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경봉 정석 대종사
02/08/2018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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來世란 있는 것인가
 법좌에 올라 주장자를 세 번 치고 이르,시기를 
  大道深深亦不深   대도는 깊고 깊은데 또한 깊지않기도 하네
 我隨風景踏雲林   풍광에 취해 구름 숲을 밟으니
환中白日多春氣   우주에 붉은 태양은 봄빛에 어리어
 雪上紅梅帶翠心    눈 가운데 피는 붉은 매화는 늘 푸른 마음이네
 
 우리가 수행을 하는데 자세가 없을 수 없다. 모든 운동에도 기본자세가 있는데 하물며 
이 참선하는 수련에 자세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좌선坐禪하는데 그 앉는 자세를 간략하게 말하여보자.
 좌복을 두텁게 깔고 옷에 끈을 늦추고 위의를 정돈한 후에 가부좌跏趺坐로 앉되 
먼저 오른 발을 왼 발 위에 얹고, 왼 발을 오른 발 위에 얹으며, 혹 반 가부좌도 한다. 
반 가부좌는 다만 왼 발을 오른 발 위에 얹으면 된다. 그 다음 오른 손을 왼 발 위에 얹어놓고, 왼 손을 오른 손 위에 얹어서 손을 펴고 두 손의 엄지 손가락 끝을 서로 붙이고 천천히 몸을 들어 앞을 향하여 다시 좌우로 조금 흔들어 바로 단정하게 앉아 좌우로 기울어지지 않게하고 앞 뒤로도 굽지않게 하여 척추를 바로 세우고 형상을 부도석탑浮屠石塔고 같이 하며 귀는 어깨와 나란히 하고 코는 배꼽과 상대하게 하며, 혀는 입천장에 붙이고 입술을 다물고 이는 지긋이 물며 눈은 반 쯤 열어 수면과 산란한 정신을 면하게 하여 선정禪定에 드는 것이, 그 힘이 가장 승하게 된다.
 
이 밀씀은 옛날 조사께서 가르치신 것이다. 공부에 득력을 하면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상관이 없지만 처음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이 법에 의지하여 좌선하여야 한다.  여러분들은 소소령령[昭昭靈靈]한 이 자리가 죽으면 영영 어디로 가는지 없어지는지 불생불멸[不生不滅] 하는지 잘 모른다. 이것에 대하여 역사적인 사실을 하나 증거를 대여서 말하려 한다. 
그렇게 해야 의문이 풀린다.
이조 말엽에 있었던 일이다.
 모든 것이 성의가 지극하면 이루어지게 되는데, 박문수[朴文秀] 부모가 자식을 낳지못하여 삼년을 두고 닷새마다 돌아오는 장날에 음식을 차려놓고 하인을 시켜 시장에 어떤 스님네든지 한 분씩 청하여 대접하였다. 이 뜻은 승려는 佛 - 法 - 僧  三寶 가운데 든 사람이니 
부처님과 같이 생각하고 대접하는 것이다.  이렇게 삼년이란 세월을 보내도록 성심성의를 다 하는 것은 오직 자식 하나 얻으려는 생각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만 삼년이 되는 장날, 시장에 스님을 청하러 하인이 가니 그날은 한 분 없어서 날이 저물도록 기다리자 얼굴이 부어 터지고 손과 발에서 고름과 피가흐르는 문둥병걸린 스님 한 분과 만났다. 데리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른 스님이 없으니 할 수 없이 데리고가서  대문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주인을 보고 그 사정을 말하니  상전이 흔연한 모습으로 사랑에 영접하라 하였다. 
사랑에들어 가는데 발자국마다 마루에나 방바닥에 피 고름에 흘러 묻는다. 그래도 마음으로 불쾌하게 여기지않고 흔연히 음식을 주어서 먹게 하였다. 식을 먹는데도 숫가락이나 젓가락에 피 고름이 묻고 음식에도 흘러 보기 흉한 지경이었지만 주인은 변색이 없었다. 
