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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4일 주일설교 : 약속 있는 첫 계명,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05/16/2017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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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보시기에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입니다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자녀가 부모를 공경해야 됨을 말씀하고 있고부모는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가정에서 평소에 늘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고부모들이 자녀를 잘 양육한다면 그 가정은 화목을 이루어 아름다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본문 말씀을 통하여 아름답고 복된 가정의 교훈을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에베소서 6 1 - 4

 

6: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6: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6: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6:4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출애굽기 20 : 12

 

20: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들어가는 말

 

오늘은 5월 들어 두 번째 주일로 가정주일입니다. 미국은 오늘이 어머니날입니다. 미국은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을 따로 분리하여 지키고 있습니다. 가정주일을 지키는 모두에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은총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r합니다.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10년경 미국의 한 여성이 돌아가신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교회에서 흰 카네이션 꽃을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 것에서 시작되었고 1914년 국회에서 통과되어 윌슨 대통령이 5월 둘째주일은 어머니날로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선교사들을 통하여 어머니날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55년에 이승만 대통령은 58일을 어머니날로 공포하였습니다. 계속 어머니날로 지켜오다가 1974년에 "어버이날"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공로로 아버지도 함께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보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십계명이 있는데 그 계명 가운데 특별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계명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이었습니다. "엿새 동안은 열심히 일하고 제 칠일은 거룩한 여호와의 날이니 지켜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 자자손손 복을 주리라"고 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장수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3절 말씀에도 부모를 공경하면 "네가 잘 되고 장수하리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계명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십계명 가운데서도 이 두 계명을 특별히 잘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두 가지 조직을 만들었는데 가정과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셨고 가정은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셔서 제도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오늘 우리가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요 또 친히 복을 주신 단체입니다. 가정은 사람이 사는 사회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기본적인 단위입니다.


가정의 비극과 타락은 사회의 불행과 직결되며, 가정의 성실과 행복은 사회 안정과 국가번영에 직접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미국 감리교 감독이었던 하젠(Hazen G Wemer)은 가정을 표준시간과 같이 사회존폐를 결정짓는 표준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가정은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보시기에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녀가 부모를 공경해야 됨을 말씀하고 있고, 부모는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에서 평소에 늘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들이 자녀를 잘 양육한다면 그 가정은 화목을 이루어 아름다운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하여 아름답고 복된 가정의 교훈을 함께 생각하고자 합니다.


줄거리

 

