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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02/10/202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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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산문집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며 여행 이야기를 담은 가벼운 산문집이려니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 책은 사람들은 왜 여행을 하며 여행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과 잃는 것 등을 사유한다. 더 나아가 삶 자체가 여행이 아닌가 하는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내가 #김영하를 처음 알게 된 것은 그의 팟캐스트 ‘김영하의 책 읽는 시간’을 통해서다. 이 방송에서 그는 자신이 고른 소설의 일부 또는 전문을 차분한 음성으로 읽어 주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책을 읽는 내내 마치 그가 읽어주는 팟캐스트를 듣는 기분이 들었다. 글은 분명 내가 읽고 있는데, 귀로는 그의 음성으로 책을 들었다고 하면 이상한가.


그는 무비자로 중국에 가는 바람에 공항 밖으로도 나가보지 못하고 왕복 항공료보다 비싼 편도 티켓을 사서 쫓겨난 이야기로 시작해서 (추방과 멀미) 여행은 마치 소설과도 같다는 글로 (여행으로 돌아가다) 끝을 맺고 있다.


그가 좋아했던 책 중에 ‘15 소년 표류기’가 있다는 대목에서 나는 엄청 기분이 좋아졌다. 어린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책이며, 그 책을 읽고 책 읽는 재미에 빠져 들었다.


‘여행의 이유’를 읽으며 내가 했던 여행의 기억들을 떠 올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15년 전 결혼하며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 같은 해 여름에 동부에 사는 누나네 집에 다녀온 것을 빼면 여행다운 여행은 별로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주 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매년 몇 차례 ‘샌프란시스코’와 ‘샌디에이고’, 그리고 가끔은 ‘프레즈노’나 ‘새크라멘토’에 다녀왔다. 출장을 가면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날 수 있고, 출장비도 따로 나왔기 때문에 나는 출장 가는 일을 즐겨했었다.


9.11 테러 이후 공항의 검색이 까다로워지고 나이가 들며 몸도 힘들어져 혼자 여행 다니는 일이 힘겨워졌다. 핑계를 대며 출장을 피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여행하는 것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하니 회사에서도 강요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비행기를 타는 일을 피하다 보니 조금씩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비행기 대신 차로 여행하는 허락을 받았다. 아내가 함께 가서 도와주니 출장지에서도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아내는 내가 일하는 동안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를 구경하거나, 호텔 주변을 돌아보았다.


회사에서는 항공료 대신 마일리지를 지급해 주고, 모임 하루 전에 여행할 떠날 수 있게 배려해 주었다. 돌아올 때는 하루 휴가를 내어 천천히 왔다. 가는 길에는 휴게소에서 (미국의 휴게소에는 화장실과 자판기 밖에 없다) 잠시 머물며 아내가 준비한 도시락을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 군데 정도 여행지를 정해 하룻밤을 묵고 돌아왔다. 이런 식의 여행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회사를 떠났고, 한국에서 온 조카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게 되며 그런 여행 기회도 없어졌다.


지난해 마침내 조카아이들이 시민권을 받아 여름방학 동안 한국에 다녀왔다. 아이들이 집을 비운 틈에 아내와 크루즈를 타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테네시 주 내쉬빌로 3박 4일 출장을 다녀오는 것으로 여름이 끝나버렸다.


요즘 한국 신문을 받아 들면 여행사의 광고를 유심히 본다.


신 미서부 일주 6일은 $599, 미 동부 캐나다 관광 9박 10일은 $1,449, 수시 출발 하와이는 $1,699이다. 유럽 특선도 있다. 정통 서유럽 13일은 $3,599이다. 


여행사 관광버스에 휠체어 리프트가 있는지는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인 여행사 버스에는 그런 장치가 없을 것 같다. 막상 전화를 걸었다가 “죄송하지만 없습니다”라는 답을 듣게 되면 잠시나마 신문을 펼쳐 들고 꿈꾸는 환상이 깨어져 버릴 것 아닌가. 장애인법 위반 여부는 나중의 일이다.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단연코 관광 관련 항목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5위 - #크루즈 여행. 처음 하는 크루즈는 가까운 멕시코가 좋다고 한다. 그다음은 알래스카. 하와이까지 가는 크루즈도 있다. 크루즈는 교통, 호텔, 식사, 그리고 노는 일까지 모든 것이 해결되는 여행이라고 들었다.


4위 - 기차를 타고 미국을 횡단하기다. 장애인이 사용할 수 있는 침대칸이 있다. 낮에는 좌석에 앉아 주변 경치를 즐기고 밤이 되면 좌석을 펴서 침대를 만들어 준다. 침대칸에는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갖추어져 있다.


3위 - 차를 몰고 66번 국도를 따라 미국을 횡단하기다. 전기밥솥과 휴대용 버너만 있으면 간단한 취사는 아내가 해결할 수 있다. 나는 운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젠가 직장동료가 내게 왜 운전을 즐기느냐고 물었다. 내 육신의 절반은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나는 꿈에서 조차 걸어본 적이 없다. 걸어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나의 아바타다. 운전대 뒤에 앉으면 여느 운전자처럼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다. 


2위 - 유럽의 한 도시에 가서 한 달씩 살아보기다. 영국이나 프랑스, 또는 스페인의 소도시에 가서 현지인처럼 살아보고 싶다. 유럽의 도시들이니 장애인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으리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는 월남에 가보고 싶지만, 내가 살기에 어떨지 모르겠다.


1위 - 휠체어 리프트가 달린 벤츠 캠퍼밴을 타고 길에서 살아보기가. 벤츠 밴은 크지 않아 운전이 용이하며 도심에서도 주차가 가능하다. 마음에 드는 곳에서는 며칠 또는 몇 주씩 머물며 아내는 스케치를 하고 나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길 위에서 살고 싶다.


과연 이 중에서 몇 개나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도 여행이며, 꿈도 여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여행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진행 중이다. 다 이루어지지 않아도 상관없다. 여행은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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