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 분별 시리즈 (11) : 하나님의 자비가 넓어졌는가?
10/10/20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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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만일 누가 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저주 아래 있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으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듣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으며, 누군가 그들에게 가지 않는다면 그들 가운데 어찌 전도자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정말 모든 선교사들을 집으로 불러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진실로 어느 곳에 있는, 어느 누구나 단지 하나님에 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천국에 가게 될 것이므로 복음 전하는 일을 중단해야 하는가?



바른 교리 분별(11) : 하나님의 자비가 넓어졌는가?


오늘날 복음주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 빠져 있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과연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지를 올바로 분별하지 못한다는 데 기인한다. 복음주의 편에 서 있는 우리는 구원받는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저버렸다. 그러므로 성경을 가르치고, 올바른 교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담대히 일어나 진리를 전해야 하는 책임은 더욱 커졌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빌리 그래함의 영향을 받아왔다. 그는 여러 면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신하여 기독교 복음주의의 대변인 역할을 해왔다. 세상에 대하여, 심지어 교회에 대하여 그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그의 설교를 통해, 복음사역을 통해, 위튼 칼리지(Wheaton College)와 풀러 신학대학(Fuller Seminary) 또한 기독교의 오늘(Christianity Today) 및 다른 많은 단체를 통해 복음주의에 영향을 끼쳐왔다.


수많은 기독교 잡지에는 그에 관한 논평과 그의 생애를 돌아보는 기사들이 실린다. 나는 그런 기사들이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 나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한 기독교 잡지의 편집인은 “그래함은 친절하고, 동정심 많고, 사랑이 넘치는 복음주의의 상징이 되었지만, 또한 대중을 의식한 신중하고, 정치적이고, 비신학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복음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그는 진리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하는 현대 복음주의의 신학적인 실용주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었다. 빌리 그래함은 금세기에 그 누구보다 자신의 이미지를 심는 탁월한 재능으로 인해 현재의 복음주의의 위기를 초래했으며, 이러한 위기는 55년 이상 자신의 생애와 노력을 투자해 온 바로 그 체계와 대의를 파괴하려고 위협하고 있다.”


이것은 그의 생애에 관한 슬픈 언급이기는 하지만 사실에 근거하여 볼 때 타당한 말이다. 빌리 그래함과 로버트 슐러, 두 사람 사이에 최근에 이루어진 공적인 인터뷰는 이것이 사실임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슐러 박사 : “기독교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빌리 그래함 : “글쎄요, 기독교와 진정한 신자가 된다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당신도 알다시피 그리스도의 몸을 먼저 생각할 수 있죠. 이 그리스도의 몸은 전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 그룹 또는 그리스도인 그룹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에는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아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는 사실입니다. 나는 미래에 온 세상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거대한 부흥의 시기가 올 것이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어 그가 하는 말을 생각해보자.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이 인식하든 못하든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 있고, 믿을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온 세상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오는 부흥의 시기는 없을 거라고 말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이미 이루어진 일이므로 그러한 부흥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하나님이 오늘날 행하시는 일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세상에서 사람들을 불러내시는 일입니다. 그들이 무슬림 세계에서 나오든, 불교 신자들 세계에서 나오든, 크리스찬 세계에서 나오든, 아니면 불신 세상 가운데서 나오든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입니다. 그들은 예수라는 이름을 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으로는 자신들에게 없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들에게 비추어진 유일한 빛으로 나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구원을 받았고, 우리와 함께 천국에 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슐러 박사 : “당신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두움 가운데 태어나 성경을 전혀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마음과 영혼 그리고 삶 속에도 들어오실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당신이 말하는 바를 내가 올바로 이해한 것이 맞나요?”


빌리 그래함 : “맞습니다. 난 그렇게 믿고 있으니까요. 난 세계 여러 지역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을 만나 보았어요. 그들은 결코 성경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성경을 본 적도 없으며, 심지어 예수에 대해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고, 자신들이 태어나고 자란 주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과는 아주 다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어요.”


