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 분별 시리즈 (9-10) : 그들은 왜 서명을 했는가?
10/09/2017 08:15
조회  354   |  추천   1   |  스크랩   0
IP 75.xx.xx.24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가톨릭 체계의 오류의 심각성을 무시하면서 에큐메니칼문서(ECT)에 서명한 것은, 실제로는 가톨릭 교회신자들이 그들의 매일 드리는 제사, 성사(聖事), 고해성사, 묵주, 연옥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와 같은 그릇된 가톨릭의 관습에서 벗어 나도록 돕는 사역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 문서는“그리스도의 제자도 가운데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과 기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도 있다”라고 주장한다(22). 따라서 가톨릭 신자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도록 하는것은“ 양을 도적질하는 행위” ? 그리스도의 몸에 죄를 짓는 ? 라는 것이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을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라고 선언하고, 세례를 통해 거듭나며, 믿음과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그릇된 교리를 사실상 인정함으로써, 그 문서는 복음주의 입장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복음주의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게 만들었다.



바른 교리 분별 (10) : 그들은 왜 서명을 했는가? (1)


지난 번 에큐메니칼 지하드란 글을 포스트 한 이유 중의 하나는, “무엇이 복음주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전통적인 복음주의의 우선순위를 타협하며 연합이라는 요구에 응하게 되었는가?” 라는 질문을 제기하기 위함이었다. 존 맥아더 목사는 이 질문에 대해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로마 가톨릭 학자들이 1994년에 공동으로 발표한 에큐메니칼 문서 ?“복음주의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연합 : 제3 밀레니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사명(Evangelcals and Catholics Together : The Christian Mission in the Third Millennium) ?에 서명한 사람들과의 개인적인 접촉에 근거하여 통찰력 있는 답변을 제공해 주었다.


1994년 3월 29일, 신교와 구교 사이에는 일부 사람들이 종교개혁 이래 가장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는 중요한 사건이 있었다. 위에 언급한 ECT 문서가 복음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Pat Robertson, J.I. Packer, Os Guinness 및 Bill Bright 등 30명 이상의 양측 지도자들의 서명으로 발표된 것이다.


ECT 문서는 처음부터 그릇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우리는 다음 사항을 공동으로 확증한다” 라는 제목으로 이어지는 문장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이다. 가톨릭 신자들과 복음주의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이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선택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서로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가 우리를 택하여 함께하도록 부르셨다(요 15장). 서로 간의 소통이 아무리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직 하나임을 믿는다. 그리스도가 한 분이고, 교회는 그의 몸이므로 교회는 하나로 존재한다. 연합의 길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우리는 그리스도의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아 온전한 연합을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 문서는 계속해서 로마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이 똑같이 “그리스도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마치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리적으로 굉장히 양보를 한 것으로 복음주의자들의 환영을 받고 있지만, 실은 종교개혁 이래 가톨릭 교회의 중심적인 교리는 하나도 변함이 없다. 로마 가톨릭과 역사적인 복음주의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의 쟁점은, 사람이 오직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진리에 관한 것이다. 하지만 “복음주의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연합” 이라는 문서는 이 문제를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모든 내용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지만, 이 문서의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복음주의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금지조항 즉, 복음주의자들은 신실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들을 신교로 개종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22-23) 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양을 도적질”(sheep stealing)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22). 이 문서의 서명자들은 “다른 양의 우리에서 ‘개종자’를 얻으려는 시도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훼손시키는 행위”(20) 라고 믿는다. 뿐만 아니라, 양측이 서로를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전혀 불필요한 노력이라고 동의한다. 그 이유는, “복음주의자이든 가톨릭 신자이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장을 위한 기회와 수단이 서로의 공동체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확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2).


이 외에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또 다른 언급은 이것이다. “세상의 수많은 불신자들과 우리가 공동으로 직면하고 있는 막중한 복음사역이라는 도전 앞에서, 하나의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서로 개종시키려는 시도를 하는 것은 신학적인 면에서 합당하지도 않으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아니다.”(22-23).


