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7 주일설교 :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2)
01/09/201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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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주님의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상황이나 환경,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신의를 지키는 충성된 사람, 남을 판단하는 몫은 주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자기의 선을 지키는 사람, 스스로 당연한 듯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 주님이 원하시는 복음의 일꾼으로 우리 자신을 세워 가십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41 - 13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4: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4: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4: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4: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어제 설교 계속 이어집니다. 

 

그릇된 심판과 옮은 심판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은 사도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를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교인들이 사역자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타인의 비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자신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가지고 시종 일관하였습니다. 오직 주님의 판단만이 정확하다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의 판단이나 자신의 판단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때에는 사람의 일에 보이지 않는 일까지도 밝히 드러내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사람이 아닌 예수의 판단에 합당하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의 행한 선악간의 모든 일을 올바르고 공평하게 판단할 수 있는 분은 누구입니까?

 

1. 타인에게 받는 심판

 

사람은 흔히 타인에게 칭찬과 호평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판단은 외모만을 보기 때문에 정확하지 못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지 못한다고 말을 합니다. 그것은 우리 사람들이 타인의 마음속을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타인이 나의 마음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나에 대한 판단은 정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3)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경의와 칭찬이 주의 일을 하는 데 힘을 북돋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으로 발전하기가 힘듭니다(갈라디아서 1:10). 그리스도에게 충성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인간의 비난을 초월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판단 받는 것을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주님이 최후의 심판자이심을 알았습니다. 인간이 최후의 심판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고린도의 일부 교인들에게 맹렬히 비난받던 사도 바울에게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날에 판단 받은 것보다 주의 날에 판단 받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판단에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주의 판단에 신경을 쓰고 달려갈 길을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2. 자신에게 받는 심판

 

자기 자신을 자기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타인은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못합니다. 하지만 자신은 자기의 마음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 중에서는 자기가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양심이 있습니다. 양심에 의해서 자신을 판단합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지려던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 모두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양심의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타락했기 때문에 양심의 판단이 정확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고 말했습니다. 사고 바울은 그가 그 동안 봉사해 오던 청지기 직책을 수행하는 데 큰 실수가 있었음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사도 바울이 안심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죄하다는 것은 그가 자기의 일을 평가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시니라”(고린도후서 10:13). 사도 바울은 자신이 자신을 판단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3. 주님에게 받는 심판

 

타인에게 받는 심판이나 자신에게 받는 심판이 정확하지 못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어두움에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고사람이 행한 대로 칭찬하십니다. 성도의 큰 잘못 가운데 하나는 이 세상에서 칭찬과 상급을 다 받으려는 경향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때가 이르면 주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밝히 드러내시어 칭찬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가 되면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심판하십니다. 어두움에 감추어진 잘못까지도 심판하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우리들의 은밀한 행위와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행동의 원리들까지도 주님은 심판하십니다.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는 근시안적인 인간의 판단에서 이야기를 시작한 사도 바울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전지하신 주님의 판단으로 그의 논증을 이끌어 갑니다. 타인의 심판이나 자신의 심판보다 주님의 심판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권면합니다. 전지전능하신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심판하시고 칭찬하실 것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마지막 때에는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을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태복음 25:23).

 

넷째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교만한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6절에서 8절 말씀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교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처음 넉 장을 분쟁에 관한 언급에 할애하였습니다. 특히 4장은 그 분쟁에 관한 것을 매듭짓기 위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은 그러한 관점에서 고린도 교인들이 자고하여 교만했던 모습을 책망하고, 그들이 겸손해질 수 있도록 교훈하는 내용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위하여 사용하지 않던 풍자를 본문에서 사용하며 그 풍자를 통하여 그들의 어리석음을 조소합니다.

 

1. 영적으로 교만했던 고린도 교인들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8). 사도 바울은 8-13절까지에서 사도들의 형편과 고린도 교인들의 상태를 대비시켜 말합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본문 말씀은 풍자적 비유로 고린도 교인들의 자만심을 책망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이루어질 최상의 상태에 이미 들어간 듯이 자족해 하며 자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이러한 자기기만을 조소거리로 삼았습니다. “너희는 마치 너희가 완전함에 도달하였고, 천년 왕국의 영광에 참여한 양 말한다. 너희는 부요할 뿐만 아니라 왕처럼 보좌에 앉아 있다. 우리도 너희의 영광을 나누어 받을 수 있기를 진실로 바란다. 그러나 슬프도다. 너희는 우리 없이 왕 노릇하는구나. 행운을 가진 너희는 높여지고 불쌍한 우리는 여전히 땅 위에서 고난을 당하는구나.”

