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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비서실장 임종석, 그는 북괴 정권의 아바타 골수 주체사상파 핵심 멤버 아닌가?
05/10/201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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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파 출신의 종북 좌파 수장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내정되 논란이 되고 있다한국당은 10일 논평을 통해 임 비서실장은 주사파(주체사상파)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한 바 있다문 대통령은 비서실장 임명을 재고하길 바란다는 이의를 제기한 임종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은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비서실장 지명 이후 자유한국당에서 주사파 출신 실장이라고 비판했는데앞으로 야당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국당과는 더 소통하도록 노력하겠다이낙연 총리 내정자와 마찬가지로 저도 국회에서 조정하고 타협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라고 답했다고 조선닷컴이 전했다.




문재인 정말 대단합니다.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고 

국민 대 통합과 소통을 통하여 대 화합을 이룬다고 하더니

대통령 취임 첫 날 첫 번째 행한 중대한 일이 

대한민국 국민하고 화합하고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북괴 김정은이하고 소통하고 화합하기 위하여

북괴 아바타인 종북 골수 빨갱이 주체사상파

임종석을 비서실장에 내정하였습니다.


임종석은 미국 블랙 리스트에 올려져 미국 출입이 금지된자입니다.  

문재인은 역시 소통의 대가이십니다. 

이런 문재인을 지지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그 대가를 5년동안 피눈물 나도록 톡톡하게 치룰것입니다. 

이게 다 자업자득입니다. 

종북 좌익 좌파의 피는 결코 대한민국 국민을 속일 수 없습니다.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차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9대 대통령 취임선서 행사에서 언급한 말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강조한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 발언에 대해 뒷말이 팽배하다. 이는 문 대통령이 이날 취임식 후 발표한 인선 결과가 한 몫 한다.

문 대통령은 이른바 '청와대 2인자'로 불리는 청와대 비서실장직에 임종석 전 민주당 의원을 내정했다. 국무총리직에는 이낙연 전남도지사를 내정자로 지목했다.

대통령이 내정한 두 사람은 민주당 소속 정치인으로 꼽힌다.

또 청와대 민정수석으로는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내정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조 교수 역시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게 정치권의 전언이다.

실제 조 교수는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혁신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외곽에서 지원을 해왔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이 언급한 '통합' 발언에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말로는 '통합대통령'을 외쳤다"라면서 "그러나 문재인 정부 1기 인물들을 살펴보면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로 가득하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이 언급한 통합은 민주당만을 위한 것인지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정부 비서실장 거론된 임종석, 임수경 안희정과 같은 주사파 출신


임수경 , 임종석
ⓒ왼쪽 방북 당시 임수경, 전 전대협3기 의장 임종석

19대 장미대선이 치뤄진지 하루, 문재인 정부에서 차기 비서실장으로 거론된 임종석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 비서실장이 화제가 되고있다.

임종석 전 의원은 특히 친북세력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임종석 씨는 방북후 '평양축전참가사건'으로 유명한 임수경 전 민주당 의원과 안희정 지사와 같은 주사파 출신이다.

주사파는 1980년 중반부터 세력을 떨친 우리나라 운동권 학생 일파로 김일성의 소위 주체사상을 지도이념과 행동지침을 삼으며 특히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을 강조함으로 NL파라고도 불렸다.

주사파는 전세계 공산주의 몰락과 김일성의 사망으로 그 존재가 미미해졌다.

임종석 전 의원은 전국대학생대표협의(전대협) 3기 의장으로  1989년 임수경'평양축전참가사건'과 관련된 인물이다.

'평양축전참가사건'은 1989년 6월 전대협 대표였던 임수경이 제 3국을 통해 북한에 방문, 이후 8월 15일 남한에 돌아온 사건이다. 전국민족주의민주운동연합(전민련) 고문 문익환 목사는 1989년 3월 25일 당시 평양을 비밀 방문했고 그로인해 한국 정부는 '세계평양축전참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당시 전대협은 임수경을 제 3국을 통해 북한에 보냈고, 전대협 간부 대부분이 국가보안법위반으로 구속되었다.

특히 이번 문재인 정부 비서살장으로 거론된 임종석 전의원이 '평양축전참가'를 지휘한것으로 알려져 문재인 정부 친북논란이 더욱더 불거지고있다.


[글로벌이코노믹 최수영 기자] 

10일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종석(51) 전 통합민주당 의원이 내정됐다. 이에 임종석 전 의원의 과거 행적에 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임종석 전 의원은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할 당시 '임수경 방북 프로젝트'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임종석 전 의원과 임수경 사이에는 평양축전참가사건이 있다.

'평양축전참가사건'은 1989년 6월 전대협 대표였던 임수경이 단신으로 평양에 도착해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뒤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남한에 돌아온 사건을 말한다. 

당시 평양축전 참가를 허용할 것처럼 보이던 정부가 문목사 방북사건 후 태도를 바꿔 이를 허락하지 않자, 전대협은 극비리에 임수경을 제3국을 통해 파견했다. 이로 인해 전대협 간부들이 대거 검거됐고, 임수경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2심에서 징역 5년을 언도받았다. 

