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천국, 천국, 천국을 향하여 (14)-천국 초대장, 포도원에 초청받은 사람들
03/31/2020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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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점점 초조해 지기도 하고 흥분과 기대로 들뜨기도 했습니다. 변화 산에서의 기억은 제자들에게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감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천국의 비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배웠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천국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장소적이며 시간적인 천국,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줄 종말론적인 천국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흥분과 기대는 커져만 갑니다. 드디어 주님이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려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세계에 군림할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점점 자신들이 만든 그 환상에 정신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큰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 하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어린아이를 보여주시면서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투기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제자들에게 주님은 열 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세상 질서, 대가의 법칙에 익숙해져 있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더욱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바로 이 그림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주신 비유입니다. 



천국 초대장, 포도원에 초청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0장 1 - 16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7)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 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이끄는 말


포도원에 초청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19장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그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13절 이하 말씀에서는 천국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의 필요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16절 이하에서는 부자 청년의 고뇌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겠느냐고 묻는 이 청년에게 계명들을 지키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계명을 지키었다는 청년 그를 사랑스럽게 쳐다보시면서 주님께서는 네가 가진 모든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께서는 다시 천국에 들어가는 이야기를 말씀하십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데 마치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많이 놀라면서 다시 묻습니다.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들어가는 것과, 구원이 같은 맥락에서 취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오니 우리가 무엇을 얻겠습니까?"라고 묻는 베드로에게 주님께서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라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본문 16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따라서 19장 30절과,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같은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 때 주님께서는 자신의 마지막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던 중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많은 고난을 받은 후 죽임을 당하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셔야할 것에 대해서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순간을 위해 예루살렘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점점 초조해 지기도 하고 흥분과 기대로 들뜨기도 했습니다. 변화 산에서의 기억은 제자들에게 평생에 잊을 수 없는 감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서 천국의 비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배웠지만 여전히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천국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장소적이며 시간적인 천국, 로마의 압제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줄 종말론적인 천국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의 흥분과 기대는 커져만 갑니다. 드디어 주님이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려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를 왕으로 모시고 세계에 군림할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점점 자신들이 만든 그 환상에 정신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더 큰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게 될 것인가 하는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러한 제자들에게 주님은 어린아이를 보여주시면서 "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새겨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누가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로 다투기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제자들에게 주님은 열 두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을 심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세상 질서, 대가의 법칙에 익숙해져 있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더욱 기름을 붓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나타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바로 이 그림을 설명하시기 위해서 주님이 주신 비유입니다. 


중심내용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천국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르치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비유입니다. 이제 이러한 본문을 통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천국에 대한 올바른 의미와 천국 일꾼인 우리에게 부여된 사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품꾼입니다.


품꾼은 자신을 소유한 사람만을 섬깁니다. 품꾼은 자신을 산 주인의 명령만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소유권은 오직 자신을 산 사람에게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품꾼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만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말씀의 법과 육신의 법을 동일하게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다른 모든 것은 우리를 소유하지 못했으며,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의 주인은 오로지 우리를 자신의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 한분뿐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만을 섬기고 그분의 명령에만 순종해야 합니다.


품꾼은 자신의 의사를 포기해야 합니다. 품꾼은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소유하지 못합니다. 그가 품꾼이 되는 순간부터 그의 주권은 주인에게 이양됩니다. 때문에 품꾼은 자신의 의사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자신을 산 주인의 의사에 의해 움직이고 생각하며 행동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생각과 의지와 뜻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품꾼에게는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뜻과 의사를 포기하는 자에게는 전적인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자신의 뜻과 방법을 포기한 그들은 주인의 명령에 “왜?”라는 이유를 달지 않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한 아브라함처럼, 가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의 이해하지 못할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했던 하인들처럼 품꾼인 우리에게는 주님의 명령에 대한 전적인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의 일터는 포도원입니다.


포도원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유일한 재정적 원천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포도원을 통해 그들의 생필품을 얻었고, 포도원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증식시켜 나갔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유일한 사업장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영적 자녀를 출생시키시고 교회를 통해 영적 자녀를 더욱 크게 확산시키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천국 백성의 출생지이며, 하늘나라 확장의 전초 기지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교회의 일꾼이어야 합니다. 주인이 품꾼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듯이 하나님은 우리를 교회로 들여보내십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 하나님께서 명하신 천국 확장의 사역을 성실히 수행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내게 맡겨진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하며 천국백성의 유일한 사업장인 교회에서 주님의 뜻하신 바를 드러내기 위해 맡은 직무에 충실해야 합니다.


