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천국, 천국, 천국을 향하여 (08)-천국의 비밀 7가지 (2) - 알곡과 가라지 비유
02/18/202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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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은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한 곳에 있습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거하듯이 알곡과 가라지는 함께 존재합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다른 곳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같은 세상에 존재하듯이 선과 악은 모두 함께 공존합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도 선과 악은 공존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민한 그대로 우리 마음속에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함께 거하여 이 두 마음이 언제나 싸우며 투쟁합니다(로마서7장22-23). 이 두 마음 중 성령의 소욕이 이길 때 우리는 다윗과 요셉 같은 인물이 될 수 있지만,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우리는 가룟 유다와 같은 배반자가 될 수 있으며, 아간과 같은 사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선이나 악 중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세상이며, 이 두 가지의 덕목 중에서 우리의 선택과 행위에 의해 이 세상은 선하게도 그리고 악하게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천국 분명히 있습니다


        천국의 비밀 7가지 알곡과 가라지 비유  

   

        마태복음 13장 24 - 30, 36 - 43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36) 이에 예수께서 무리를 떠나사 집에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시되 가라지의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 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4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42)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43)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이끄는 말


우리는 지난 시간에 씨 뿌리는 비유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살펴보면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모든 비유가 천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제는 오직 천국이며 천국을 알기 위한 마음으로 비유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함께 은혜를 나눌 가라지 비유는, 씨 뿌리는 비유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가 길가에, 돌밭에, 가시덤불에, 옥토에 떨어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라지 비유의 핵심은 이 네 가지 마음 밭 가운데서 옥토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씨앗이 옥토에 떨어졌다고 해서 무사히 다 끝났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옥토에 씨가 떨어져서 잘 자라서 열매를 맺으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옥토에 가라지라고 하는 만만하지 않은 장애물이 등장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말씀 24절에서 27절 말씀에,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 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두 번째 천국에 대한 비밀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간다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천국을 소유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천국을 소유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천국 백성의 자격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계시는 비유입니다. 곡식과, 가라지의 끝이 있고, 가는 곳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아는 것이 천국의 비밀입니다. 


가라지를 누가 뿌립니까? 마귀가 뿌립니다.(25절) 좋은 씨는 누가 뿌립니까? 예수님이십니다.(37절) 가라지가 언제 뽑힙니까? 추수때입니다. 추수 때가 언제입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할 때 입니다. 가라지가 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지옥 불 가운데입니다. 곡식은 어디로 갑니까? 천국입니다. 여러분은 이 천국 비밀을 알고 있습니까? 알고 있다면 알곡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 천국 비밀을 알고 있으면서 가라지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천국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없습입니다. 


중심 내용


본문 말씀은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한 곳에 있습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거하듯이 알곡과 가라지는 함께 존재합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다른 곳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교회 안에서, 그리고 같은 세상에 존재하듯이 선과 악은 모두 함께 공존합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도 선과 악은 공존합니다. 사도 바울이 고민한 그대로 우리 마음속에는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함께 거하여 이 두 마음이 언제나 싸우며 투쟁합니다(로마서7장22-23). 이 두 마음 중 성령의 소욕이 이길 때 우리는 다윗과 요셉 같은 인물이 될 수 있지만,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우리는 가룟 유다와 같은 배반자가 될 수 있으며, 아간과 같은 사특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선이나 악 중 어느 하나만 존재하는 세상이 아니라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세상이며, 이 두 가지의 덕목 중에서 우리의 선택과 행위에 의해 이 세상은 선하게도 그리고 악하게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알곡과 가라지 둘 다 모두 주인의 보호를 받습니다. 주인의 관심은 오로지 알곡에게만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은총은 가라지에게도 똑같이 내려집니다. 마치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의 은총이 주어지는 것처럼 그의 은총은 알곡과 가라지 모두에게 동등하게 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관심이나 사랑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도 다치게 될까봐 추수까지 기다리는 알곡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이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진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이 나에게 임하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의인이 악인보다 고난당하고 고통받는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사랑하거나 보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통해 선인을 보호하고 돕기 위함이며 가라지의 때가 추수할 때까지인 것처럼 그들의 때는 최후의 심판 때까지이기 때문입니다.