 

항상 진리의 일부만을 가지고 그것이 전체인 듯이 탈선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오늘날의 완전주의자들처럼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이 목표하는 것에 도달했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영적인 교만은 매우 교묘하며 위험합니다. 그것은 자기도취에 빠지게 하며, 가져서는 안 되는 자족감에 빠지게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경우 이는 매우 두드러져서 그들은 바울이 볼 때 매우 어린 신앙 상태에 있었지만 스스로는 어른이 된 것으로 여겼습니다. 세상에 어린아이가 어른 흉내를 내는 것만큼 어리석고 보기 흉한 모습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오늘 우리도 빠지기 쉽고 범하기 쉬운 모습이란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2. 자신을 자랑한 고린도 교인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7).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이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자고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자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로마서에서 발견되는 유대인들의 교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로마서 3:27). 그들은 그들의 행위나 어떤 공로가 있어서 구원을 받게 되었으며 구별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받은 은사마저도 그들이 가진 깊은 신앙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논증은 그렇지 않습니다.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고린도 교인들의 재능과 은혜를 누가 베푸셨는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구별되고 은사를 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창조주이시며 공급자이신 하나님(디모데전서 4:4)에 의해서 고린도 교인들은 은혜를 입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은 그것을 잊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나타난 모든 것과 자기 자신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을 자랑할 만한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의 자식이요 진노 받을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랑할 것은 우리를 구속하고 구별해 주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뿐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모두 빚진 자들이요 그 빚을 탕감 받은 존재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3.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하는 성도

 

고린도 교인들이 분당을 지어 서로 분쟁한 것이나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판단함으로써 인간의 한계를 넘게 된 이유는 모두 기록한 말씀 밖에넘어갔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말씀을 한 면에만 치중함으로써 말씀의 진정한 진의를 오해했으며, 자신들의 분수를 모르고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예로 들어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아볼로와 더불어 본을 보이고 그들에게서 고린도 교인들이 배우기를 바랐습니다(6). 그들은 자신의 견해나 세상의 견해를 따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러한 삶을 고린도 교인들이 배우고 겸손한 삶을 통해 형제 된 교인 사이에 서로 섬기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겸손의 교훈은 실상 닮기 매우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헬라적 문화권에서는 겸손이 노예적인 비열한 속성이며 위대한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연약함의 표현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라면 겸손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겸손을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교훈한 바 있습니다(빌립보서 2:5-11). 즉 예수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모든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겸손의 모습이요 최선의 태도입니다.

 

복음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들에 불과합니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도는 그들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그들을 지나치게 생각해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 말고 자신의 무익함을 항상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역자들을 높이어 파당을 만들지 말고 오직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교회의 일치와 단합을 지켜야 합니다. 성도는 교만한 마음으로 서로 대적하는 자리에 떨어져서는 안 됩니다. 교만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의 큰 결함입니다. 그것은 마귀의 죄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크게 생각하며 자기의 위치를 벗어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고 자기 위치를 지키며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합니다. 참된 성도의 모습은 온유하고 겸손함에 있습니다.

 

누가 성도를 세상 사람들 중에서 구별하였습니까? 또 누가 직분자들을 성도들 가운데서 구별하였습니까? 이 모든 것을 구별하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여 구원하셨고 또 우리 가운데서 어떤 이들에게 교회의 직분까지 주셨습니다.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직분은 우리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값없이 은혜로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받은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세상을 떠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도 우리의 것 같지만 하루아침에 그것이 우리를 떠나갈 수 있습니다. 부모님도,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다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섬기게 된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 죄 사함 받고 천국과 영생을 기업으로 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성령을 받은 것 등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들입니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모든 영적인 것들과 육신적인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본래부터 우리의 소유인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람은 남의 것을 가지고 자기의 것인 것처럼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하고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만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사용해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물질적 부요함과 풍족함, 또 하나님 나라의 자유와 특권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높아져 서로 분쟁하고 파당을 만든다면 그들의 그 부요와 풍족, 그 자유와 특권은 복이 되지 못합니다. 차라리 사람을 겸손하게 하는 가난과 속박이 그들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범사에 높은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교만은 큰 죄악입니다. 우리의 가진 모든 좋은 것은 다 하나님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가진 그 무엇도 자랑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다섯째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에게 요구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낮아짐입니다.