고려시대에 이런 설화가 있습니다. 당시 고려장이라고 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마는 당시 천민들이 부모를 봉양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었다고 합니다.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봉양할 만한 경제적인 여건이 되지 않으면 지게에 지고 산속 깊은 곳에 부모님을 내려놓고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한 아들이 나이가 든 어머님을 지게에 음식과 함께 지고 깊은 산중으로 갑니다. 어머님을 모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비통을 억누르면서 깊은 산중으로 올라갑니다. 어머님은 이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죠. 아들의 지게에 앉아 가면서 길옆의 소나무 가지를 하나씩 꺾어놓습니다. 이제 깊은 산중 양지바른 곳에 도착했습니다. 아들은 눈물을 머금으면서 어머님 제가 저기에 가서 나무를 해 오는 동안 여기에 계십시오라고 하면서 빈 지게를 어깨에 걸머집니다. 이때 어머님이 이 아들을 보고 얘야 산을 내려가는데 길 찾기가 어려워 집에 갈 수 없으니 소나무 가지 부러진 곳만 잘보고 내려가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아들은 차마 어머님을 혼자 두고 갈 수가 없어 다시 어머님을 지게에 지고 내려옵니다. 그리고 집 뒤쪽에 아무도 모르게 굴을 파고 어머님을 봉양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그 지방의 관리가 알게 되어 아들을 잡아가려고 찾아왔습니다. 이 아들은 관리에게 죽는 한이 있어도 어머님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나를 잡아 가십시오라고 하자 이 관리가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게냐 하며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아들은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관리가 이 어머님의 자식사랑의 모습에 감동이 되어 왕에게 상소를 하게 되고, 왕은 이 사실을 듣고 이 아들이 어머님을 잘 봉양하라고 하면서 후한 부양비를 보내주었다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우리의 어머님 모습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십계명 제 5계명의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십계명 제 5계명보다 구체적으로 부모님을 어떻게 섬기고, 부모로서 자식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옳은지를 말씀을 통하여 가르쳐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말씀이 척박한 세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셔서 약속 있는 믿음의 소유자로 이 땅에 살아가는 권속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조 숙종 때 개성근방에 이름난 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늙어 거동을 못하시는 어머니를 정성스럽게 모시고 있는데 임금님이 그 고을로 지나가시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에 어머니가 행차를 보고 싶어 하시자 어머니를 지게에 태우고서 나갔다가 임금의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임금은 그의 효성을 칭찬하시면서 송아지 한 마리와 쌀 열 가마를 하사하였습니다. 효도의 대가를 톡톡히 받은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웃 마을의 소문난 불효자가 자기도 상을 받아야 되겠다고 벼르게 됩니다. 몇 달 후에 임금이 지나가시자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를 억지로 지게에 지고서 임금 눈에 띄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임금이 지나가다 또 이것을 보았고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 때 원님이 저놈은 아주 못된 놈이라고 하면서 벌을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금은 효자와 똑같이 소 한 마리 쌀 열 가마를 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효도는 흉내 내기도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고 효도한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본문말씀에서도 가장 옳은 일은 자녀들이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옳은 일인 부모를 공경하고 효성을 다하는 자들의 생명과 가정을 보호하시며 복 주시겠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옳으니라라는 말씀은 이것이 선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길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란 뜻입니다. 오늘 가정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이 옳은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째로 자녀들은 주 안에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턴이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생일잔치를 베풀고 많은 인사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참석한 프랑스 외교관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훌륭한 아들을 낳았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대통령의 어머니는 말하기를 "나는 그에게 하나님께 순종해야한다는 것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은 결국 위대한 미국을 이루는 힘이 되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세상에 옳은 일이 참으로 많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옳은 일을 하나 말하라고 한다면 바로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순종하는 순간 하나님의 손길이 역사하는 위대한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한 청년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도 이제부터 세례를 받고 본격적인 신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얼마나 읽어야 하고 신앙의 연조는 얼마나 돼야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허드슨 테일러목사는 청년에게 되 물었습니다. "촛불은 언제부터 빛을 발합니까?"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그야 양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부터 빛을 내지요" 테일러목사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습니다. "신앙도 그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그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성경지식이나 신앙의 연륜도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미 훌륭한 크리스천이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순간부터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은 한 순간의 결단에서 시작합니다. 그래서 신앙을 부르심에 대한 거룩한 응답이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내 뜻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 따라 그 분 앞으로 나아가는 엄숙한 행위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이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대 명제입니다. 세상에 빛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기본적인 자세이고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자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주 안에서라는 전제가 달려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씀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지금도 주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누가 이 위대하신 부르심에 응답하시겠습니까? 자식이 부모를 버리고 부모는 자식을 버리는 이 패역한 시대에 위대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교회를 향하여 외쳐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자녀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직 공경의 대상으로만 있을 뿐입니다.

 

본문 2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위치는 오직 공경해야할 대상으로만 남아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말씀입니다.


