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교리 분별 시리즈 (5) : 교회의 타락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을 품으라)
10/01/201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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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적인 복음주의의 말단에서 시작한 신(新) 포스트 복음주의의 저급한 문화는 견고한 교리적인 바탕이 없다. 지금까지 항상 의심과 회의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또한 오늘날 자칭 이머징 대화론을 이끌고 있는 자들로부터 노골적으로 공격을 받은 적이 없는, 역사적인 기독교는 상상하기 어렵다.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진리는 언제나, 삼위일체의 교리와 같은 기본적인 진리들, 성경의 권위와 같이 중요한 진리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한 대속과 같은 소중한 진리들이었다.



바른 교리 분별 (5) : 교회의 타락 (모든 것에 대해 의심을 품으라.)


나는 나의 다른 책(진리의 전쟁, 2007년)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자세히 다루면서 비평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치관에 대해 요약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실질적으로 모든 것에 대해 일단 의심을 품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본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근대성(modernity)은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믿음은 비이성적이고 터무니없는 생각으로 간주한다). 그 대신, 과학과 인간의 이성을 더 신뢰하고 권위 있게 받아들인다. 그 결과, 수많은 근대적인 이념들은 비참한 실패로 끝났으며, 이는 근대 이성주의가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것인가를 온전히 드러내주었고, 사람들이 그토록 신뢰하던 근대의 확실성에 치명상을 입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든 사고와 모든 권위를 끊임없는 회의와 의심 아래 둔다.


근대성의 가장 기본적인 가정은, 과학적인 방법을 철저히 적용할 때만이 흔들리지 않는 확실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험실에서 실험을 거쳐 증명된 것이나 또는 과학적인 “사실”에 기초하여 논리적으로 추론 가능한 것만을 사실로 인정한다). 근대인들은 확립된 과학적 지식의 토대가, 모든 진리가 주장하는 바를 검증할 수 있는, 가장 신뢰할 만한 권위를 제공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검증 단계의 마지막에는, 삶의 모든 근본적인 현실과 인간존재에 관해 일치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수많은 차가운 현실에 부딪혀 마침내 그러한 기대가 허망한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을 때, 모더니즘은 신뢰를 완전히 상실한 채 타다 남은 잿더미 속의 조그만 불씨 같은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근대인의 마음이 통일성, 확실성 그리고 질서를 추구한데 반해 포스트모더니즘은 정반대의 가치들, 이를테면 다양성, 의심, 그리고 반항심을 숭배했다.


이러한 가치들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편의성과 결합되면서 현재 내 손에 쥐고 있는 것만이 보는 것의 전부라는 개념이 탄생되었다. 이러한 개념은 지식과 무지, 권위와 무능력, 기술과 기량부족 사이의 모든 특징을 실질적으로 제거해버린다.


포스트모더니티의 이런 개념은 과연 어디에서 유래했으며, 또 그렇게 짧은 시간에 온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포스트모던(Postmodern) 이라는 용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 무렵 이미 예술, 문학, 건축 등 다방면에 걸쳐 적용되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이 용어는 사고의 방법과 언어를 해석하는 방식을 설명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자케 데리다(Jaques Derrida, 포스트모던의 해석학을 설명하기 위해 해체이론이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는 1960년대에 언어와 철학의 영향에 대한 자신의 포스트모던적인 견해를 책으로 기술했으며,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는 1970년대에 억압적인 언어와 대서사(meta-narratives)의 정치적인 영향을 탐구했다. 1980년대에는, 리차드 로티(Richard Rorty)와 장 보드리야르(Jean Beaudrillard)같은 작가들에 의해 더욱 확장되어 당시 학계의 주류적인 사고방식인 이성적 사고에 의한 확실성을 비웃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트레이드마크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포스트모더니즘은 거의 모든 대학의 문학과 철학 강의실에서 이미 익숙한 유행어가 되었다. 학생들은 진리에 대한 이러한 접근방식에 열광했으며, 근대적인 사고에 깊게 젖어있던 그들의 부모세대는 이러한 새로운 물결에 몹시 당황했다.


1990년대 말에 이르러 신세대 복음주의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미 몇 십 년이 지나서야 그들은 이러한 새로운 사조에 뒤져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일명 X-세대로 명명되는 세대에서 자란 포스트모더니즘에 물든 젊은이들은, 대부분 성인들과 별도로 “청소년 사역”이라는 범주 안에 따로 격리되어 양육을 받는 사역의 결과였다. 이 신세대와 그들의 친구들은 주로 게임과 활동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을 통해 교회를 접하여, 교회를 무언가를 배우는 장소가 아니라 무언가 활동을 하는 곳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음악은 부모세대가 선호했던 장르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이었다. 그들은 신세대의 기호에 맞추기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발굴하여 제공하던, 당시 첨단을 달리던 교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발자국 더 앞선 새로운 것들을 추구하는 세대였다. 그리고 이러한 신세대와 신세대 리더들의 태도는 포스트모던 스타일, 즉 지극히 냉소적인 것이 특징이었다.


이러한 신세대 젊은이들에게 있어서 주요 문제점은, 자신의 눈에 비친 부모 세대의 교회가 너무 피상적이고 세속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공급받아 온 영적 양식보다 훨씬 더 오락을 즐기는 환경 가운데 성장했다. 그리고 그들이 성장하여 성인세계로 옮겨가게 되었을 때, 교회는 그들의 변화하는 기호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그들은 더 이상 교회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실제로, 아무리 유행에 민감한 교회라 할지라도 여전히 근대적인 기호와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세대들에게는 교회가 매력적인 장소가 아니었다.


