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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17'
01/15/2020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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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좋아한다. 해병대 대령을 지냈던 아버지 덕에 늘 군인 아저씨들을 보며 자랐다. 어려서 나의 꿈은 해병대 헌병이 되는 것이었다. 왜 헌병이었냐 하면 헌병은 대령이 타고 있는 차도 세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영관급 장교에게는 차량과 운전병이 주어졌지만, 차는 원칙적으로 공무시에만 사용할 수 있으며 민간인의 탑승을 금하고 있었다. 택시도 귀한 시절이라 소아마비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을 드나들던 나는 가끔 아버지 차를 얻어타곤 했는데, 헌병에게 걸리면 영락없이 차를 세우곤 했다. 죄 없는 운전병이 불려 가 혼이 나곤 했었다.


60년대 한국의 TV는 짧은 방영시간에도 불구하고 콘텐츠가 부족했다. 그걸 메꾸기 위해 미국 드라마에 한국말 대사를 더빙해서 방송했다. 그때 방영했던 미드 중에 2차 대전을 무대로 하는 ‘전투’ (Combat)라는 프로가 있었다. 독일군과 싸우는 미군을 그린 #전쟁 드라마였다.


연속극에 열중하던 어머니도 ‘전투’를 방송하는 시간만은 채널을 세 남자에게 (아버지, 나, 그리고 동생) 양보해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전쟁물은 1차 세계대전에서 월남전까지의 이야기들이다. 화살이 날고 칼로 사람을 베는 역사물이나 가글을 쓰고 레이저빔을 쏘며 싸우는 현대전은 비디오 게임 같아 재미가 없다. 땅을 파서 호를 만들고, 은폐물 뒤에 몸을 숨기고 총을 쏘며, 깡통에 든 전투식량을 데워 먹어야 했던 그 시절의 전쟁물이 좋다. 그건 아마도 내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 전쟁물의 모습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 ‘1917’을 보았다. 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에 비해 드물다. 미국의 개입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기도 했고 이미 오래된 전쟁이기 때문이다. 군인들은 참호를 파서 질척거리고 시체로 가득한 통로를 따라 이동했고, 자살 공격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돌격 전술을 반복하였다. 1914년에 개전하여 첫 5개월 동안 보병전을 치르며 약 50만 명의 병사가 사망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4년 동안 민간인을 포함하여 사망자는 4천만 명에 이른다.


독일군의 알베리히 작전(Operation Alberich)이 영화의 배경이다. 독일은 전술적으로 힌덴부르그 전선으로 철수를 계획하고 영불 연합군의 추격에 대비하였다. 모든 통신망이 파괴된 상태에서 적군의 매복 계획을 간파한 영국군은, 두 사람의 병사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에게 전방 부대에 이 사실을 알릴 것을 명령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쟁영화에는 스펙터클한 전투신이 등장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런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전투신보다는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어 버린 마을의 모습들을 조명한다. 낮과 밤,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잘 배합하여 서늘하고도 처절한 느낌을 잘 표현한다. 


대부분의 전쟁물에서 우리 편은 장비와 인력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애국심과 영웅심으로 이를 극복하고 승리하여 적을 물리치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왜 그만두어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하게 해 준다. 평일 정오 무렵이라 극장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내 또래 또는 나보다 한 10년쯤 연상으로 보이는 중/노년의 관객 (부부 한쌍이 있었다) 10여 명이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샘 멘데스 감독은 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되살려 영화로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1917’ 은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 수상이 유력시되었던 ‘조커’와 ‘결혼 이야기’를 제치고, 상을 받았다. 골든글로브상 수상 자격을 갖추기 위해 급히 제한적인 상영만 이루어졌던 ‘1917’ 은 지난 주말 전국적으로 상영을 시작하자마자 아카데미상 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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