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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다음날
12/27/2019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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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날, 아이들은 이른 저녁을 먹고 돌아가고 누이만 남아 밤늦도록 이야기를 하는데, 밖에는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린다. 한부모, 같은 집에서 자랐지만 누이와 나의 기억은 겹치는 것도 있지만 다른 것이 더 많다.


전에는 서로의 기억이 다르면 이를 따지며 “내가 옳네, 네가 틀리네.” 하며 고집을 부렸지만 언제부턴가 그럴 수도 있었겠다 하며 넘어간다. 우리의 기억이 얼마나 엉성하며 자기중심적인가를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60-70년대 한국에서 방영되던 미국 홈 드라마 중에 ‘도나 리드 쇼’라는 프로가 있었다. 아들과 딸, 두 자녀가 있는 전형적인 60년대 미국 중산층 가정이 이야기다. 오프닝은 늘 아빠와 아이들이 아내인 ‘도나 리드’에게 아침인사를 하며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는 오프닝은 엄마가 점심 도시락을 넣은 브라운 백을 하나씩 건네주며 배웅을 하는 것이었다.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다. 내 기억의 투명성에 의심을 갖기 시작한 얼마 전 유튜브에서 ‘도나 리드 쇼’를 찾아보았다.


출근길 아빠는 가방을 들고나가고, 엄마가 준비한 브라운 백 도시락은 하나밖에 없는데, 이걸 책과 함께 아들에게 건네니, 아들은 책만 받고 도시락은 다시 엄마에게 건네준다. 그제사 엄마는 도시락의 주인이 바뀐 것을 알고, 마지막으로 집을 나서는 딸아이에게 브라운 백을 준다.


내가 철떡 같이 믿고 있는 많은 기억들이 사실은 이처럼 변형되고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세월이 지나며 여기에 살을 더하고 다듬에 좋은 기억은 더 아름답고 애틋하게, 가슴 아픈 기억은 더 처절하고 원통하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집에는 14살, 16살의 조카들이 있다. 가끔 이놈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게는 엊그제 같은 일을 옛날 일이라고 우긴다. 하루는 너희들에게 옛날은 언제인가 라고 물었더니 10년 전쯤이라고 한다. 10대 중반의 아이들에게 10년은 정말 옛날일 것이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출근길, 고속도로 주변의 산들이 모두 하얗게 눈을 뒤집에 쓰고 있다. 근래 보기 드문 광경이다. 캘리포니아 주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연결하는 5번 고속도로는 LA 북쪽으로 2 시간 떨어진 지점이 눈으로 폐쇄되어 차들이 8시간째 발이 묶여 있다고 한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저런 기억을 만들어 주었을 2019년이 저물어 간다. 5년 또는 10년 뒤, 2019년 12월은 내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는지. 어쩌면 나는 출근길 눈에 갇혀 엄청 고생을 했다고 기억하게 될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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