이에 김문수 전 경기 지사는 공개적으로 "임수경 의원과 임종석 전 의원은 모두 주사파 세력"이라고 비난 했던 바 있다.

한편 주사파(주체사상파)는 대한민국의 민족 해방 계열의 하나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지지하고 그에 따른 정치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임 전 의원의 청와대 비서실장 '내정'이 문재인 정부의 '태풍의 눈'이 되고 있다.



주사파 출신의 대통령 비서실장이 논란이 되고 있다한국당은 10일 논평을 통해 임 비서실장은 주사파 출신으로 알려졌으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복역한 바 있다문 대통령은 비서실장 임명을 재고하길 바란다는 이의를 제기한 임종석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은 10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비서실장 지명 이후 자유한국당에서 주사파 출신 실장이라고 비판했는데앞으로 야당과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한국당과는 더 소통하도록 노력하겠다이낙연 총리 내정자와 마찬가지로 저도 국회에서 조정하고 타협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것이라고 답했다고 조선닷컴이 전했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의롭고 따뜻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성심껏 모시겠다. 성심껏 모시되 예스맨이 되진 않겠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대통령에게 직언하고 격의 없이 토론하도록 노력하겠다 비서실이라고 하면 비밀이 많은 곳으로 국민들이 생각한다. 투명과 소통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갖고 비서실을 운영하고 언론인과도 소통하겠다고 주장했다고 조선닷컴은 한다. ‘비서실 구성이 언제쯤 완료될 계획인지에 대한 질문에 조금 전에 임명받았고, 지침을 받아야 한다. 늦출 수 없는 문제인 것은 분명하고 빠른 시간 내에 마치겠다고 답했다고 조선닷컴은 전했다.

 

이날 자유한국당 정준길 대변인은 임종석 비서실장의 주사파 경력을 문제삼았다. “선거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안보관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며 정준길 대변인은 권력의 핵심 중 핵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는 중책을 주사파 출신이자 개성공단 추진자에게 맡기는 것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깊다고 논평했다. “임 실장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지냈으며, 주사파 출신으로 알려졌다며 정준길 대변인은 “1989년 임수경 전 의원 방북 사건을 진두지휘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 6개월간 복역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민심을 잘 살펴 비서실장 임명을 재고하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임종석 비서실장 주사파 출신 비판에 야당과 소통 노력예스맨 되진 않을 것”>이라는 조선닷컴의 기사에 한 네티즌(monb****) 시작과 함께 국민을 우롱하는 임종석 임명이 바로 농단이 아니고 무엇인가? 적폐가 아니고 운동권폐인가?”라고 했고, 다른 네티즌(park****) 주사파가 어디 있나? 춥고 배고플 때 그런 척하는 것이지. 돈 되고 빽 있는 자리 앉으면 더 이상 주사파 안 하지들.. 극히 일부 심장까지 판 주사파만 제외하고!”라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inters****) 주사파들 그동안 음지에서 고생했다. 이제 한 가지만 남았지. 대한민국을 아귀 OOO에 쳐넣는 일. 미개한 궁민들 맞아야 정신차리지라고 했다.

 

<한국당 주사파 출신 임종석,  비서실장 임명은 매우 유감임명 재고해야”>라는 조선닷컴의 기사에 한 네티즌(ipa****)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면 핵심 국가기밀을 다룰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 임종석이를 임명한 것에 대해 국민정서와 너무 동떨어지고 국가안보에 너무 위험한 처사가 아닌가?”라고 했고, 다른 네티즌(skus****) 저럴려고 정권 잡았는데 철회라니?”라고 했고, 또 다른 네티즌(na****) 절대 임명철회 안 합니다. 과거 노무현정부 때부터 보아오질 않았습니까? ‘대통령 고유의 권한이라며 이리 가라하면 저리로 가고, 노무현 특유의 X고집으로 지하고 싶은 대로 했던 거. 그 밥에 그 건건이니 절대 안 바꿀 겁니다라고 했다





(* 이 글은 사회주의를 주장하는 '노동해방실천연대' 자유게시판에 2010.09.03에 임종석 신임 비서실장이 직접 쓴 글입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선군혁명영도를 개시한 때로부터 어느덧 반세기가 지나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가 승승장구하며 승리에 승리를 거둡하며 전진하고 있는 것은 바로 김 위원장의 선군정치가 사랑의 정치, 동지애의 정치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온 사회를 하나의 동지애의 세계로 만들고 혁명적 동지애로 뭉친 단결의 위력으로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래도 동지애의 노래를 가장 사랑한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난의 행군길에 들어선 1995년 1월 1일 다박솔초소 현지지도를 마친 새해 첫 밤 일꾼들과 함께 동지애의 노래를 불렀고 96년 새해 첫 아침에도 비장한 마음으로 동지애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동지애의 노래와 함께, 동지들과 함께 시련의 고비를 넘으며 제국주의자들의 고립, 압살 광풍을 강경 진압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그 동지애의 노래로 만난을 이겨내며 오늘도 선군혁명영도의 나날을 이어가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동지사랑에 기초한 정치이다 


김일성 주석의 서거 후 집무실 금고에서는 혁명가 김책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만이 발견되어 만 사람은 그 높이를 다 알 수 없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하고 거룩한 동지애의 세계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이 바로 동지이고 동지애라며 동지를 얻으면 천하를 얻고 동지를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고 강조하여 왔다. 