어느 결혼정보회사에서 20·30대 미혼 남녀 회원 1300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여자의 93.4%,남자의 43.6%가 시부모(부모)와 같이 살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모시고 살겠다"는 여자와 남자는 각각 4.3%16.3%뿐이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 속에서 주님의 말씀이 더욱 강렬하고 뜨거운 음성으로 들려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시대가 패악하여 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제 자식이 진짜 자식이 되는가? 라고 질문을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분이라는 고백이 나올 때 그때가 바로 진짜 자식이 되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 부모님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도우시고 길러주신 위대한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먼발치로 계시기만해도 힘이 되는 분들이기 때문에 부모님은 당연히 공경을 받아야 할 분들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는 토머스 링컨이라고 하는데 1637년 영국에서 온 이민의 후예로 신발 만드는 일을 하였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선출되었을 때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상원의원들은 매우 충격을 받았습니다. 대부분 높은 학력에 명문 귀족집안 출신이었던 상원의원들은 신발 제조공 집안 출신에다 제대로 학교도 다니지 못한 링컨 밑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 여간 불쾌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선출돼 많은 상원의원들 앞에서 취임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링컨이 단 앞에 서서 막 입을 열려 할 때 거만해 보이는 한 상원의원이 일어나 링컨을 향해 말했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다니 정말 놀랍소. 그러나 당신의 아버지가 신발 제조공이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가끔 당신의 아버지가 우리 집에 신발을 만들기 위해 찾아오곤 했소. 이 신발도 바로 당신 아버지가 만든 것이오


그러자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웃음이 새어나왔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부끄러움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의원님 때문에 한동안 잊고 있던 내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났습니다. 내 아버지는 신발 제조공으로 완벽한 솜씨를 가진 분이셨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능가할 수 없었습니다. 다만 아버지의 위대함을 따라잡으려 노력할 뿐이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많은 귀족들의 신발을 만드셨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 중엔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신으신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만약 신발이 불편하다면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기술을 옆에서 보고 배웠기에 조금은 손봐드릴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내 아버지가 만드신 신발을 최선을 다해 고쳐 드리겠습니다. 물론 제 솜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에 비교할 수 없습니다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아브라함 링컨은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 그 아버지의 위대하심을 알고 공경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누가 할 수 있겠습니까? 잠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잠언 23:22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아버지에 대하여는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어머니에 대하여는 경히 여기지 말라는 말씀은 궁극적으로 부모님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자세가 결국 복과 저주를 선택하는 것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사람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외일수는 없습니다. 성공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위대한 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원하십니까? 여기에 그 비결이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잘되기를 원하십니다. 복된 길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시는 은총을 누리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 귀한 은혜와 사랑이 이 시간 모든 권속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로 우리의 자녀들은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합니다.

 

본문 4절의 말씀을 보면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어떻게 기르고 양육해야할 것인지를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교훈이란 말은 헬라어로 파이데이라라는 말은 훈련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자녀가 잘못을 할 때 때로는 책망하기도 하고 벌을 주기도 하는 훈련을 말합니다. 군인이 기초 훈련을 받는 것처럼, 학생들이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훈련을 받는 것처럼 , 운동선수들이 연습할 때 훈련을 받는 것처럼 그런 훈련을 말합니다. 하기 싫으면 그만 두고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하기 싫어도 , 힘이 들어도 참고 하는 훈련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자녀를 가르칠 때는 이런 엄격한 태도로 교육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또 여기서 훈계라는 말은 교훈을 말합니다. 부드럽고 사랑에 넘친 교훈을 말합니다. 때로는 위로와 격려가 들어있는 교훈을 말합니다. 자녀들을 교육할 때는 때로는 엄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부드럽게 대해 주어야 할 필요도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효과적으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양면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십계명을 보면 "하라". "하지 말라"가 분명합니다.

 

