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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텃밭 무법자
06/04/2020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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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 마당 한구석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던 석류나무에 처음으로 열매가 달렸다. 한두 개가 아니고, 열개도 넘게 달렸다. 코로나 탓에 칩거 중인 아내가 거름도 주고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더니 뒷마당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밭도 늘리고 그늘막도 세우니, 여느 해보다 풍성하다.


생명의 진화는 식물에서 동물로 옮겨 온 것이 분명하며 식물은 동물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동물은 주변에 식물이 없으면 먹이사슬이 형성되지 않아 살 수가 없다. 식물의 끈질김과 생명력은 놀라울 정도다.


작년에 심었던 자리에 새로 씨를 뿌리지 않았는데도 토마토들이 자라고 있다. 떨어졌던 열매에서 나온 씨앗이 숨어 있다가 봄비에 싹이 난 것이다. 뒷동산에 있는 해바라기도 채소밭으로 내려와 세 그루가 자라고 있다. 바람에 날려 온 것인지, 새가 떨구고 간 것인지, 숨어있던 씨앗이 발아한 것이다.


밭에는 호박, 고추, 오이, 고수, 파, 깻잎, 근대 등이 자라고 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것이 보인다. 그 자라는 모습이 신기하고 신통하여 나는 저녁에 아내가 밭에 물을 줄 때면 페티오에 나가 구경을 한다. 밭에 들어가는 물값에 아내의 노동까지 더 하면 앞으로 먹게 될 소출들은 참으로 비싼 놈들이다.


원하지 않는 장소에 나는 식물은 꽃이건, 나물이건 모두 잡초다. 아내는 일주일에 한두 번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김을 맨다. 체육관도 모두 문을 닫은 요즘, 흙냄새 맡으며 하는 운동이다. 


밭에는 어린 채소의 잎을 먹고사는 놈들도 있다. 우리 집의 무법자는 집게벌레다. 집게벌레는 야행성이라 낮에는 어딘가 숨에 있다가 밤에 나와 어린잎을 잘라먹는다. 매일 밤 10시가 되면 종소리와 함께 “청소년 여러분, 귀가할 시간입니다”라고 라디오 방송에서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 집에서는 이 시간이 무법자를 잡는 진압군이 출동하는 시간이다. 손전등과 젓가락으로 무장한 아내는 뒷마당을 한 바퀴 돌며 소탕작전을 펼친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열댓 마리씩 잡았는데, 이제는 서너 마리 정도가 잡힌다.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은 식물도 다르지 않다. 10여 년 이상 집안에 두었던 선인장이 있다. 30년 전에 직원들에게서 선물로 받아 사무실에서 키우던 선인장에서 잘라 키운 것이다. 그러니 이놈은 선대 때부터 실내에서만 살아온 셈이다. 볕을 받고 잘 자라라고 페티오에 내어 놓았더니, 얼마 전 폭염에 큰 화상을 입었다. 집안에서만 살며 연약해진 살이 뜨거운 햇살을 못 견딘 것이다. 사람이나 식물이나 적당한 자극이 필요한 모양이다.


재택근무와 칩거 기간이 늘어나며 빵을 굽고 마당을 가꾸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얼마 전 신문에는 정원에 허브와 채소를 키워 이웃과 물물교환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실렸다. 어떤 이는 오렌지를, 다른 이들은 머핀이나 화장지를 들고 와 그가 키운 채소와 바꾸어 간다고 한다. 코로나 덕에 사람들은 빵을 만들어 먹고, 자기가 재배한 채소를 이웃과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아내가 땅을 일구어 밭을 만드는 동안, 나는 수염을 키웠다. 코로나가 바꾸어 놓은 우리 집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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