밥을 다 먹고 갈 때 주인이 하는 말이 "다른데 가서 우리집 사랑에서 얻어 먹었다고 이야기하지 말게" 하니  그 문둥이 스님이 말하기를 "당신은 다른 데 가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친견했다고 말하지 말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그로부터 부인이 잉태가 되어 아들을 낳았는데 문수보살을 친견해서 아이를 낳았다고 이름을 문수라 하였으나 성인의 이름을 바로 쓸 수가 없어서 한 자 고쳐 빼어날 秀자로 한 것이다. 
문수보살을 친견하여 아이를 낳은 까닭으로 그 아이가 재주와 정신이 보통 사람보다 초월하였다. 그 후에 나라에서 암행어사[暗行御史]에 봉하여 팔도에 과객같이 다니며 민간의 선악을 다 조사하여 백성의 억울함이 없도록 하고  賞줄 사람은 상을 주어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그 당시 박 어사가 오대산에 가서 산세도 구경하고 수양을 겸해서 석 달을 머물렀다.
박 어사의 행색이 과객 차림이니 당시 다른 사람들은 일개 과객으로 알고 박 영감에게 불도 담아 오라 하고 물도 길어 오라 하여 존칭도없이 함부로하여 푸대접을 하였다. 그리고 공부하는 사람이 적었다. 그 점 저 점 마음 가운데 불평으로서 모든 사찰에 역사를 많이 하도록 하게 하였다. 
그 때 대구 팔공산 파계사[把溪寺]도 역사가 많아서 용파龍坡대사가 "내가 서울가서 어떤 권력있는 대신에게 말을 하여 이 역사를 혁파革罷 시키리라."  하는 서원을 세워서 산중 스님네들에게 발표하고 정조대왕[正祖大王] 즉위한 9년 을유년 가을에 죽장망혜[竹杖芒鞋] (대지팡이와 짚신)로 칠백여리 한양성에 도달하였다.
유력한 대신을 알아서 사찰의 역사를 혁파하기로 원력은 세웠지만 우선 먹어야 할 터이니 부득이 한강물을 져다가 민간에 주고 이것으로 우선 생활 계책을 하였다. 
이러한 일을 하고있으니 대신을 친할 겨를이 없었다. 어느덧 삼년이란 세월이 지났다.
원을 이루지못한 채 삼년이 마지막 가는 날 밤을 구럭저럭 지세우는데 그날 밤 정조대왕이 꿈을 꾸는데 남대문 이층에 올라가 보니 승례문 밖 세째 집 위에 청 - 황룡이 백도百道 광명을 놓아서 하늘에 사무치는 것을 보았다.
그 이튿날 아침 새벽에 어전별감[御前別監]을 불러서 명령하기를 숭례문 밖 세째 집에가서 낯선사람이 있거던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였다. 어전별감이 그 집에 가보니 사람은 없고 파계사 용파대사가 있었다. 
"웬  사람이 이곳에 와 있느냐?" 하니  용파대사가 자기의 소원을 일장 설명하였다.
어전별감이 말하기를, 조정의 대신을 친하려고 하였지만 대신보다 나라 어전에서 오라고 하니 가서 무슨 말을 하든지 하라고 권하고 데리고 어전에 이르렀다.
 
  임금이 묻기를 "이름이 무엇이냐?"
"용파 입니다." 
 "이름에 용 龍자가 들어서 내가 지난 밤 꿈에 용을 보았구나, 어째서 이 한양 장안에 왔느냐?" 용파대사가 세세한 정곡情曲과 원하는 바를 주달하였다. 
임금이 그 말을 다 듣고  "내가 사찰에 폐 되는 것을 폐지하여 줄 것이나 내가 하늘에 사무치는 원한이 있다. 첫째는 선왕께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서 정토에 인연을 맺어주기 위하여 명년 봄에는 수원[水原] 현륭원顯隆園 부근에 사찰(현 수원 용주사)를 건축하고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을 조성하여 부모의 은혜를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하기 위하여 대신에게 명령하였으니 이것은 용파대사의 힘을 빌지않아도 되는 것이요, 
둘째는 내가 나이가 많으나 세자가 없으니 원컨대 용파대사가 명산성지에 백일을 치성하되 한양백리 이내에 기도 처소를 정하면 궁인과 예관이 참배하도록 칙령勅令을 내리겠다.
 용파대사가 말하기를 "금강산 만취암에서 공부하던 농산스님이 근일에 한양근처에 와서 있으니 그 사람과 둘이 기도를 하겠읍니다."
