비로소 얻는 것이다. 설령 坐脫立亡하더라도 그것은


기암奇巖에 이초청異草靑이나    차무추수순且無抽蓚筍이로다

“기이한 바위에 이상한 풀이 푸르기는 하나    또한 빼어난 대순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빼어난 대순’이 있는 도리인고?

잠시계시다가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치고 말씀하시기를


坐斷十方하여도 猶點額이니, 密移一步하야 看飛龍이로다

앉아서 시방을 끊어도 오히려 이마에 점친 것이니  은밀히 한 걸음 더 나아가야 나는 용을 보도다.


해제법문解制法門 

오동일엽梧桐一葉이    낙금정落金井하니,    오동입 하나가 금정에 떨어지니,

종차시지천하추   從此始知天下秋로다         이로 쫓아 천하가 가을인 줄 알겠도다.


운문선사雲門禪師가 하루는 어떤 승을 돌아보면서 ‘감[鑑]’하고 말하니,

 그 승[僧]이 무어라고 우물대자 곧 ‘이![夷]라고 말했다.


이 뜻을 곧바로 알아차린다면 참으로 예[禮]를 아는 것이요,

비로소 부끄러운 마음을 낼 줄 아는 것이다. 

이로부터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할 줄 아는 것이다.

 이 뜻을 모르면 헛일이다.


어떻게 해서 한 말인가? 이 뜻을 알겠는가?

돌아보고 ‘감![鑑거울감]하고 ‘이[夷오랑케이]라고 했으니 이 뜻이 무엇인가?

오늘은 우리가 해제[解制]하는 날이니 이것을 모르면 해제를 헛한 것이다.


상견불양미하니相見不揚眉하니    서로 보고도 눈썹을 들지 않으니

군동아역서郡東我亦西로다.         그대는 동이요, 나는 또한 서로다.


홍무紅霧는 천벽해穿碧海하고      붉은 안개는 푸른 바다를 뜷고,

白日은 요수미繞須彌로다            하얀 해는 수미산을 돌도다.


도화桃花는 편편출심원 片片出深源이요,

 복숭아꽃은 조각 조각이 깊은 근원에서 나오고,

두봉杜峯은 청취색전신靑翠色轉新이로다

봉우리는 푸르고 프르러서 색이 더욱 더 새롭도다.


빈호소옥 頻呼小玉은 비타사 非他事라   지요천랑인성 只要擅郞認聲이라


양귀비가 황제의 눈을 피해가면서 안록산과 사귀어 오는데, 

양귀비는 자주 시녀 소옥을 불렀다.

소옥을부르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만 안록산에게 제 소리를 알아듣기를 요구한 것이다.


이 법문은 부처님 법과 사상이 똑 같아야한다.

이것은 모든 부처님의 골수骨髓니, 

이 뜻을 알면 천칠백공안을 한궤미에 꿰는 것이다.

 이것은 우스운 말 같지만 이 공안을 철저히 알아 맞춰야 한다.

두 사람의 마음일은 오직 두 사람만 알도다 이것이 佛法의 명백한 큰뜻이다.

이것이 어째서 명백한 불법의 큰 뜻인고?

마음 우리의 마음자리는 본래 평안하고 조금도 다른 것이 없다.

이 法身이 본래 스스로 남[生]이 없는데 다시 어느 곳에다 의탁하려 하는가.

마음은 신령스럽고 또렸하여 항상 모두를 알고,

쫓아 온 곳도 갈 곳도 없으며 또한 本來도 없는 것이다.

옛적에 개오開悟하여 아주 환하고 의심이 없었으나,

 다만 오랜 옛적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번뇌 습기를 다하지 못한 까닭이다.

 또한 마음 밖에 다시 한 물건도 없는 줄 알았다면,

 번뇌 습기가 무슨 물건이건데 그것을 다 하고저 하느냐.

만약 터럭 끝 만큼이라도 없애버릴 번뇌 습기가 남아있다면,

이것은 마직도 마음을 뚜렸이 깨치지 못한 까닭이다.