가톨릭 교인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거듭났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가톨릭 교인으로 남아있도록 “충분한 자유와 존중이 주어져야만 한다”(24) 라는 언급도 있다. 다시 말해, 그들에게는 복음주의자들이 접근하지 말아야 하며, 미사와 견진성사와 같은 가톨릭 교회의 어떠한 의식이나 선행도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받아 들여지도록 하게 하지 못한다는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복음주의 메시지와 믿음에 행위를 더하는 로마 가톨릭의 근본적인 차이에 대해서는 교묘히 피해가면서, 이 문서는 이러한 중요한 교리적인 차이를 신자 개인의 선택의 문제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가톨릭주의는 정상적인 수준을 벗어난 수준으로 인간적인 선행을 강조한다. 가톨릭의 교리는, 하나님이 죄인에게 먼저 경건한 행실을 갖춘 후 그분께 나아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있는 모습 그대로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게 하신다”(롬 4:5)는 진리를 부인한다. 따라서 선행은 가톨릭 교리의 기초가 된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이 만일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구원이 값 없이 받은 은혜가 아니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빚이라고 증거하고 있다(롬 4:4). 이전에 가톨릭 교회에 몸담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증거하듯이, 로마 가톨릭의 교리와 기도문은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근본적인 진리(엡 2:8-9)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수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미신적이고 종교적인 의식에 갇혀서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이 주는 영광스러운 자유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믿음에 행위를 더하여 의롭다 함을 받는 기초로 삼는 것은, 사도 바울이 “다른 복음”(고린도후서 11:4; 갈 1:6)이라고 정죄한 바로 그 거짓 가르침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폐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만일 선행과 가톨릭 교회의 여러 가지 종교 의식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신 것” 이다(갈라디아서 2:21).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로마서3:28)


또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진리에 행위를 더하는 것은 이스라엘이 범한 오류를 반복하는 것이다. 성경은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했다.”(로마서9:31-32).고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그들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행위를 의지하여 하나님의 의를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롬 10:3). 모든 성경을 통틀어 진리는 우리에게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교훈하고 있다.


“사람이 의롭게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라디아서 2:16)


바른 교리 분별(10) : 그들은 왜 서명을 했는가? (2)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가톨릭 체계의 오류의 심각성을 무시하면서 에큐메니칼문서(ECT)에 서명한 것은, 실제로는 가톨릭 교회신자들이 그들의 매일 드리는 제사, 성사(聖事), 고해성사, 묵주, 연옥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드리는 기도와 같은 그릇된 가톨릭의 관습에서 벗어 나도록 돕는 사역을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다름이 없다. 그 문서는“그리스도의 제자도 가운데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수단과 기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도 있다”라고 주장한다(22). 따라서 가톨릭 신자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믿음을 갖도록 하는것은“ 양을 도적질하는 행위” ? 그리스도의 몸에 죄를 짓는 ? 라는 것이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을 “그리스도 안의 형제 자매”라고 선언하고, 세례를 통해 거듭나며, 믿음과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그릇된 교리를 사실상 인정함으로써, 그 문서는 복음주의 입장에서, 가톨릭 신자들이 복음주의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런 정도의 분별력은 갖추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복음주의자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문서에 서명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입장에 대해 물어보았다. 대부분은 편지로 매우 정중한 답변을 보내왔다. 그들은 그 문서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여 주는 의도로 서명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세상의 도덕적인 타락에 대해 복음주의와 가톨릭이 연합하여 싸워야 한다는데 대해 공감하고 지지를 표현한 것 뿐이라고 대답했다.그러면서 자신들도 그 문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문서를 계기로 중요한 교리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좀 더 논의할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리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나는 그들의 설명이 충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 문서가 공적으로 공표되어 많은 사람이 합의한 내용에 대해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서 자체의 내용도 복음주의자들이 이제는 로마 가톨릭을 진정한 기독교로 인정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의 교리에 부적절한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더욱이, 그 문서는 기독교계를 진정한 교회와 혼동하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마치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 간의 분열이 그리스도의 몸에 해를 끼치고 있으며, 예수님이 요한복음17장에서 위하여 기도하셨던 교회의 하나됨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비 성경적이고 근거없는 가정을 만들어 낸다.


사실, 그리스도의 진정한 몸인 교회는 그 문서가 시사해 주는 것만큼 깊이 이 일에 관련 되어 있지 않다. 그 문서는 “다른 많은 그리스도인, 특히 동방 정교회와 일반적으로(구교는 아니지만) 복음주의로 인정되지 않는 신교까지 ”협정에 포함 시키기를 원한다. 하지만 후자, 즉 복음주의로 인정되지 않는 신교는 신학적인 자유주의자들 외에 누구를 더 포함 시킬 수 있겠는가? 그러나 동방 정교회와 대부분의 신교 자유주의자들은 본래 로마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성경적인 교리를 거부하는 입장에 있다.


