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on
동쪽구름(kodon)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5.20.2012

전체     194674
오늘방문     42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6 명
  달력
 
65. 새벽에 걸려 온 전화
04/29/2019 08:12
조회  1362   |  추천   34   |  스크랩   0
IP 12.xx.xx.34

이른 새벽 전화벨이 울린다. 한밤중 또는 새벽에 오는 전화는 대개는 불길한 소식이다. 세미가 교회 수련회에 갔다가 팔이 부러졌을 때도 새벽에 전화가 왔고, 어머니가 거실에서 넘어졌을 때도 새벽에 전화가 왔었다.

  

전화를 받은 아내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곧 울음을 터트린다. 충주의 장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화는 서울의 처남댁에게서 걸려 온 것이었다. 주말에 회사에 나간 처남이 의식불명으로 발견되었는데 혼수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대충 이야기만 들어보아도 매우 심각해 보였다. 급히 비행기 표를 구해 아내는 한국으로 갔다.


처남은 전날부터 머리가 심하게 아팠다며 그날 아침에도 두통약을 먹고 회사로 나갔다고 한다. 회사라고 해봐야 직원 한두 명과 일하는 영세 사업장이다. 머리가 심하게 아팠던 것은 이미 뇌혈관에서 피가 조금씩 새고 있어 뇌압이 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쓰러져 있는 것을 이웃 가게 주인이 발견하고 119에 신고를 한 것이다. 


처남은 고지혈증을 가지고 있었으나 잘 관리를 하지 않았고 담배를 많이 피웠다. 젊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며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며칠 후 결국 뇌사판정을 받았다. 그에게는 9살 딸과 7살의 아들이 있었다. 


장례를 치르고 내일이면 아내가 돌아오는 날 아침 출근길에 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충격이 내 몸을 흔들었다.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자동차 사고가 났다는 것을 깨달았는데 이미 경찰차가 와 있었다. 고속으로 차선을 바꾸며 들어오던 차가 내 차를 뒤에서 받아버린 것이다. 내 차의 뒷면이 박살이 나고 뒷바퀴가 주저앉아 버렸다. 결국 폐차를 시켰다.


한국에서 돌아온 아내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매일 시도 때도 없이 구석에 주저앉아 울었다. 퇴근해서 집에 와 보면 멍하니 컴퓨터 속의 처남 사진만 보고 있었다. 그녀에게는 특별한 동생이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재혼한 아버지와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며 아내는 그를 때로는 동생으로 때로는 아들처럼 보살폈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그 세월을 과연 참고 지낼 수 있을까 싶었다. 처남의 몸에서 장치를 떼고 보내주기로 했다는 소식을 울며 전하던 아내에게 나는 필요하다면 그의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는 것이 우리가 그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위로했었다.


내게는 좀 차가운 면이 있다. 감정의 골에 빠져 오래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는다. 바꿀 수 없는 일은 금세 마음을 정리한다. 처남의 죽음은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그가 남겨 놓은 아이들 문제는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특히 큰 아이 민서는 아내가 매우 이뻐하던 조카딸이었다.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면 동생을 잃은 아내의 슬픔도 달랠 수 있으리란 기대감도 있었다. 


나는 처남을 잘 모르고 친해질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 늘 바빴다. 마주 앉아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 오며 가며 몇 번 같이 밥을 먹었으며 가끔 전화로 형식적인 안부를 물었던 것이 고작이다.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다. 그전해 연말에 처남이 아이들과 미국에 다녀갔으면 하는 뜻을 내비친 적이 있었다. 연말이라 돈도 그렇고 겨울이라 해도 짧으니 여름에 오는 것이 좋겠다는 답을 주었다. 내일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일이긴 해도 이리될 줄 알았더라면 그때 오라고 했어야 하는데.


여름 방학이 되자 처남댁이 아이들과 미국으로 방문을 왔다. 한 달가량 함께 지내며 과연 내가 이 아이들을 키우며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아이들의 예전 모습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버릇이 없고, 고집을 부리고 떼를 쓰며, 어른을 우습게 알았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 나는 아내에게 아이들을 키울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키워주겠다는 약속을 거두고 싶다고. 

이 블로그의 인기글

65. 새벽에 걸려 온 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