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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02/17/20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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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 만에 ‘#상실의 시대’를 다시 집어 들었다. 원제는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하루키의 대표작이다. 작품 속에 나오는 존 레논이 만든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노래에서 따온 제목이다.


책 표지에 실린 그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에게도 이런 청춘의 날이 있었구나. 청년 #하루키의 모습은 책의 주인공을 연상시켰다.


1968년을 시작으로 열여덟의 청년 ‘와타나베’가 3년 동안 경험하는 사랑과 방황의 이야기다. 400쪽이 넘은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프레지던트 데이 (2/17일) 연휴의 토요일에 시작해서 이틀 만에 끝냈다. 이렇게 몰입해서 책을 읽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주인공 와타나베를 통해서 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던 청춘의 시간들을 잠시나마 추억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는 집을 떠나 기숙사에서 살며 친구들을 만들고, 여자들을 만나 연애를 한다. 뭐 연애라고 해봐야 젊은 남자의 주체할 수 없는 성욕을 해소하는 정도다. 정말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함부로 다가가지 못한다.


내게는 그런 날이 있었던가 생각해 본다. 20대 초반 마침내 세상에 나아가게 되었을 때, 내게는 이미 아이가 하나 있었다. 교회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내 앞에서 자기 연인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뿐, 나를 연애 대상으로 생각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미국에 와서 25살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내게 대학생활은 힘겨운 삶의 연장이었을 뿐이다. 학력이 목적이었다. 어른이 되었다는 뿌듯함이나 해방감은 없었다. 저녁 6-7쯤 시작하는 야간수업에는 대부분 나이가 든 학생들뿐이었으며,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듣는 수업 중간에 꾸벅하며 조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학에 4년을 다녔지만 단 한 사람의 친구도 사귀지 못했다.


책에서는 와타나베의 스무 살 생일에 ‘나오코’에게서 소포가 온다. 그녀가 짠 포도색의 라운드 스웨터였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그 나이쯤에 파란색 조끼를 짜준 소녀가 있었다.


와타나베에게는 ‘미도리’라는 대학동창이 있다. 그녀는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어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고 그를 기다려 준다. 와타나베는 그녀가 투정을 하고 화를 내며 가버려도, 전화를 해도 받지 않고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아도, 계속 그녀에게 편지를 쓴다. 여자는 가장 믿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런 행동을 보이는 모양이다.


내게 조끼를 선물했던 소녀도 내게 투정을 부리고 헤어지자고 했다. 내게는 그만한 인내심이 없었다. 그때까지 나는 그녀에게 무수히 많은 편지를 썼었다. 마치 와타나베가 미도리와 나오코에게 시시콜콜한 내용의 편지를 무수히 보냈듯이 나는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본 영화나 책 이야기를 썼고, 꿈 이야기를 썼으며, 그녀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하여 썼다. 그런 내게 헤어지자는 말은 팔을 자르는 고통과 같았다. 자존감에 상처를 입었고, 삶의 의욕을 상실했다. 


와타나베는 답장 없는 미도리에게 계속 전화를 하고 편지를 보낸다. 그리고 책 말미에 결국 그녀는 그에게 돌아온다. 나는 그날 이후 그녀에게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았다. 대신 그녀를 잊고자 노력했다. 만약 그때 내가 그녀에게 단 한 줄의 편지라도 보냈더라면 나는 겨울이면 그녀가 짜주는 목도리와 장갑을 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게 그 시절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의 시대’다. 


아내가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아마도 실소를 금치 못할 것이다. 책이 가져다주는 추억여행 정도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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