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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은행 문을 부수고 돌진한 어머니
03/26/2019 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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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을 접고 은퇴를 하신 부모님은 잠시 우리 집 근처 밸리에 있는 노인 아파트에 사시다가 벤추라로 이사를 가셨다. 미국에서는 저소득 노인들에게 정부가 아파트 비용을 지원해 준다. 입주 노인은 본인 수입의 1/3 만 내고 남어지 모자라는 부분을 정부가 보조해 준다. 정부가 노인 아파트로 지정해 놓은 곳도 있고, 일반 아파트에서 몇 가구를 정부 보조 유닛으로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님은 일반 아파트에 정부 보조를 받아서 들어가셨다.


처음에는 2층에 사셨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이라 명절에 가면 아이들 중의 한 놈이 나를 업고 올라가야 했다. 몇 년 후에 1층으로 내려오셨다. 침실이 두 개 있고 잔디가 깔린 작은 뒷마당도 있는 아담한 아파트였다. 부모님은 잔디를 없애고 텃밭을 만들어 상추, 고추, 깻잎, 호박과 토마토 등을 심었다.


벤추라는 바닷가 마을이라 겨울에는 온화하고 여름에는 시원해서 에어컨이 필요 없는 동네다. 여름에도 흐린 날 오후에는 가벼운 겉옷을 걸쳐야 한다.


부모님은 벤추라로 이사를 하신 후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성당에 나가시리라고는 전혀 상상을 못 했던 일이다. 성당의 노인대학에 다니시며 또래의 친구분들과도 잘 어울리며 지내셨다. 근처에 '츄마시' 카지노도 있어 가끔은 용돈을 모아 다녀 오시곤 했다. 돈을 잃고 온 날은 아무 말이 없고, 몇 푼이라도 따서 오면 며칠을 두고 자랑을 했다. 


노인들에게 힘든 일 중의 하나는 관공서에서 날아오는 영어 문서들이다. 늘 우리 집 근처에 사셨기 때문에 부모님에게 오는 영어 문서들은 주로 내가 처리해 드렸는데, 차로 1시간 거리인 벤추라로 이사를 가신 후에는 편지가 올 때마다 가지러 갈 수가 없었다. 나는 부모님 집에 한 달에 한번 정도 갔다.


영문 서류가 오면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는 힘들게 영어 문장을 읽어 내려갔다. 중간에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스펠링으로 불러 주셨다. 대충 몇 문장 듣고 나면 어떤 문서인지 감이 온다. 필요 없는 것은 버리시라고 하고, 급하지 않은 것은 다음에 만나서 처리해 드리고, 급한 것이면 주말에 가서 해결해 드렸다.


아버지는 운전을 잘하시는 편이 아니었다. 늘 불안 불안하게 운전을 하시더니 한번 큰 사고를 내셨다. 차와 충돌을 한 후, 신호등을 받는 사고가 났다. 엉겁결에 겁이 나서 차만 견인을 하고 일단 집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저기 아프다고 연락이 왔다. 세환이를 데리고 달려가서 병원에 모시고 갔다. 회복을 하는데 한 달 이상 걸렸던 것 같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엄살이 심하다고 했다. 화장실 가는 것도 힘들다고 해서 깡통으로 요강을 만들어 썼다고 한다.


얼마 후에는 교통위반 티켓을 받았다. 빨간불에 우회전을 하다가 경찰에 걸렸다. 빨간불에는 일단 정차를 하고 우회전을 해야 한다. 남들이 그러는데 법원에 가서 싸우면 티켓이 말소된다며 굳이 법원에 가시겠다고 우겼다. 노인이 되면 귀가 얇아지는 모양이다. 자식들 말은 잘 안 들으려고 하고 남의 말은 잘 듣는다.


결국 내가 하루 휴가를 내서 벤추라 법원에 모시고 갔다. 티켓을 발부한 경찰이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출석해 있었다. 판사 앞에 나서기 전에 먼저 우리에게 CCTV 화면을 보여 준다. 아버지의 차가 빠른 속도로 멈춤 없이 우회전하는 모습이 그대로 찍혀있다.


재판이 시작되고 영상을 본 판사는 너희 아버지가 살짝만이라도 브레이크를 밟았다면 정상을 참작해 주려고 했는데, 이건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한다. 저소득 노인이니 벌금이라도 조정해 달라고 사정을 하니 벌금을 낮춰 주었다. 벌금을 내고 나오며 아버지는 그것 보라며 의기양양해하신다. 내가 날려버린 하루 휴가는 누가 보상해 주나.


어머니는 운동신경이 둔한 편이다. 배드민턴을 치는 것도 버거워했다. 미국에 살자니 할 수 없이 운전을 했지만, 겨우 동네 길만 다니고 고속도로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외환은행에 들어 간 동생이 밴나이스 지점장이 되었다. 밸리 지역에 처음 들어온 지점이었다. 어머니는 은행계좌를 모두 동생의 은행으로 옮기고 매일 어깨에 힘을 주고 은행을 드나들었다. 그 무렵 가게에서는 수수료를 받고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주는 일을 했기 때문에 근처 업소의 종업원들이 주급을 받는 금요일에는 몇 차례씩 은행에 가야 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차에 탄 채로 은행 문을 부수고 들어가 버렸다. 브레이크 대신에 액셀을 밟아버린 것이다. 은행 앞 유리가 박살이 나고 어머니는 팔에 골절 상을 입었다. 얼마 후 차량국에서 어머니의 운전면허를 정지했다는 통보가 왔다. 그일 이후 어머니는 다시는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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