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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윤의 허망한 말년은 라스베이거스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12/22/2017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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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Kvegastimes.com이 전하는 라스베이거스 관련 뉴스


 

한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큰 인기를 끌면서 코미디 황제로 불렸던 자니 윤씨가 쓸쓸하고 허망한 말년을 보내고 있다는 뉴스가 관심을 끌게 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넘어 안타까운 마음마져 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혼당하고 치매에 걸린 가운데 쓸쓸한 노년을 엘에이 한 요양원에서 보내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의 나이 82살 입니다. 지금은 휠체어에 실어증 까지 걸렸다고 하네요. 한마리 사슴처럼 슬픈 표정을 지으면서 멍하니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왜 전성기 시절 화려했던 그가 이같이 쓸쓸하고 허망된 노후를 보내게 된 처지와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니윤 치매 헤럴드경제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의 허망한 이같은 말년의 노인 삶은 잘 나가던 젊은 시절 도박의 메카 라스베이거스에서 그 원인이 있지않나 싶습니다. 그 원인 제공자가 감히 라스베이거스가 아닐까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그는 부동산을 비롯해 자산 등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지인들의 전언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누구도 의지할 수도 없는데다 빈털터리 입니다. 미국 시민권자이기에 국가가 지급하는 소셜연금에 기대어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잘 나갔던 시절 벌어들였던 그 많은 돈은 어디로 사라지고 이렇게 요양원에서 쓸쓸하고 황당한 모습을 그를 아끼는 팬들에게 보여주고 있냐는 의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 원인을 그의 잘 나가던 70년대부터 뉴욕과 라스베이거스에서의 활동상 등 어렴풋이 나마 드러난 그의 생활상에서 짚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가 미국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2년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 오하이오주로 유학을 하면서 입니다. 그리고 2년후 오페라 가수가 되기위해 뉴욕으로 자리를 옮겨 호텔 등에서 노래를 하는 가수생활을 시작합니다.

코미디언의 자질도 이때부터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코믹한 재능이 드러나면서 인기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습니다.  뉴욕에 발을 들여놓은 첫해에만 7만 5천불을 벌어들였다고 합니다,

Remembering Johnny Yune: Hollywood’s forgotten Asian star

The Korean?American actor was an unlikely crossover star in the 1980s.


In 1973, Enter the Dragon made Bruce Lee the most popular Asian actor ever to cross over into Hollywood. In 1982, a full nine years after Lee’s death, another Asian performer finally followed in his footsteps. It was not Jackie Chan, a huge star from Hong Kong whose early attempts to crack the American market had fizzled out, but instead an actor/comedian who could be interpreted as a repudiation of everything Lee represented. He may not have been the breakout star that the Asian diaspora might have wanted, but Johnny Yune was the one they got.


그 당시 우리돈으로 환산하면 엄청난 돈입니다. 서울 변두리 지역의 아파트가 1채당 5-6백만원 시절이니까  20-30여채는 사도 남을 돈입니다. 이같은 많은 돈을 벌어들이면서 뉴욕에서 자리를 잡자, 이 지역 연예인들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연예인상을 수상하는 등 그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특히 미국의 유명 토크 쇼인 자니 카슨 쇼에 출연하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갖게 됩니다. 그의 화려한 미국 연예인생에 절정기로 치달았습니다.  




당시 1회 출연료는 자그만치 한국 돈으로 2천 8백만원이나 됐습니다. 이 정도면 돈 주체하기가 힘들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같은 뉴욕의 인기발판으로 1980년대 중반 부터는 도박의 도시이자 환락가인 라스베이거스로 진출합니다.


 카지노 호텔 공연으로 주급을 2만 5천달러나 받았는데 1년에 26주를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또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것입니다.


한국에 부동산 투자는 안했다 하더라도 엘에이나 라스베이거스에 투자를 했더라면 그의 말년은 그야말로 전성기 못지않은 화려한 삶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 요즘입니다, 물론 가정입니다.



이 당시 그는 라스베이거스 뿐만아니라, 애틀랜틱 시티, 리노, 레이크 타호 등 호텔 카지노를 메이저 스타들인 그 유명한 프랭크 시나트라와 밥 호 프 등과 순회 공연까지 펼쳤습니다. 

관련 이미지


인기 절정으로 유명세가 뒤따르면서 돈 보따리가 무거워 주체를 할 수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에서도 토크 쇼의 대부로 그는 KBS SBS 방송국 나들이를 해 자니 윤 쇼로 큰 인기를 끌면서 그에 따른 돈벌이도 많이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물론 두 방송의 출연이 2년정도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혀를 어설프게 굴리면서 특유의 야한 농담도 서슴치 않은 유명 코미디언으로서 한국민들에게 확실히 자신을 각인시켰습니다.

자니 윤 쇼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당시 '이제 잠자리에 들어갈 시간입니다'라는 기발한 유행어를 낳기도 했었습니다. 이 때부터 사실상 그가 한국에 토크 쇼 전성시대를 연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잘 나가는 토크 쇼 개척에 앞서 오랜 라스베이거스 생활이 카지노 도박과 관련해, 여러 정황상 자유스럽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그의 부, 즉 인기로 끌어모은 돈을  카지노가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가 특히 당시 독신으로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또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호텔서 공연을 하는 유명 연예인이기에 각종 콤프로 건네는 카지노의 집요한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을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역시 라스베이거스에 살면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는 도박의 유혹을 그냥 지나칠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에 장기간 공연을 하면서 당시 골프와 테니스 실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공연이 밤에 열리다 보니 자연히 낮 시간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호텔 소유 골프장과 테니스장을 자주 찾았습니다.