집무실 금고에서 발견된 한 장의 사진은 동지를 그 어떤 보물보다 더 귀중히 여겼던 김일성 주석의 숭고한 동지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같은 김일성 주석의 숭고한 동지애를 그대로 체현한 최고, 최상의 동지애의 모범이자 전형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혁명의 1세대인 항일투사들과 해방 후 당과 혁명에 충실한 일꾼들을 언제나 존대하고 그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 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꾼들에게 국제공산주의운동사에는 후배가 선배를 비방 중상하고 모독하는 현상이 적지 않게 있다며 조선노동당에서는 앞으로 몇 십년, 몇 백년이 가도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동지들 중에서도 언제나 혁명선배들을 존경하고 내세워주며 그들의 사업과 생활을 돌봐주었다. 


항일투사 최현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랑은 혁명 1세대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뜨거운 동지애를 잘 보여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명한 항일독립운동가인 최현이 큰병으로 민족보위상의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되자 우리 곁에 앉아 있어 주기만 하여도 마음이 든든하고 힘이 된다고 하면서 보약도 보내주고 경치가 좋은 휴양소에서 온천치료도 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직접 병상을 찾아 어떻게든 몇 시간만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키려 온갖 노고를 다 바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현이 한생을 군복을 입고 당과 수령을 무장으로 받들어온 충신이었다며 그를 원형으로 한 혁명가라는 영화를 만들어 민중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게 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백룡, 김일, 오진우, 임춘추, 최광 등 김일성 주석과 혈전만리를 함께 하였던 혁명 1세대들을 극진히 보살폈고 그들의 생명을 조금이나마 연장하기 위하여 심혈을 아끼지 않았다. 


오백룡이 뜻밖의 일로 생명이 위급하게 된 때에는 이미 소집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까지 미루고 30분 간격으로 여덟 차례나 담당의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병상태를 살폈다고 한다. 


김일 부주석이 임종을 앞두고 맏손자를 불러 앉히고 내가 김일성 주석님을 모셔온 것처럼 너희들이 김정일 영도자를 잘 받들어 모시라고 당부했다는 일화는 혁명 1세대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애가 빚어낸 감동적인 화폭으로 알려져 있다. 


일꾼들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랑도 각별하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었던 허담의 환갑날을 앞두고 <나는 정일 너는 허담>이라는 친필 문구가 담긴 수첩을 보내준 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사랑, 일꾼사랑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일화 중 하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병상에 누운 허담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 세상을 다 뒤져 명의라는 명의는 다 찾아보고 명약이라는 명약을 모두 써보면서 요양 중인 그의 건강도 매일 손수 살피었다고 한다. 


허담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하늘같은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 바치었다. 


중앙기관에서 일하던 한 일꾼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보고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폭우 속의 밤길을 헤치며 평양으로 달려갔다는 일화도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꾼들을 잃었을 때마다 그들이 다 일밖에 모르는 진짜배기 일꾼들이었다고 내세워주며 그들의 후대들의 앞날까지 염려하여 세심하게 보살폈다.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극진한 사랑은 진정한 동지애의 표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를 언제나 조국통일운동에서 나서는 가장 첫 번째 과업으로 내세우고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국 반민족, 반통일정권으로 민중의 심판을 받은 김영삼 정권을 기어이 굴복시켜 이인모 선생의 송환을 이끌어 낸 사랑의 신화는 전세계에 얼마나 크나큰 파문을 일으켰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었고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분단의 장벽을 넘는 전대미문의 감동서사시를 연출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뜨거운 사랑의 품에 안긴 비전향장기수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 속에서 잃어버린 청춘을 다시 되찾고 조국을 위해 마지막 생을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사랑의 정치는 동서고금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이 같은 동지사랑으로 북한의 민중은 김 국방위원장님의 선군정치를 절대적으로 받들고 있다고 보아진다 .



탈북자 입국은 “브로커가 개입된 부도덕한 인력매매” “인권에도 반하고 경제국익에도 역행” 金成昱    

 
 1.
18일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任鐘晳(임종석) 前의원은 의원 재직 당시 反국가·反민족적 언동으로 끝없이 물의를 빚어온 인물이다. 任 前의원은 腐敗(부패) 혐의로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지난 달 28일 삼화저축은행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전대협 3기 의장 출신인 任 前의원은 의원 재직 당시 국가보안법 폐지와 6·15연방제 실현에 앞장서왔다. 
 
그는 ▲2004년 8월4일 국가보안법 폐지 입법추진위원회에 참여했고, ▲2004년 12월14일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를 촉구하는 의원단에 들어갔으며, ▲2007년 5월31일 ‘6·15 남북공동선언 기념일’ 지정촉구결의안에 서명했다. 
 
