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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M&A의 귀재 커크 커코리언과 비교되는 '롯데 신동빈'의 승부사 기질은?
08/18/201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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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vegastimes.com이 전하는 라스베이거스 관련 뉴스

최근 경영권 내분으로 진통을 겪었던 롯데 그룹 신동빈 회장이 롯데가 후계 경쟁에서 거의 완승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를 형이라 아우라 하기 어려울 정도의 난형난제(難兄難弟) 싸움이었지만 일단 외관상으로는 승부사 기질이 있는 '동빈 아우'가 근성과 지략면에서 이겼습니다. 

 롯데家의 황태자로 사실상 등극했습니다. 일본에서 열린 롯데 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입니다. 

본국 매체들에 따르면 롯데홀딩스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신동빈 회장을 중심으로 현재의 경영진이 안정적인 경영체제를 확립하고 법과 원칙에 의거하는 경영을 보다 향상시키고 동시에 투명성이 높은 규범 경영을 계속해서 추진할 것을 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
 여기서 그의 발빠른 승부사 기질을 다시 한번 엿보게 합니다. 


90도 가까이 3번이나 고개 숙인 신동빈 롯데 회장(굽힐 때 확실히 굽혀 그의 승부사 기질을 엿보게 하는 공항 입국 인사)

 특히 롯데 그룹을 본국 재계 서열 5위로 아버지인 총괄 회장 신격호와 함께 오늘에 이르게한 그의 두드러지면서도 냉혹한 기업 인수 합병(M&A) 기질이 빛을 발한 것으로 보입니다. 20여일에 걸친 이번 후계 싸움에서도 형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을 제치고 '신동빈 원(One)리더'체제로 일단락 시켰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같은 속전 속결의 승부사 기질은 라스베이거스에서 M&A 귀재로 불리는 얼마전 사망한 커크 커코리언(Kirk Kerkorian)과 비교되고 있습니다.성장 배경과 부의 축적 과정은 다르지만 기업 인수 합병의 공격적인 승부사 기질은 닮은데가 너무 많아 보이기 때문 입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의 냉혹한 승부사 기질은 가족과 회사는 별개로 회사를 위해서는 어떤 타협도 않는다는 그의 경영관이 이번 롯데가의 경영권 싸움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친족 동원한 경영권 개입은 원천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셈입니다.

롯데그룹 형제의 난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난 7월 말쯤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 등 친족 5명과 함께 전세기 편으로 일본으로 건너 가면서 시작됩니다. 


이후 신격호 총괄회장이 자신을 제외하고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절차도 없이 손가락 지시로 해임했습니다. 신격호 총괄회장의 지금까지 해온 황제 경영 즉,  손가락 경영을 엿보게 하는 단면이기도 합니다. 물론 손가락 해임에는 경영권을 승계 받은 차남 신동빈 회장도 포함됐습니다. 이는 형인 신동주가 아버지 신격호를 앞세워 동생인 신동빈을 제거하기 위한 형제간의 한일 롯데 경영권 싸움이 본격화 되는 신호탄 이었습니다. 


특히 한국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장남 신동주는 동생인 신 회장을 제거하기 위해 KBS 등 공중파 3사를 동원해 인신공격성의 게릴라식 폭로전을 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폭로전은 오히려 등돌린 여론으로 되레 역풍만 맞았습니다. 고자질로 일관한 '한심한 롯데 패밀리'로 기업 이미지만 손상시켰기 때문입니다, '동준 형'이 나온 티브이 화면에는 롯데 경영권 즉, 못먹는 '감' 찔러라도 보겠다는 심사로 비쳐졌습니다. 뿐만아니라 폭로 과정에서 예상치 않은 한일 롯데의 국적 논란과 지배구조의 투명하지 않은 치부만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 왼쪽부터 신격호 총괄회장, 신동빈 회장, 신동주 전 부회장/ 조선일보DB

 아버지를 동원한 형의 TV 폭로전에 신동빈 회장 측도 가만있지는 않았습니다. 형이 94살로 판단이 어려워진 아버지를 젊게 보이도록 화장시켜 티브이에 인터뷰를 하게 하는 등  폭로전에 매진하는 동안 동생인 신 회장은 내실을 기하기 위해 일본에 머무르면서 조용히 주주들을 다독입니다. 