물론 당시 결혼도 안하고 있었고 독신생활을 즐겼는데, 이같은 운동 이외에도 시간이 남아돌자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도 카지노에 들러 슬랏 머신 등 도박에도 큰 관심을 갖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 어쩌면 그가 당시 벌어들였던 많은 돈이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도박판에 탕진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저버릴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그가 라스베이거스는 물론 미국 내 여러 군데서 벌었던 많은 돈을 사업에 투자한 흔적도 없습니다. 돈을 날릴 수 있는 그 어떤 사업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큰 사기를 당했냐, 그것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아주 잘 나가는 동료 연예인들 처럼 사기를 당했다는 뉴스 흔적이나 풍문을 찾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벌어들인  많던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예컨대 그가 그 좋은 시절 벌었던 엄청난 돈을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탈탈 털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자니 윤은 자신의 공연은 물론 라스베이거스와 인연이 깊습니다. 사실상 그의 결혼도 라스베이거스가 맺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갈라져 남남이 됐지만 전처인 줄리아 이씨와는 1999년 결혼해 2010년 이혼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와의 첫 만남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섬유박람회 참가 라고 말합니다. 그 박람회 파티장에서 자니 윤을 만나 언론에 노출되면서 얼떨결에 결혼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그녀는 엘에이 한인타운 웨스턴 길에 하이 이불이라는 큰 이불 삽을 운영하는 등 섬유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줄리아 이씨는 자니 윤과의 결혼과 관련해 여러가지에 대해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특히 결혼을 앞두고 자니 윤이 당시 살던 라스베이거스 아파트에 갔는데 평수가 작은 집 안에는 가구 몇점에 슬랏머신 기계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저택도 아닌 좁은 집안에 살림도 없이 큰 슬랏머신을 들여놓은 것으로 보아 잦은 도박에 대한 의구심을 일으키게 하고 있는 정황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돈이 없으면 카지노에 가지 않고 집안에서 이 슬랏 머신을 갖고 놀았다는 그의 도박에 따른 증빙물이기도 합니다, 슬랏머신 놀이가 너무 좋아 자신의 집안까지 끌어들인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돈을 카지노에서 많이 잃자 아예 슬랏 머신을 들여놓지 않았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가 슬랏머신 놀이 등 도박을 너무 좋아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가 줄리아씨와 결혼 전 라스베기거스에서 아파트를 사 장기간 살아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카지노 도박 유혹에 쉽게 노출되는 요인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특히 결혼할 당시 자니윤은 한 푼도 없었고 가지고 있던 라스베이거스 아파트는 10개월이나 연체된 깡통 아파트로 은행에 그대로 넘어갔다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이 당시 그는 돈이 없어 아파트 융자금도 갚지 못하는 초라한 신세였음을 보여주고 있는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더우기 그가 살고 있던 아파트는 집값의 20%만 낸 사실상 자신의 집이 아닌 은행 소유나 다름 없습니다. 미국에서는 대체로 집을 구입하는데 집값의 20%만 다운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많던 돈은 어디로 가고 줄리아씨와 결혼할 당시에는 이미 빈털털이 였습니다. 그동안 먹고 사는데 돈을 쓰기도 했겠지만 그렇다하더라도 그가 벌어들인 엄청난 돈이 라스베이거스에 살면서 카지노에 상납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울 지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줄리아씨는 또 그가 결혼 후 8년 동안 생활비를 한푼도 주지 않는 등 자신한테 얹혀 살은거나 마찬가지라고 언론사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엘에이 동부에서 함께 살던 수영장이 달린 저택은 줄리아 자신의 돈으로 구입했다고 밝혔습니다.


자니윤 수영장 집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그는 오히려 이불 광고 제작비 등 명목으로 적지 않은 돈을 가지고만 갔다고 하는 등 그녀의 인터뷰 내용을 종합해 보면 그의 라스베이거스 도박과 관련한 정황을 상당히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줄리아씨는 특히 자니 윤이 왜 돈이 없느냐는 세간의 의혹에 대해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나 자신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자니윤의 동생이 있는데 자녀 3명의 교육비를 대느라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인터뷰에서 토로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그의 돈 출처에 대한 옹색한 답변으로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가 잘 나갈 당시 한국 연예인들이 많이 하는 불우이웃돕기에 많은 돈을 내는데 적극적으로  나선 유명 코미디언의 모습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그의 허망한 말년은 라스베이거스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시작된 슬랏머신 등 도박이 그 단초가 돼 큰 돈을 잃게되므로서 원인제공을 하지 않았나 추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미국울 오가며 엄청나게 벌어들인 자니 윤의 그 많은 돈들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니 그에게 찾아온 쓸쓸하고 황망한 인생도 새옹지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Comedian Johnny Yune Is In The Hospital With Dementia

Nicole Han, Dec. 22, 2017, 9:54 a.m.


Korean-American comedian Johnny Yune is in a sanatorium in Los Angeles with advanced dementia. Yune has been confined to a wheelchair due to limited mobility. A friend told reporters Yune "keeled over from a brain hemorrhage in spring this year." 

Yune made his debut in Korea in 1959. He moved over to the U.S. in 1962 as an international naval cadet and resumed his career as a stand-up comedian.

He became popular after appearing on NBC's "Tonight Show" with Johnny Carson and then hosted "Johnny Yune Special Show" on the same network.

He returned to Korea in 1989 and became a popular talk show host.

Yune was treated at Asan Medical Center for a cerebral hemorrhage in April last year and returned to Los Angeles several months later 출처:koogle.tv





약방의 감초 같은 그의 맛깔나는 황제 코미디가 다시 그리워지는 차가운 크리스마스 계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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