 2.
任 前의원은 ▲(사)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 자격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의 소위 도서관현대화사업을 지원, 통일부를 통해 2007년 말까지 7억1천7백만 원을 지원하기도 했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북한의 독재를 지키는 공산화 혁명가 양성기관이다. 북한은 이곳을 “主體(주체)교육의 최고전당” “主體의 사회주의대학” (2006년10월2일 로동신문 외)로 추켜세워 왔다. 
 
또 “김일성종합대학은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위하는 首領(수령)의 대학, 黨(당)의 대학으로 빛을 뿌리고 있다”며 “김일성종합대학 교직원·학생들은 黨과 首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른다”(출처: 上同)는 등 이곳이 북한인민이 아닌 김일성 가문을 위한 곳이라는 결의를 해왔다.
  
김승철 자유조선방송 대표는(탈북자)은 “김일성종합대학은 북한정권을 지키는 충성분자를 키우는 곳으로서, 김책공업대학 등과 달리 인민의 삶과 무관한 정치·사상 분야만 비대해진 대학이며, 순수한 학술자료라는 것도 主體思想(주체사상)으로 가공돼 있다”며 “김일성종합대학 지원은 최악의 수령독재체제를 지원하는 사례”라고 말했다. 
  
 3.
任 前의원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그는 ▲2004년 9월2일 ‘美國의 북한인권법 제정 항의 서한’에 참여했고, ▲2005년 7월14일 ‘미국과 일본의 북한인권 문제제기 규탄 결의안’에 참여했다. 
 
2004년 9월2일 서한은 당시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25명과 민주당 국회의원 1명이 참여,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이 북한에 위협을 줘 남북화해에 찬 물을 끼얹는다”는 요지로 비난했다. 2005년 7월14일 결의안은 역시 열린우리당·민주당 의원이 주축이 돼 “국제사회 일각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북핵문제해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4.
任 前의원은 민족통일의 대상이 북한의 2400만 동족이 아니라 이들을 때려죽이고 얼려죽이고 굶겨죽이는 독재정권이라는 인식을 보여 왔다. 그는 2005년 1월29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북한은 통일을 해야 할 반쪽인데, 主敵(주적)이라는 표현은 그것을 송두리째 부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任 前의원은 2004년 10월21일 통일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펴낸 자료집을 통해, “탈북자 문제는 남북관계의 하위 의제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탈북자 기획입국 주도단체는 악덕 상업자”이며, 탈북자 입국은 “브로커가 개입된 부도덕한 인력매매로 전락했다”,“인권에도 반하고 경제국익에도 역행한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2004년 10월22일 통외통위에서 “남북화해협력 없이 납북자 문제해결이 쉽지 않은 만큼 이를 위한 환경 조성이 우선돼야 한다”며 납북자 문제해결의 절박성을 외면하는 주장을 폈다. 
 
 5.
任 前의원은 역시 2006년 10월9일 북한이 핵실험에 나서자, 북한이 아닌 미국을 비난하며 對北포용정책 지속을 주장했다. 그가 쓴 칼럼 중 북한의 핵실험 원인은 미국의 對北금융제재 때문이라며 화살을 북한이 아닌 미국에 돌리는 내용을 인용하면 이러하다. 
  
“북·미간 갈등과 대결, 그중에서도 북한을 핵실험이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던 결정적 요인은 미국의 對北금융제재에 있었다.(…)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비롯해 어떤 경우에도 남북경협의 모멘텀이 실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이미 북한이 공언한 바와 같이 PSI에 입각한 북한 진출입에 대한 검색과 봉쇄는 對北선전포고로 간주될 것이다(2006년 10월13일 칼럼 中)”
 
그는 또 2005년 4월12일 칼럼에서 “미국은 증명할 수 없는 북한의 핵개발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였고(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존재 관련 워싱턴 포스트 기사 등), 북한은 핵 보유와 6자 회담 불참을 선언했다. 뿐만 아니라 6자회담이 아닌 군축회담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北美간 불신이 초래한 예견된 불행 이었다”며 북한의 핵실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任 前의원은 2006년 9월8일 한 칼럼에서 “한·미관계는 지금 악화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렇게 주장했다. 
 
“배타적 지역주의, 冷戰·守舊세력의 온존, 뿌리 없는 선거용 정당은 한국정치의 三重苦(삼중고)입니다. 한국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불신 받고 냉대 받는 비극의 중심엔 바로 삼중고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만 해도 冷戰·守舊세력에 의해 왜곡되고 反정부투쟁의 소재로 변질된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임종석 민통당 사무총장의 소름끼치는 과거사(2) 
  
80년대의 類似 민주화 운동  金成昱    
 
 1.
한국현대사 비극 중 한 가지는 ‘386주사파’ 출현이다. 소위 주체사상파, 김일성주의는 80년 광주사태를 거치며 탄생한, 대한민국의 정당성과 정통성 자체를 뒤집는 類似(유사) 민주화 운동이었다. 
 
386주사파는 이미 해방된 북한과 달리 남한은 아직 美帝(미제)의 식민지 지배에서 해방되지 않았다며 “민족해방(National Liberation)”을 외쳤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지만, 북한은 항일투쟁-친일청산-반미자주의 길을 걸은 그럴싸한 나라로 보았다. 주한미군을 몰아내고 남북한이 사회주의 연방제 통일을 하자는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 필연적으로 親北(친북)·反韓(반한)·反美的(반미적) 본질을 띄었다. 
 