주주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는 지략까지 갖춘 승부사의 면모를 보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주주들과 즉각 반격에 나섭니다.  아주 매섭게 역공에 나섭니다.   

요컨대 “신 총괄회장의  이사 해임 결정은 정식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불법 결정”이라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후  일본롯데홀딩스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 총괄회장을 일본롯데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에서 전격 해임했습니다. 

한 일 롯데의 창업자인 아버지를 차남이 내친 것입니다. 일본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치고 받는 막장 대결로 치달았습니다. 신동빈 회장의 사실상 쿠데타 입니다. 90살이 넘은 늙은 아버지를 아들이 내쳐 여론은 불리한 형국이지만 신동빈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여기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아버지라 할지라도 회사를 위해서는 타협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승부사적 냉혹한 기질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이같이 냉철한 전문경영인 성향은 사업 미래를 내다보는 전형적 사업가인 아버지를 타고 난 닮은 점도 있지만 그 뿌리는 신 회장의 오랜 증권사 경험과도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88년 롯데상사에 입사하기 전 8년 동안 일본 노무라증권 런던 지점에서 금융 관련 근무를 했습니다. 경영의 세계화를 이끌 수 있는 공격적인 뚝심이 여기서 나왔지 않나 싶습니다. 즉, 투자 결정이 빠르고 스케일이 아주 크다는 것이 주위의 평입니다.  승부처에서는 매우 공격적인 정공법으로 나선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기업 재무관리와 글로벌 국제금융시스템을 체득한 오너가 2세 경영자는 신 회장이 거의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 그는 재무 수치에 밝다는 재계의 평입니다. 냉혹한 인수 합병의 승부사로서 돈의 흐름까지  잘 파악한다는 말입니다.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신동빈 회장은 겸손하고 조용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성격이지만 기업 경영과 관련해선 냉혹하다는게 지인들의 공통된 평가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본 롯데 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완승을 거두고 호텔을 떠나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photo:TV 아사히)

M&A의 귀재로 불리는 故 커크 커코리언(Kirk Kerkorian)
위 사진에서 보듯 우선 두 사람의 닮은 눈매가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기업 인수 합병의 냉혹한 승부사로서 먹이가 걸렸다 하면 반드시 삼키겠다는 예리하면서 큰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먹이를 본 듯한 독수리의 눈(Eagle Eye) 빛 입니다.
마치 쏘아보는 듯한 눈매로  날개를 한껏 편 채 먹이를 채려는 듯한 느낌 입니다. 

승부사들의 예리한 눈 빛은 우리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듯 합니다.  

사실 롯데가 본국에서 재계 서열 5위로 도약하고 경영권 내홍에서도 '한 일 원리더 체제를 공식화'하게된 큰 원동력은 신동빈 롯데 회장의  기업 인수 합병에서 보여준 공격적인 기질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특히 신동빈의 '한 일 원리더' 체제 공식화는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키가하라 식 결전"으로 언론들이 비유하고 있습니다. 신동빈이 주총을 통해 "다 먹느냐 아니면 다 잃느냐" (all or nothing)의 긴장된 상황을 일거에 끝내려 했기에 빗댔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는 눈매가 예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완벽한 승리였기에 롯데의 신동빈이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증폭됐습니다. 

 
 일본 전국시대, 사방의 적들을 한데 모아 일거에 제압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세키가하라 전투의 자세한 스토리가 궁금해집니다. 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1600년 9월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이끄는 동군(東軍) 세력의 영주와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가 이끄는 서군(西軍) 측 영주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정권의 주도권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세키가하라에서 벌였습니다.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롯데 신동빈 회장 측근들의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를 빗대 언급한 이른바 ‘세키가하라 전투’입니다.