천국 일꾼의 자세는 근면입니다.


포도원에 들여보낼 일꾼을 찾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주인과 같이 우리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나태함이나 게으름은 천국 일꾼의 자세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간사함으로 일하는 것도 천국 일꾼의 올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천국 일꾼의 참된 자세는 남들이 알아주던지 알아주지 않던지 묵묵히 주어진 일에 성실히 행하는 것이며, 정직한 마음과 정결한 영으로 부지런히 일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주어진 분깃을 땅 속에 감추어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오자 그대로 꺼내온 게으른 종에게 주인의 책망과 추방밖에 없었으나 자신이 받은 분깃으로 열심히 일한 종에게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과 상급이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성실과 인내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린도전서 4장 2절).


하나님의 일에는 보상의 약속이 있습니다.


사탄의 목적은 파괴와 멸망입니다. 그는 선한 자를 자신의 종으로 삼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부려먹다가 최후에는 멸망과 죽음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다릅니다. 그의 뜻은 부요와 평안과 영생에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자들에게 복으로 보상하십니다. 사탄의 일은 고통과 쓰라림뿐입니다. 그의 일은 과정부터 결과까지 오로지 어둠과 고통 속에 거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기쁨과 평안입니다. 그의 일은 기쁨으로 시작하여 평안으로 끝납니다. 비록 그 일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그의 사역에는 즐거움이 있으며,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결과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심은 그대로 거두리라는 절대 불변의 진리를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에 충성하는 자의 수고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요한계시록 2장 10절).


이 비유에 있어서 천국은 무엇과 같다고 말씀하십니까?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이 비유에서도 천국의 상황을 설명해 주는 것은 누구입니까? 집주인입니다. 포도원에 초대를 받은 사람 포도원 품꾼들이 어떻게 포도원에 들어갔습니까? 오직 포도원 주인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품꾼들이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품꾼들이 한 것은 장터에서 놀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장터에 자주 나가지 않았더라면, 품꾼들은 일을 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품꾼들은 자신을 일군으로 택하여 주신 포도원 주인께 너무나 감사했을 것입니다. 집주인의 행동이 천국의 어떤 단면을 설명해 준다는 것입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포도는 대개 6월경에 익기 시작해서 9월경에 수확을 합니다. 본문 말씀에 그 시기가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그 내용으로 미루어 그 시기를 포도 수확기로 상정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9월은 아침 6시에 해가 떠서 저녁 6시에 해가 집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가 뜰 때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대략 10시간 정도를 하루 노동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포도원을 가지고 있는 포도원 주인은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가장 적기에 포도를 수확하는 것은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한 한 날을 정해 집중적으로 포도를 수확하였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해가 뜰 때인 아침 6시경에 집안의 모든 하인들을 포도원에 데려다 놓고 시장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품꾼들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장터에는 일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품꾼들이 많았습니다. 아마 오늘날로 말하면 인력시장과 같은 상황일 것입니다. 주인은 그들에게 일당을 주고 하루 품꾼으로 고용합니다. 물론 보편적인 일당이 정해져 있을 것이고 주인은 고용인들과 약속을 합니다. 하루에 얼마의 일당을 주기로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 일에 필요한 사람들을 전부 사서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고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웬일인지 9시에 장터에 또 나갔습니다. 그런데 놀고 있는 사람들이 있자 그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이들의 경우에는 첫 번째 고용된 사람들과 두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납니다. 첫째는 이들이 일없이 놀고 있었다는 점으로 보아서 주인이 이들을 고용한 것은 그들을 돕기 위해서 일자리를 제공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에게는 첫 번째 고용된 사람들과 같이 얼마의 임금을 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제 6시에 정오에, 네 번째는 제 9시에 곧 오후 3시에, 다섯 번째는 제 11시에 곧 오후 5시에도 장터에 나가서 계속 일꾼들을 고용합니다. 7절은 주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아무도 품꾼으로 써주는 사람이 없어서 지금 이들은 하루를 공치고 있었습니다. 이제 일과가 끝나려면 불과 1시간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고용한 것입니다. 왜요 그들에게 일거리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감격하면서 일터로 갔을까요...... 우리는 너무나 자주 이 사실을 망각하고 살아갑니다. 주님에게는 일꾼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오후 다섯 시가 되어도 일거리가 없어서 서성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의 긍휼로 일자리를 주셨지만 뭐가 싫고 뭐가 못마땅하다고 투정만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은 포도원의 비유 중에서 주님께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하는 베드로의 물음에 직접적으로 대답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되 가장 적당한 시기에 약속을 이행하십니다.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삯을 주라하니.” 우리가 구약말씀을 읽어보면 거기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많은 계약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많은 계약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번번이 하나님을 대적함으로써 깨뜨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이스라엘과의 계약을 깨뜨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겼을 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계약을 파기하지 않으시고 성실히 이행하신 사실을 우리는 구약성경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번 세우신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이행하시되 아무 때나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경륜에 따라 가장 적절한 때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저녁때 이르러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시간이 되었을 때 청지기를 불러서 일꾼들에게 품삯을 주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우리 생각에는 더디게 생각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당한 시간에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하박국 2장 3절).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되 풍성히 지키십니다.