386주사파는 민주화의 외투를 걸쳤을 뿐이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반역의 이데올로기였고 김일성 왕조의 노예로 전락한 북한의 동족을 외면하는 패륜적 패러다임이었다. 
 
이들은 20대의 강렬한 인상을 교정할 재학습 과정을 겪지 못했다. 자신들은 젊고 썩지 않았다는 도덕적 긍지도 있었고 투옥의 경험이 만들어 낸 상처와 분노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태생적 완악함과 강퍅함 그리고 지적인 게으름 때문에, 시간이 흐르고 세상이 달라진 뒤에도 親北·反韓·反美적 색채는 바뀌지 않았다. 30여 년 시간이 흘러간 뒤에도 從北(종북)으로 탈바꿈해 지나간 망령과 공생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 대해선 약간의 흠집도 인정치 않지만 북한에 대해선 한없이 관대하고 더없이 자비롭다. 이제는 거대한 기득권 그룹을 만들어 여전히 “투쟁!”을 외친다. ‘민주’를 팔고 ‘평화’를 팔고 ‘화해’를 팔고 다닌다. 80년대 약간의 義憤(의분)도, 俠義(협의)도 간 데 없다. 생계를 위해 구차한 거짓과 천박한 선동을 일삼는다. 가련한 인생이 되었다. 
 
 2.
18일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으로 임명된 任鐘晳(임종석) 前의원 역시 386주사파 그룹 중 대표적인 ‘전국대학생총연합회(전대협)’출신이다. 전대협은 주사파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대표적 공개조직이다. 87년 결성된 대학생 조직인 전대협은 공식적으로 주한미군철수·국가보안법철폐·연방제통일이라는 북한의 對南노선을 추종했다. 전대협의 실제 모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가안전기획부의 전대협 수사결과를 담고 있는 ‘주사파에 장악된 전대협의 실체 수사결과’, ‘전대협 유인물과 북한방송 대비분석’, ‘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 ‘전대협의 조직실체’ 등 복수의 공안문건들은 주사파 지하조직, 이른바 언더서클의 전대협 장악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이들 기록은 “전대협이 1987년과 1988년 ‘전국사상투쟁위원회(전사투위)’와 ‘반미청년회’의 배후조종을 받은 데 이어 1989~1990년에는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의 배후조종을 받아왔고, 1991년 이후에는 ‘반제청년동맹’, ‘조통그룹’ 등 주사파지하조직에 장악됐었다”며 “전대협은 항상 김일성과 한민전(북한의 對南선전매체 한국민족민주전선의 약자)을 추종하는 지하혁명 조직에 의해 움직여 왔다”고 적고 있다. 
 
이들 기록은 과거 열린우리당 의원인 이인영, 오영식, 임종석 등 당시 전대협 1기, 2기, 3기 의장들이 모두 주사파 지하조직원이라고 적고 있다. 그 중 ‘전대협은 순수학생운동조직인가’중 일부를 인용해보자. 
 
1987년 5월 전대협 제1기가 결성된 이후 1991년 6월 현재 전대협 제5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전대협 의장은 모두 주사파 지하혁명 조직에서 파견한 지하 핵심조직원임이 그 동안의 조사과정에서 드러났음.
 
전대협 제1기 의장 이인영은 1986년 12월 고려대 중심 주체사상 신봉자들이 결성한 주사파 지하조직 전국사상투쟁위원회(전사투위)가 ‘전대협’의장 감으로 사전물색,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철저히 무장시킨 후 의장에 당선시킨 자이고, 
 
전대협 제2기 의장 오영식은 1988년 1월20일 주사파 지하조직 ‘반미청년회’ 출신이며, 
 
전대협 제3기, 제4기, 제5기 의장 임종석, 송갑석(전남대), 김종식(한양대) 등도 주사파 지하조직 ‘자주·민주·통일그룹(자민통)’이 전국 학생운동을 주도, 장악하기 위해 전대협에 침투시킨 지하조직원들이었음》
 
 <“김일성수령님 만세” 충성 맹세했다는 기록>
 
이들 기록은 전대협 내부에서 김일성에 대한 충성의식도 행해졌다고 적고 있다. 예컨대 한OO라는 전대협 조통위 위원장의 자술서 등에 따르면, “1991년 4월 하순 경희대 총학생회실에서 전대협 조통위 정책실장 손OO 주재로 개최된 정책주체전국회의(전대협 정책실원 5명과 전대협 각 지구 조통위 실무자 11명 참석) 후 참석자 전원이 “김일성주석의 건강을 위하여”라고 건배한 후 “김일성 수령님 만세” 삼창 후 회의를 종료”하는 등 전대협 간부들이 회의·집회·시위·MT 후 김일성에 대한 충성의식을 행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전대협을 장악한 주사파 지하조직 중 하나인 자민통은 1990년 8월 중순 한탄강 소재 민박촌에서 각 대학 총학생회장 등에 출마할 88학번 6명(한OO, 최OO, 천OO, 강OO, 김OO, 박OO)과의 MT에서 김일성에 대한 충성맹세를 했던 것으로 나온다. 
 
