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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05/01/202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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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추와 앉은뱅이와 난장이가 등장하는 책을 읽었다. 요즘 이들을 이렇게 불렀다가는 장애인 비하라며 엄청난 비난을 받을 것이다. 나는 앉은뱅이지만 ‘앉은뱅이’라고 불린 기억은 없다. 어렸을 때 동생이 싸우다가 나를 ‘병신’이라는 불렀다가 아버지께 크게 혼이 났던 적이 있다.  아버지는 동생에게 형은 ‘병신’이 아니고 ‘불구자’라고 가르쳐 주었다. 그 후 불구자라는 호칭은 ‘장애인’으로 바뀌었다. 


장애의 유형과 상관없이 심신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통틀어 장애인이라고 한다. 꼽추나 앉은뱅이나 난장이보다는 거부감이 없는 호칭이긴 하지만, 그 사람을 제대로 표현하는 말은 아니다. ‘아무개가 장애인이다’라고 하면 그 사람이 팔을 못쓰는지 다리가 불편한지 알 도리가 없다.


오늘 읽은 책 이야기를 하자.


조세희의 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단편소설을 묶은 작품집이긴 하지만 마치 장편소설과 같은 책이다. 실린 작품의 이야기들이 모두 연결되는 연작소설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70년대 도시 재개발로 밀려난 서민 가정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소설은 각각 하류층(영수와 그 가족), 중류층(신애 가족), 자본가(윤호)의 시점에서 내용을 풀어낸다.


우리 아버지의 외사촌 (우리는 그를 불광동 아저씨라고 불렀다)은 불광동 언덕에 무허가 주택을 짓고 살았다. 아버지가 군에서 대민 후생 사업에 쓰라고 내어준 시멘트를 가져다가 벽돌을 찍어 공터에 집을 지었는데, 구청에서는 무허가 건물이라며 철거하라고 했다. 정해진 날짜에 집을 비우지 않자 구청에서 철거반이 나왔는데, 이웃에 사는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잘 쓰지 못하는 아버지 5촌 아주머니가 철거반원을 붙들고 싸움을 벌이다가 경찰서로 잡혀갔다.


해병대 대령이었던 아버지가 찾아갔고, 마침 지서장이 군출신이라 사건은 적당히 무마가 되고 불광동 아저씨네는 계속 그 집에 살 수 있었다. (60년대 초, 군인의 세도가 당당하던 시절이다.)


60-70년대 한국은 소설 속에 그려진 그대로다. 못 사는 집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겨우 나왔고, 딸들 중에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았다. 15-16살 된 여자 아이들은 남의 집 식모로, 남자아이들은 영세공장이나 가게에 점원으로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다. 내 기억에 우리 집에도 이런 나이 어린 식모들이 (그때는 다를 이렇게 불렀다) 있었다. 그러다가 한국에 산업화가 이루어지며 여자 아이들은 공장으로 몰려갔다.


구파발에서 양계장을 할 무렵 집에는 숙식을 하는 일꾼들이 늘 2-3명 있었는데, 겨우 초등학교를 마쳤거나 중학교를 중퇴한 아이들이었다. 


벽제에서 갈빗집을 할 때 일하던 여종업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돈을 벌어 다만 얼마라도 집에 보내야 할 형편의 아이들이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와 살고 있는 조카아이들 또래였다. 내 조카딸은 17살이고, 사내아이는 15살이다. 철없는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이 공장에 나가 밤늦도록 일을 하며 만든 것이 지금의 한국이다.


“제발 연필 좀 아껴 써라” (216 페이지)는 대화가 나온다. 물자가 귀하던 시설이다. 가게에서는 아이들이 다 쓴 공책이나 학습지로 봉투를 만들어 썼다. 푸줏간(정육점)에서는 고기를 신문지로 둘둘 말아서 주었다. 연필이 닳아 작아지면 다 쓴 모나미 볼펜 몸통에 끼워 썼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공장 매연 때문에 늘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우리가 살던 구파발과 벽제에도 이런저런 공장이 들어오며 폐수로 인근 냇가가 죽어갔다.


재벌 기업과 노동자들 간의 대립 끝에 큰 아들이 회장의 동생을 죽이고 만다. 소설에는 기업의 탐욕과 간부들의 비인간적인 태도가 나오지만, 과연 그 시대의 잔혹함을 그들만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독재자와 그의 추종자들은 사리사욕과 정권유지에 필요한 막대한 비자금을 기업들에게 요구했다. 그들에게 상납하기 위하여 재벌들은 탈세를 하고 근로자들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급여와 혜택을 줄였을 것이다. ‘유유상종’이라고 했다. 정치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서로를 감싸며 몇몇 재벌과 독재자에게 모든 탓을 돌린다. 그들 모두는 그 시절 자행되었던 부도덕하고 불법적인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무렵 집에 돈이 있어 학교에 다녔던 아이들은 학생운동이네 뭐네 하며 몰려다니다가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정권을 잡았으며 이제 기득권층이 되었다. 부모 잘 둔 덕이다.


이 책은 요즘 세대들에게는 마치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나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도로 읽힐 수도 있는 이야기다. 하지만 50년 전 우리는 정말 이런 세상에서 살았다.


이제 아무도 꼽추를 ‘꼽추’라 부르지 않고, 앉은뱅이를 ‘앉은뱅이’라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호칭이 어떻건 그들을 멀리하려는 태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요즘도 사람들은 집 근처에 장애인 시설이 들어서는 것을 결사반대한다. 집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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