의인과 악인은 반드시 구별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의인과 악인을 반드시 구별됩니다. 예수님의 좌우에 갈라선 양과 염소와 같이, 소돔과 고모라 때의 롯과 죄악의 도성과 같이, 그리고 심판 때의 의인과 같이 선과 악은 반드시 구분되고, 의인과 악인은 반드시 구별됩니다. 그때에는 주인이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모아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는 것과 같이 의인에게는 상급으로 악인에게는 영벌로 구별하십니다. 또 그때의 구별은 의인의 보호를 위한 구별입니다.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을 구원하기 위해 구별하셨던 것과 같이, 그리고 홍수로부터 노아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별하셨던 것과 같이 주님은 의인을 구별하시되 구원과 복을 위해 구별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구별을 위해 주님은 의인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노아를 위해 방주라는 특별한 방법을 예비하시고 롯을 위해 천사의 방문이라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신 것처럼 주님은 의인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예비하시고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의인과 악인의 궁극적인 차이입니다. 주님은 악인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시지만 의인의 고통은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며, 어떠한 환경과 여건 하에서도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91편 7절, “천명이 네 왼쪽에서 만명이 내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의인과 악인의 구별은 믿음과 행함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의인과 악인의 구별은 믿음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기본적 기준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가장 근본적인 선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가 가장 사악하게 보시는 것은 행악이나 도적질, 간음이나 살인이 아니라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부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기준은 믿음이며, 이 믿음에 의해 의인과 악인의 구별뿐만 아니라 생명과 죽음의 구별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23절,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은 다 죄니라”


의인과 악인의 구별은 행함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있는 양이 사랑을 실천한 자요 하나님의 왼편에 있는 염소가 사랑을 실천하지 아니한 자였듯이 선을 행하는 것과 선이 무엇이며 무엇을 행해야 할지를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 이것에 의해 의인과 악인은 분류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선은 그의 믿음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17절,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야고보서 2장 17절,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 가라지 비유를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예수님은 좋은 씨를 파종하는 농부이십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 그는 옥토에 좋은 씨만을 뿌립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농부의 심정으로 이 세상에 천국 복음의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좋은 씨는 그 뿌리를 예수님께로 내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씨를 일컬어 38절 말씀에서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이는 그 근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근원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근원이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께로 뿌리내려진 성도들은 어떠한 환난과 시험의 거센 바람이 불어와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충분한 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에 건강하고 넉넉하게 풍요를 누리며 성장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향해 뿌리를 내리는 성도들의 삶인 것입니다.


좋은 씨는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열매 맺는다”는 것은 그가 어디에 속하는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해 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뿌리를 내린 자는 반드시 좋은 결과, 즉 열매가 있기 마련입니다. 요한복음 15장 5절 말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마귀도 씨를 파종합니다.


마귀의 씨도 처음엔 잘 자라납니다. 옥토에서는 좋은 씨든지, 나쁜 씨든지 다 잘 자라게 마련입니다. 나쁜 씨도 좋은 씨가 섭취하는 만큼의 양분을 섭취합니다. 주께서는 그 해와 비를 모두에게 골고루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5장 45절). 또 열매 맺기 전까지는 어느 것이 가라지인지 구분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가라지가 더 그럴듯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곡과 가라지가 최종적으로 가려지는 추수 때인 가을은 곧 다가옵니다.


가라지는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하는 무가치한 것입니다. 모든 씨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추수 때가 다가오면 좋은 씨는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그러나 나쁜 씨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혹시 맺었다 하더라도 사람이나 동물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는 가라지 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라지는 옥토에서 좋은 양분을 약탈한 잡초에 지나지 않습니다. 결국 아무 쓸모없는 잡초는 추수 때 풀무 불에나 던져지게 됩니다.


알곡과 가라지는 추수 때 나누어집니다.


