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3624
건일(kj3624)
Illinois 블로거

Blog Open 01.02.2012

전체     207258
오늘방문     27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조선 왕릉 풍수
11/12/2017 08:58
조회  641   |  추천   3   |  스크랩   0
IP 73.xx.xx.253


경릉은 조선 24대 헌종성황제와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와 두 번째 왕비 효정성황후 홍씨의 능이다. 경릉은 세 개의 봉분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三連陵)의 형태로 조선왕릉 중 유일하다. 정자각 앞쪽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이 헌종, 가운데가 효현성황후, 오른쪽이 효정성황후의 능이다. 세 봉분은 모두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을 둘렀으며, 난간석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 각 봉분 앞에는 혼유석을 따로 설치하였다. 

헌종(재세 : 1827년 음력 7월 18일 ~ 1849년 음력 6월 6일, 재위 : 1834년 음력 11월 18일 ~ 1849년 음력 6월 6일)은 추존 문조와 신정익황후 조씨의 아들로 1827년(순조 27)에 창경궁 경춘전에서 태어났다. 1830년(순조 30)에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834년에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왕위에 올랐다. 8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였으므로 할머니인 순원숙황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실시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 판위 등이 배치되었으며, 비각에는 한 개의 표석이 있다. 표석은 대한제국 선포 후 황제 추존으로 바꾼 표석으로, 전면에는 ‘대한 헌종성황제 경릉 효현성황후 부좌 효정성황후 부좌’라 써있다

.헌종의 첫 번째 왕비 효현성황후 김씨(재세 : 1828년 음력 3월 14일 ~ 1843년 8월 25일)는 본관이 안동인 영흥부원군 김조근과 한성부부인 이씨의 딸로 1828년(순조 28)에 안국방(현 서울 안국) 외가사저에서 태어났다. 1837년(헌종 3)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나 헌종 사이에 후사를 낳지 못하였다. 1843년(헌종 9년)에 창덕궁 대조전에서 16세로 세상을 떠났다. 1908년(융희 2)에 효현성황후로 추존되었다.

(문화제 청 http://royaltombs.cha.go.kr/tombs/selectTombInfoList.do?tombseq=109&mn=RT_01_01_01)


조선조에서 왕이 승하하면 3개의 도감이 설치되어 장례을 주관한다. 왕의 옥체을 수습하고 수의를 입히고 왕자 왕비 등의 수의를 준비하는   빈전 도감이 있고 물자나  음식 부장품 일지 등을  준비하는 국장도감이 있다.

산릉도감은 왕의 능을 조성하는 일을 맡은 기관이다. 왕이 승하한 날로부터 보통 5개월 후에 있을 장례 의식 전까지 능의 조영을 마무리해야 했다. 산릉도감이 설치되면 지관(地官)은 능을 조영할 지역을 가린다. 능을 어느 곳에 둘 것인가는 당시 매우 중요한 사안으로, 이를 두고 정치적인 대립이 생기기도 하였으며, 풍수지리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훗날 천장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산릉도감의 당상관, 관상감의 영사, 제조, 예조의 당상관 등은 신중하게 능지를 결정하고, 회의를 거쳐 공사일정을 확정하고, 필요한 인력을 산정한 후 공사를 시작하였다.  아마 당대 최고의 지관을 동원하여 명당을 잡았을 것이나 당시에는 이미 기감을 이용한 명당을 찾는 능력을 상실하고 좌청룡 우백호에 조산이나 거리 등을 위주로 하였던 것 같다.  고려와 조선왕조에서 지관은 과거를 통해 선발된 공무원이다.


왕릉을 전부는 살펴보지 않았으나 실제 명당은 잘 보이지 않았다.  명당이 안 보이는 이유는 원래 명당에 쓰지 못했거나 아니면 수맥이 이동하면서 몇백년 지나면서 명당의 위치가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그중에서 헌종의 릉과 왕비의 능 중 하나가 명당으로 보인다. 가운데가 명당이다.

아마 지관이 재대로 보았다면 왕이 명당에 눕고 왕비가 옆에 누워야 하는데 먼저 죽은 왕비를 두고 옆에 왕이 눞고 그 옆에 재혼한 왕비가 눞는 식이 되었다.

그래도 왕릉 중에 명당이 있는 것은 보기 드물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조선 왕릉 풍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