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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미, 칠월의 솔
04/20/202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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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는 여성 작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한국문단에서 꾸준히 인기를 누리고 있는 몇 안 되는 남성 작가다. 그의 작품집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을 읽었다.


요즘은 장편소설 공모전에 당선되어 등단하는 작가들도 있긴 하지만, 한국의 소설가들은 대부분 신춘문예공모전에 단편으로 당선되어 등단을 한다. 매달 문학잡지를 통해 많은 단편소설들이 발표되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신인작가들은 단편을 모은 작품집으로 출발을 한다. 장편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작가들도 몇 년에 한 번씩은 단편을 모은 작품집을 낸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는 이런 단편집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문단은 조금 다르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서 단편집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마도 201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던 ‘앨리스 먼로’(Alice Munro) 이후 단편집이 베스트셀러가 된 일은 없었지 않나 싶다.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장편과 달리 단편소설은 사진으로 치면 스냅사진이다. 삶의 일부를 살짝 보여주고 만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독자는 알 길이 없다. 뜬금없이 시작하기도 하고, 끝도 없이 끝이 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좋은 단편은 독자에게 강한 여운을 남긴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이 그러하다.


다시 김연수의 책으로 돌아가자.


‘깊은 밤, 기린의 말’에는 심한 자폐증을 앓고 있는 아이 ‘태호’가 등장한다. 태호의 누이들은 부모가 자기들을 동물원에 버리려 했었다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태호의 아버지는 아들의 병을 이해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사서 보고, 엄마는 아들과 죽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고 치킨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내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였다. 소아마비를 앓아 걷지 못했던 나는 가족에게 버림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와 병원에 갔다가 약을 타기 위해 약국에 가야 했다. 할아버지가 팔에 안고 긴 줄에 서 있기에 나는 그때 이미 너무 커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근처 벤치에 앉혀놓고 건물 모퉁이를 돌아 약국으로 갔다. 한참 지났다고 생각했는데,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나를 버리고 갔다는 생각이 들어 울기 시작했다. 잠시 후 하얀 모자를 머리에 쓴 간호사 누나가 내 앞에 멈추어 서서 왜 우느냐고 물었다. 그녀의 팔에 안겨 약국으로 가니 할아버지가 약을 받아 나오고 있었다.


태호의 아버지와 달리 돌아가신 아버지는 나의 병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쩌면 모른 척하는 것으로 소아마비는 평생 불구를 남긴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소아마비가 어떤 병인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휠체어에서 안아 내리다가 넘어지며 내 다리가 부러져 두 달 가까이하고 있던 깁스를 벗기던 날, 아버지는 그동안 내 다리에 힘이 생겨 혹시 걸을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허황된 기대를 했을 정도다.


표제작인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에는 이모가 등장한다. 그녀가 부인 있는 영화감독가 도망을 가서 살던 셋방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4월에는 ‘미’ 음으로 들리다가 7월에는 ‘솔’ 음으로 들렸다고 해서 생겨난 제목이다. 그 무렵 남자의 아내가 찾아와 그를 데리고 가는 바람에 빗소리는 ‘미’에서 끝이 났다.


내게도 영화배우처럼 예쁜 이모가 있었다. 할머니가 다락방을 정리하던 날 나온 앨범 속에 서양 여배우의 사진이 있었다. ‘잉그리드 버그만’에 버금가는 미녀가 흑백사진 속에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사진을 접어 긴 총을 만들어 가지고 놀았는데, 저녁에 돌아온 이모가 보더니 자기 사진이라고 했다. 다시 보니 정말 이모 얼굴이 들어 있었다. 이모도 아내 있는 남자와 잠시 연애를 했었다.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에서는 암 말기의 어머니를 모셔간 누나가 매일 어머니의 사진을 찍는다. 아까워서 입지도 버리지도 못했던 수 십 년 된 옷을 끼고 있는 어머니에게 그만 버리라고만 하던 누나가 생각을 바꾸어 어머니에게 매일 하나씩 그 옷을 입게 하고 사진을 찍는다. 옷을 입으며 어머니는 그 시절로 돌아가고, 누나는 어머니가 그 옷을 입던 무렵을 추억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옷에 따라 어머니는 30대가 되었다가 40대가 되기도 하고, 누나는 초등학생이 되었다가, 중학생이 되기도 한다.


우리 어머니도 그녀의 어머니 같았다. 오래된 옷들을 커다란  2층 집 - 타운 하우스 - 2 베드룸 아파트 - 노인 아파트로 점점 공간을 줄여가면서도 버리지 못했다. 나중에는 양로병원에 계시며 이것 가져와라 저것 가져와라 하며 그 옷을 품고 있었다. 나는 왜 그때 어머니에게 그 옷을 입어보시라고 하고 사진 한 장 찍어드릴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실린 작품들은 내게 잊고 지내던, 잊고 싶었던 기억들을 일깨워 주었다. 마치 낡은 사진첩에서 찾은 한 장의 사진이 불러오는 추억여행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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