슐러 박사 : “정말 환상적인 말씀이군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율이 느껴지는군요. 하나님의 자비에는 정말 한계가 없군요. 저도 동의합니다.”


이 인터뷰 기사를 읽고 다른 한 기독교 잡지의 편집자가 빌리 그래함 선교단체에 편지를 썼고, 다음과 같은 회신을 받았다. “인터뷰에 나타난 빌리 그래함 박사의 견해는 그가 항상 견지해 온 이전의 견해와 일치합니다. 분명하고도 변함이 없는 그의 견해는, 무슬림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며, 불교 신자들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며,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이며, 성경에 대해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그들이 만약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예수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라는 사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로서 수많은 청중들을 대형 경기장에 모이게 하여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하기 위해 수천 수백만 달러의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의 주장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모순이 되는 말이다.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말해 주고,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구주를 믿어야 한다고 촉구하며, 그들이 만약 믿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경고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의 말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이다! 그들이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유신학을 포용하는 것이 결코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래리 킹 쇼에 나와 자신은 몰몬교나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인들과도 전혀 문제없이 교류한다고 말을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나는 지금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영향력을 지니지 못한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에게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여러분이 크리스찬 계통의 대학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교수들과 믿지 않는 교수들이 섞여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이유이다. 또한 이것이 신학대학에 다니는 동안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에 신실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만 반면에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믿는 자의 범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이유이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복음주의는 오늘날 상당히 널리 퍼져있으며, 체계적으로 발전되고 더욱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자신들이 사랑이 없는 사람으로 비쳐질까 두려워 거짓임을 알면서도 거짓이라고 정직하게 말하기를 주저한다.


나는 이 시점에서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복음이 과연 불분명한 것인가? 복음이 그렇게 애매모호한 것인가? 복음을 이해하기가 정말 어려운가? 신약성경은 이 주제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고 있지 않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어떤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이며, 하늘나라에 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충분한 빛을 제공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만일 누가 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저주 아래 있다고 선언하고 있지 않은가? 성경은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으며,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오며, 들음은 그리스도에 관한 메시지를 듣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을 수 있으며, 누군가 그들에게 가지 않는다면 그들 가운데 어찌 전도자가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정말 모든 선교사들을 집으로 불러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진실로 어느 곳에 있는, 어느 누구나 단지 하나님에 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면 천국에 가게 될 것이므로 복음 전하는 일을 중단해야 하는가?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와 우리의 복음사역에서 심장을 도려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일 신약성경이 이러한 문제에 대해 정확한 지침을 주고 있다면, 우리는 성경을 무시할 권리가 없으며, 인기에 영합하여 이익을 얻기 위해 우리 자신이 지어낸 말로 성경을 재 정의할 권리도 없다. 참되고 역사적인 기독교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의미를 결코 혼동한 적이 없다. 참되고 역사적인 기독교는 신약성경이 이 문제에 있어서 항상 투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신약성경은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도록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에 관해 올바로 분별하도록 정보를 아끼지 않으셨다. 참과 거짓, 명목적인 신자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데 있어 우리에게 부족한 정보는 없다.


성경이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음에도 누가 참된 그리스도인인 지에 대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혼동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스도인은 거짓으로부터 참된 진리 가운데로 구원을 받은 자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온전히 이해하고 죄로부터 의(義) 가운데로 건짐을 받은 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새로운 생활방식을 가지게 된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현재의 악한 세대, 사단이 지배하는 체계로부터 벗어나 영원한 나라로 옮겨진 자들이다. 그들의 마음은 하늘에 있으며, 그들이 바라는 것은 결국 지나가 버리게 될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에 속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진리이며, 우리가 선포해야 할 진리이다. 그리고, 진정한 구원에 이른 사람들이 그 구원의 선물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고, 이 모든 일로 인하여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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