 "그 것은 누구를 데리고 하든지 알아서 하게."  그래서 북한산하 금선암金仙庵에는  농산이 기도하고 흥인문興仁門 밖 사십리 수락산水落山  내원암內院庵에는 용파대사가 기도를 하였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하기를 칠 십 여일 지난뒤에 용파대사가 선정중禪定中에 관하여 보니 
작은 일이지만 임금의 지위에 오를 사람이없고 모두 망상과 진뇌심과 남을 해롭게 할 생각이 꽉차있어서 나라 세자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나라 임금 願을 성취하게 하려면 내가 죽든지 그렇지 않으면 노안이 죽든지 해야되겠다는 것을 알고 그 해 기유년 이월 이십일에 농산에게 편지를 하였다.
편지 서두에 안부와 수고한다는 위로를 하고 "내가 기도하는 중 선정에 들어 관하여보니 
사람들이 모두 육종법태肉種凡胎에 망상진뇌만 가득하여 세자될 사람이 없으니 내가 죽든지 스님이 가든지 하여야 되겠는데 나는 本寺에 일이있어 가지 못하고 화상和尙은 자비심으로서 임금의 지위에 올라 임금의 원을 만족하게 하여주고 만 백성을 위하고 불교를 위하여 그 자리에 나아가시기를 원하는 바입니다."
  이렇게 농산 스님에게 서신을 보냈다.
 농산 스님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다가 수락산 내원암에서 온 편지를 보니, 자기 보고 이 세상에 살지말고 죽으라는 권고였다.  농산 스님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나라의 위축爲祝 기도를 맡은 것으로 因을 심었는데 이 기도가 마치기 전에 果가 벌써 돌아왔구나." 하고는 희답하기를 "내가 출가 수도하는 것은 대도大道를 성취하여 人天에 안목眼目이 되어 
모든 중생을 교화할 생각 뿐이지, 이 몸이 나라의 임금이 되어서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받으려고 하는 것은 꿈에도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因을 따라서 果가 당도하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기도 회향일廻向日에 봅시다." 라는 내용을 써서 보냈다.
 이 편지를 받은 용파대사는 자기가 보낸 편지내용과 이 회답편지 두 장을 잘 써서 두었다. 회향하는 날 저녁에 농산스님은 자기 방에서 혼자 중얼거리기를 사십년을 어찌 만건을 쓰고 있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이 말은 자기몸이 죽어서 사십년동안 임금노릇할 것을 미리알고 예언한 것이다. 이 말은 상좌가 곁에서 들은 말이다. 
그날 밤 농산 스님께서는 고요히 入寂하였다.  그리고 정조대왕과 그 왕비의 꿈에 태어나는 것을 미리 현몽 하였다.  그 이튿날 아침에 기도처에서 농산대사가 입적하였다는 소식이 
임금에게 전햐여 졌다. 임금이 이 일은 용파대사가 사유를 잘 알 터이니 불러 들이라 하였다. 임금이 용파대사에게 "오늘은 나라의 위축기도를 회향하는 날인데 농산대사가 입적하였다하니 어찌 이런 불상사가 있을 수 있겠소?" 
용파는 전에 농산에게 편지한 사본과 농산에게서 온 회답 편지 두장을 임금에게 올리며 "이 두 편지만 보시면 그 사유를 알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그 편지를 보니 하나는 죽으라하고  하나는 회향일날에 보자고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임금의 꿈과 왕비의 꿈에 명확히 현몽한 것이니 의심할 바가 없었다. 그 이듬해 경술년에 세자가 탄생하였는데 이름은 공이요 자는 공보公寶인데  이 분이 커서 왕  위에올라 순조대왕이 되였다.
 이 사실을 법문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지, 또 영 없어지는지, 환생을 하는지, 사람이 모두 이 문제가 예와 이제에 일대 의혹에 걸리고 있으므로 과거에도 그런 환생하는 일이 역사적으로 많이 있지만 이조때 있었던 일을 한 귀절 인용하여  여러사람의 의혹을 풀어주기 위해서다.
相逢誰問還家路   서로 만나서 누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묻는가
山自高兮水自深   산은 절로 높고 물도 절로 깊네
 
할 일할 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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