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 분별 시리즈 (12) : 우리는 어떻게 복음주의를 엉망으로 만들었는가?
10/11/2017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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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에 집착하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지상사명이 마케팅전략에 근거한 교회 알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날 지도적인 교회성장 전략가들은 대부분 여론을 중시하는 홍보 전문가들이다. 릭워렌의 말을 들어보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교회를 광고하길 원한다면, 그들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목적이 이끄는 교회 ? 존더반 출판사 간행, 1995). 수많은 교회성장 전문가들은 몇 십년간 이 말을 주문처럼 반복해오고 있다. 또한, 교회 인도자들과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런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교회들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들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도록 소비자들의 기호에 정통한 전문가들에 의해 고안된 것들이다.



바른 교리 분별 (12) : 우리는 어떻게 복음주의를 엉망으로 만들었는가?


우리는 복음주의 내에서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이상한 개념과 철학 및 프로그램에 일일이 대응하기 위하여 항상 파수꾼처럼 깨어있을 수는 없다. 교회역사를 통해 이처럼 무비판적으로 잘못된 것들을 받아들인 적이 없는 것 같다. 때문에 성경적인 관점을 가지고 이 모든 문제에 대응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단지 이런 문제들 중 교회의 건강과 조화에 특별히 위험요소가 되는 것들이 어떤 것들인지 살펴보는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오류투성이인 수많은 문제들에 일일이 대응하다보면 더 큰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때로 새로운 오류들은 이전 오류들에 답을 제시하기도 전에 빠르게 확산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오류들 중에 다룰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들을 선별해 내는 데에는 그리스도를 닮은 덕목이 반드시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성경적인 분별력, 지혜, 강인함, 결단력, 인내, 성경에 능숙함, 확신, 우유부단하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능력 그리고 오류에 기꺼이 맞서고자 하는 용기 같은 것들이다. 솔직히 말해 이런 덕목들은 오늘날의 복음주의 운동이 키워 온 것들이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복음주의자들을 움직이는 가치관과 동기를 생각해보라. 요즈음은 규모가 큰 복음주의 운동일수록 여론조사, 브랜드, 시장조사, 상업적인 기획, 혁신적인 전략 그리고 수적인 성장에 중점을 둔다. 복음주의자들 역시 일반 대중과 학계에서의 위치, 정계와 연결된 힘, 미디어에 비쳐지는 자신들의 이미지와 같이 얄팍하고 자기중심적인 문제들에 마음이 선점되어 있다. 진리를 수호하는 일보다는 자신들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 있는 것이다.


마케팅에 집착하는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지상사명이 마케팅전략에 근거한 교회 알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날 지도적인 교회성장 전략가들은 대부분 여론을 중시하는 홍보 전문가들이다. 릭워렌의 말을 들어보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교회를 광고하길 원한다면, 그들의 방식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목적이 이끄는 교회 ? 존더반 출판사 간행, 1995). 수많은 교회성장 전문가들은 몇 십년간 이 말을 주문처럼 반복해오고 있다. 또한, 교회 인도자들과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런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교회들이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들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파고들 수 있도록 소비자들의 기호에 정통한 전문가들에 의해 고안된 것들이다.


많은 교회 인도자들은 그들이 복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급격히 바꾸어버렸다. 복음을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세상에 선포(함부로 내용을 바꾸거나 변경하지 말고) 해야 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메시지로 바라보는 대신 시장에 내다 파는 상품처럼 취급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진리가 변질되지 않고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분명하게 전하는 대신 말씀을 포장하여 세상 사람들이 더 잘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만들려고 애를 쓴다.