 일본 역사에선 천하를 판가름하는 전투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전투를 기점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가문이 메이지유신 무렵까지 일본을 지배하게 됩니다. 
 
눈이 크고 눈매가 예리했다고 전해져 내려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초상화(출처:blog,daum.net, ramirezzim)

동시에 끊임없이 전란이 계속돼 온 일본에 260여 년간 평화가 이어집니다.

  전투의 실질적인 양쪽 총대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이시다 미쓰나리였습니다. 당초 패권을 쥐고 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어린 아들(도요토미 히데요리)만을 남겨 둔 채 1598년 8월에 죽자 도쿠가와는 어린 히데요리를 대신하는 섭정회의의 수반으로서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정권은 당초 도쿠가와를 필두로 하는 5대로(大老)와 이시다를 필두로 하는 5봉행(奉行)에 의한 집단지도체제로 구성됐습니다. 하지만 1599년 들어 이 구도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수차례 갈등 끝에 양측이 각자의 세력을 규합해 세키가하라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신동빈 회장으로선 친·인척을 중심으로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세력을 규합하는 ‘반(反)신동빈 동맹’ 자체가 서군과 비슷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세키가하라 전투에 참가한 병력은 동군이 9만, 서군이 8만으로 총 17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규모로는 일본 역사상 최대 전투 중 하나지만 전투 자체는 채 반나절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익을 좇은 서군의 결속이 그만큼 약했기 때문입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수면 아래 적대 세력까지 일거에 무찌르기 위해 일부러 서군 세력이 규합하도록 내버려두기도 했습니다. 

전투 결과 도쿠가와의 동군이 승리해 에도막부가 수립됐습니다. 이후 서군에 참여했던 여러 지방 영주, 즉 다이묘가 실각하거나 전복되는 등의 파급효과가 일어나는 등 정치적인 파장도 컸습니다.

게임 결전(決戰)의 로고

 

 오늘날 일본에서는 ‘세키가하라’라고 하면 일종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합, 사건 등을 가리키는 관용어로도 쓰입니다.출처:중앙일보 기사 일부 인용 



 
 이제는 롯데그룹史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국 매체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1948년 일본에 세운 껌 회사 주식회사 롯데로 시작 합니다.  한국 사업은 1967년 롯데제과를 설립하며 시작했습니다.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로 재일교포였던 신격호 회장이 한국에서 사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부터 입니다.

롯데는 1970년대 각종 회사를 인수·설립하면서 유통·관광 분야에서 급속도로 사업을 확장해갑니다.

 1973년 롯데호텔을 세워 관광산업에 뛰어들었고, 1974년 칠성한미음료를 인수한 뒤, 롯데칠성음료로 이름을 바꿔 국내 1위 음료업체로 키워냈습니다. 이후 롯데삼강, 롯데햄·우유, 롯데리아 등을 운영하는 국내 최대 식품 기업이 됩니다. 롯데건설, 호남석유화학, 롯데상사 등 식품 외 다른 산업에 뛰어든 것도 이 시기입니다.

그리고 롯데그룹은 1979년 롯데쇼핑을 설립해 본격적인 백화점 사업에 뛰어듭니다.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이 시작이었습니다. 서울올림픽을 앞둔 1988년에는 서울 송파구 잠실에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 복합시설인 롯데백화점 잠실점을 개장합니다. 이듬해 롯데월드까지 문을 엽니다.
lotte_world_outlook-305.jpg



롯데그룹은 특히 신동빈 회장이 그룹 경영을 책임지는 정책본부장을 맡은 2004년 이후 공격적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을 다변화합니다. 이 때 부터 그의 승부수 기질이 돋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롯데손해보험과 롯데주류, 롯데홈쇼핑 등을 새롭게 운영했고, 말레이시아 석유화학기업 타이탄, KT렌탈 등을 인수하며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했습니다. 