“제 십 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포도원 주인의 약속 이행은 제일 먼저 온 자들로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늦게 십 일 시에 들어온 자들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은 가장 먼저 들어온 자들의 말과 같이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받을 대가는 이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극히 적은 액수여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가장 먼저 온 자들에게 약속하였던 것과 똑같은 한 데나리온씩을 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는 매우 파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약속을 언제든지 풍성하게 이행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에 대하여 베풀고자 하시는 뜻이요 섭리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가 조급하여 인내하지 못하기 때문에 받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서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진실 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주인의 자비한 은혜를 오히려 원망합니다.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저희도 한 데나리온씩을 받은지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언제든지 어리석은 신앙인들은 주님의 자비하심이나 긍휼하심에는 관심이 없고 항상 이기적인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은혜를 저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본문말씀에서도 보면 먼저 포도원으로 초청 받은 일꾼들은 포도원 주인의 자비하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직 자신들의 이해에만 민감하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포도원 주인이 자기들을 나중에 십일시에 들어온 자들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나누어주었을 때 그들은 주인의 자비하신 은혜에 감사하고 나중에 들어온 자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기들을 나중에 온 사람들과 똑같이 대우한다고 불평하며 주인을 원망하였습니다. 이들은 실로 주인의 은혜를 은혜로 받아들이지 않는 어리석고도 이기주의적인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천국 백성에 합당한 자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성도는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남의 부족을 서로 채워 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노력과 수고의 대가를 요구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그 은혜로 즐거워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특별한 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 종은 일을 하고서도 그 일에 대한 대가를 주인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인이 많은 돈을 지불하고 종을 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의 수고는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인입니다. 그는 독생자의 피를 대가로 하여 우리를 사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당연한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른 보수나 대가를 기대해서도 안 되는 처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여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요 우리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잘 깨달아 하나님을 더욱 섬겨야 하겠습니다.


드디어 저녁이 되고 품삯을 받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즐거운 시간입니까? 그런데 주인이 마지막에 온 사람부터 임금을 줍니다. 오후 다섯 시에 와서 불과 한 시간을 일한 사람에게 뜻밖에도 한데나리온의 품값이 지불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합니다. "야!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이면 아침 6시에 온 나는 몇 데나리온이냐" 사람들의 계산은 합리적인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침에 한 데나리온의 계약을 하고 고용되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어버렸습니다. 다만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으니 나야 말할 것도 없이 더 받겠지"라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모두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을 지급합니다. "최소한 조금이라도 더 줄줄 알았는데" 이런 기대가 무너져 버린 아침 일찍 고용된 일꾼들 사이에서 불평이 쏟아져 나옵니다. "온 종일 땀 흘려 일한 우리와 석양 무렵에 와서 불과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않은 우리를 어떻게 똑같이 취급한단 말입니까?" 이들이 제기하는 이의는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교회 선배이고, 세례를 먼저 받았고, 집사이고 등등의 이유를 달아서, 대접받아야 한다고 강변합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것은 인정됩니다. 왜요? 이것이 인정되지 않으면 서로 불편하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지 기득권을 주장하고 내가 먼저 된 자요, 교회 선배라고 우쭐대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여지없이 불평과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포도원에 품꾼으로 택함을 받은 자들은 처음에는 참으로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을 하고 난 후 품삯을 받을 때 맨 늦게 온 품꾼과 같은 품삯을 주는 것에 대해 주인을 원망하고 따지고 들었습니다. 내가 이처럼 일했는데 늦게 온 사람과 똑 같이 품삯을 주는 것에 불공평하다고 주인에게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에게 구원받은 것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가 신앙 생활해 가는 동안에 구원받은 것에 감사보다는 내가 얼마나 예수를 열심히 믿었는데, 내가 얼마나 교회를 다녔는데, 내가 봉사를 얼마나 했는데, 내가 헌금을 얼마나 했는데, 나한테 돌아온 것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처음에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에 눈물 흘리며 감격한 일을 기억하시고 계십니까? 그런데 그러한 감사가 서서히 우리 속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도 아십니까? 


