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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리지 못했다
04/04/201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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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전립선 암을 가지고 계셨다. 노인들에게 발생하는 전립선 암은 자라는 속도가 느려 몇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아 더 커지는 것을 억제하는 치료를 받고 계셨다. 간 수치에 이상이 있다고 해서 사진을 찍고 검사를 하니 간에 작은 종양이 발견되었다. 간암 판정을 받으셨다. 이 역시 의사는 수술을 권하지 않았고 약으로 항암치료를 하며 계속 관찰할 것을 권유했다. 


어머니의 증상은 신경계통의 문제 같다고 해서 전문의를 보고 입원까지 하며 이런저런 검사를 했다. 골수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었지만 의사는 어머니의 건강 상태로는 암의 소재를 찾아도 수술을 하거나 방사선 치료 등을 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무렵 아버지는 더 이상 운전하는 것도 힘이 들다고 하며 차를 팔아 버렸다. 카운티에서 제공하는 간병인 서비스를 받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거나 시장에 갈 일이 있으면 간병인의 도움을 받거나 자식들이 돌아가며 모시고 다녔다. 5남매가 있었지만, 누나는 동부에 살고 막내는 1시간 반 거리의 오렌지 카운티에 살아 나와 남동생, 그리고 큰 여동생이 드나들며 도와 드렸다.


흔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 며 부모는 모든 자식을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하지만, 부모도 사람인지라 더 마음이 가는 자식이 있는 것 같다. 부모님은 우리들의 재능과 형편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 놓고 있었다. 멀리 사는 누나는 어렵게 여기셨고, 내게는 영어 문서나 관공서 일을 맡겼고, 동생에게는 한인 타운에서 살 수 있는 물건의 쇼핑을, 큰 누이동생에게는 여행과 용돈을 기대하고 계셨다. 가게를 하며 모아 두었던 얼마간의 목돈은 금융업을 하는 동생에게 맡겨 놓았다. 


급한 일이 생기면 늘 가까이 사는 내게 전화가 왔다. TV 리모트 컨트롤을 잘못 만져 TV 가 안 나온다고 전화가 오고, 아파트나 관공서에서 서류가 왔다고 전화가 왔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출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가 거실에서 넘어져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태가 심각해 보였다.


911에 전화를 해서 앰뷸런스를 부르고 아내와 함께 급히 내려갔다. 마침 구급대원들이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진 앰뷸런스에 머리에 붕대를 감은 어머니를 싣고 있었다. 함께 응급실로 달려갔다. 깨어진 머리를 꿰매고 며칠 입원을 하셨다. 병원에서는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모시라고 했다. 몇 군데 가서 보고 정하라고 주소를 주어 동생에게 보고 오라고 했더니 우리 집 근처로 정해 버렸다. 재활병원과 요양시설이 함께 있는 곳이었다. 어머니는 몇 년 후 돌아가실 때까지 그 병원에서 나오지 못했다.


내가 기억하기에 아버지는 무언가를 혼자서 해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장교가 되어 늘 부관이나 전령의 도움을 받았고, 퇴역 후에 사업을 할 때도 장부나 서류 정리 등은 모두 어머니가 맡아서 했다. 미국에서는 현금보다는 개인수표나 카드로 결제를 하는데 아버지는 수표를 쓰거나 카드를 사용하는 방법도 몰랐다.


어머니가 요양원에 머물자 아파트에 혼자 계시던 아버지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신장기능에 이상이 생겨 복수가 차고 심부전증이 왔다. 복수가 차면 심장과 폐에 압박이 가해져 숨이 차다. 곧 숨이 멎을 것 같은 증상이 온다. 새벽에 전화가 와서 응급실에 모시고 가는 일이 수차례 발생했다. 


아버지의 신장기능 이상은 음식을 짜게 드시는 식습관과 한인의사들의 무책임한 처방전에 기인한다. 아버지는 고혈압 약을 복용하고 계셨는데, 지나치게 약에 의존하셨다. 조금씩 오르는 혈압은 식생활과 운동으로 다스려야 하는데 약의 용량을 늘리면 금세 떨어지니 자꾸 용량을 올려 간 것이다. 결국 신장이 버티지 못하고 몸에 이상이 온 것이다.


몇 번의 입원 후, 아버지도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원으로 가셨다. 처음에는 요양원의 호의로 두 분이 같은 방을 쓰다가 장기 입원으로 이어지자 남자 병동과 여자 병동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 무렵부터 어머니는 약간의 치매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아마도 그 이전부터 어머니는 치매 증상을 보이고 계셨을 것이다. 자식의 입장에서 설마 우리 어머니에게 치매가 하는 생각에 애써 모른 척했을 뿐이다. 


어머니는 특히 아버지와 관련해서 이상한 말과 행동을 했다. 요양원의 라틴계 도우미가 아버지에게 추파를 던진다거나 입원한 한인 할머니 중의 한 분이 아버지의 옛 애인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하셨다. 


아버지는 요양원 생활을 싫어하셨다. 아버지가 생각하고 계시던 말년의 삶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에 보았던 고향 노인들의 삶을 기대하고 있었다. 자식과 손주들의 시중을 받으며 지내시고 싶어 했다. 부모님이 바라시는 것을 알면서도 못 해 드리는 자식들의 마음은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셔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버지가 더 이상 살고자 하는 의욕을 상실하셨기 때문에 돌아가셨다고 믿고 있다. 자주 "이렇게 살아 뭐해"라는 말씀을 하셨다. "사람이 곡기를 끊으면 얼마 만에 죽을까"라는 질문을 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버지는 식사를 잘 못하게 되었다. 영양제 주사나 튜브로 음식물을 삽입하는 것도 싫다고 하셔서 점점 몸이 야위어 갔다.


퇴근 후, 잠시 어머니 방에 갔다가 잠드신 아버지를 보고 돌아온 날 저녁, 10시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다. 자식이 다섯이나 있었지만 아무도 이 생의 마지막 순간에 아버지의 손을 잡아 드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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