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 분별 시리즈 (7) : 구원? (II) 무시되는 교리로 바뀌어져 버렸다.
10/04/20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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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앞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지를 분별하는 일이 교회의 생명과 사역에서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것을 살펴보았다. 오늘날의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심히 혼동하여 누가 참으로 구원받은 성도인지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말해, 예수님을 믿는다고만 하면 그런 것은 특별히 상관하지 않는 것 같다. 이안 머레이는 마틴 로이드존스에 관한 두 권의 훌륭한 전기를 저술했고, 조나단 에드워드와 그외 다른 많은 인물의 전기를 저술했다. 



그는 매우 존경받는 영국인이며 탁월한 신학자인데 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www.gracechurch.org)도 여러 번 방문하여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던 나의 친구인데, 그의 새로운 저서  “분리된 복음주의”(Evangelism Divided)는 내가 이탈리아를 방문하였던 지난 몇 주 동안 항상 나의 관심을 사로잡았던 책이다. 이 책은 20세기의 복음주의의 변질을 추적하는 역사책인데 모호했던 여러 가지 문제들을 잘 드러내 설명해 주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교회의 무능력을, “20세기 영어권에 속한 기독교계의 최대의 실패”라고 지적하였다. 나는 그의 이러한 지적을 전적으로 지지한다.


만일 믿는다고 말만 하면 누구나 그리스도인이라고 정의를 내린다면, 그것은 교회의 특성을 없애 버리는 것이며, 오류와 타협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말로만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교회의 오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머레이는 역사가의 관점에서 세심하게 추적하여 매우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교회의 건강은 항상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구분이 명확하고 선명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가늠된다.” 라고 설명했다. 바른 말이다. 교회의 출발은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구분이 분명해야 한다. 이 문제가 명확하지 않다면, 우리는 영적인 성장을 위해 도와주어야 할 사람과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의 모임인 교회를 세우실 때부터 끊임없이 교회에 침투하려고 노력해 왔다. 창세기 6장의 타락한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과 함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사단은 계속 교회안에 가라지를 심으려고 시도해 왔다. 머레이는,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복음에 대한 가장 사악한 반대는 세상적인 교회로 부터 나왔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간단한 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복음은 NBC 방송(역자 주:미국 최대의 민간 방송국 중의 하나)보다 TBN(역자주: 거릇된 교리로 사람들을 미혹하는 대표적인 기독교 방송국)으로 부터 더 자주 공격을 받고 있다. 이들의 본질은 ‘복음주의’라는 명목으로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유주의와 누구의 견해이든 수용하는 은사주의의 유산이다. 또한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구하는 자는 다 받을 수 있다는 식의 구하는자 중심의 실용주의 운동의 유산이다. 


그리고 정통 기독교와 가톨릭및 기타 종교를 혼합한 에큐메니칼 세계 복음주의의 유산이다. 이러한 혼란은 종교 지도자들로 부터 일반 교인들에게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나는 복음주의 교회의 지도자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저명한 신학자이며 유능한 작가인 J.I. 패커 조차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준이 무엇이냐?”라는 나의 질문에, 그는 그저 “좋은 질문이네요”라고 대답할 뿐 이었다.


20세기의 후반 즉 지난 50년간, 기독교에 대해 인기 있는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가 지속해서 있어 왔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들은 성경적이지도 합법적이지도 않았다. 이러한 시도들은 오히려 교회를 명목상으로만 그리스도인이라 말하는 사람들로 채우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이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 이것은 교회가 구원의 교리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우리가 구원의 교리를 바로 이해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올바른 기준을 갖게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그 사람이 고백하는 믿음의 진정성을 완전히 판단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우리의 능력의 범위에 속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알곡과 가라지를 항상 분별 수는 없지만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라(마7:16, 20)”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진정으로 구원받은 사람의 삶에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의 공통적인 경험이다. 구원이란 개인의 삶 속에 일어나는 극적인 변화이다. 이것은 법의학적인 증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변화된 삶 속에 일어나는 행동과 인격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의 삶과 성품 안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변화는 바로 성령님으로 말미암는 역사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며, 구원이란 단어 자체가 의미하는 대로 매우 특별한 위험에서 구출을 경험한 자로서 새로운 행동 양식을 갖게 되는 변화를 경험한 자들이다.


주지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 전혀 새로운 교리가 아니라는 점이다. 200년전, 즉 1820년대에 토마스 스코트(Thomas Scott)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 속에 어떤 어둠이 존재하든지, 만일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을 범한 정죄 받은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또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과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오직 은혜뿐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 은혜를 힘입어 하나님과 화목된 자로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성실과 진실함으로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마음의 소원이 없다면, 성경적으로 볼 때, 그런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토마스 스코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만일 삶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진실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원받은 자는 구출 받은 자이며, 구출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사랑하며, 거룩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만일 입으로는 구원을 시인하면서도 실제 삶에서 거룩한 삶에 대한 추구가 없다면 그 구원은 참된 구원이 아니다. 토마스는 이미 200년 전에 이러한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오늘날 여전히 이런 문제가 대두되는 이유는, 사단은 항상 교회를 구원 문제로 혼란스럽게 만들기 원하며, 교회에 침투하여 다른 많은 기독교 기관이나 교파에 그래 왔던 것처럼 교회를 그릇된 교리와 오류로 더럽히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또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적으로 도리켜 볼 때, 종교 개혁과 18세기 웨슬레로 시작하여 조나단 에드워즈까지 이어진 복음의 부흥의 때와 같이, 교회가 배도의 길로 부터 돌아 설 때에는 언제나 분명한 복음의 메시지로 돌아가는 영적 회복이 있었다.” 그가 의미하는 것은, 교회가 배도의 시기로 부터 회복될 때에는 항상 복음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전해 질때 였다는 것이다.


복음의 메시지가 분명하게 선포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일 우리가 무엇을 구별한다고 말한다면 그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쉬운 예로,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흔히 ‘분별있는 구매자’(discriminating buyer)가 되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것은 선택할 수 있는 여럿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택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요점은 분별력을 가지라는 말이다. 교회를 위한 유일한 희망은 분별력을 갖는것, 즉 분별력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에 관한한 어떤 특별한 해결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더 많은 모임을 갖는 것과 더 많은 세미나를 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진리의 터 위에 당당히 서서 분별력있는 메시지를 선포하는 신실한 설교자들이다.


머레이는 또한, “20세기 영어권 교회들의 심각한 영적 하락을 생각할 때, 교회가 필요로 하는 가장 절실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확실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교회의 희망은 어떤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이며 또 어떻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분별력있게 말씀을 전 하는것이다.


나는 기독교계의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진영 내에서 여러분이 얼마나 존경 받는 지도자로 명성을 누리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로마 가톨릭교회와 교황을 보고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말하는 것은 분별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과연 올바른 분별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인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참된 교회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 자신이 참된 교회에 속한 사람이 아닐 가능성이 많다.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참된교회를 분별하기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것들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비그리스도인이 교회에 관한 진리를 분별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분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오늘날 복음주의 내에는, 저명한 위치에 오른 사람들 중에, 복음주의의 범위를 무분별하게 확대 해석하는 분별력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레이의 정확한 지적대로, 분별력있는 복음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말씀의 일꾼들이다. 지금은 진리에 근거한 분명한 기준을 세워야 할 때이며, 이것은 세상에서는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잃어 버리는 대신 비판을 받는 자리로 나아 가야함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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