그런데 집주인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본문 13-1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너 하고는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했고 나중 온 사람들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는 것은 내 소관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어서 주는 것인데 너는 왜 내가 베푸는 은혜를 악하다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람들의 사고방식, 우리의 사고방식과 천국의 사고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천국은 은혜의 법칙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집주인이 베풀어주신 은혜로 먼저 된 자나 나중 된 자나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제자들은 조금 전까지 네가 우편이냐 내가 우편이냐를 놓고 따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먼저 주님을 따랐던 자신들이 천국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자들만의 생각은 아닙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집주인은 먼저 온 자나 나중 온 자나 똑같은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그것은 열두 제자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한 데나리온은 주님이 죄악 된 인생들에게 일방적으로 베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구원입니다. 포도원이라고 하는 천국에 주인의 은혜로 들어와서 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아침 여섯 시에 일하기 시작했으니 더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소리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나는 우편에 앉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한 데나리온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예수를 믿어서 모든 훈련을 거의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가 중용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오후 다섯 시에 일터로 온 사람이 자기하고 똑같은 한 데나리온을 받는 꼴은 도저히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집사면 다 같은 집사고 장로면 다 같은 장로냐?" 


그런데 주님은 16절 말씀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주님 나라의 질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세상의 법칙, 대가의 법칙이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은 먼저 왔기 때문에 당연히 더 받을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더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서도 안 되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그 판단은 집주인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의 은혜로 포도원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주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파악하지 않는 것에서 문제가 발생되고 있습니다. 자신은 주인과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9시, 12시,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에 사람들이 들어오고 그들에게 한 데나리온이 지불되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를 따랐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하는 베드로의 질문으로 주어진 포도원 비유의 결론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지극히 작은 부분에 대하여 주의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알아봄으로써 함께 은혜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공로를 붙들고 있는 동안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붙잡지 못하게 됩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제일 먼저 포도원 주인의 초청을 받은 자들이 최종적으로 그 주인에게 들은 말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가장 뜻있고 보람된 일에 가장 먼저 초청을 받은 자들이었지만 그들의 결국은 한 데나리온씩을 받고 주님의 곁을 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로 최초로 포도원 주인과 관계를 맺었고 그 주인의 사업을 위해 가장 오랫동안 땀을 흘린 사람들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선하신 주인의 책망과 함께 주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관계의 사람으로 선언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처럼 그들은 가장 복된 위치에 있다가 가장 비참한 자리로 떨어지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바로 주인의 사업을 위하는 마음보다는 자기의 유익에 더 관심을 가졌으며, 주인의 은혜보다는 자기의 공로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유익을 위하고 자신들의 공로를 붙잡고 있는 동안 주인의 배려와 은혜에는 전혀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사업보다 자신의 이기적인 유익에 더 관심을 가지며,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의 공로를 더 의지한다면 우리도 포도원에 가장 먼저 초청 받았던 일꾼들과 같이 결국은 주님의 책망과 함께 주님과 전혀 상관없는 불쌍한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든지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사업에 더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공로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 의지하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먼저 시작했다거나 혹은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큰 공로를 세웠다는 사실만 가지고서 결코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결국 이 포도원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시고자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결론을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말씀으로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사업에 먼저 뛰어들었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자랑삼거나 기득권을 내세우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앞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우리가 스스로의 공로를 자랑삼거나 기득권을 내세우면 우리는 그것으로 얼마든지 “나중”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득권을 내세우거나 자기를 공로로 자랑삼아 어떤 대가를 기대하기보다는 오히려 귀하고 선한 하나님의 사업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이처럼 진실 되고 순수하게 살아갈 때 우리는 결코 자신의 공로나 업적을 내세우는 교만한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며, 모든 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아무리 보잘것없는 일을 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존하여 이루어진 일이라 