후계구도에서 자신감 앞세워 M&A로 승부를 건 뉴욕 팰리스 호텔 인수 건은 그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그가 미국 뉴욕 맨해튼의 상징물중에 하나인 '더 뉴욕 팰리스 호텔' 인수에 성공하면서 글로벌 '빅딜'의 승부사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8억500만달러(8920억원 상당)에 더 뉴욕 팰리스 호텔 인수 성공으로 신 회장의 M&A 승부사 감각이 더 빛을 발하게 됐다는 것이죠

신 회장은 지난 10여년간 인수한 기업이 무려 35개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최근 국내 10대 그룹이 지난 2010년 이후 5년 동안 인수·합병(M&A)을 통해 늘린 계열사가 100곳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했습니다. 물론 M&A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그룹은 롯데였습니다. 이 기간 롯데가 인수·합병으로 늘린 계열사 수는 19곳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롯데그룹은 2010년 이후 M&A를 통해 계열사 81곳 가운데 바이더웨이, 현대정보기술, 롯데하이마트, 현대로지스틱스 등 19곳을 계열사로 추가했습니다. 현재 롯데그룹 계열사의 23.5%가 최근 5년여간 M&A로 편입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출처:조선닷컴 기사 일부 인용

그야말로 롯데 신동빈 회장이 이같이 명실상부한 기업 사냥꾼이 됐습니다. 이에따라 그의 지나온 10년이 롯데를 몰라보게 달라지게 했습니다. 이제 그의 아버지 신격호의 껌과 음료수 등 식료품 사업이 주 였던 롯데가 아닙니다. 그만큼 위상이 달라졌다는 말입니다.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11월 주한영국대사관에서 열린 수훈식에서 스콧 와이트먼 대사로부터 영국여왕 대영제국지휘관훈장(CBE)을 받고 있다.



롯데그룹은 70여곳이 넘는 계열사를 거느리며 재계 순위 5위로 자리매김하면서 올라섰습니다. 

특히 롯데그룹의 몸집은 신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뒤 무려 4배나 커졌습니다. 롯데그룹 매출은 2004년에 23조 원에 머물렀다가 지난해 83조 원까지 올랐습니다.

롯데그룹 매출이 지난해 80조 원을 넘어선 것도 신 회장의 공격적인 글로벌 경영의 힘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근년에 들어 중국 투자 사업으로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그동안 그의 사업성과로 볼 때는 비교하기가 좀 그렇다는 것이죠. 

경영권 싸움으로 드러난 투명 경영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과 반 롯데 정서 극복 등 여러가지 풀어야할 과제가 있지만 그의 공격적인 사업 행태로 보아 앞으로 덩치를 키우기 위한 기업 인수합병은 잠시 정중동(靜中動)한 뒤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미 카지노 거목이면서 인수합병의 귀재인 커크 커코리언의 스토리를 전개시키면 재미의 맛을 더 할것 같습니다.


그야말로 그는 현재 세계 최대 도박도시 라스베이거스를 만든 장본인이고 카지노를 사고 팔아 큰 돈을 번 냉혹한 M&A 승부사로서 말년에는 엠지엠 미라지 그룹의 주를 갖고 있는 트라신다 회사를 운영했습니다


지금은 웨스트 게이트 호텔로 바뀐 1968년 당시 라스베가스 힐턴 호텔 건설 현장에서 포즈를 취한 커크 커코리언

그의 출신 배경과 라스베이거스에서 사업 성공 과정이 궁금해집니다.

그는1917년 아르메니아 이민자 아들로 태어나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사회에 진출했습니다. 22살이 되던 해 시간당 45센트를 받는 단순 노동직으로 돈을 벌던 그의 초라한 인생은 세계 제2차 세계대전을 맞으면서 변화를 맞게 됩니다. 우연히 캐나다 공군에서 비행사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해 전쟁 중 캐나다산 폭탄을 스코틀랜드로 운반하는 임무를 맡아 2년 반 동안 부를 축적했습니다. 

