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주일설교(1) :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도-미련한 것과 하나님의 능력
09/13/2017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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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 십자가가 제외되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짊어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며,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내가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 설교는 1, 2, 3 부로 나누어 올립니다.


십자가의 도, 하나님의 선택적 주권,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린도전서 118 - 31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1:31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들어가는 말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운하는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입니다. 크기가 그것들보다 못하지만 나름으로 유명한 운하 중의 하나가 그리스에 있는 코린트 운하입니다. 그리스 지형은 우리나라처럼 반도로 되어 있는데, 반도 중간이 개미허리처럼 잘록하게 지협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지협에 자리한 도시가 코린트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그 지역을 고린도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이 남북으로 왕래하려면 반드시 그곳을 거쳐야만 했습니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으면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도 발달합니다. 바울이 활동하던 당시에 고린도는 요즘 대도시에서 볼 수 있듯이 활기가 넘치고, 사치가 심했고, 부도덕했고, 우상을 열광적으로 섬겼습니다.


사도 바울은 바로 그곳에 전략적으로 교회를 세웠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썩 괜찮은 교회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몇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분파주의입니다. 설교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1:1-17절 말씀에 그 내용이 소상하게 나옵니다.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갈렸습니다.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하는 문제로 파가 갈렸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복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했습니다. 그 복음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교회당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고, 어떤 분들은 십자가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걸고 다닙니다.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펑펑 흘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서울에 처음으로 오신 분들이 야경을 보고 놀라운 이유 중의 하나는 시뻘건 십자가 불빛이라고 합니다. 그런 포즈를 취한다고 해서 그가 과연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아는 걸까요? 그걸 아는 교회가 분파주의에 떨어질 수 있을까요? 고린도교회는 네 분파에 불과했지만 한국교회는 백오십 여개의 분파로 나누었습니다. 고린도교회가 우리보다는 오히려 양반입니다. 오늘 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공허한 종교적 구호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그런지 아닌지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줄거리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도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서 십자가가 제외되면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주 예수님께서 짊어지신 십자가를 생각하면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신 주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며, 내가 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내가 그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본래 고대 동방 여러 나라에서 죄수를 사형시키는데 가장 흉악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로마에서는 국가의 흉악범을 십자가로 처형했는데 그것도 자기 민족은 제외하고 노예들에게나 적용했던 것입니다. 그렇게도 끔찍한 십자가의 형벌을 예수님이 당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의 죄가 있거나 힘이 없고 무능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죄로 인하여 대신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를 죄와 사망과 사단의 세력에서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랑스러운 능력의 십자가입니다. 그리하여 십자가는 기독교의 핵심이요 교회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십자가 없는 기독교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독교를 십자가의 도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18절 말씀에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말씀은 기독교의 핵심을 설명해 줍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로 우리가 구원을 받고, 십자가의 도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도란 무엇일까요? 헬라어 원어로 호 로고스 가르 호 투 스타우르입니다. 보다 쉬운 말로 번역해 보면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의 도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건에 관한 말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통해 이 세상에 선포된 말씀을 말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이 로고스 곧 말씀이 이 땅에 선포된 사건으로 설명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한 말씀의 핵심이요 절정이 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온전하게 선포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십자가의 도의 의미

 

십자가의 도(the word of the cross, the preaching of the cross, the message of the cross)”십자가의 말씀”, “십자가의 설교”, “십자가의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의 말씀으로서 십자가의 복음을 의미합니다. 즉 십자가에 대하여 전해지는 말씀으로서 주 예수님께서 못 박혀 죽으신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함을 얻는 복음을 의미합니다.

 

2,000년 전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음을 당하신 것은 수천 년 동안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예언한 대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가 없으신 것은 보통 사람들처럼 남녀관계를 통해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하여 마리아라는 처녀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33년의 생애를 지내시면서 가난한 사람들, 소외당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으며, 병을 고쳐주시고 문둥병자를 어루만져 고쳐주셨으며, 죽은 사람들을 살리셨고, 풍랑을 잔잔하게 하시는 등의 기적과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종교인들의 반발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하셨는데, 이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보다 800년이나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께서 당하실 고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이사야 53:1-6)

 

예수님의 외모는 보통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1,2). 그러나 당대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3). 예수님은 우리의 병과 인생의 슬픔을 당하였는데, 마치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잘못을 저질러 징계를 당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4).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죽음을 당하신 것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하시므로 우리의 모든 죄는 대속되었습니다(5).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죄를 예수님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6).

 

이와 같이 십자가의 도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룩하신 대속 즉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담당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의 도는 죄의 심판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도가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사도행전 4:12).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입니다.