한다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힘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가장 늦게 포도원에 초청 받은 사람들을 주의하여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애쓴 공로가 없을 때에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을 수 있는 좋은 예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미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가장 나중에 포도원으로 초청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일을 모두 마친 후에 자기들의 수고에 대하여 주인 앞에서 조금도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너희에게도 상당히 주리라”고 약속하였던 주인의 자비로운 은혜에만 기대를 걸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비록 적으나마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한 수고를 잊고 오직 주인의 자비로운 은혜에 기대를 걸었을 때 그들은 기대 이상의 큰 은혜를 입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진실로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본문 말씀에서 제일 나중에 포도원에 부름 받았던 일꾼들과 같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큰일을 했든지 작은 일을 했든지 간에 우리의 수고와 공로에 대한 대가나 보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할 때에 우리가 비록 나중 된 자라 할지라도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신 천국은 모두가 한 데나리온이라는 천편일률적인 나라는 아닙니다. 모두가 같은 일을 하고 같은 것을 먹고 같은 생각을 하는 나라도 아닙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태어나서 서로 다른 환경을 가진 사람들, 너무나 다양한 고기들이 천국의 그물에 걸려들었습니다. 처음 그물을 칠 때 걸린 고기, 마지막 그물을 거두기 직전에 걸린 고기....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였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이해하는 세계가 주님이 원하셨던 나라였습니다. 세상의 원리, 세상의 법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였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하는 나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왔으니 대접받아야 하고 나는 아는 것이 많으니 당연히 대접받아야 하고, 나는 학벌이 높으니 대접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온갖 불평과 불만으로 교회가 이상하고 목사가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리스도인은 간데없고, 집사들만 가득 찬 세상이 되었습니다. 


결국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천국의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마음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처럼 우리가 어떤 일을 해서 어떤 대가를 바라고 예수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온 품꾼들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신들이 더 많은 시간을 일 했기 때문에 더 많은 대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러줄 때 은혜는 잊어버리고, 주인과 흥정하려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를 때 보상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보상과 상급이 약속되어져 있습니다. 베드로에게도 그 보상을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28절 말씀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주의 종에게 냉수 한 그릇 주어도 상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하면서 어떤 보상을 받을 것을 생각하고, 주님을 섬기고 있다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이런 모습은, 품꾼들처럼 주인과 흥정하려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보상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 놓고 하나님과 흥정하려는 마음으로 일을 한다면 잘못된 신앙입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세상! 그것이 천국이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일차적인 대상은 열 두 제자입니다. 열 두 보좌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는 제자들. 더 높은 자리에 앉아야 되겠다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천국은 그런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무리 


여러분! 포도원 품꾼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무엇입니까? 그들이 포도원에 고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주인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만약 주인이 고용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하루 종일 서성이다가 허탈한 심정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니까 불평이 나옵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 나에게 더 주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나중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나라는 불평과 원망의 나라가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는 경쟁과 야망의 나라가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는 시기와 질투의 나라, 비교의식이 판치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주님의 비유를, 이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제자들과 같이 비교하기에 여념이 없고 대가의 법칙, 힘의 논리, 적자생존의 원리로 사람들을 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원래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집주인이 의도한 것은 그런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소유한 천국이 계속 그렇게 비쳐지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 그렇게 고약한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하고 살 수 없는 세상입니다. 빙산의 일각에도 못 미치는 지식과, 점유 공간을 가지고 서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그러면서 그 좁은 공간, 작은 지식을 가지고 서로 비교하고 불평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꼴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중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할 일입니다.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여 섬기는 자세로 천국을 받아들이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말씀은 목사님들의 설교와 참고자료를 인용하여 올린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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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천국, 천국, 천국을 향하여 (14)-천국 초대장, 포도원에 초청받은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