요컨대, 참된 믿음을 저버리고 “다른 복음”(갈1:9)을 좇는 이들 그룹은 원래부터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에 포함되지 않는다. 복음주의자들 중 문서에 서명한 사람들? 특히, 개혁 신학을 연구한 사람들?은 공식적인 로마 가톨릭의 교리가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단순한 복음 진리와 대조적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서명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그들 중 몇 사람의 대답을 소개한다. “이 문서는 신학과 교리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가톨릭과 양립할 수 없는 교리적인 차이가 있다는걸 인정하며, 특정한 예를 들 수도 있다. 이 문서는 종교적인 자유(즉, 자신의 믿음을 교회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나눌 수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권리), 복음 주의 사명(예를 들어, 권리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 모든 족속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라고 하는 지상 사명에 대한 책임),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서로의 교리를 타협하지 않고, 낙태, 포르노, 폭력, 인종차별과 같은 도덕과 사회적인 문제들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협력해야 할 필요에 관한 것이다.


선과 경건을 지키기 위한 싸움에서, 우리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 (대부분의 인용문은 문서에 서명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서신에서 발췌하였으며 익명으로 소개한다.) “나는 왜 ‘복음주의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연합: 제3 밀레니엄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라는 문서에 서명했는가?”  그 이유는, 이 문서가? (결코 완전하지는 않지만) ? 기본적인 기독교 진리와 그리스도인으로서 현대 사회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매우 조화롭게 적절히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거나 신교와 로마 가톨릭이 서로 다른 하나님을 섬긴다고 믿는 비 그리스도인들과 불신 세상에게, 이러한 연합은 그리스도의 주 되심과 그분의 말씀의 진리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될 것이다.”


또한, 매우 존경받는 복음주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은 이렇게 썼다. “그 문서는 내가 30년 동안 추구해 온 로마 가톨릭에 대한 양면적인 접근 방법과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가톨릭교회와 체계에 대한 해 묵은 논쟁은 그대로 두고, 다른 면으로는 교제와 협력과 연대를 확대 시켜 나가야 한다. 그 문서는 공식적인 것이 아니라 비 공식적이고 임시적이며, 복음주의와 사회적인 측면에서 죄악에 공동으로 대항하기 위한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문서에 서명한 다른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 하기 위해 제시한 이유들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래 제시된 답변들은 모두 그들의 편지와 논문 혹은 글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나는 그리스도인들 간의 다툼과 분쟁에 대한 추문들이 종종 십자가 사건 자체를 압도해 버린다는 면에서 이 문서가 옳다고 생각한다.


나는 또한 이 문서가 생명(특히 낙태 반대와 같은)을 존중하고, 오늘날 팽배해 있는“상대주의, 반 지성주의 그리고 허무주의를 반대하고 있는데, 이러한 태도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했다.


이 문서는 목표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 교회의 연합에 대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대신, 복음주의와 가톨릭의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북아메리카 이외의 환경은 이곳의 환경과 종종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다.


우리는 차이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초기의 교리와 기독교의 핵심적인 믿음은 공유하고 있다. 기독교는 투쟁적인 이슬람 국가, 뉴에이지운동을 통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 침투해 있는 범신론자, 그리고 서구 생활에 깊숙이 파고든 세속주의에 의해 사방으로 포위되어 있다.


우리가 만일 서구 문화에서 배교의 거센 풍조를 되돌리고, 점점 강력해 지는 세속주의의 힘과 맞서기를 원 한다면, 보수적인 가치와 성경적인 견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공동의 대의를 위해 협력해야만 한다. 인간의 삶의 거룩함을 견고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요한 바오로2세와 테레사 수녀를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문서는)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안의 형제 자매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영접한다는 말은 구원 받았다는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서는 신학을 다루고 있지 않다. 주된 내용은 사명, 복음주의, 사회적인 관심사, 그리고 종교적인 자유이다.


나는 이 문서가 종교개혁의 궁극적인 승리를 보여주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복음주의자로서 문서에 서명한 사람들이 직접 쓴 글 안에서, 내가 그들의 주장이라고 할 만한 것들을 최대한 빠짐 없이 정리한 목록이다. 물론 여기에 그 문서 자체에 들어 있는 주장들이 더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복음주의가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생각할 때, 이 모든 주장은 공허한 울림으로 들린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korea3927
천국시민(korea3927)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7.27.2010

전체     1519754
오늘방문     72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16 명
  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