추수 때란 세상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언젠가는 도래할 하나님의 심판 때는 곧 세상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타작마당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구별하는 추수 때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크고 하얀 보좌 앞에 서서 천국과 지옥, 두 길 중 어느 한 길로 가게 되는 판결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추수 때는 알곡과 가라지의 구분이 뚜렷해집니다. 밭에서 함께 자랄 때는 어느 것이 가라지인지 모르나 추수 때가 되어 열매의 유무를 보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추수 때, 가라지와 같은 잡초는 풀무 불 밖에 들어갈 곳이 없습니다. 즉, 가라지와 같은 마귀와 그의 자식들이 처할 곳은 풀무불과 같은 지옥뿐입니다. 그러나 알곡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깨끗하게 죄 씻음 받은 “의인”입니다. 추수 때 알곡이 곳간 안에 들어가듯, 세상 끝 날에는 “의인”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영광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라지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진리의 배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고 계시는 근본적인 말씀은 천국은 말씀과 함께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밭은 세상이라고도 하며, 교회라고도 하며, 혹은 성도들의 마음이라고도 표현합니다. 천국은 밭에서 자연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밖으로부터 말씀의 씨앗이 밭에 떨어져서 이 말씀의 임함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즉 천국은 마음 밭에 말씀의 씨앗이 받아들여져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씀의 씨앗이 옥토와 같은 마음 밭에 뿌려져서 깊이 심겨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옥토와 같이 흙이 부드러운 밭이 되어서 씨앗이 온전히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 말씀이 우리 마음 가운데 수용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고, 받아지고, 순종되어져야 합니다. 또한 성령님이 마음의 문을 열게 하셔서 말씀을 향하여 마음 문이 열려지고, 이 말씀의 씨앗이 우리의 마음 가운데 깊이 심겨져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에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지는데 이 사실이 곧 중생입니다. 이 작은 말씀의 씨앗이 들어가서 싹을 내고 점점 자라게 되는 것처럼, 곧 생명이 들어가서 시작되는 새 삶을 우리는 중생이라고 합니다.


중생이라는 말의 원 뜻은 위로부터 출생한다는 뜻입니다. 생명의 근원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위에 있는 것입니다. 땅에서 나는 것은 땅의 것이고, 위에서 나는 것은 위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주어지는 말씀의 생명 역사가 우리 안에 들어오고 받아들여지는 일에서부터 새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새 생명의 씨앗은 싹을 내는데 머물지 않고 계속 자라나야 합니다. 이 자라남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에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한 알의 작은 씨앗이 자라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이슬과, 단비와, 바람과, 햇빛, 충분한 영양분 등, 이 모든 것이 알맞게 주어져야 비로소 자라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 안에 있는 천국도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성장하는 것입니다. 아주 조금씩 성장을 하지만 그것이 중요하고 점점 인격적 존재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성장은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것이 아니라 추수 때까지만 성장하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가간이 끝나면 추수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단계의 완성입니다. 


봄에 싹이 나고 여름 동안에 충실하게 자라면 산들바람이 불 때에 그 바람에 따라 좋은 알곡을 맺을 수 있고, 가라지와 같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추수할 때에 탐스럽고 충실한 이삭이 있는가 하면, 빈 쭉정이도 있습니다. 봄과, 여름을 지나고 충실하게 자랐으면 크고 좋은 것으로 열매를 맺고, 잘못 자랐으면 빈 쭉정이와, 보잘것없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심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하고, 또 거두어 들여야 하는데, 이때가 완성이 되는 때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정리를 하면,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이루어지고, 교회와 함께 복음 전파와 더불어 확장되어 나가며, 마지막 때 주님의 재림과 함께 완성되는 것입니다.


함께 읽은 본문 말씀은 천국을 받아들여서 추수 할 때까지의 성장 과정, 다시 말씀드리면 교회론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에 들어 갈 때까지 그 사이에 살고 있는 성도는 받아들여진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지켜나가야 하는가? 또 성도는 이 세상에서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에 들어간 심령으로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이런 삶을 설명하는 것이 가라지 비유입니다.


가라지 비유의 초점은 가라지인 것처럼 보이지만 가라지가 아니라 알곡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뿌려져 계속 같이 자라듯이, 이 세상에 우리 주님이 심판하실 그 때까지 선과, 악이 함께 자란다는 것이 기독교 역사관입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씨의 근원이 다르고, 본질이 다릅니다. 다르지만 함께 모여 자라간다는 사실입니다. 어두움이 변하여 빛이 되고, 빛이 변하여 어두움이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씨앗이 다르고, 뿌리가 다릅니다.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공존하면서 이 세상 끝날 까지 간다는 말씀입니다. 악한 사람은 점점 더 악해져서 자신의 악한 것을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위선을 부리며 선한 척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언젠가는 그 본색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 선한 사람은 비록 악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숨겨져 있는 것 같아도 이 선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그 씨와, 그 뿌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비록 미약하고, 때로는 힘이 없는 것같이 보이지만 근본적인 씨와, 뿌리가 다릅니다.


