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7 주일설교 :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1)
01/08/201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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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곧 복음의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파수꾼으로서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사도 바울을 우리는 본문 첫 구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의 파수꾼의 얼굴로 살아야 하는 것은 단지 사도 바울만이 아니라 복음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기도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파수꾼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지 본문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41 - 13

 

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4: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4:3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4:4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4:5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4:8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4: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4: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4: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들어가는 말

 

찬송가 350나의 죄를 정케 하사의 가사 1절과 후렴을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1) “나의 죄를 정케 하사 주의 일꾼 삼으신 구세주의 넓은 사랑 항상 찬송합니다. (후렴) 나를 일꾼 삼으신 주 크신 능력 주시어 언제든지 주 뜻대로 사용하여 줍소서이 찬송의 배경으로 나와 있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동역자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첫 번째로 보낸 편지인 디모데전서 112절 말씀입니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주님께서 구원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광스러운 직분을 맡겨 주셔서 주님의 일꾼으로 사용해 주심에 감사의 고백을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한 것입니다. 저는 이 사도 바울의 감사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 되고 또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깨닫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 그 구원의 은총과 나 같은 죄인을 일꾼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감사, 감사 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 크신 능력 주시어 언제든지 주님 뜻대로 사용하여 주십시오.” 라고 찬양하며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의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증언은 아주 분명하고 단호합니다. 고린도전서 118절 말씀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 124절 말씀에,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렇게 담대하게 말하고 있는 사도 바울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부르셔서 맡기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복음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렇게 담대히 증언 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사명에 대한 분명한 자각은 본문 41절 말씀에서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곧 복음의 파수꾼으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파수꾼으로서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사도 바울을 우리는 본문 첫 구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복음의 파수꾼의 얼굴로 살아야 하는 것은 단지 사도 바울만이 아니라 복음에 응답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몫이기도 사실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파수꾼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는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지 본문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줄거리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란 누구인가?” 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들의 정체) (Their identity).

 

