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운봉 성수 대종사 - 알겠는가 ?
04/08/2018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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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는가?*-

양구(말없는 도리)를 하신 다음 말씀하시기를, 

“알겠는가? 만일 알았다 하더라도 여래의 경계요 조사의 경계라, 나는 옳다 하지는 않으리라.  왜냐하면 어저께 변소깐에 대나무 하나가 벽을 뚫고 나왔더니라.”


또 주장자를 세번 구루시고 말씀하시기를  “알겠는가?

만약 알지 못한다면 부처님이 구렁에 처박혀서 아주 소식조차 없는 것이니,

 누군가가 만약 그때에 붙잡아 주었던들 어찌 오늘의 자손들이 재앙을 당하리요.


고인의 말씀에 ‘유심으로 뚫어내지 못하고 무심으로도 뚫어내 지 못한다.’하셨으니,

 유심은 소견이 유심이기에 안된다 하려니 와 무심은 어찌하여 안된다 하는고?’

‘양구’를 하시고 주장자를 한번치고 말씀하시기를, 

“무심도 오히려 한겹의 관문이 막혔느니라.”하시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정진하는 대중에게

대중들이여, 분명하게 눈을 뜨고 보라. 이 무슨 시정인고?

 이 속에 이르러서는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것이 모두 다 몽환(夢幻) 인 것이요,

 55위(五十五位)도 또한 몽환이요. 십팔불공법(十八 不共法)도 몽환이요,

 성문이나 연각이라는 것도 몽환이요, 보살 이니 부처니 하는 것도 모두 몽환이요,

상하대지와 삼라만상과 명암색공 모든 법이 전부 다 몽환인 것이니,

 이러한 이야기도 또 한 몽환일 따름, 몽환이라 하는 것까지도 몽환인 것이니라.


  주장자를 한번 구르시고, 말씀하시되, 

이 속에 이르러서는 산하대지와 삼라만상과 명암색공 모든 법이 또한 몽환이 아닌 것이다. 보살과 부처도 또한 몽환이 아니요,  성문이나 연각과 55위와 18불공법과 보리니 열반이니 가 모두 몽환이 아닌 것이니라.

또, 주장자를 한번 내려 치시고 말씀하시기를,

이 속에 이르러서는 부처와 보살이 꿈이 아니란 말도 될 것이다.

 성문연각과 55위와 18불공법과 육도사생이 꿈 아니란 말도 안 될 것이며,

산하대지와 삼라만상과 정과 무정과 명암색공과 모든 법이 꿈이 아니다 

하는 것도 안될 말인 것이다.

자, 대중에게 묻노니, 어떻다고 들먹이면 모두 안되는 것이니  필경 어떻게 해야만 거푸집에 떨어지지 않을 것인가?

주장자를 한번 구르고 말씀하시되, 

此去梁山四十里 여기에서 양산읍네가 40리니라.

不是早發難當回 어서 빨리 안 떠나면 당일 돌아오기 어렵네라

. -*영가를 천도하심*-

법상에 오르시어, 잠시 계시다가 말씀하시되,

영가야! 알겠는가? 만일, 알았다 하더라도 문외한임을 면치 못하려니와

 만약, 알지 못했다면 또한 평지에 죽은 사람을 면치 못하리니,

필경에 어떻게 해야만 생사 속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주장자를 한번 치시고 계송을 읊으셨다.

월소학작천년몽月巢鶴作千年夢하니    어스럼 달빛속에 꿈을 꾸는 천년 학

설옥인미일색공雪屋人迷一色空이라    천지가 일색인줄 눈 속에 속은 사람

좌단십방유점액坐斷十方猶點額일세    아무리 훌륭해도 아직은 점액어일세

밀이일보간비용密移一步看飛龍하리라

한 걸음 슬쩍 나아가야만 훨훨 날아가는 용을 보리라.


또, 주장자를 세번 구르시고 말씀하셨다.

대중들이요, 알겠는가?

만일 알았다면 큰 지혜의 눈을 갖추어서 대총지大聰智를 얻었으리니,

 눈으로 보는 물건마다 주재 主宰를 얻고 귀로듣는 소리마다 법왕 法王이 되어

 삶과 죽음에 자유자재하여 천상인간에 걸림없으며  육도사생에 들고 나기를 

임의대로 하리니, 비로서 출세 대장부라 하리라.

모르겠는가?

모르겠거든 각각 선방에 들어가서 이것이 무슨 도리인고? 할지니라.

-*가사불사 회향*-

알겠는가?

 이 속에 와서 만일 분명히 알았다면 한평생 공부할일 마침이리니,

공부를 마쳤다면 곧 생사를 해결함이라.

생사를 요달한 이는 곧 고금 佛祖의 대기대용과 살활종탈(殺活縱奪:살리고 죽이고 주고 빼앗음)과 신통삼매와 여러가지 기연과 차별의법문들을 통달하지 않은 것이 없는지라, 

출세 대장부라고 하려니와,  아직 그렇지 못하다면 특히 대중을 위해 일을 덧붙여 보리라.

‘가사’는 본래 체성(體性)도없고 안목(眼目)도 없는 것이거늘 어느 곳을 향하여 ‘점안’한다 하는가? 

주장자를 한번 구르시고 게송을 읊으시되,

천안대혜간불투天眼大慧看不透하니    일천 눈의 관세음도 보고 몰랐네

수풍화우과전산 隨風和雨過前山이로다.    바람따라 비와 섞여 앞산으로 지나갔네.


가사는 곧 몸에 입는 것이지만,

법의 몸은 청정해서 형체도없고 명상도 없고 거래도 없어서 실터럭만한 물건도 붙일 수 없느니라.

