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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밥의 유혹
09/20/20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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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에 다닌지 6년이 넘었다. 세례를 받던 무렵의 뜨겁던 감동은 많이 사그러지고 다분히 습관적으로 다닌다. 세례를 받기 연말, 구역의 어느집에서 가정미사가 있었다. 신부님이 거실에 둘러선 사람들에게 성체를 나누어 주시다 앞에 오시게 되었다. 성체 대신 머리에 손을 얹고 짧은 순간 강복을 주시었는데, 나는 그때 평생 잊을 없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음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네가 겪은 고통을 내가 모두 알고 있다. 힘들게 사느라 수고했다. 이제 내게서 위안을 받아라.’ 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느낌으로 받았다. 6년이 지난 지금도 신앙이 흔들리고 게을러지려 , 그날을 생각하며 나를 다잡곤 한다.

 

그동안 서너명의 신부님을 겪었다. 더러는 실망도 하고 더러는 서운함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미주 카톨릭 공동체의 문제는 신자들에게 있다는 생각이 크다.

 

교회에 나오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아가서는 다음 세상을 준비하며 미리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신학을 알지 못하는 나의 생각이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결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닐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목적은 좋은 옷에 맛난 음식을 먹기 위함도 아닐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이들이 능력껏 일을 하고 필요한 만큼만 쓰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달란트를 10 생산했더라도 2개가 필요하면 자기는 2개만 쓰고 남어지는 필요한 사람을 위해 남겨둘 것이다. 능력이 부족하여 달란트를 2개만 생산했더라도 4개가 필요한 사람은 부끄러움없이 4개를 가져갈 있어야 한다.

 

세례를 받던 조금 놀라운 말을 듣게 되었다. 대모님으로부터 신부님에게 드릴 카드를 준비했느냐는 말을 들은 것이다. 세례를 주시는 신부님에게 용돈을 드려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그날 대모님에게서 돈을 빌려 봉투에 넣어 드렸다.

 

교회 생활을 하며 새로 이사를 가서 집들이를 하며 신부님의 축성을 받게 되면 봉투를 준비해야 하고, 결혼식이나 장례미사, 하물며 병자를 위한 봉성체를 받을 때도 신부님을 위한 봉투를 준비하는 것이 관행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신부님은 미사예물이 너무 적다고 미사시간에 신자들을 꾸짖기까지 하시는 것을 적도 있다.

 

미주 카톨릭 공동체에 이런 풍토가 뿌리 내린 것은 신자들의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다. 신부님과 눈을 맞추고 신부님과 가까운 친분을 맺기 위해 애쓰다 생긴 일들이 아닌가 싶다.

 

혹시 이런 관행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은 신부님에게 가까이 가는 것이 하느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라는 착각에서 것은 아닌지.

 

신앙공동체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서로 돕고 사는 지역사회를 지칭하는 것이다. 능력껏 벌어 필요한 만큼만 쓰고 부족한 사람들과 나누며 사는 곳이다. 재능이 있고 사업수완이 좋아 돈을 버는 이들이 다소 넉넉히 교무금과 헌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친분을 쌓을 목적으로 신부님을 골프장으로, 고급식당이나 리조트로 초대하고 과다한 선물공세를 하는 것은 개인의 신앙발전이나 건전한 공동체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부님이 낮은 자세로 사목을 하시며 고통과 환란 중에 있는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실 있도록 돕는 일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한국에서 오신 신부님들은 대개 2-3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간다. 신자가 많아 매일 미사를 올리는 한국과 달리 교포사목은 다소 시간적 여유가 있다. 임기동안 영어나 스페니쉬, 또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 사진, 미술, 또는 음악 등을 공부한다면 유익한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돈은 벌기 보다도 쓰기를 잘해야 한다고 들었다. 재물이 많은 이들은 적게 가진 이들을 생각하며 재물을 써야 한다. 재물에 맛을 들인 성직자는 과연 염불에 마음을 두겠는가. 아니면 잿밥에 마음을 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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