고린도전서 41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Let a man regard us in this manner, as servants of Christ and stewards of the mysteries of God). 사도 바울은 이미 고린도전서 35절 말씀에서 자신이나 아볼로는 주께서 각각 주신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 (servants)입니다라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이나 아볼로를 자랑하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7), “우리는 그저 주님의 사역자들입니다또는 주님의 섬기는 자들입니다”(5)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또 다시 본문 고린도전서 41절 말씀에 와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여러분들은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겨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35절 말씀에서 사용된 사역자들란 단어나 본문 41절에서 사용된 일군들이나 동일하게 “servants” 섬기는 자들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어 헬라어를 보면 두 단어는 동일한 단어가 아니라 다른 단어입니다. 고린도전서 35절에서 사용된 단어는 “diakonoi”으로서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deacon”, 집사란 말이 그 단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섬기는 사람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본문 41절 말씀에서 쓰인 헬라어 단어는 그것이 아니라 “huperetes”라는 단어로서 문자적 의미를 살펴보면 일꾼”<uJphrevta'>은 노예선의 밑창에서 노 젓는 노예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노 젓는 사람”(under rowers)을 뜻합니다. John MacArthur 목사님은 이 본문의 설교 말씀에서 그 당시 배 밑에서 노 젓는 노예들은 제일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요,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들이요 또한 제일 경멸을 받는 사람들이였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단어가 나중에 와서는 모든 권위에 절대 복종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자신이나 아볼로나 베드로를 자랑하는 육신에 속한 고린도 교회 사람들에게 자신이나 자신의 동역자들은 그리스도의 하인” (또는 하급 노예”)으로서 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주님의 노예라고 말하였던 것입니다.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하수인으로서 가장 천한 일도 해내는 종이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322절 말씀에서 바울이나 아볼로가 게바나 모두가 다 너희의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사역자들이 너희의 것이라고 하였다 하여 마치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일꾼으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생겨난 분쟁 가운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당파를 짓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바울파, 어떤 이는 아볼로파, 또는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각기 나뉘어 서로의 우월성과 기득권을 주장하는 분파주의를 해결키 위해 쓴 서신에서 바울은 왜 저들이 모두 하나님의 일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어떤 교회를 막론하고 교회 안에 분쟁이 생기면 사역자들이 그 분쟁에 휘말려들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많은 분쟁이 사역자들을 마치 각 교회 성도들의 고용자 또는 일꾼으로 취급하는 데서 생겨납니다. 어떤 이는 목사편, 어떤 이는 부목사편, 어떤 이는 전도사편 하며 분쟁하는 교회가 대다수가 되어 교회가 나누어지는 것이 이제는 기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분쟁이 있는 곳에는 그리스도의 일꾼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고 멋대로 정죄하는 일이 허다한 것입니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도 바울은 본문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하고, “우리는 다 너희의 것이라고 한 것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교만을 지적하고 그들의 오만을 일깨워 주기 위해 강조한 말입니다. 그들이 지적 교만에 사로잡혀 특정 사역자를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고 있는 데 대한 강력한 경고인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3:21)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또한 그리스도에 대해서 종의 신분이지 결코 성도들을 섬기는 종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을 성도의 종으로 알아 불손하게 대한다거나 또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시하고 함부로 입을 놀려 판단하는 사례가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간의 종은 해방되어야 할 노예이지만 그리스도의 종은 해방된 자유인으로서 자청하여 그 일에 종사하는 일꾼입니다. 사역자는 그리스도의 하수인으로 일하는 거룩한 일꾼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주님의 노예입니다. 그것도 하급 노예입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에게 이러한 노예 의식이 있습니까? 만일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이러한 노예 의식이 있다면 주님의 명령에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언젠가 제가 설교하면서 우리에게는 노예 근성이 필요하다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왠지 우리는 노예 근성이나 노예 의식보다 주인 근성주인 의식이 더 많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을 섬기는지 아니면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섬김을 받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섬김의 의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겸손한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330절 말씀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주님은 흥하셔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합니다”(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라는 자세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일꾼들의 마음이요 자세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맡은 것이 바로 하나님의 비밀이다 라고 사도 바울은 본문 고린도전서 41절 말씀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요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들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로 여겨야 합니다라고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1). 무슨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이나 자신의 동역자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이요 또한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들(stewards)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청지기들이란 무슨 말입니까? 문자적 의미는 집 매니저(house manager)(MacArthur)로서 사도 바울은 지금 자신이나 자신의 동역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들로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비밀을 전파하는 자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전에 감추었던 것이 이제는 계시된 것,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은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하나님의 집(3:9)인 그들에게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일꾼들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이해 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성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이란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의 도요, 복음의 진리요,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사역자들은 이 진리의 비밀을 알고 있습니다. “너나 나나 꼭 같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사역자와 성도들의 차이는 큰 것인데 그것은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미리 깨달아 십자가의 도의 진리에 이미 도달한 사람이요, 성도는 아직 그 도의 진리를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역자는 이 하나님의 비밀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진리를 보존할 책임이 있고, 둘째는 그 진리를 계속 전파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또한 그 진리를 위해 제자를 양성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할 때, 맡은 자”<oijkonovmou' ; 오이코노무스>”<oi\ko' ; 오이코스>다스리는<nevmw; 네모>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신약성경에 자주 나오는 것으로 청지기로 번역됩니다. 그리고 그 속에는 경륜이나 시대라는 뜻도 있습니다. 청지기란 전적으로 주인의 뜻을 받들어 주인의 재산과 사람을 관리하는 직책입니다. 사역자는 하나님의 비밀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이 그에게 위임되고, 사역자는 그 비밀을 주인의 뜻에 따라 관리하고 나누어 주는 직책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사역자의 신적 존엄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저나 다른 목사님들을 마땅히 그리스도의 일꾼들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로 여겨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마땅히 저나 다른 목사님들을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하나님의 집인 여러분들에게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일꾼들로 여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여러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입니다(그리스도의 일꾼들의 필요한 것) (Their requirement).