 

2. 십자가의 도와 멸망하는 자들과의 관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라고 한 것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과 어떤 관련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이미 완성되었지만, 구원을 얻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어리석은 일에 불과하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이미 완성되었고 열려 있지만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완성되었고 예비 되었지만 멸망하는 자들은 왜 멸망당할까요? “십자가의 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는 율법을 지킨다든가 혈통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남녀노소빈부귀천의 차별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의 차별도 없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냐 한국 사람이냐의 차별도 없습니다. 얼마나 교회생활을 오래 했느냐도 따지지 않습니다. 오직 한 가지, 그것은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체적으로 장애가 있는 분들도, 학문과 관계없이 배경, 환경과도 관계없는 것입니다. 단지 듣고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멸망하는 자들은 십자가의 도를 듣고도 믿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자신의 전통과 지식을 앞세워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사도행전 2:13)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사도행전 17:32) 예나 지금이나 또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편 42:3) “내 뼈를 찌르는 칼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시편 42:10)

 

그러나 십자가의 도는 갈보리 십자가에서 이미 완성되었으며, 지금도 변함없이 믿는 자들을 구원하는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멸망하는 자들처럼 십자가의 도를 무시하거나 외면하지 마십시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이 미련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3. 십자가의 도와 구원받는 자들과의 관계

 

십자가의 도가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한 것은 십자가의 도가 구원받는 자들과 어떤 관련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십자가의 도가 구원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에는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로마서 1:16) “능력(뒤나미스)”이라는 말은 다이나마이트라는 뜻으로 신체적, 영적, 지적 능력을 가리키는 우주의 원리로서 생명력을 의미합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능력입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린도전서 1:22-24).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표적을 중시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표적을 구했습니다(마태복음 12:38, 16:1, 마가복음 8:11,12, 요함복음 6:30). 그들은 항상 증거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이 그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즉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이 바로 증거라는 것이었습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즉 이성적인 증거를 요구하였습니다. 헬라인들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궤변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복음전도자들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23)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린도전서 2:2)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었습니다. 메시아가 왕이 되거나 사령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당한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희망사항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유대인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이며 이방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24)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4. 죄와 저주에서 구원하는 능력이 있는 십자가의 도

 

하나님께서 죄 값은 사망이라고 하셨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죄요.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것이 죄요. 순종함에 부족한 것도 죄입니다. 과녁을 쏘는데 빗나간 것이 죄입니다. 지금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온 세상이 점점 더 큰 죄악으로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고, 사람과도 원수가 되게 하며, 하나님의 모든 복을 막고, 진노의 형벌만 받게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인간은 죄 때문에 저주와 멸망을 당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이 죄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 지심으로 우리를 억만 가지 죄에서라도 다 구원하는 능력을 입혀주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라디아서 3:13)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와 저주에서 완전히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5. 사망과 마귀 권세를 이기는 능력이 있는 십자가의 도

 

죄로 사망이 왔고, 그 죄는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왔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마귀의 유혹에 걸려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지어 사망을 오게 했습니다. 이 사단이 예수님까지 유혹했으나 예수님은 사단의 모든 계략을 말씀과 기도로 다 이기셨습니다. 마귀들은 유대인들과 로마의 세상권력을 다 이용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고 이긴 줄로 알았으나 3일 후 예수님의 성경말씀대로 다시 살아나 부활하심으로 완전히 실패하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십자가는 예수님을 처형했으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로마의 십자가를 이 세상에서 말살시켜버렸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3:15"뱀의 후손은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인의 후손은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복음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와 사망의 모든 권세에서 완전히 승리한 증거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고린도전서 15:55-56), 그 율법의 요구를 예수님이 십자가로 완성하심으로 사망과 마귀의 세력을 정복하셨습니다.

 

6. 하나님 사랑과 나라를 이루는 능력이 있는 십자가의 도

 

그렇게 크고 쓰린 고통의 십자가를 누가 대신 질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장기가 병들어 수술할 때 콩팥하나도 쉽게 떼어 줄 수 있습니까? 돈이 필요할 때 아낌없이 줄 수 있습니까? 대신 감옥에 가서 죽어 줄 수 있습니까? 원수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대신 내어 죽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증거 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최고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제까지 강도짓을 하다가 오늘 잡혀 사형을 당하는 현장에서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죄를 회개하면 용서함 받고 영생의 복을 받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사람과 사람과도 화목을 이루는 사랑의 세계, 곧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이 십자가의 도를 전파하여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모든 인간이 죄로 인하여 어두워지고 영혼이 죽었으므로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제아무리 똑똑해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도를 믿지 않으면 영원한 죄와 저주와 사망과 마귀권세 아래서 멸망하는 가장 미련한 자가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사람이 보기에는 약하고 미련해 보여도 실제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가 됩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십자가의 능력으로 십자가만 자랑하는 승리자가 됩시다.


다음에 두 번째 설교 계속 이어집니다. 


이 설교는 여러 참고서적과 목사님들의 설교를 인용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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