 

9절 말씀에,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13절 말씀에,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사도 바울의 형편은 고린도 교인들의 형편과 정반대이었습니다.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선택하시고 복음의 말씀을 맡기시며 기적 행할 능력을 주신 자이며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존귀한 직분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이었습니다(에베소서 2:2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존귀한 직분인 사도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습니다. 가장 존귀한 자를 가장 미천한 위치에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상의 구경거리, 천사들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의 비천함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미련한 자가 되고 약한 자가 되고 비천한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가 전한 그리스도 때문에 지혜를 얻고 힘을 얻고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이 인류의 구원이 되었듯이, 주의 종들이 비천함을 당하며 이룬 사역들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복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때까지 그의 일행이 당한 고난을 증거 했습니다.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없었고 매 맞았고 거처할 곳이 없었고 손으로 일했고 비방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욕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축복하였고 참았고 권면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들이 한 마디로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같이되었다고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비천함에 두신 것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그것은 그들로 겸손하게 하기 위한 것일 것입니다. 확실히 가난과 고난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둘째로, 그것은 그들로 하나님과 내세에 소망을 견고히 두게 하기 위한 것일 것입니다. 가난과 고난은 육신적 쾌락의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풍족함보다 장점이 있습니다. 셋째로, 사도들의 가난은 믿음이 어린 신자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한 뜻도 있을 것입니다. 넷째로, 그것은 복음 사역자의 길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것임을 증명하고 또 그가 전한 진리의 진리 됨과 진리 운동이 육신의 양식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직 영혼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증거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세상에서 높아지고 존경을 받고 부유해지고 존귀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에서 세상의 영광이 헛됨을 밝히 말씀해 주셨습니다(전도서 1:2-3; 이사야 40:6-7).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과 그의 약속하신 새 세계에 의미와 가치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현재 하늘과 땅은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1:5). 장차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이 올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헛되고 무가치함과 오는 세상의 참된 가치를 알고 하나님 중심, 진리 중심으로 살아야 하며,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내세의 소망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고난의 길을 가셨고 주께서 세우신 사도들과 전도자들도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 일행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세상의 부귀영광을 구하지 말고 우리의 소망을 내세에 두고 하나님 중심으로만 살아가십시다.

 

그리스도의 일꾼의 위치는 절대로 높은 자리가 아닙니다. 존경받는 자리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주님의 일꾼은 늘 끄트머리가 되기 마련입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신세가 되기 마련입니다. 복음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라면 예수와 복음 때문에 받는 모욕이나, 멸시, 천대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을 오늘날의 언어로 옮겨본다면 우리는 하수도 오물처럼, 온갖 쓰레기처럼 사람들에게 취급을 당했습니다.” 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사도 바울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취급을 당했는데,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예수님도 사형수로 취급을 당하셨고, 죄인의 우두머리로 처참하게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는데, 우리는 어떠하겠습니까?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람들에게 우대받고, 대접받는 것을 당연시 여기는 자는 하나님의 일꾼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에 주님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마무리

 

참 제자의 길

 

로마의 풍습에서 개선장군은 모든 전리품과 포로들을 거느리고 개선행진을 하면서 승리와 공적을 만인 앞에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개선행진의 꼬리에는 죽을 운명에 처한 포로들이 따르게 되어 있었고 개선식 후에 그 포로들은 투기장에 끌려가 야수들과 싸우다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마치 개선장군과 같이 교만한 자세로 자기 자랑에 도취된 생활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스스로를 낮추어 사람들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위해 기쁘게 죽는 저 포로와 같은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만물의 찌끼같이 여김을 받은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참 제자의 길이 있는 것입니다.

 

참 제자는 제물로 작정된 자입니다.

 

1) 끄트머리에 처한 입장입니다.