 

본문 고린도전서 42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Now it is required that those who have been given a trust must prove faithful). 사도 바울은 본문 1절 말씀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이요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을 맡은 자들로 마땅히 여겨야 한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2절 말씀에 와서는 자신과 자신의 동역자들과 같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에게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충성”(faithfulness)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맡은 자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청지기들(stewards)입니다. 주님께서 그리스도의 일꾼들에게 하나님의 집인 교회의 일을 맡아 봉사하게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과연 그리스도의 일꾼들이 어떻게 교회를 섬기길 원하고 계십니까? 바로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길 원하고 계십니다(1). 그리고 주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에게 충성을 요구하고 계십니다(2). 달리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는 충성된 자로 발견되어야 합니다. 본문 2절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구할 것이란 말은 간절히 요구되는 것이란 뜻입니다.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이나 자신의 동역자들이 그리스도의 일꾼들로서 간절히 요구되는 것은 바로 충성이다 라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충성<pistov ; 피스토스> 한다는 것은 믿을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신앙을 <pivsti ; 피스티스>라고 하는데, 충성과 신앙은 대응되는 낱말입니다. 즉 신앙인은 충성스러워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충성은 참된 사역자의 필수적인 자세입니다.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청지기는 그가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 일은 자기의 기분과 판단에 따라 해서도 안 되고, 행동이 게을러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회피해서도 안 됩니다. 오직 그 주인의 뜻과 지시에 따라 그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충성”(faithfulness or trustworthy)이란 무엇을 가리킵니까? 충성이란 일꾼이 그 주인에게서 일을 맡은 대로(그 지시한 대로) 어김없이 (certainly) 그리고 지속적으로(consistently) 순종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주님께서 명하시고 맡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어김없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전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저는 목사인 제 자신에게 적용해 보았을 때 저는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오병이어의 약속의 말씀(요한복음 6:1-15)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다가 언젠가 새벽기도회 때 주신 깨달음인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부지런지 묵상하여 떡을 떼어 주님께서 나눠 주셨듯이 저도 말씀 묵상을 나눠야겠다는 것입니다. 나누되 주님 오시는 그날 까지 또는 제가 주님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일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입니다.

 

충성이라는 단어는 군사적 용어, 전 근대적 용어로 생각되기 쉽지만 실제로 이 단어의 뜻은 신뢰할만하다”, “믿을만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에도 faithful(NIV, KJV성경), trustworthy(NSAB 성경)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충성이라는 단어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 신의를 지키는 것, 끝까지 신실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부름 받은 자들에게 가장 먼저 요구되는 것이 일을 맡겨도 될 만큼 끝까지 신의를 지킬 사람이냐 그렇지 않냐하는 여부입니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찾고 계신 사람이 이런 사람이지 않겠습니까? 처음에는 신의를 잘 지키다가고 끝에 가면 배신하는 사람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처음 가진 그 신의, 처음 가진 그 신뢰를 끝까지 변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2024절 말씀에,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그의 말년의 유언의 메시지에서도 여전히 예수님에 대한 신의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신실하게 최선을 다하였던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를 마다않고 죽기까지 충성하셨던 예수님처럼, 충성이 우리에게 요구됩니다. 상황에 따라 가치에 따라, 조건에 따라 우리 편, 남의 편 쉽게 갈라지는 이 시대, 이익에 따라 오늘의 아군이 하루아침에 내일의 적군이 되어버리는 편 가르기 세상 속에서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변하지 않는 충성을 다하며, 시대가 변하여도, 상황이 바뀌어도 여전히 같은 주인, 같은 상관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의 일꾼입니다. 끝까지 신의를 지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시대 속에서 우리가 그런 충성된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루아침에 주인이 바뀌는 세상 속에서 온 인생 한 주인만을 섬기며 살아가는 충성된 일꾼, 그가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입니다.

 

시편 10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하나님의 눈은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하나님과 함께 거하게 하시고 그 충성된 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수종하게 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수종할 수 있는 충성된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 각자에게 주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주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간절히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충성입니다.

 

마태복음 2445-46절 말씀을 보십시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저는 이 말씀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재확인 받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저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참된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때에 따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먹이는 말씀 사역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므로 말미암아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길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만세 전부터 구약시대까지 감추었다가 말세에 밝히 계시된 비밀의 말씀입니다. 사도들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즉 관리인으로서 그 복음을 충성스럽게 해설하고 전파했습니다. 신약교회는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또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 즉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충성한다는 것은 항상 믿음으로 행함으로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믿을 만한 상태가 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충성은 성령의 열매들 중 하나입니다(갈라디아서 5:22).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범사에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일꾼들은 어떠한 평가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입니다. (그리스도의 일꾼들의 평가) (Their evaluation).