커코리언이 억만장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사업적 혜안과 역시 승부사적 기질입니다. 특유의 사업적 본능에 따라 기업 사냥꾼으로 엄청난 부를 쌓게 됩니다.  커코리언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 방문한 라스베이거스에서 사업의 미래를 걸고 1947년 소형 전세기를 구입해 LA에서 라스베이거스를 왕복하는 비정기 셔틀 비행기 운항사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출처:미주 한국일보 기사 일부 인용)

그리고 라스베이거스 개발, 특히 카지노 호텔 인수 합병에 주도적으로 참여합니다. 
그의 라스베이거스 첫 투자는 땅이었습니다. 1962년 라스베가스의 중심에 있는 땅 80 에이커를 당시 돈으로 96만 달러에 매입했는데, 
이 땅 중 일부를 1968년 시저스 팰리스호텔을 건설하고자 하는 Jay Sarno 에게 
5백만 달러를 받고 팝니다. 

 제이 사르노가 오픈한 시저스 팔리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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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당시의 시저스 팰리스 

첫 땅거래 치고는 5배가 더 되는 괜찮은 이익을 남겼습니다, 그것도 일부의 땅만 팔았습니다. 

이같은 토지 거래와 카지노 호텔 인수는 힐튼 호텔과 윈 라스베이거스의 전신인 데서트 인  등 라스베이거스 내에서만도 20여 군데나 그의 손을 거처갔습니다. 돈벌이가 아주 괜찮았습니다. 이 때 부터 승승장구였습니다. 승부사 기질이 돋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는 벅시 시걸이 세운 전설적인 플라밍고 호텔 카지노를 1천2백50만 달러에 사들여 1969년 힐튼 호텔체인에 6천만 달러를 받고 되팝니다. 그리고나서 그 자금으로 인터내셔널 호텔을 매입해 곧 바로 힐튼 호텔 체인에 1억 달러를 받고 다시 되팔았습니다. 이렇게 모인 자금은 커코리언이 MGM 영화사의 주식를 인수하는데 쓰여져 주식 40%를 인수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1970년대 당시로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리조트 호텔인 MGM 그랜드 호텔을 라스베이거스에 오픈했습니다. 

이러한 커코리언은 ‘마이더스의 손’으로 통하며 라스베거스 카지노 업계의 판도를 좌우하는 막강한 실력자로 손꼽히게 됩니다.

그런데 1980년 11월 이 호텔에서 큰 불이나  87명이 사망하는 참혹한 사고가 있은 후 그는 위기를 맞았습니다. 
   MGM Grand Hotel Fire Disaster
지금은 발리스(Bally's)호텔이 된 1980년 당시 불이나 87명이 숨진 MGM GRAND


그렇지만 그는 이 호텔을 개보수해 5억 5천만 달러에 팔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 후 커코리언은 1981년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를 3억 8천만 달러에 매입한 후 이를 1986년 이탈리아계 회사에 13억 달러에 매각함으로써 엄청나 부를 축적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8년에는 지금은 없어진 데서트 인 호텔을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5년 후 큰 돈이 되자 팔았습니다.
1993년 12월 8일에는 10억불을 들여 총 면적만해도 43만 4천여평에 이르는 30층짜리  5천 5개 객실의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MGM Grand 호텔을 건설해 오픈 했습니다.



 불이 난 엠지엠 그랜드가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줌에 따라 엠지엠 그랜드 라는 행운의 이름을 이 호텔 이름으로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가 호텔 이름을 MGM Grand로 명명하게 된 계기는 영화사  MGM에 주식투자로  큰 돈을 벌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또 1997년에는 3억 5천만불을 들인 2,119개 객실의 뉴욕뉴욕 호텔을 건설해 오픈하면서 라스베이거스에서 M&A 승부사로서 위기를 기회로 삼아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그는 특히 2005년에는 기세를 몰아 스티브 윈의 미라지 카지노와 트래저아일랜드를 65억에 적대적 인수에 들어가 지분 절반을 보유하게 됩니다. 