이런 현상은 세상의 유행을 좆아 성경적인 사역을 포기한 교회들에게는 불가피한 결과이다. “이 세대의 영과 결혼한 사람은 곧 자기 자신이 과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He who marries the spirit of the age finds himself a widower)라는 말이 있다. 나는 누가 처음 이 말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유행을 좇는 수많은 교회와 다양한 교파 안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와 같은 현상을 이보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는 표현은 없다고 생각한다.


1900년 초에 이르러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주류를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은, 교회가 세상의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에 완전히 빠져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유행을 따라잡는 것이 대단히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심지어 가장 세상문화 친화적인 교회조차 80년대(혹은 그 이전)의 유행과 세속적인 가치관들을 따라가는데 버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교회가 문화적인 연관성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배운 젊은 복음주의자들에게는 당혹스러움과 좌절을 느끼게 하는 주된 요소로 작용했다. 그들은 부모세대보다 세상이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를 더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교회가 그러한 변화에 보조를 맞추어 나가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부모세대로부터 교회도 세상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며, 교회성장을 위해서 대중문화를 지렛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랐기 때문에, 그들은 부모세대보다 세상의 실용주의적인 가치관을 따르는데 보다 적극적이었다. “연관성”에 대한 그들의 개념은, 부모들이 그랬던 것보다 더 피상적이었고 친 문화적이었다. 하지만 교회가 세상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결정한 것은 그 범위와 영향 면에서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세상의 문화는 본질적으로 진리와 믿음의 확신에 대해 적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시장 경제 원리에 따른 전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교회성장 전문가들과 전략가들은, 이런 부정적인 결과들에도 불구하고 실용주의를 계속 주장하고 고취시켰다.


이 모든 현상들은 1990년대 초에 이미 분별할 수 있었으며, 정확히 말해 바로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내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책을 쓰게 되었다. 복음주의 내에 증가하고 있는 깊이 없고 얄팍한 영성, 성경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점점 상실해 가는 모습, 세상의 유행을 답습하고자 하는 끊임없는 추구, 그리고 역사적인 복음의 확신에서 멀어져 표류하는 모습 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이미 기독교계에 만연된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풍조는 복음주의자들이 세상을 기쁘게 하는 일에 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에 빚어진 가슴 아픈 결과들이다. 시장원리에 이끌려 복음주의와 교회성장에 접근하는 것은, 상황을 제대로 보는 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 종착역이 비극적인 결말임이 너무나 명백하다.


감성세대인 X 세대의 젊은이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을 접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정확히 이 책에서 예견한 것과 같은 종류의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들에게 완벽한 배도를 위한 재료가 되었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삶의 방식 중의 하나로 실용주의를 받아들여 그것에 세뇌되었으며, 교회의 예배 역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젊은 세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과 무언가 “연관성”을 갖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그들의 기호에 맞추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성장했다. 더 심각한 것은, 은연중에 진리는 본래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가장 초기의 포스트모던 복음주의자들은 오래 가지 않아 이심전심으로 유대관계를 형성했다. 존더반 출판사는 그러한 유대관계 속에서 가장 뚜렷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로 필진을 구성했으며, 특별히 자신들이 출판하는 책들에 그들의 이름을 새겨 넣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주요 인사들은 곧이어 “교회” 와 “운동”이라는 용어를 떼어버리고, 그들 자신을 “이머징 대화”(the Emerging Conversation)의 참여자들이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전형적인 포스트모던 시대의, 그리고 인터넷 시대의 “대화” ? 본질이 결여된 축약된 언어구사, 원칙이 없는 열정, 그리고 지식과 분리된 열심?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아무 의미를 담지 않은, 그저 소리와 감정만 있는 운동이었다.


피상적인 복음주의의 말단에서 시작한 신(新) 포스트 복음주의의 저급한 문화는 견고한 교리적인 바탕이 없다. 지금까지 항상 의심과 회의의 대상이 된 적이 없는, 또한 오늘날 자칭 이머징 대화론을 이끌고 있는 자들로부터 노골적으로 공격을 받은 적이 없는, 역사적인 기독교는 상상하기 어렵다. 공격의 대상이 되었던 진리는 언제나, 삼위일체의 교리와 같은 기본적인 진리들, 성경의 권위와 같이 중요한 진리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속죄에 의한 대속과 같은 소중한 진리들이었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이머징 운동은 처음 10년 안에 스스로 길을 잃고 말았다. 이머징 운동에 대해 가장 많은 책을 쓴, 그 운동의 대표 주자인 사람들은, 입을 열 때 마다 자신들은 “포스트”모던이라고 주장을 하지만, 실제로는 원래 근대주의자(모더니스트)들의 책에서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모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신학적으로 보수주의 입장에 있다가 초기 이머징 대화론자가 되었던 몇몇 사람들은 그러한 신(新) 자유주의 신학의 위험성을 인정하면서 결국 그 운동을 완전히 배격하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초기 이머징 유대관계 속에 아직 몸담고 있으면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현상들은, 찰스 스펄전이 일백년이 넘는 훨씬 이전에 “내리막길”(the Down Grade)이라고 묘사했던 교리적, 영적 타락의 바로 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또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Ashamed of the Gospel)라는 책에서 이런 것들에 대해 경고하면서, 파멸에 이르는 넓은 길이라고 묘사했던 바로 그와 같은 길이다. 오늘날 교회는 여전히 그러한 권고를 간절한 마음으로 듣고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할 때만이 교회는, 사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설교 메시지를 “연관성”이 있게 전하여야 한다는 전형적인 복음주의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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