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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찾두, 마7:7-11
06/16/2019 04:19
조회  463   |  추천   2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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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 말씀을 기도에 관한 말씀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주제의 틀 안에서 생각해야 본문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지금 주님은 인간관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비판하지 말라거나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라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소극적인 자세라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보다 적극적인 사랑의 자세이다.

 

여기서 구하라는 말씀은 이웃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뜻이다. 비판이나 충고로 이웃의 잘못을 바로잡지 못한다. 오히려 좋은 뜻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한 것이 상처를 주거나 갈등을 일으켜 관계가 나빠지기 쉽다. 그럼에도 바른 말을 해주고 충고하는 것이 올바른 사랑일까? 물론 바른 말을 함으로 형제에게 상처와 아픔을 안겨주고 관계가 나빠지는 것도 문제이지만 형제의 잘못을 수수방관하는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제외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형제를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없다.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며 사랑과 능력과 지혜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사랑의 비결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문제로 기도하다보면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깨닫는 때가 많다. 우리의 비판이나 충고의 이면에는 의협심을 가장한 교만이나 분노 이기심 등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교만 분노 편견 이기심 우울증 같은 마음의 상태는 판단이나 생각에 영향을 준다. 올바로 보고 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마음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녀의 잘못이 부모인 자신으로부터 온 것임을 깨닫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기도할 때이다. 큰 일인 것처럼 염려하던 형제의 문제가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것도 기도할 때이다. 어떤 부인이 부부싸움을 하고서 남편이 미워 헤어질 생각으로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어서 기도원에 갔다. 그곳에서 기도하던 중에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깨닫고 남편이 불쌍한 생각이 들어 돌아와 화해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간증을 들은 적이 있다.

 

주님은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악한 사람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기도는 형제의 유익을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다. 기도하는 사람은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조급하게 굴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바라보는 여유를 가진다. 그리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바른 길을 걷는 형제를 보는 것은 믿는 자가 누리는 기쁨이다. 우리의 믿음과 사랑의 관계는 기도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경험하면서 깊어진다.

 

그리고 찾으라고 하신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역사하신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 비를 내리고 햇빛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심고 가꾸는 것은 농부가 해야할 일이다. 형제를 위해서 하나님의 도우심도 있어야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어려움에 빠진 형제를 도우려면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적절한 방식으로 접근해야한다. 형제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인가? 대화는 형제의 마음과 문제를 이해하는 열쇠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진실하고 깊은 대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을 열고 자신을 보여주는 것은 쉽지않다. 비판과 조롱에 대한 두려움은 마음을 열어 자신의 문제를 보여주기 어렵게 만든다. 말을 듣기도 전에 충고부터 하려는 사람에게는 입을 열기가 겁나는 것은 자주 경험하는 일이다. 자신의 상황이나 생각 그리고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사람에게 속내를 털어놓았다가 낭패를 당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해하기 보다는 듣기전에 판단하고 자녀의 고민을 무시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충고하고 화를 낸다. 자녀는 그런 부모에게 마음을 닫고 자신의 문제를 말하기를 꺼린다. 그렇게 되면 부모는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상처와 아픔만을 안겨준다.

 

문제해결의 열쇠는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는데 있다. 그럼에도 근본 원인을 찾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면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우리는 쉽게 판단하고 충고하지 말고 형제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기 위해 대화하고 기도하는 노력을 해야한다.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이나 자신은 완전한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을 종종 본다. “나도 해봐서 아는데 …” 하면서 쉽게 말하는 것은 자신의 가벼움을 보여줄 뿐이다. 정말 주의깊게 들어주고 사려깊게 헤아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면 우리는 쉽게 충고할 수 없다. 적절한 처방을 찾아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사랑은 바른 길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라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곳에서 자란다.   

 

그리고 두드리라고 하신다. 문을 두드릴 때 문이 열리는 것처럼 마음을 두드릴 때 마음도 열린다. 마음을 열지 않고 교제하는 것은 둑을 쌓아놓고 물이 흐르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 우리안에 있는 사랑이 자녀에게나 가까운 사람에게 흐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열린 사귐이 없기 때문이다. 함께 식사도 하고 함께 웃고 떠들어도 마음이 닫힌 관계는 유익을 주지 못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은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지만 사랑의 관계에서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은 마음을 닫지 않으면 상처받고 왕따당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있다. 사람들마다 마음을 꽁꽁 닫아 걸고 자기를 감추지 않으면 자기를 지킬 수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사람들마다 자기를 고립시키고 마음을 나눌 친구가 없이 외로운 삶을 살아간다. 때로는 마음을 열라고 거칠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마음을 열라고 소리지른다고 해서 열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두드림은 마음의 문을 더욱 잠그게 만든다.

 

주님께서 마음을 두드리라고 하신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마음의 문은 지속적인 교제를 통하여 이해와 공감을 나누는 가운데 사랑에 대한 확신과 신뢰의 관계가 쌓이는 만큼 열린다. 바울은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목회를 했다고 하였는데 바로 이런 태도가 형제의 마음을 열게 만든다. 부드러운 마음, 존중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친절한 마음, 기다리는 마음, 이런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로바크 선교사님은 필리핀에서 무슬림을 위해서 오랫동안 사역을 했는데도 한 사람도 건지지 못했다. 어느날 낙심이 되어 마을 뒷산에 올라가서 마을을 바라보며 혼잣말로 주님 어떻게 해야합니까?” 하였는데 그 순간 그들에게 가서 코란을 가르쳐달라고 하라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처음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가서 코란을 가르쳐달라고 하였다. 그들은 기뻐하면서 서로 가르쳐주겠다고 나섰다. 그들에게 코란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그들과 교제하고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로바크 선교사님에게 마음을 열어 자신들의 고민도 이야기 하게 되었고 선교사님은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마음을 열고 이해하는 마음을 가질 때 그들의 대화는 더욱 진지하게 되었고 로바크 선교사님도 자연스럽게 자신의 믿음에 대해서 말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주님은 그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려고 했을 때는 실패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코란을 가르쳐달라며 다가가서 그들의 마음을 두드렸을 때 그들은 마음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삶을 나누며 신뢰의 관계가 쌓였을 때 그들은 복음에 눈이 열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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