자민통 조직원들이 당시 “김일성 수령님 만세! 김정일 지도자 동지 만세! 한국민족민주전선 만세!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만세!”를 부른 후 선언했던 결의문과 맹세문은 아래와 같다. 
 
《위대한 수령님 김일성 동지와 우리의 지도자 김정일 비서의 만수무강과 한민전의 영도 아래 이 한 목숨 끊어질 때까지 투쟁하겠다는 결의 결단으로 나아가자(강령 中)...위대한 수령 김일성 장군님을 따라 숨통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죽음으로 혁명을 사수하며 조국과 민족이 완전히 해방되는 그날까지 열사 헌신하겠습니다(규약 中)》
  
전대협 간부들의 김일성에 대한 강한 충성심은 1991년 전대협 수사 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수사결과에 따르면, 제O기 전대협 의장 S씨는 “김일성을 존경한다”는 말을 반복했고, “김일성이 TV화면에 비칠 때면 건강하고 정정한 모습에 흐뭇함을 느낀다. 북한은 정의와 자주권이 보장되어 있는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정부이며 북한에 의한 통일만이 진정한 조국통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제O기 전대협 의장 K씨는 “김일성 주석을 핵심으로 하는 수령관에 동의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김일성 주석은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했고 더 나은 사회주의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 지금의 북한을 훌륭하게 건설했다. 북한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정치적 자주, 경제적 자립, 군사적 자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라고 주장했다.
 
 <“위수김동, 친지김동 김일성·김정일 추앙”>

 
전대협의 주체사상 추종은 전향 주사파 지식인들에 의해서도 잇따라 제기돼 왔다. ‘反帝(반제)청년동맹’ 등에서 활동한 국가인권위원 홍진표씨는 “1980년대 이후 학생운동 지도부는 주사파가 장악했다. ‘주사파는 극소수 학생만이 추종했던 이념’이라는 전대협 출신들의 주장은 거짓말”이라며 2004년 10월 <월간조선>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주사파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전대협, 한총련 등을 조직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잡았다. 이들은 소위 김일성 원전을 읽고 한민전을 청취하며 북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했다. 주사파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친지김동(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이라는 호칭을 써가며 김일성과 김정일을 진심으로 추앙했다》
 
주사파에서 전향한 <시대정신> 편집위원 최홍재씨는 ‘잃어버린 세대 386’이라는 논문에서 “4.19세대와 1970년대 민주화운동세력은 민주화 자체가 목적이념인 반면 386에게 민주화는 사회주의나 북한의 통일로 가는 과정에 불과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은 사회주의 운동이었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경과하며 주사파NL그룹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대표적인 사회운동도 이런 입장을 지니게 된다.(…)주사파는 대중조직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면서 전대협(1987년)과 한총련(1993년)을 조직하게 되어 학생운동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1990년을 전후하여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연쇄적으로 붕괴하면서 PD그룹은 급격하게 쇠락하게 된다》 
 
<“전대협을 주사파가 장악한 게 아니라 주사파가 전대협을 만들어”>
 
전대협 連帶(연대)사업국장(연사국장) 출신으로 주사파에서 전향한 이동호 북한민주화포럼 사무국장은 “전대협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했으며, 한민전의 투쟁방침을 따랐다는 사실은 의심할 나위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주체사상으로 무장한 학생운동그룹은 1987년 반미청년회·조국통일그룹·관악자주파 등을 결성했고, 이 과정에서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를 바탕으로 같은 해 8월 전대협을 건설했다. 전대협을 통해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반미청년회 등은 모두 한민전 지침아래 주체사상과 북한식 투쟁노선으로 무장했다. 반미청년회 등은 自派(자파)출신을 총학생회장에 당선시키거나 활동가를 전대협 내부에 침투시켜 자신들의 지도를 관철시켜왔다. 대중조직인 전대협은 합법조직을 지향, 사상이나 투쟁노선을 대중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전대협은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그룹에 의해서 지도됐기 때문에 그들의 노선과 자료 등 곳곳에서 주체사상과 투쟁노선이 나타나 있다》
 
반미청년회 핵심맹원이었던 강길모 프리존뉴스 대표는 “전대협은 주사파에 장악됐던 것이 아니라 주사파가 만든 것이 전대협이며, 주사파가 아닌 전대협 간부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9월20일 서울프레스센터 자유민주주의학회 세미나, 2006년 12월 <월간조선> 등을 통해 열린당 내 주사파출신 정치인들을 거명하기도 했다. 
 
