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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06/20/2020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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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영희 교수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며 만나본 적도 없다. 그럼에도 그녀의 글을 읽노라면 잘 아는 사람같이 느껴지곤 한다. 아마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살며 느낀 감성이 그녀에게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녀와 나는 상당히 다른 배경 속에서 살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영문학자였으며, 그녀는 버젓이 대학을 마치고 외국 유학을 다녀와 대학교수가 되었고, 글로 방송으로 잘 알려진 영문학자다. 공통점이라면 그녀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며(그녀가 3년 연상이다), 소아마비 1급 장애인이라는 점이다. 나와 달리 그녀는 목발을 집고 다닐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장애인이 아닌 척 살았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던 것 같다. 그녀는 치열하게 경쟁하며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았고, 사람들이 그녀를 장애인 장영희가 아닌 인간 장영희로 보아주기를 바랐다.


그녀의 문학 에세이집 ‘문학의 숲을 거닐다’는 신문에 연재했던 문학 칼럼을 묶은 책이다. 매 꼭지에는 문학작품과 작가가 등장하며 그와 연관된 그녀의 일상과 경험이 들어있다.

 

28살의 나이로 총살 직전에 황제의 특사로 살아난 ‘도스토예프스키’는 사형집행 5분 전의 시간을 다음과 같이 쓰기로 마음먹었다. 옆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2분, 자신의 삶을 생각해 보는데 2분, 남은 1분을 자연을 한번 둘러보는데 쓰기로 했다. 옆의 두 사람과 최후의 키스를 나누는 순간에 사형 중지로 살아났다. 암의 재발로 투병 중이던 장 교수는 “내가 몇 번이나 더 이 아름다운 저녁놀과 가을을 볼 수 있을까”를 이야기한다. (111-112 페이지)


불후의 명작 ‘대지’의 작가 ‘펄 벅’은 한국의 고아를 포함, 국적이 다른 아홉 명의 고아를 입양해 키웠는데, 막상 친자는 중증의 정신지체와 자폐증이 겹친 딸 하나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어렵게 쓴 책이라고 고백한 ‘자라지 않는 아이’는 장애 자녀를 기르는 어머니의 체험을 쓴 것이다. 장 교수는 그녀를 업어서 교실에 데려다 놓고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던 어머니를 생각한다. (129-131 페이지)

 

나 역시 이 글을 읽으며 내게 한글과 산수를 가르쳐 주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어머니는 나를 업어 학교에 보내지는 않았지만, 내게 글을 가르쳐주어 훗날 내가 책을 읽고 공부하는데 필요한 뿌리를 내려 주었다. 


장 교수에게는 가끔씩 잊을 만하면 편지를 주고받는 동창생이 있다고 한다. ‘초원의 빛’을 외우고 윤동주의 시를 일기에 적던 그녀는 시인은 되지 못하고, 사소한 일로 남편과 싸운 날 그 사람이 좋아하는 오징어 볶음을 하려고 장에 가는 중년의 주부가 되었다. 물오징어 삶은 손이 부끄럽지 않다는 그녀는 시의 다음 구절로 편지를 끝맺는다.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은들 어떠리

우리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서 힘을 찾으리…”

(144-148 페이지)


장 교수는 9월 11일 세계무역센터로 출근했다가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찾는 ‘마이클’이란 남자의 ABC 뉴스 인터뷰를 TV로 보게 되었다. 그의 아내는 탈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자, 전화 음성사서함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고 한다. “당신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아주세요.”


그녀는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실린 한 구절로 글을 끝맺고 있다. “당신이 1분 후에 죽어야 하고 꼭 한 사람에게 전화를 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그렇게 마지막 순가까지 기디리겠습니까?” (158-161 페이지)


그녀는 ‘하면 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면 된다’는 ‘이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세상에는 분명히 불가능한 일은 존재한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녀는 목발 없이 걸을 수 없고, 나는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날 수 없다.

 

나는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너무 이른 나이에 알아 버렸다. 돌이켜 보면 한 번쯤 더 시도를 해보았어야 할 일도 안된다고 너무 일찍 포기한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내 삶에 도움이 되었다. 내 앞에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며 즐거움을 찾는 노력을 했다. 아마 장영희 교수도 그럼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던 것 같다.

 

그녀는 척추암 수술을 마치고 나흘 만에 통증이 조금 완화되어 다리 보조기를 신고 일어섰던 날을 회상한다.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문득 발바닥이 땅을 딛고 서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강한 희열이 느껴졌다. 직립 인간으로서 직립으로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소중한지” (317 페이지)


그녀는 나보다 많이 배웠고, 글도 더 잘 쓰고, 책도 여러 권 낸 영문학자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것은 별로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책 말미에 실린 이 글을 보고 갑자기 그녀가 무척 부러워졌다. 나도 한 번쯤 발바닥으로 땅을 딛고 일어 서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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