기독교계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실용주의와 세상의 하찮은 것을 추구하는 목적상실의 문제는 어떠한가.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마음과 입술에 담고 있는 질문은 “무엇이 참된 것인가?”라는 것보다 “무엇이 효과가 있는가?”이다. 근래 복음주의자들은 신학에 대해서보다 방법론에 대해 더 신경을 쓴다. 진리는 뒷전이고 실용주의적인 관심사가 더 우선순위에 있다. 진리를 위해 전력투구하기보다 듣는 자들의 마음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집중한다.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수년 동안 세속적이고, 피상적이며, 무가치한 사고를 교회 안으로 포용하고 촉진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결과 실제적인 면에서 피상적인 것들에 집착하는 현상이 복음주의 운동의 특징처럼 되어 버렸다. 복음주의자들은 대중문화에 사로잡혀 열광적으로 세상문화를 본받으려 하고 있다. 교회 지도자들은 최신 트랜드를 따라잡는데 너무 열심이어서 훨씬 더 중요한 영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거의 심사숙고하지 못한다. 전형적인 복음주의 교회에서 심지어 주일 예배까지 종종 세속적인 문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대중매체에 함몰된 교회들이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위해 서로 경쟁하는 양상을 낳았다. 결과적으로 교회들은 세상보다 더 크고 휘황찬란한 구경거리를 제공하려고 헛되이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복음주의자들은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엡 4:14) 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들은 최신 유행은 무엇이든지 따르려고 한다. 그들은 베스트 셀러는 무엇이든 사려고 하며, 영적으로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연예계 스타들의 말을 들으려고 줄을 선다. 또한 그들은 “영적인”주제나 종교적인 색체를 띤 할리우드 영화를 놓치지 않으려한다. 그리고 그들의 주의를 사로잡는 문화 아이콘들이 마치 무슨 심오한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처럼 유행과 패션에 대해 끊임없이 토론한다.


복음적인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유행에 뒤쳐지는 교회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한 때, 어떻게 하면 야베스의 기도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는지에 대한 세미나를 앞 다투어 개최하던 일이 지금은 마치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이어서 목적이 이끄는 삶이 유행하자 야베스의 기도에 머물러 있는 교회들은 금방 유행에 뒤처지는 교회로 여김을 받았다. 그 다음에는 복음주의 운동에서 나름대로 위치를 차지하고 있던 교회들은 “목적이 이끄는 삶 ? 40일간의 여행”을 다시 시작해야 했다. 40일간의 여행 후에는 다빈치 코드에 대한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되기 전에 그것을 주제로 한 설교 시리즈와 그룹 스터디를 준비하지 못한 교회들은 진짜 중요한 문제에 미처 눈뜨지 못한 트랜드에 둔감한 교회로 평가되었다.


만약 여러분의 교회가 이런 것들 중 하나라도 놓쳤다면 이미 유행에 한참 뒤처진 것이다. 유행에 민감한 교회들에게 있어서 이런 것들은 이미 한물 간 것들이기 때문이다. 어느 교회든 이제 막 이머징 교회 형식의 예배, 촛불, 포스트모던 형식의 기도문과 같은 것들을 실험하려 한다면 그러한 교회는 틀림없이 지나도 한참 지난 것들을 따라 하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런 모든 경향이 다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들 중에는 바람직한 부분들도 있다. 


예를 들어 교인들에게 다빈치 코드 같은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좋은지에 대해 가르친다면 나름의 유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복음주의자들은 대중의 심리를 만족시키기 위해 유행을 예측하고 따라하려는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영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는 것들을 유행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분별력 없이 이것저것 시도해 보려고 애를 쓴다. 사실 이런 시도에 어떤 위험이 수반되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교회들에서는 문제를 삼지 않는다. 지금 당장 사람들의 주목을 사로잡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슬픈 사실은, 복음주의 운동의 많은 부분이 이미 심각할 정도로 타협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건전한 교리에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데 있다.


우리는 복음주의 흐름의 중심에서, 성경적인 교리에 충실한 모습을 기대하거나 믿음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 최소한의 우려와 염려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현실 세계와 “연관성”을 맺기 위해서는 세상과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점령된 복음주의 운동의 빗나간 모습이다.


건전한 교리? 평범한 교인들에게는 너무 어렵다. 성경강해? 그것은 교회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교회로부터 더 멀어지게 한다. 죄와 구원에 대한 강력한 설교? 사람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지상사명? 우리의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교회의 예배를 거대한 수퍼 볼 파티처럼 만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도 훈련? 우리는 매트릭스 3부작에 기초한 그룹스터디 시리즈를 이미 운영하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 나름대로 철저히 훈련을 시키고 있다. 하나님을 높임을 받으시고 최고로 존중을 받으시는 예배? 그것보다 우리는 영혼들을 얻기 위해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내려갈 필요가 있다.


복음주의자들과 그 인도자들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말라고 경고하는 수많은 명백한 성경의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똑같은 길을 고집하고 있다.(엡4:14, 고전 14:20, 딤후 4:3-4, 히 5:12-14).


결국 문제의 핵심은 무엇인가? 요약하면, 복음주의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져버리고 그분이 마땅히 차지하셔야 할 자리를 교회성장 전문가들과 사람의 의견을 더 중시하는 자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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