《金日成주의 조직이었던 反美청년회 등이 1987년 만들었던 것이 전대협이다. 현재는 盧武鉉 정권 실세 역할을 하고 있는 많은 정치인들이 내가 속한 조직에서 교양됐다. 전대협 출신 열린당 의원 우상호·오영식씨, 청와대 제1부속실장 문용욱씨, 前제2부속실장 이은희씨, 前청와대 대변인 김만수씨, 前청와대 제1부속실 행정관 여택수씨 등.(…)우리는 ‘위대한 수령 金日成 동지’를 찬양했다》
 
 그는 또 이렇게 증언했다.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과거 공안사건은 99.9% 사실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증거가 아닌 자백에 의존하려다 보니 고문이나 가혹행위가 빈번하게 이뤄졌고, 이것이 ‘조작설’의 빌미가 되곤 했다. 주사파 운동권에서 북 공작원을 만나는 일은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북과 직접 커넥션이 있다는 것은 운동권 내에서 자신의 권위와 서열을 단번에 높여주는 계기가 됐다》



임종석 서울시 부시장, 과거 北해커 양성 '김일성대학' 지원


김일성종합대학의 지도이념은 ‘김일성의 혁명사상과 근대 과학이론을 체득한 민족간부의 양성’이다.


김필재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임명한 임종석 씨는 2000년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 청년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임 씨 등 운동권 출신이 주축이 되어 조직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을 설립, 서울시 입성 전까지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경문협은 2004년 1월 단체가 설립됐다. <조갑제닷컴> 확인 결과 단체는 설립 초기 서울시 마포구 신촌로 소재 ‘이한열 기념관’ 2층을 사용하다 수년 전 성동구 행당동 무학여고 근처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일보>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기념관의 1층은 건립 초기부터 ‘전대협 동우회’가 사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문협은 통일부에 등록된 사단법인으로 非 영리 민간단체(NGO)로 분류되어 있다.

단체 설립 취지(단체 ‘페이스북’ 참고)를 보면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기초해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한 교류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됐다”면서 “사회문화교류, 인도적 지원, 경제협력사업 등 남북 간 민간교류와 관련된 제반 사항을 모두 사업의 영역”이라고 밝혔다.  

경문협의 이러한 중점사업 가운데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 현대화 사업이 있다.

2006년 8월 단체 이사장이 된 임종석은 김일성종합대학 지원을 주도해 통일부를 통해 2007년 말까지 7억1700만원을 지원했다. 이를 위해 임 씨는 143명의 참관단과 함께 같은 해 3월 나흘 일정으로 방북, 김일성종합대학 과학도서관 전산시스템 개통식 등을 참석했다.

당시 임 씨는 북한을 다녀온 뒤 인터넷 매체 <통일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 대학의) 도서관 현대화 사업을 추진하다 보면 필요한 서버나 컴퓨터를 북으로 반출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는 질문에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컴퓨터와 서버는 현재 지원할 수 없다. 386이상의 컴퓨터는 북으로 반출을 못해 주로 소프트웨어나 바코드 시스템, 도서관 출입시스템 등을 지원하고 있다. 김책공대 전자도서관이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첨단 장비들로 운영되고 있는데 코미디 같은 일이다...(중략) 다시 강조하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을 도와줘야 하는데 엉터리 규정 때문에 스스로 변화를 못하면 북이 자꾸 중국의 자본과 기술에 의지하게 되고 나중에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반면 정옥임 前 한나라당(現 새누리당) 의원은 2009년 10월6일 보도 자료를 통해 “경문협이 (2009년) 9월말 (對北) 지원이 중단될 때까지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 현대화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소프트웨어를 공동개발하고 네트워크 시스템을 제공하였다”며 아래와 같이 지적했다.

《북한의 전용을 우려하여 전략물자 반출도 철저히 통제하고, 북한 해커들에 대한 경고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통일부는 북한에 사이버 보안의 ‘핵심기술’인 네트워크 관리와 운영교육까지 지원했다...(중략) 對北 전문가들에 따르면, 김일성대는 1986년부터 전문 프로그램 요원을 양성하였으며, 김책공대는 2008년 7월 현재 2500명 이상의 전문 인력을 양성한 북한 ‘정보전사’들의 요람으로 核 개발을 포함한 북한 안보연구의 핵심기관으로 알려졌다.》       

김일성종합대학은 1946년 개교한 북한의 종합대학으로 지도이념은 ‘김일성 주석의 혁명사상과 근대 과학이론을 체득한 민족간부의 양성’을 설립 목적으로 하고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입학요건은 ▲가족·친척의 환경과 출신·사회 성분이 적대계층(과거의 지주·자본가·공직자·종교인·월남자·숙청자 등)에 속하지 않는 자 ▲고등중학교(6년제)졸업자 ▲만경대학원·혁명유자녀학원 등의 졸업자 ▲고등중학교 정도의 성인교육을 필한 자 등 출신성분과 사상성 위주로 제한하고 있다. 

김정일을 비롯해 북한 내각의 부부장급 3분의 1이상이 김일성종합대학 출신으로 그동안 수만 명의 간부를 이 대학이 배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일성종합대학은 북한 독재 정권의 온상이다. 이런 대학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된 인물이 지원한 것이다.

김필재 spooner1@hanmail.net 

[관련자료] 북한의 '사이버 요원' 양성 기관

2010년 6월8일 ‘제8회 국방정보보호 콘퍼런스’(국군기무사령부 주최)에서 배득식 당시 국군기무사령관은 “북한은 인민학교에서부터 영재를 선발해 해커 군관으로 양성하는 등 비대칭 전력인 사이버 부대를 전략적 차원에서 육성 중에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사이버 남침/김필재 著
▲ 북한의 사이버 남침/김필재 著


북한의 사이버 요원들은 전국의 시?도?군에 설립된 영재학교에서 최소 랭킹 3위 안에 드는 성적의 수재들이다. 