 

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남을 판단하지 말라는 말에는, 판단의 행위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 여러 파벌로 나누어져 서로를 판단하고 있는 당시 고린도교화를 향한 권면이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역의 성공-실패 여부도 자신이 판단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판단하시는 분,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 말씀에 보면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다 먹되 오직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악을 구별하고 선과 악을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역을 넘보아서는 안 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을 구분지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영역에도 하나님이 구분해 놓은 말씀의 선이 있습니다.

 

본문 고린도전서 43-4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사도 바울은 지금 자기를 자랑하는 자들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에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판단 받는 것이 자신에게는 매우 작은 일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은 칭찬이던 비판이던 사람들에게 판단 받는 것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6절 중반절입니다.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심판의 영역, 판단의 영역은 주님에게로 남겨주어야 합니다. 함부로 남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꾼을 부리는 이도 주님이시요. 판단하시는 이도 주님이십니다. 종은 단지 주인의 명령을 따를 뿐 주인이 종의 일을 판단하십니다. 우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입니다.

 

분명히 고린도 교회 성도들 중 사도 바울을 자랑하던 사람들은 사도 바울을 칭찬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사도 바울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아 그 분은 참 신실하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핍박 가운데서도 담대히 그리고 신실하게 선포하시는 주님의 종이야이러한 칭찬을 받으면 사도 바울은 충분히 기뻐하고 좋아할 수 있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사람들의 칭찬이던 비판이던 그들의 판단을 매우 작은 일로 여겼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은 자신도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그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3).

 

무슨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을 향한 다른 사람들의 판단도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unreliable) 자기 자신의 판단도 믿을 수 없기에 자기도 자기 자신을 판단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본문 4절 말씀에 와서는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My conscience is clear, but that does not make me innocent)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볼 때 심각한 죄를 알지 못하기에 자기 자신을 자책할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자신이 자기 자신을 자책할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으로 하여금 아무 죄 없는 결백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 이렇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판단하는 것을 매우 작은 일로 여긴 것입니까? 이유는 그리스도의 일꾼으로서 그에게 제일 중요한 판단은 바로 주님의 판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본문 4절 하반절 말씀에서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It is the Lord who judges me)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사도 바울이 다른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의 판단보다 주님의 판단을 중요시했을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본문 5절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었던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사도 바울이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평가에 초점을 맞춘 이유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사람들의 마음의 뜻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맞는 말씀 아닙니까? 비록 우리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들의 행동을 보고 판단을 하지만 우리 중심을 보시고 계신 하나님만이 우리가 그렇게 행동하는 마음의 동기를 알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여러분, 우리는 사람들의 평가나 우리 자신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평가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들로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함에 있어서 어떠한 사람들의 칭찬이나 비판에 우왕좌왕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재림하시는 주님의 평가를 제일 중요시 여기고 주님께 칭찬 받기 위하여 주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사명을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그리스도의 일꾼들이요 주님의 청지기들로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신실하게 잘 감당하여 주님을 만날 때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태복음 25:21)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의 판단을 크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사람의 이런 저런 판단에 너무 마음을 쓰면 주의 일을 힘 있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으며 스스로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성도는 범사에 양심적으로 살아서 자책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겼습니다. 우리가 사도 바울처럼 행하면 어떤 환경 처지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주의 일을 담대히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탄의 큰 전략의 하나는 하나님의 일꾼들의 힘을 빼어 하나님의 일을 잘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낙망은 큰 시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말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며 충성해야 합니다.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은 두드러진 이단 사상이나 도덕적 오류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지적하고 책망하고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여기에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점들, 특히 복음 사역자들의 진실성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것들은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러므로 그가 오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실 때까지 우리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고 철저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에 감추어진 것들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입니다. 그때 주의 선하고 충성된 종들은 위로와 칭찬을 받을 것이며, 악하고 불 충성된 종들은 책망과 형벌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재림 때까지 우리는 드러나지 않은 점들을 거론하여 남을 비난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특히 복음 사역자들의 충성의 여부와 충성의 정도를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히 드러난 이단 사상과 오류는 지적되어야 하지만, 분명히 드러나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주님께 다 맡겨두면 됩니다. 주께서 완전히, 철저히 판단하실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복음의 일꾼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 충성해야 합니다. 또 우리는 사람의 충성의 정도 같은 드러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판단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는 모두를 공의로 심판하시고 보응하실 것입니다. 판단과 심판에 대해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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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7 주일설교 : 우리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입니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