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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복
01/30/2020 0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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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살고 있는 집에는 과일나무가 몇그루 있다. 사진의 과일나무는 자몽이 달리고 그 옆에는 레몬이 수백개가 달려 있다. 무화과 나무는 철이 지나서 앙상하지만 오랜지, 낑깽, 유자 등은 잘 익은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려서 입이 궁금하면 나가서 오랜지나 래몬 자몽 등을 몇개씩 따서 집사람과 먹는 것은 작은 행복일 것이다.

어릴 적에는 평창에 살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엄청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다. 평창에서 8살까지 살았었다.

당시만 해도 6.25가 지나고 바로 였던 시기라고 일제의 잔존과 전쟁 후유증으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기 힘든 형편이 였다.  일제는 유기로 된 모든 그릇 수저까지  수탈해가서 농촌에는 유기가 거의 없었다. 억지로 해방 후에 장만한 가구도 6.25로 없어지고 좁은 땅과 초가 이외는 거의 남은 것이 없이 살아가던 시기이다. 옥수수를 말려서 밥이나 죽을 끓이는데 옥수수 밥은 여물어서 허겁지겁 먹으면 소화가 되지 않고 관광만 하고 알갱이 그대로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아이들은 모자란 식량을 보충하던 것이 메뚜기, 개구리 등을 잡아서 먹고 땅을 파서 풀뿌리를 찾아 먹었다.

그래도 할아버지가 집안에 심은 밤나무와 감나무는 행복을 가져다 주는 나무였고 지금도 과일나무에서 과일을 따먹으면 60년도 넘은 당시 생각이 난다. 밤나무에서 알밤이 떨어지는 시기에는 새벽에 일어나서 먼저 마을 나무 아래로 뛰어가서 떨어진 알밤을 줍는다. 동네의 휴식공간 같은 곳에 50년 이상은 되었을 커다란 밤나무가 있었다. 나무의 임자가 없으니 줍는 사람이 임자고 바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 귀한 선물이 였다.  집에 있는 밤나무는 식구가 많다 보니 주워서 바로 어른에게 넘기고 모아서 팔았던 것 같다.

어릴 적에  밤나무는 여러 날 내 배를 채워주던 고마운 선물이 였다.  

서울로 전학을 한 후에는 한동안은 어렵던 시절이다. 당시에 남는 추억은 자하문 밖의 능금나무였다. 내가 살던 곳에서 학교까지 20-30분 걸어가는 정도고 학교에서 1-2시간 걸어가는 곳이 세검정이 였다. 여기에 가면 능금나무가 많았고 학교 친구가 몇명 살았다. 능금이 나오는 계절이면 능금 훔쳐 먹으려고 1-2시간 걸어갔었다. 길가에 있는 능금나무는 지나가는 사람이 따 먹어도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 담장 성격의 나무였다. 거기 살던 친구들이 있으니 그냥 친구들이 따라고 하는 곳에서 배 터지게 먹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1958년 전후 였던 것 같다. 10대 이전에 과일나무의 추억은 항상 행복한 것이다.

지금도 애플핔을 가거나 하면 나무에서 따 먹는 재미가 있다.

요즈음 어릴 적의 추억을 떠 올리면서 작은 행복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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