이런사람은 다만 다시 분발하여 크게 깨치기를 기약하라.


부처란 무엇인가?*_

佛이란 깨달음이니,

 마음을 보고 마음인 줄 깨달은 것이 佛이며 

그 마음을 깨닫지 못하고 미해 쓰는 것이 중생이다.

 깨치고 迷한 것은 다르나 마음은 한 가지다. 

그러므로 이 마음을 제하고는 마침내 다른부처를

 얻을 수 없으며,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것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佛은 허물이 없는데 중생이 잘못알고 자기 마음이 부처인줄을 알지 못한다.

다만 자기 마음의 부처를 찾지않는 것이다. 佛性은 스스로 있는 것이나.

 스승을 의지하지 않으면 마침내 밝게 깨닫지 못하니,


 만일 깨달아 알지 못하거든 금히 선지식을 찾아 힘써 탐구 하여야 한다.

성품 밖에 佛이 없고 佛이 곧 이 성품이니라. 부처에 있어서 더하지도 않고,

중생에 있어서 덜하지 않는 똑 같은 마음이지만 부처님은 그 마음을 믿고,

 중생은 그 마음을 믿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믿고 믿지않는 것이 다를 뿐이요,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닌 것이다.


-*마음을 찾는 법*-


無夢無想時에 我主人公이      꿈도없고 생각도 없을 때 내 주인공이

在甚?處하야     어느 곳에 있어서       安心立命하는고?


여기에는 무엇이든지 어리대지 못한다. 조금만 잘못하여도 그만 미끄러지며,

조금이라도 다른생각이 들면 이미 그른 것이다.

공부를 지어가는 데는 진실로 用心을 잘 하여야 하니,

“꿈도 없고 생각도 없을 바로 그 때 내 주인공이 어느 곳에 있어 安心立命하는고?”

이렇게만 지으면 단번에 如來地에 들어가며

백척의 장대 끝에서 한 걸은 나아가 몸을 날려 한바탕 던질 것이다.


공부인工夫人은 계행을 깨끗이 가져야 한다.

 더러보면 계를 가볍게알고 佛祖의 말씀을 믿지않는 이가 있다.

부처님이 그렇게 행한 일이없고 祖師가 그렇게 한 일이없다.

그러므로 解와 行이 나누어지고 각각 다를 것 같으면 이것은 온전함이 아니다.


 옛사람이 이렇게 분명히 일렀거늘 예사로 알고 또 無妨般若라 하여 

걸림없이 해을 지어서야 되겠는가.

참으로 공부를 열심히 지어나가면 저절로 게정혜戒定慧 삼학이 원만해 진다.

戒란 별것이 나니다. 迷해서 잃었던 내 마음을 다시 회복하는 그 때가 곧 戒이다.

그렇게 알면 곧 定이있고, 定이 있을 때 戒가 나는 것이며,

 혜惠가 있을 때 게戒가 나는 것이며 혜惠가 있을 때 게戒가 함께 나는 것이니,

정定과 게戒와 혜惠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선물*-

“내가 지난번 당신네 나라에 가서 우대를 받았는데 저 사자를 보시오.”

“네 봅니다.”

“그 소리를 듣습니까?” “-----“

“내가 당신네에게 선사할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태국불교 대표 앞에서)


원래미증전기유등이신    元來未曾轉豈有等二身

운래 일찍이 전한 바 없거니 다시 어찌 第二身이 있으랴.

삼만육천조반복지저한    三萬六千朝反覆只這漢 백년이라 

3만유천날이 다목 이놈의 반복이구나.


불설일체법 위도 일체심    佛說一切法 爲度一切心

부처님이 일체법 설하심은 일체심을 건지고저 함이니

약무일체심 하용일체법     若無一切心 何用一切法 

 네 만약 일체심이 없을진덴 일체법을 가져 무엇에 쓰랴. 


(老師께서 入寂의 그날 남기신 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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