이렇게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기 때문에 그것들의 구별이 힘듭니다. 성도 여러분, 농사를 지은 분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벼를 심을 때 돌피가 있고, 조를 심을 때 가라지가 있는데, 이것을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분명히 벼만 심었는데 돌피가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지만 더 잘 자랍니다. 자라는 동안의 구별은 뿌리를 보지 않고는 잘 알 수 없습니다. 벼의 뿌리는 붉고, 돌피의 뿌리는 하얗습니다. 가라지를 제거하려면 뿌리를 보아야 알 수 있고, 뿌리를 보려면 뽑아야 하는데 알곡이 다치기가 쉽습니다. 농사를 지어보신 분들은 잘 압니다. 벼가 다 익어 갈 무렵에 논에 가서 피(가라지)를 뽑습니다. 그런데 이 피를 뽑다 보면 잘 익은 벼 이삭도 함께 뽑히게 됩니다. 그래서 피를 잘 뽑지 않고 있다가 추수 때에 가려내는 것입니다. 가라지와, 알곡은 동시에 섞여서 자라기 때문에 비슷하고, 똑같아 보입니다. 오히려 가라지가 더 보기 좋고, 충실하게 자랍니다.


오늘 날 교회 안에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섞여 있다는 말씀입니다. 겉으로는 모릅니다. 양의 탈을 쓴 이리를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선한 일을 하고, 열심히 봉사를 하는 것 같은데, 그 목적과, 끝이 다릅니다. 언제나 가짜는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고, 위선자는 더 열심히 선을 내 보입니다. 가짜는 진짜보다 더욱 찬란하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구별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정한 시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가라지를 뽑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알곡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가리지를 뽑다가 알곡이 상하는 것을 염려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라지와 같은 사람 만 명 보다, 의인 한 사람 상하는 것을 더 염려하시는 것입니다. 가라지 10개를 뽑다가 알곡이 하나라도 다쳐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눈에 보이는 악한 사람 모두를 그대로 심판하시는 동안, 선한 사람 하나라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넓고, 크신 사랑으로 의인과, 악인의 밭에 골고루 비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결국은 택한 백성, 구원받은 백성이지, 가라지를 살찌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영양분을 다 빼앗기고, 손해를 당하는 억울함과, 불편이 있지만 알곡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마음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을 통하여 의인을 연단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에서 고통은 연단이요, 이 연단은 성장과, 성숙을 낳게 합니다. “고생해야 사람이 철이 든다”는 말이 이런 뜻입니다. 아플 때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고, 실패해야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알곡이 가라지와 함께 한다는 것은, 괴롭고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이로 인하여 오히려 튼튼한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세상에 어떤 곳에든지 연단을 통하지 않고 튼튼하게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철도, 진흙도, 풀무 불 가운데서 여러 번 연단을 통하여 강하게 됩니다. 