2007년에는 자신의 투자회사 트라신다를 통해 엠지엠 미라지가 소유하고 있는 60억불 상당의 벨라지오 카지노 호텔과 당시 건설 중이었던 아리아 카지노 호텔 등이 있는 시티센터 인수를 통해 그가 진정한  M&A 승부사로서 절정기임을 과시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제왕 자리에 앉게 됩니다. 모여진 돈이 카지노 인수 합병에 쓰여지면서 언론에서 억만장자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큰 돈을 만들었습니다. '억' 소리날 정도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이 때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카지노 M&A 귀재로 불려집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투자 판단에 따른 정신이 흐려지면서 그동안 모았던 많은 돈을 잃게 됩니다.

'카지노 황제' 커크 커코리언이  말년에 뜻하지 않게 큰 돈을 잃게된 이유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1년 새 110억불을 날리게 됩니다.  
특히 포드,GM 투자 등 자동차에 배팅한 게 최대 화근이었습니다. 손실이 너무 컸습니다.  매달 이자만 눈덩이 처럼 불어났습니다. 10억 달러 정도를 투자해 7억 달러 정도를 날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마지막 딜의 채무조정으로 안도는 했지만 그의 재산은 당시 160억불에서 50억달러로 줄어들었습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잃은 돈을 되찾기 위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비즈니스에 사활을 걸었지만 운이 그리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90년대 후반 자산 거품을 등에 업고 카지노를 즐길 만한 사람들이 그리 많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Billionaire investor Kirk Kerkorian (L) arrives at the J. Caleb Boggs Federal Building to testify in his lawsuit against Daimler Chrysler AG December 2, 2003 in Wilmington, Delaware. Kerkorian, whose Tracinda Corp. was Chrysler's largest shareholder until it merged with Daimler-Benz, alledges that Daimler-Benz officials commited fraud during merger talks in 1998.  (Photo by William Thomas Cain/Getty Images)
88세 당시 커크 커코리언의 모습

 그리고 그는 너무 늙었습니다. M&A 승부사로서 예리했던 눈매도 오간데 없습니다. 먹이가 도처에 널려있는데도 잡을 수가 없습니다.세월은 이제 그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M&A 귀재로 불려졌던 그도 인생 말년이 되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Kerkorian Las Vegas (Ethan Miller / Getty)
 
그가 일군 MGM 그랜드 등 화려한 라스베이거스를 뒤로 하고 98세를 일기로 2015년 6월 생을 마감했습니다. 

*** 롯데 회장 신동빈, 그는 누구인가?

신 회장은 1955년생으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올해로 61세다. 

1977년 아오야마가쿠인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80년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마치고 1982년부터 1988년까지 일본 노무라 증권의 런던 지점에서 일했다. 1990년 롯데케미칼에 입사하며 한국 롯데와 인연을 맺었다.

신 회장은 1997년 2월 롯데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2004년 10월 롯데 정책 본부장 취임으로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

2006년 롯데쇼핑을 한국과 영국 증권시장에 상장시켰다. 2004년 롯데호텔 정책본부장을 맡은 후 하이마트, 중국 대형마트 타임스 등 국내·외에서 30여 건의 크고 작은 인수·합병(M&A)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신 회장은 2011년 2월 롯데그룹 회장에 올랐다.

지난해에는 맥주 시장에도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KT금호렌탈' 인수를 계기로 렌터카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이처럼 해외진출과 M&A를 통한 적극적인 경영활동으로 신 회장이 정책본부장에 취임할 당시인 2004년 23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2013년 83조원을 넘어섰다. 출처;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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