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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전의 내 이야기
04/08/201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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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67.xx.xx.137

내 고향은 강원도 평창군 평창면이 였다고 지금은 읍으로 들어간 지역이다.  60년 전의 이야기다. 엄청 산골이라 신작로가 마을 사이로  있고 집과 신작로 사이는 500미터 정도 되는데 개천이 하나 흐르고 있다.

여기서 태어나서 6.25를 여기서 지나고 피난도 평창에서 좀 더 산골로 들어갔던 것 같다. 남은 기억은 별로 없고  국민학교 1학년을 평창읍으로 다녔었다. 동네에서 학교까지는 대략 4-5킬로 정도 되는 거리고 10리길이라 하는 거리이다. 아마 내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것이 1955년 같다.  전쟁이 끝나고 2년 정도 지난 시기일 것 같다.   부친이 6.25 전쟁에 참전하시다가 휴전 후에 제대를 하시고 남동생만 데리고 모친과 서울로 이사를 가시고 나는 짐이 되어서 큰집에 남겨진 시기이다. 당시 모친의 친가가 서울에서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따라서 올라간 샘이다.

하여간 1년간 학교를 다니는 것이 많이 힘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0리 길이니 가다가 귀찮으면 강가에서 송사리 잡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비가 좀 많이 오면 개천을 건너지 못하여 못가고..했던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한가지가 학교에서  교실을 짓는다고 볏짚을 가져 오라고 해서 큰아버지에게 이야기 했더니...내가 짊어지고 갈 정도로 한다발을 묶어 줬는데..많이 무거웠던지..쉬다 쉬다 많이 늦게 도착했고..하여간 볏짚을 학교까지 가서 제출 했던 것 같다. 당시 교실도 나라에서 지어줄 수 없는 지경이라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자재를 구해서 교실을 만들었던 것 같다.

또한 당시에 대부분 가난에 찌들어 입에 죽을 넘기기도 힘든 시기이니..신발은 짚신을 신고 다녔던 것 같다. 큰아버지가 짚신을 만들어 주는데. 큰집식구들도 많고 나도 있고 하니 농사일에 바쁘니 전부 큰아버지가 짚신 만들어 줄 날만 기다리고 아끼고 신어야 했던 것 같다. 짚신이 망가지는 것이 두려워서 짚신도 손에 들고 사람있는 곳에 가야 신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가끔 신작로로 트럭이 다녔고 손들 흔들면 어쩌다가 태워주기도 하여 몇번 얻어 타기도 했다.

당시에는 많이 힘들 던 시기로 죽으로 거의 살던 시기이기도 하다. 쌀은 봉지에 몇개 담아서 부엌 석가래에 묶어 두었다가 제사때만 보리와 섞어서 2-3그릇 정도 만들어 사용했고 보통때는  주식이 감자와 옥수수였고 보리가 좀 있었던 기억이 난다. 대부분은 죽이고 아침 저녁을 먹고..

먹을 것을 더 확보하기 위하여 메뚜기도 잡아 먹고 개구리도 잡아 먹고 산에 가서 소나무 껍질도 볏겨 먹고 땅에서 달착지근한 뿌리도 캐먹고..송사리나 미꾸라지 매자 등도 잡아서 먹었던 것 같다. 하여간 그당시는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잡아먹고 찾아먹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모이면 전부 그런 것을 하면서 지냈던 것 같다.

옷도 거의 없이 살았던 것 같다. 당시에는 직접 삼베를 짜서 옷을 만들어 입던 시기이니...아래 위로 한개정도 입었던 것 같다.

아마 중간에 모친이 한번 내려와서 공책과  연필을 사줬던 것 같은데 몇일 못가서 빼앗기고 몽당 연필 한개를 구해서 학교에 다녔던 것 같다.

마을 앞에 강이 흘러서 매일 강에 나가서 놀고 작은 물 줄기를 막아서  그 속에 있던 고기를 잡기도 하고 돌 속에 손을 넣어서 돌속에 숨어 있던 고기를 잡기도 했다.

당시에 홍수가 지면 큰아버지가 족대를 가지고 물 가장자리에서 고기를 많이 잡던 기억도 있다. 엄청 물쌀이 빠르고 황토물이 흐르는데..가장자리에 뒤지면 고기들이 많이 잡혔던 것 같다.

한번에 미군들이 바테리를 가지고 강에 있는 보(큰 돌들로 막아논 것으로 100여미터 정도 폭)에 전기로 지져서 메기 뱀장어 등을 엄청 잡았던 기억이 나고 이삭줍듯이 안 건지고 간것을 여러 마리 찾아서 집에 가져갔던 것 같다.

무척 힘든 기억인지 초등학교 기억 중에는 가장 많은 기억에 남는 시기인 것 같다.

하여간 12월경에 서울에 와서 전학을 하러 갔더니 학교에서 한글도 모른다고 몇달 쉬었다고 1학년에 새로 들어가라는 것을 억지로 1학년에 들어가서 다녔었다.

 평창은 그 후에 커서 몇차례 방문했지만 30여년간은 거의 가보지 못했다. 직장에 바쁘다 보니 경조사도 못 가고...

그래도 안동에서 26년간 사는 동안 낙동강이 시 중심부로 흐르고 있고 산으로 둘러 쌓여서 평창과 비슷한 덕에 고향같이 느끼고 살었던 것 같다.

60여년간 거지보다도 못 살던 생활이 지금은 엄청 잘 살게된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먹을 것이 남치고 입을 것이 넘치는 지금이지만 ...20대까지는 엄청 어렵던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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