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 분별 시리즈 (13) :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10/12/2017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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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이 진리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어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반드시 믿어야 하는, 타협할 수 없는 교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자연신학으로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실한 말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는 매우 좁은 것이라고 표현된 성경의 예를 알고 있다. 여러분이 만일 ‘좁은’(narrow) 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아보고 싶다면, 마태복음 7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좁은 문으로 표현된 문(gate)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그 문은 좁은 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좁은 자비, 또한 자연신학의 반대 개념인 초자연적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바른 교리 분별 (13) : 진리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당신은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이 진리는 성도에게 단번에 주어진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반드시 믿어야 하는, 타협할 수 없는 교리는 무엇인가?


테레사 수녀는 자신이 믿는 가톨릭 신앙에 매우 신실한 사람이었다. 나와 내 가족은 캘커타에 잠시 머물 기회가 있을 때 그녀를 방문한 적이 있다. 우리 아이들은 그녀에게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John MacArthur의 저서 “The Gospel According to Jesus.” 가 원제인 이 책은 주재권 구원에 대한 책으로 한국에는 도서출판 여수룬에서 번역되었다.)’를 선물하고 싶어했다. 그녀의 인상은 매우 겸손하면서도 강인해 보이는 작은 숙녀였다. 그녀는 우리 아이들이 선물한 그 책을 꼭 읽어보겠노라고 약속했다. 그녀는 매우 진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해 아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자신의 서명이 담긴 그녀의 성경책 맨 앞 장에는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그녀는 구원이 마리아를 통해 가능하다고 믿고 있었으며,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 이것은 중요한 가르침이다.


가톨릭 신앙의 또 다른 모습은 테레사 수녀가 운영하는 병자들을 위한 집을 방문했을 때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 내부의 벽에는 힌두교의 우상들의 형상이 그려져 있었다. 가톨릭 교회 시설물의 벽에 갖가지 해괴한 모양의 힌두교 신들의 형상이 그려져 있는 모습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 건물의 바로 옆에는 내가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본 우상 신전들 중 가장 사악하게 보이는 힌두 신전이 있었는데, 그 신전에서는 황소만큼 큰 우상제물의 피의 제사가 정기적으로 드려지고 있었다. 그들의 제사법은 너무 잔인하여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런 힌두교 성전과 가톨릭 건물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당시 나는 그녀가 자신이 살고 있는 건물의 내부에 어떻게 힌두교 우상들을 그려 놓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런 사악한 힌두교 신전 바로 옆 건물에 어떻게 살 수 있었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처음엔 그저 정치적인 이유로 즉, 캘커타와 같은 도시에 살려면, 우상을 숭배하는 그 나라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목적으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후에 나는 그것이 그들의 종교 시스템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과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시스템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지 이해할 수 있다. 레이몬드 패니컨이라는 작가는 ‘힌두교의 알려지지 않은 그리스도’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그가 책에서 “선하고 신실한 힌두교인은 힌두교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 구원은 힌두교 의식에 의해, 도덕적이고 의로운 삶에 대한 가르침에 의해, 그리스도가 힌두교인을 구원해 줄 거라는, 즉 그리스도로 귀결되는 힌두교의 신비주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선한 힌두교 신자, 선한 불교 신자, 예를 들어 디스커버리 채널 속에서 입술을 날카로운 창이나 뼛조각 같은 것으로 뚫고 끔찍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을 포함하여 누구나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가게 될 거라는 것이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 복음주의에 침투해 들어온 배경에는 이런 책을 쓴 사람들이 있다. 여러분은 이것이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Union Seminary)에서 나오거나, 혹은 이미 동성애 성직자를 용납하고 있는 자유신학이나 그와 유사한 교파에서 주장하는 것이라면 혹시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그들만이 아니다. 여러분은 앞에서 언급된 적이 있는 피터 크리프와 그의 책에 추천의 글을 쓴 사람들 그리고 ‘만약 그가 책에서 말한 모든 것이 사실이라면’ 이라는 논평을 쓴 복음주의 계통의 널리 알려진 J.I. 패커와 같은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피터 크리프의 에큐메니칼 지하드라는 책은 전체적으로 이런 주장을 담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런 것들이 복음주의에 들어올 수 있죠? 어떻게 우리가 이런 것들에 굴복할 수 있나요? 복음주의가 이런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한가요? 어떻게 목사들이 종교개혁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며, 세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명도 새롭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나요?” 라고 질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얻기 위해서는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 개인적인 의견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성경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경은 우리가 만약 복음을 믿지 않는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가? 그 대답은 ‘그렇다’이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자연신학으로는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께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확실한 말씀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는 매우 좁은 것이라고 표현된 성경의 예를 알고 있다. 여러분이 만일 ‘좁은’(narrow) 이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찾아보고 싶다면, 마태복음 7장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 거기에는 좁은 문으로 표현된 문(gate)에 대한 말씀이 나온다. 그 문은 좁은 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좁은 자비, 또한 자연신학의 반대 개념인 초자연적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에 관해 더 살펴보려면 창세기의 처음 장들을 읽어보라. 창세기 1장과 2장은 창조를, 3장은 인간의 타락을 다루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하나님은 아담의 배우자로 이브를 만드셨다. 아담과 이브는 그때 완전한 상태에 있었다. 그들은 완전한 몸, 완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완전한 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죄와 상관없이 창조주와 완전한 관계, 완전한 환경 속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모로 보나 완전했다.