이들은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컴퓨터 회로와 주변장치(1년에 80시간), C와 C++언어 프로그램 작성법(280시간), 윈도우 조작체계(200시간) 등의 과목부터 배우기 시작해 3~4학년 때는 컴퓨터수학(120시간), 리눅스 프로그램 작성법(180시간), 자료구조와 알고리즘(200시간) 등을 습득한다. 5~6학년 때는 자연언어 처리와 인공지능(160시간), 컴퓨터통신과 네트워크(140시간), 인공지능언어(120시간) 등 이론과 실습을 모두 마친 뒤 졸업한다.

이들 과목은 우리나라 대학으로 따지면 웬만한 4년제 대학 컴퓨터공학 전공 정규과목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또 이들은 매년 500시간에 가까운 컴퓨터 전문 교육을 받는데, 이는 남한의 대학 컴퓨터 전공학과 평균 교육 시간인 240~360시간보다 훨씬 많다. 

수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학교 5학년부터는 90분 강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렇게 해킹에 필요한 컴퓨터 지식을 중학교 때 모두 배우게 된다. 이들에게는 각종 소프트웨어와 초고속 펜티엄급 컴퓨터 장비들이 아낌없이 지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혹독한 교육을 마친 학생들은 이후 북한 내 IT전문대학인 김일성종합대학 내 컴퓨터과학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내 정보기술대학, 평양컴퓨터기술대학, 함흥컴퓨터기술대학 등에 입학해 사이버 전문가(해커)로 거듭난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정예학생들은 사이버공작 전문기관인 미림대학(김일군사대학), 모란봉대학, 압록강대학 등에 입학하게 된다. 

미림대학(1986년 설립)은 평양시 사동구역 미림동에 있으며 컴퓨터를 이용해 軍 부대의 작전을 세우고 지휘?관리하며 군사장비 등을 도입?조정할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총참모부 산하의 5년제 대학으로 해마다 12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미림대학의 학생들은 김일성종합대학, 김책공업종합대학, 평양기계대학, 평성이과대학 등 이공계 대학의 최우등생들과 평양시와 각 도의 제1고등중학교(영재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다.

북한은 미림대학 설립 초기 학교 운영을 위해 소련과 협조계약을 맺고 40여명의 컴퓨터전문가를 대학교수로 초빙했다. 그러나 동구권 붕괴 이후 소련의 컴퓨터 전문가들이 귀국함에 따라 이들에게서 배웠던 학생들과 이공과 계통의 대학교수 가운데 우수한 동구권 유학생들을 교수로 채용했다. 미림대학의 졸업생들은 각 군부대 자동화부 참모에서 전자전 지휘체계를 수립하고 있으며, 초창기 졸업생들로 사단급 이상 컴퓨터 지휘체계의 골격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지금은 대대급에까지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학생양성도 민간에서 선발하던 초기와 달리 최근에는 각 군부대 사병 가운데서 시험을 통해 뽑고 있다. 미림대학의 졸업생들은 정찰총국 산하 해킹 전문부대인 121국으로 우선 배치되고 있다.   

모란봉대학(1997년 설립)은 정찰총국 소속으로 전산 정보처리, 암호해독, 해킹 등의 전문가를 양성한다. 모란봉 대학의 설립은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잠수함 침투 사건이 기폭제로 작용했다. 강릉 잠수함 사건 직후 노동당 내에서는 작전부 산하 대남연락소에서 남파하는 북한 공작원과 남한 내 고정간첩들의 접촉을 통한 정보획득 방식에 대한 회의론이 강력히 제기됐고, 김정일 역시 이러한 의견을 적극 수렴해 모란봉 대학 설립을 전격 승인했다.

대학의 학제는 5년제이며 해마다 30명의 신입생을 선발, 입학 시기부터 인민군 중위 계급을 부여하고 전원 합숙생활을 한다. 2학년 과정까지는 무술, 사격 등 특수훈련이 병행되며, 3학년부터 프로그램 언어습득, 통신감청, 암호해독, 해킹을 통한 정보획득 등의 훈련을 받는다.

졸업생들은 대부분 정찰총국 또는 각 지역 대남연락소에 배치되어 韓?美?日 등 주변 국가 정보기관과 軍을 대상으로 정보수집, 프로그램 파괴 등 작전을 수행한다. 일부는 외화벌이와 국제기술 훈련 차원에서 조선컴퓨터센터(KCC)에 적을 두고 중국에 파견되기도 한다.

2009년 7월11일자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모란봉대학은 그동안 북한 해커의 총본산으로 알려졌던 미림대학 보다 장비와 기술, 교과체계가 앞서고 있으며, 정찰총국 내에서조차 그 실체가 알려지지 않을 정도로 존재가 극비리에 부쳐져 있다고 한다. 

압록강대학은 첩보요원 양성대학으로 외국어?전자통신?암호해석?사이버전을 가르친다. 이 대학의 한 해 졸업생 수는 약 100여명 정도로 해킹에 대한 전문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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