잠언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신약 성경을 보면 디모데라는 젊은 목회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사도는 그에게 말했습니다. "네 외조모의 진실한 믿음과 네 어머니의 믿음을 본받았음을 확신하노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녀를 주신 이유를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경건한 가정에서 디모데와 같은 경건한 믿음의 자녀가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겠습니까? 요즘 우리 교육이 엉망이라고 말들을 합니다. 학력저하 현상은 두드러지고 아이들의 모습은 차라리 무서움을 모르는 겁 없는 세대로 전락해가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대안이 없는 것입니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본문 말씀에 보면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자녀들을 그리스도인다운 행동양식을 가르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신앙의 힘을 길러주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런 신앙의 힘을 길러주고 이 험한 세상에서 믿음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믿음의 자녀를 얻으려면 첫째, 성수주일을 가르쳐야 합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사도들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안식 후 첫날 주님이 부활하신 그날을 지켰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영적회복의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십일조와 감사생활을 가르쳐야 합니다. 십일조와 감사생활 역시 의무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는 복의 못자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교회에 대한 경건성을 회복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가장 귀한 분 예수님을 만나는 시간인 것을 잊지 말고 예배하는 일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을 존귀하게 하는 자를 존귀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 3국 중에 신라가 가장 늦게 시작하였고 가장 약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나라 안의 청소년들의 기상을 높였던 화랑도(花郞徒)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마치 한 가정에서도 부모가 무식하고 가난하여도 자녀를 바르게 기르면 온 집안이 일어서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 나라의 장래도 자라는 청소년들이 어떤 생각, 어떤 뜻을 품고 자라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나라의 청소년들이 바른 생각으로 길러지지 못하고 바르고 큰 뜻을 품고 자라지 못하고 있는 점이 이 나라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이런 점에서 가정에서 부모의 자녀교육 역할이 중요합니다. 비록 이 나라의 가정교육이 바르지 못하고 학교교육이 제 구실을 못하고 사회 환경이 청소년들에게 이롭지 못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자녀들을 바르게 이끌어 준다면, 그것으로 세상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국교회가 이만큼 성공하게 된 이유들 중의 하나가 선교초기부터 교회학교 교육을 철저히 하였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학교교육이나 사회교육이 제구실을 못하였을 때였기에 교회교육이 돋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주일이면 교회학교로 모여들 수 있었고, 여름성경학교가 열리면 온 마을 어린이들의 잔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주일이면 교회가 아니더라도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는 곳들이 지천으로 널려있는 이런 때에, 교회교육을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제 생각으로는 세 가지가 핵심이라 생각됩니다.

 

본문 64절 말씀에서 예수님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들을 양육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자녀들을 양육함에 예수님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확고하게 알아야 하고, 예수님의 훈계가 어떠하였는지에 대하여 이해한 후에, 모든 교육의 전문성을 갖추어 자녀교육에 임해야 합니다. 이것이 가정을 살리는 길이요 겨레의 장래를 밝게 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미래가 되기도 합니다.

 

송명희라는 시인을 아실 것입니다. 그녀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제대로 몸을 가눈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고개를 똑바로 하고 싶어도 자꾸 옆으로 기울어집니다. 오래 전부터 악성 목 디스크까지 발병해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그녀는 가장 불공평한 삶을 부여받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처럼 보이는 인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평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송명희씨는 시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정상인이 아닌 뇌성마비 장애인이 몇 줄 썼기 때문에 동정하는 뜻에서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훌륭한 시인도 표현하지 못한 하나님의 세밀한 사랑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 중에 ""라는 대표시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의 갖고 있지 않은 것 가졌으니/

나 남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으며/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나 남이 없는 것을 갖게 하셨네."

 

지난 시절 하나님과 부모님을 수없이 원망했습니다. 비탄에 빠진 욥처럼 자신의 탄생을 저주하기도 했습니다. 사춘기에는 자살을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모태 신앙인이었던 그녀는 그냥 죽을 수 없었습니다. 17세 때 죽더라도 하나님을 만나고 죽어야겠다며 하루에 몇 시간씩 목숨을 걸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신을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세상에 나오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절규하면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기도 가운데 그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겠노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시간을 정해놓고 계속 기도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시가 터져 나왔습니다. 학교라곤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별하게 문학적인 재능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 시가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알았습니다. 시는 `예술가 중의 예술가'이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란 것을, 그래서 온 몸을 뒤틀며 시를 썼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공평하셨습니다.