자연신학자들은 아담이 완전한 상태에서 있을 때조차 자신의 완전한 이성에 의해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을 수 없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느껴야 마땅하다. 그는 자신의 이성과 완전한 지성으로도 무엇을 먹어야 하고,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는지, 또한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어야 하는지 등을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또한 동산을 지키는 것이 자기의 의무임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셔야만 했다.


로버트 모레이는 “아담은 진리, 정의, 도덕, 의미 그리고 아름다움의 원천이 되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창조주는 동산에서 사람과 더불어 걸으셨다. 매일의 가르침은 그날에 필요한 특별한 계시를 담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창조의 목적과 동산에서 그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등을 말씀해 주셨다. 하나님은 또한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지 말아야 될 것이 어떤 것들인지 보여주셨다.” 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진리, 정의, 의미 그리고 아름다움의 원천이요 근원은 아담이 아니라 하나님이셨다. 인간의 책임은 단지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인간은 원천이 아니라 진리의 수신자였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에 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만약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인간의 타락 이전의 상태에 대해서 알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창세기 1~3장의 기록이 없다면, 인간이 어떻게 죄에 빠지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와 철학자 그리고 신학자들의 힘을 빌려 탐구해 볼 수는 있었겠지만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인간의 창조와 타락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줄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인간의 왜곡된 이성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먹지 말라’와 같은 특별한 계시를 그들에게 주셨다. 하지만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 대신 이성을 신뢰하라고 말했다. 자연신학이 근본적으로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에덴 동산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는 거짓말이 또한 이것이다. “성경은 무시하라. 복음에 대해 신경 쓰지 말라. 그런 것들은 필요가 없다. 너 자신의 이성을 통해 얼마든지 하나님이 계신 곳에 도달할 수 있다.” 사단은 항상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특별 계시를 무시하고 우리 자신의 이성을 신뢰하도록 만들기 원한다. 얼마나 교활한 전략인가. 교회로 하여금 심지어 복음을 전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하게 만드는 이것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인가?


사단은 오늘날도 사람들을 이끌어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하고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도록 미혹한다. 자연신학을 신봉하는 신학자들이 가르치는 것이 이런 것들이다. 그들은 단지 사단의 추종자들일 뿐이다. 오직 십자가를 전하는 메시지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 그 외 모든 것은 인간의 어리석음 일뿐이다. 예레미야 8장 9절에는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고보는 그의 서신서 3장 15절에서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다. 얼마나 직설적인 말인가! 단지 틀리거나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귀신의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땅에서 생긴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한다면, 여러분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일 때만이 그분께 나아갈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사역의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함이다. 또한 2천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도자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지고,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가 유일한 진리임을 믿기에, 땅 끝까지 나아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연적인 인간은 자신을 하나님의 진노 아래 둘 뿐이며, 고린도전서에 기록된 대로 멸망을 앞두고 있는 어리석은 자일 뿐이다.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고린도전서 1:19,20)


그러므로 인간은 자연적인 이성에 의해서는, 또한 종교적인 체계에 의해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특별 계시에 의해서이며, 그것은 바로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힌두교나 다른 어떤 종교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을지라도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며,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므로 결국 하나님 나라에 모두 들어가게 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은 진리를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성경이 말하는 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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