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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퇴직을 결심하다
04/19/2019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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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회사에서는 대대적인 통폐합이 시작되었다. 캘리포니아 주에는 20여 개의 지역사무소가 있었다. 지역사무소마다 보상부와 영업부가 있었는데, 대도시인 LA 같은 경우에는 5개 지역사무소가 경쟁을 하고 있었다. 일의 중복성은 물론 영업부의 경우 일관성 없는 보험료 책정으로 소비자에게 혼란과 불편을 주고 있었다. 지역사무소를 모두 정리하고 업무별로 통폐합을 했다. 


주 정부 산재보험기금은 (State Compensation Insurance Fund) 주 정부의 한 부처에 속한다. 다만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산재보험에 가입한 업체로부터 보험금을 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주 정부 예산과 상관없이 돌아간다. 회사의 우두머리도 다른 부처처럼 '국장' (director)이라고 하지 않고 '사장' (president)이라고 부른다. 사장단의 기가 너무 올라 보험국장의 말을 잘 듣지 않기에 이르렀고 마침내 감사 대상이 되었다. 그동안의 방만한 운영과 타 부처와 형평이 맞지 않는 직원들의 복지혜택 등이 문제가 되어 경영진의 물갈이도 이루어졌다.


마침 베이붐 세대가 은퇴연령에 이른 것과 맞아떨어져 명퇴없이 직원의 수를 줄여 나갈 수 있었다. 일부 매니저와 수퍼바이저들은 보직을 잃고 이런저런 프로젝트로 보내졌다. 관리직원들은 평소에 하던 관리직에서 물러나면 혹시라도 명퇴의 대상이 될까 싶어 모두들 프로젝트로 보내지는 것을 꺼려했다. 할 수 없이 회사에서는 선임 순위로 차출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독립된 사무소를 맡아 왕처럼 군림하던 지역사무소장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지역사무소가 문을 닫으며 대부분 은퇴를 했다. 많은 이들이 승진의 기회를 잡았다. 나도 새로운 매니저에게 보고를 하게 되었다.


윗사람이 새로 바뀌면 아랫사람들은 힘들기 마련이다. 일단 낯을 익히고 그 사람의 취향을 파악해야 한다. 사람에 따라 같은 일이라도 A라는 방식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B라야 한다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새로 부서를 맡은 사람이 그 일에 익숙해지기까지 학습곡선이 (learning curve) 있다. 그다음에는 자기를 승진시켜 준 윗사람들에게 보답하려고 선임자보다 더 잘하려는 의욕이 앞선다. 무리하게 실적을 더 올리려고 한다. 자연히 아랫사람이 힘들어진다.


나도 매니저가 된 후 이런 과정을 거쳤다. 보상부 매니저를 시켜주면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통폐합된 LA 지역 보상부에는 4-5명의 매니저들이 있었다. 선임 매니저보다 잘하려는 의욕이 앞섰다.


얼마 후 누군가 LA지역 부사장에게 투서를 보냈다. 부사장이 불러 올라가니 편지를 하나 보여 주었다. 내가 수퍼바이저 시절 채용해서 데리고 일하던 한인 여직원이 있는데, 내가 그녀와 부적절한 사이며 그 때문에 내가 매니저가 된 후 그녀를 재활 교육관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큰아들 세일이 나이 또래였으며 그녀의 어머니는 내가 신문에 싣고 있던 칼럼의 애독자였다. 그녀가 재활 교육관이 된 것은 나의 선택이 아니고 전적으로 담당 수퍼바이저의 결정이었다. 그 일은 내가 이런 설명을 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매니저가 4-5명이나 되고 직원의 수가 200명이 넘으니 매니저 II 가 필요했다. 부사장의 신임을 받고 있던 백인 남성 ‘키이스’가 승진했다. 모두가 예상했던 일이었다. 얼마 후 부사장이 은퇴를 선언하고 그가 부사장이 되며 다시 매니저 II 자리가 비었다. 이번에는 나도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뜻밖에도 선임으로 밀려 보직을 잃고 프로젝트 일을 하던 백인 남성 ‘밥’이 승진을 했다. 그때 난 크게 실망하며 아시안계 남성의 한계를 느꼈다. ‘키이스’가 은퇴를 하며 ‘밥’은 부사장이 되었다.


‘밥’은 앞에서 언급했던 새로운 상급자의 성급함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위에서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그대로 하려고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yes-man’ 은 관리직원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리직원은 듣기 싫은 말도 할 수 있어야 하고, 안 되는 일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매니저 중 ‘로스메리’라는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녀는 회사를 떠나며 ‘밥’ 때문에 그만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나갔다.


나는 ‘밥’ 과는 수퍼바이저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다. 비록 승진 경쟁에서 지긴 했지만 그가 잘 되기를 바랐다. 그가 잘 된다는 것은 나도 내 일을 잘했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얼마 후 그는 나를 매니저 II로 승진시켜 주었다. 그러나 이미 한계를 경험한 나는 이직을 생각하고 있었다.


금융업을 하고 있던 동생은 전부터 내게 자기 회사에 와서 일을 좀 해 달라고 했었다. 난 은퇴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생각해 보겠다며 미루고 있었다. 마침 동생이 보험업에 뛰어들며 다시금 내게 부탁을 했다. 그렇게 해서 58세에 31년 동안 근무했던 ‘State Fund ‘ 떠나게 되었다.


동생의 회사에 가기로 결심한 날, ‘밥’의 방에 올라가 퇴직을 알리고 나오는데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아, 이래서 사람들은 사표를 던지는구나.”


동생의 회사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남짓했을 때, ‘밥’ 이 회사를 떠나 주 정부의 다른 부처로 옮겨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그냥 참고 남아있었더라면 부사장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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