대중에게묻노니, 네가사를 어데다가 입힐 것인가?

양구를 하고서 시자를 부르며 말씀하셨다.

“시자야! 가사 한벌 가져다가 주지스님 어께에 입혀드려라.”하시고

 주장자를 구르면서,

 풍류가 없는 곳에 풍류를 잡히도다. 알겠는가?”

 만약 알았다면 나라의 은혜,부처님 은혜를 이것으로 보답하며, 

부모와 사장과 붕우들의 은혜를 이것으로 보답하며, 

오늘날 가사불사의 화주 시주와 조연양공과 도감별좌와 공사부목과 내지

수희동참 결연하고 일테찬탄한 선남선녀 등의 은혜를 또한 이것으로 보답하리니,

 무슨 복을 이루지 못하며, 무슨 재앙을 없애지 못하며, 무슨 원을 이루지 못하리요.

 필경에 무슨 견성을 하지못하며, 무슨 도를 깨닫지 못하며, 무슨 성불을 하지 못하리요.

 알겠는가? 또한 대중에게 묻노니,

 필경에 견성성불함을 차지하고 무엇을 가리켜 이렇게 말하는 것일까?

一二三四五六七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이라,

數去飜來無有窮이라    헤어가고 뒤처오기 다함이 없네.

此去大邱四十里를       여기서 대구길이 40리 란다.

不是旦發難回來라       일찌감치 안 떠나면 못 돌아오리라


오늘은 가사불사의 회항이라 하지만 무엇을 가지고 회항이라 하는가?

 불-보살-성문-연각과 진허공 변법계에 유정-무정과 명암 색공 모든법과 만들어진

 가사 일백 이십벌과 회항하는 롸주-시주와 조연-양공과 도감별좌와 일체 수희 찬탄

결연한 선남 선녀 등이 모두 다 이 주장자 끝에 회항 했느니라.

 대중들이여, 이 주장자는 필경 어느 곳에 회향하겠는가?

주장자를 던지며 , 소리하셨다.

挽下萬古家中物하면      만고의 그 집안에 그 물건을 잡아내면

分明遍界太和春이니라.      분명히 온 세상이 태화의 봄이리라.


선병요설[禪病要設]

참선 공부하는이가 조사의 공안상에 실다히 참구하지 못하고 거개가 다 병마에 끄달려서 본참공안을 투탈[透脫]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이는 몸을 꿈적거리기 싫어하고 마음을 조용하게만 만들어 아무것도 않고일체 모두를 잊어버리는 것으로 ‘禪’을 삼나니,

이것은 마음의 채성이 본래 공하고 환 같은 이 몸이 무상한 줄 모르고서 쓸데없이 몸과 마음을 국집하여 억지로 용을 쓰는 것이다. 어떤이는, 화두상에 의정은 잊어버리고, 

자기 가슴속에 한 물건 분별망상이 조용해지면 당장 ‘참 마음’이 다 된 줄 생각하고

그 생각을 지켜 일체에 연속되어 끊어지지 않는 것으로 ‘禪’을 삼나니,이것은 진과 망의 자체가 물건이 그림자를 따름과 같아서 지키는 자와 있는 자가 모두다 환화[幻化]인줄 알지 못하고 환법으로 환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까닭이다.

혹자는 화두상에 의정[疑情]을 마련하지 아니하고 마음을 비워 고요하고 잠잠하여 일체를 생각지 않고 일으키지 않는 것으로 ‘禪’을 삼나니 이것은 마음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본래 공하여 ‘내’라는 것이 없음을 모르는 까닭이다.  생각지 않음과 마음을 비움, 이 두가지 때문에 끝내 해결되기 어렵나니, 이것이 병이 된 것이다.

어떤이는 조사의 공안을 그저 붙잡고 놓지않아 가슴속에 우그려두고, 세간 온갖 망상을 게다가 들러대어 한덩어리를 만들어 가지고 짬 없는 모양이 현정하는 것으로 ‘禪’을 삼나니

 이것은 공안이라는 것이 요지가 의단[疑團]에 있고 투득하는데 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어떤이는 조사의 공안상에 조작하는 마음으로 의심을 일으켜서 조작하는 생각생각을 상속시키다가  홀연히 마음이 번거로울 때 문득 ‘단지 안에서 기어다는 자라’를 얻는 것으로 ‘禪’을 삼나니,  이것은 이 공부가 일체 조작울 떠난 것인 줄 모르는 탓이며,조작하면 할수록 더욱 멀어지는 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또, 어떤이는 선지식에게 처음 법문듣던 길로 즉시에 의단이 단박 일어나서 당장 앞뒤가 끊어져 마치 맹렬한 불무덕이 처럼,  세간일체 형상있는 물건이 접촉 할 수 없듯이 하다가

 홀연히 가슴속에 걸리든 물건을 타파하면 마음꽃이 활짝펴서 일체불조의 공안과 기연 차별에 척척 알아맞추는 것으로 ‘禪’을 삼나니,  이것은 ‘깨쳤다는 마음’이 그래도 ‘미한 마음’인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이 깨쳤다는 마음을 가지고 회유하다는 생각을 내면 스스로 마음을 흔들어서 그때의 맹리한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인과 따위가 뭐냐?하고 문득 걸림없는 행을 함부로 저질러서 큰 병통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에 말한 모든 ‘선병[禪病]’밖에 어떤 것이 병통없는 ‘禪’이 겠는가?

새싹은 봄바람이 아직 싫어서 나무 난간 사이로 흔들흔들 기어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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