 

그때 쓴 시가 였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송명희씨보다 더 불행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동시에 누가 과연 송명희씨 보다 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그 배후에 늘 함께 계셨던 어머니 최정임권사와 아버지 송형섭장로님의 아낌없는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에 이러한 일이 가능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자녀들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무엇을 위해 우리 아이들이 자라기를 원하십니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꽃피울 수 있는 위대한 그리스도인~! 세상의 소망이 되는 우리의 자녀들로 키우지 않으시겠습니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들을 가르치라! 말씀하십니다. 그제야 주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약속 있는 첫 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귀한 은혜와 사랑이 어두워진 이 시대 속에서도 희망이 되고 생명의 통로 되어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무리

 

본문말씀에 그저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한 것이 아니고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는 말씀에서 "주 안에서"란 말의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두 가지로 이해합니다. 첫째는 "주님에 대한 믿음 안에서, 주님에 대한 감사 때문에,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주님의 뜻과 일치하는 한에서"라는 뜻입니다. 즉 아무리 부모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과 신앙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따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신부모라면 몰라도 신앙인인 부모들은 스스로를 하나님보다 더 앞세움으로써 자녀들을 괴롭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않다"(마태복음10:3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모든 부모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부모들 자신이 자녀들을 가르칠 때 자신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사랑이 부모공경보다 더 귀중하고 우선적인 것임을 가르침으로써 자녀들이 하나님사랑과 부모공경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 그의 뜻을 보다 더 잘 이해하려는 노력을 늘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통해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려고 해야 합니다. 부모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지상에서 자신을 보여주시는 거울로서 주신 분들입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을 통해 하나님이 지극한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도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며, 죄에 대하여 엄하시면서도 또 무한히 용서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한편 부모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통해 자녀에 대한 책임을 바르게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맡겨진 자녀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돌보되 엄하게 가르치고 잘못을 깨달을 때에는 언제나 용서하며 받아주는 마음을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자식들에게 하나님의 모습을 비쳐주지 못하고 그 반대의 모습만 보여준다면 자녀들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나도록 자녀들 앞에서 더욱 바르게 살려고 힘쓰는 부모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부모자식간의 도리가 바로 서는 거기에 놀랍고 복된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다 부모입니다. 어르신들은 과거의 부모이었고, 자식들을 키우고 있는 장년들은 현재의 부모입니다. 그리고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청년들은 미래의 부모입니다. 그리고 싱글로 사는 분들도 영적으로 보면 영적 자녀들을 양육해야하는 부모들입니다.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자녀들이 나옵니다.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들이 본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완전한 모델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이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들을 하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식들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을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새벽에도 기도해 주고 아침에도 기도해 주고 저녁에도 기도해주고 시간이 나는 대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위해서는 기도가 최고입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부모가 되어서 모든 자녀들을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좋은 사람, 이삭처럼 순종하는 사람, 요셉처럼 꿈을 가진 사람, 다윗처럼 용맹한 인재로 솔로몬처럼 지혜로운 사람들로 키워서 자손대대로 복을 받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치 이삭이 야곱을 위하여 축복기도해 준 것처럼, 야곱이 유다와 요셉을 축복기도를 해 준 것처럼 또 그의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위해 축복기도해 준 것처럼, 그 자손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면 기도한대로 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아무리 다 성장하였다고 할지라도 ,부모가 아무리 연세가 많아졌다고 할지라도 자녀들을 위한 기도는 쉬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맥아더 장군의 자녀를 위한 아버지의 기도는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모델이 된다고 생각됩니다.

 

주여, 제 아이를 이런 사람으로 키워주소서

자신이 약할 때 이를 분별할 정도로 강하고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의연하며

승리에 겸손하고 온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요행과 안락의 길로 인도하지 마시고

곤란과 고통의 길에서 항거할 줄 알게 하시고

폭풍우 속에서도 일어설 줄 알며

패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도록 해 주소서

 

마음을 깨끗이 하고 목표를 높게 하시고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게 하시며

미래를 지향하는 동시에 과거를 잊지 않게 하소서

 

유머를 알게 하시어

인생을 엄숙히 살아가면서도 삶을 즐길 줄 아는 마음과

자기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않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게 하소서

 

참으로 위대한 것은 소박한데 있다는 것과

힘은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소서

 

그리하여 그의 아버지인 저는 헛된 인생을 살지 않았다고

나직이 속삭이게 하소서.” 아멘..

 

이 설교는 여러 참고서적과 목사님의 설교를 인용 정리하여 올린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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