로마의 개선장군이 벌리는 승리의 행진 끝에는 언제나 죽을 운명에 처한 포로들이 뒤따랐습니다. 그들은 그 개선의 열광에 도취된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죽을 운명에 처해진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치 이런 정경을 상상하듯이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9)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끄트머리곧 끝에 둔 자는 죽을 운명의 사람이었습니다. 참 제자의 길은 죽을 운명에 처한 자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위해 희생의 제물로 운명 지어진 길입니다.

 

2) 세상 사람의 구경거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참 제자의 모습을 이렇게 상상했습니다. 승리한 개선장군의 행진 끝에 죽을 운명에 처하여 있는 사람들이 그 행진의 말미에서 뭇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듯이 참 제자는 마치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된 운명이라는 말입니다(9). 여기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은 천사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참 제자답게 죽음의 길, 제물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야 한다는 자각이며, 부정적인 면은 참 제자는 어쩌면 그 운명이 온 세계 곧 천사와 사람들에게 보여 질 구경거리의 생애라는 의미입니다. 어쨌든 참 제자의 모습은 하늘과 땅에 있는 뭇 영혼들에게 공개된 생애입니다(히브리서 12:1). 이 얼마나 어려운 길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사람들에게 참 모본을 보이기 위하여 철저히 죽는 생애를 살아야만 하는 것이 바로 참된 제자의 길입니다.

 

참 제자는 만물의 찌꺼기같이 된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역설적이고 풍자적인 용어를 구사하여 거짓되고 교만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신앙 자세를 지적합니다.


1) 참 제자는 오히려 미련한 자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10) 라고 풍자하였습니다. 참 제자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미련한 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곧 아무것도 모르는 자처럼 자기의 자랑할 바를 잊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스스로를 그리스도 안에서 오히려 자랑할 것이 많은 자처럼 지혜롭게 여겨 모든 것을 안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여기에 거짓과 교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같은 이가 미련하다면 과연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는 없을 것입니다.

 

2) 참 제자는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10)라고 말한 것은 자신은 스스로의 약함을 생각하며 겸손하게 주님 앞에 서는데 저들은 오히려 강하다고 여기며 주님 앞에 두려움이 없이 서는 것을 풍자합니다. 주님 앞에서 강하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진정으로 겸손을 잃지 않은 참 제자라면 사도 바울과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3) 참 제자는 비천한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10)라고 풍자하여 참 제자의 삶은 비천한 자처럼 낮추고 겸비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교훈했습니다. 섬기는 자는 결코 존귀하게 대접받을 수 없는 법입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가 비천하게 되는 것보다 존귀하게 되려고 한다면 이는 정말 잘못된 태도입니다.

 

4) 참 제자는 고난을 당하는 자입니다.

사도 바울이 보여 준 제자의 길은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는것이었습니다(11). 제자의 생애는 육신을 위하여 가장 기본적인 것마저도 누릴 수 없는 고난의 생애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주님의 복음을 위해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며 그때에 헐벗고 굶주림을 철저히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매까지 맞았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존귀를 누리려는 생각과 이러한 참 제자의 길은 판이하게 다른 길입니다.

 

5) 참 제자는 만물의 찌꺼기 같은 자입니다.

참 제자의 길은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12, 13)라고 사도 바울이 고백한 바로 그 길입니다. 모욕, 핍박, 비방을 당해도 참고 축복하는 자가 참 제자입니다. 바울 사도의 말씀처럼 자신을 만물의 찌꺼기같이버려야 하는 길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구원받은 모든 사람)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일을 해야 합니다.(요한복음 20:21, 에베소서 2:10,디도서 2:14) 그리스도의 일꾼을 판단할 실 분은 세상 사람이 아닌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고난이 있을 것을 각오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일을 효과 적으로 하려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 일을 하려면 완전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인격) 기도에 헌신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주님의 신실하고 충성된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상황이나 환경, 조건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며 신의를 지키는 충성된 사람, 남을 판단하는 몫은 주님에게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자기의 선을 지키는 사람, 스스로 당연한 듯이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주님은 찾고 계십니다. 오늘 하루 주님이 원하시는 복음의 일꾼으로 우리 자신을 세워 가십시다.

 

이 설교는 여러 참고자료와 목사님들의 설교를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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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7 주일설교 :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