신앙도 처음부터 튼튼한 신앙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알곡이 가라지와 함께 자라는 동안 뿌리를 튼튼하게 내리듯이, 신앙생활에도, 적당한 저항이 있어야 튼튼하게 성장합니다. 알곡이 가라지와 함께 있다는 일은 심히 괴롭고,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가라지와 함께 있음으로 서로 견제가 되어 오히려 순수하게 믿음을 지킬 수 있고, 환란을 통하여 아름다운 믿음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도는 이 세상에서 박해도 당하고, 환난도 당합니다. 손해도 봅니다. 배반도 당합니다. 가시에 찔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온갖 고난을 통하여 더욱 순수해지고, 더욱 굳세어지고 주님을 닮아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래서 선과, 악이 공존하도록 허용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악 때문에 악을 허용하시는 것이 아니고, 선 때문에 악을 허용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곡식과, 가라지의 천국 비밀을 아는 사람은 곡식의 신앙을 키우며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곡식의 알곡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벼에 붙은 한 알 한 알 알곡들이 누렇게 익은 모습은 그냥 익는 것이 아닙니다. 여름에 뜨거운 태양 볕 가운데서, 장마 비 가운데서 잘 견디었기 때문에 알곡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지에 대한 비유를 듣고 제자들은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주님에게 다시 설명하여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다시 자세하게 37절 말씀에서부터 43절 말씀에서, 가라지에 대한 설명을 하셨습니다. 곡식과, 가라지를 심은 밭이 어디라고 했습니까? 본문 38절 말씀에,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사는 세상 가운데는 악한 자의 아들과, 하나님의 아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있는 악한 사람을 보고, 왜 하나님께서 저런 사람을 보고만 계실까?하고 생각 할 때가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 세상 가운데서 너무 잘 사는 것을 보고 정말 하나님은 살아 계실까? 이런 생각도 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악한 사람을 당장 날 벼락이라도 내려서 죽여주셨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농사 방법과, 하나님의 농사 방법은 다릅니다. 논에나, 밭에, 가라지가 나면 사람들은 즉시로 뽑아버려 주어야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다칠까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만약 사람의 농사 방법처럼 하나님께서 즉시로 가라지를 뽑아 버린다면 우리 역시도 하나님의 손에 의해 뽑히는 신세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추수 때까지 기다리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님의 재림 때에 모든 심판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 때에는 먼저 가라지를 뽑아 지옥 불 속에 던져 넣어 버릴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와, 사단의 자녀가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마지막 날에는 두 갈래로 갈라 질 것입니다. 곡식은 천국으로, 가라지는 지옥으로 들어가는 비밀을 아는 것이 천국 비밀을 아는 사람입니다. 


가라지를, 원수 마귀가 언제 뿌렸다고 말씀 하셨습니까? 본문 25절 말씀에,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이 잠은 육신의 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잠 즉 영적 잠을 자는 성도에게 마귀가 가라지를 뿌린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신앙의 영적 잠이 얼마나 무서운지 깨달아야 합니다. 영적 잠을 오래 자면 잘수록 우리의 영혼에 가라지가 무섭게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가라지가 무엇이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까?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즉 신앙의 잠을 오래 자면 나 자신도 모르게 악한 자에게 속한 무리가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잠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지옥 불 속까지 나를 데리고 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의 영적인 잠이 무엇입니까? 나태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기도도 하지 않고, 전도도 하지 않고, 교회 봉사를 멀리하는 이런 신앙이 잠자는 신앙입니다. 로마서 13장 11절 말씀에,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가라지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우리 주님은 좋은 씨를 뿌리고 알곡을 철저히 보호하시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가라지는 어떤 역할을 합니까? 본문 41절에서 42절 말씀에,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곧 가라지는 교묘히 들어와서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는 일을 합니다. 꼭 교리적으로만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발전을 저해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봉사하려는 성도들의 열심을 약화시키는 것입니다. 넘어지게 한다는 말씀은 거침돌을 놓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가라지와 같이 성도들을 넘어지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이 가라지가 놓는 거침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늘 주의해야 합니다.  


이 사단이 뿌려 놓는 가라지가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입니다. 실제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에게 자주 말씀하기를 “근신하라, 정신을 차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라지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보여주시는 구원관, 교회관, 윤리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해석하여 불법을 행합니다. 


마무리


신앙의 곡식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고난과, 박해 가운데서도 말씀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알곡의 성도가 되는 것이고,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할 때 알곡의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가라지 신앙을 가지고서는 천국을 소유 할 수 없습니다. 지금은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고 있지만 추수 때에는 분명히 구별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추수가 끝나면 우리는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도달 할 때까지는 가라지는 우리 주위에 언제든지 있습니다. 가라지 때문에 마음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가라지를 왜 뽑아주지 않느냐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라지가 공존하는 이유를 알고 가라지 때문에 신앙을 저버린다든지, 가라지 때문에 상처받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지금 알곡 된 것을 감사하고, 더 충실한 천국의 알곡이 되기 위하여 날마다 믿음 생활을 잘 하시다가, 마지막 추수 때는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귀한 성도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곡식과, 가라지 비유를 통하여 천국 비밀을 깨닫고,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에 알곡들이 되는 성도들이 되어서, 본문 43절 말씀과 같이,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말씀은 목사님들의 설교와 참고자료를 인용하여 올린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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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천국, 천국, 천국을 향하여 (08)-천국의 비밀 7가지 (2) - 알곡과 가라지 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