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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kis4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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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모른다" 65%···일부선 "김광석 노래인 줄 알았다"
05/18/201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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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18일)은 제36주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기념일입니다. 그런데 1980년 광주 정신을 엄숙히 되새겨야 할 이 날이 시끄럽기만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 때문입니다. 이 노래를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를 놓고 보훈처와 정치권이 부딪혔죠. 하지만 정작 미래 세대인 20~30대는 이 노래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가상의 회고록을 쓰기로 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처음 불렸던 82년 2월 20일 영혼 결혼식 현장에 있었던 한 참석자의 시점에서 작성됐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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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화창한 날 결혼을 맞은 양가 부모님과 신랑·신부에게 축하를 전합니다. 이 자리에 모인 하객들 앞에서 신랑 윤상원군과 신부 박기순양이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두 사람은 어떠한 역경이 오더라도 서로를 탓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서로 의지하고 보듬으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쌀쌀한 날씨와 달리 따뜻한 주례사가 울려 퍼지던 1982년 2월 20일 광주 망월동 5·18 묘지를 떠올립니다. 그러니까 벌써 34년 전 일이군요. 그날 5·18 묘지에서 진행된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많은 하객이 이른 아침부터 모여들었죠. 하객들은 모두 정성스럽게 매만진 옷들을 입었습니다. 간이 입구에서는 축의금을 받고, 서로 인사를 했죠.

다른 결혼식과 다른 점은 딱 하나뿐이었습니다. 신랑·신부를 볼 수 없다는 것. 이날 5·18 묘지에서 열린 결혼식은 이미 두 해 전 하늘나라로 떠난 신랑 윤상원군과 그보다 앞서 명을 달리한 신부 박기순양의 ‘영혼 결혼식’이었습니다.

신랑 윤상원군은 누구보다도 강직한 성품을 가진 청년이었습니다. 윤군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대변인 역할을 하다가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당시 겨우 서른 살이었던 그의 희생으로 우리가 더 나은 세상에 살고 있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신부 박기순양은 노동운동의 어머니였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사명감을 가진 박양은 78년 들불야학을 창설해 배움에 갈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힘이 돼 줬습니다. 박양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79년 22세의 나이로 명을 달리했으나 그가 생전에 한 일은 우리 마음에 남아 있지요.

34년 전 ‘영혼 결혼식’에 참석한 이들은 꽃다운 나이에 이생을 떠난 선남선녀가 저승에서나마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을 뜨겁게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한 쌍의 부부가 탄생한 이날 기구한 운명을 가진 노래도 세상과 만나게 됩니다.

윤상원·박기순 부부의 백년가약을 축하하며 불린 ‘임을 위한 행진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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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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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 시, 황석영이 가사로 바꿔
5·18묘지 영혼 결혼식서 처음 불러
80~90년대 대표적 운동권 가요로


백기완 선생이 80년 서대문구치소에서 쓴 옥중 장편시 ‘묏비나리-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의 일부를 작가 황석영씨가 가사로 바꿨고 전남대 김종률이 곡을 붙였습니다. 이들 부부의 영혼 결혼식에서 시작된 노래는 이후 민주화운동의 상징이 됐고 노동운동 현장을 통해 빠르게 번져 나갔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상징곡으로 자리 잡았고 이를 두려워한 군사정권이 금지곡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알음알음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곡이 됐던 건 그 때문입니다.

해외 각국의 노동자들에게도 퍼졌습니다. 홍콩·캄보디아·태국·말레이시아 등의 노동운동 현장에서 각국 노동자가 자신의 나라 말로 부르는 노래가 됐습니다. 원작자인 백기완 선생은 98년 “나는 이 노래에 대한 소유권도 저작권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이 땅에서 새날을 기원하는 모든 민중의 소유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 축가이자 노동운동의 구심점이 됐던 이 노래가 최근 정국의 뇌관이 돼 버렸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김영삼 정부 말기인 97년 광주 민주화운동이 국가 기념일이 된 후 노무현 정부까지 12년간 정부가 주최한 공식 기념식에서 제창됐습니다. 기념식 참석자들이 한목소리로 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이명박 정부 집권 2년차인 2009년부터 원하는 사람만 선택적으로 부르는 합창곡으로 바뀌었습니다. 당시 5·18 유가족들은 이를 반대하며 기념식을 거부하기도 했죠. 이후 이 노래를 둘러싼 논란은 7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이 곡을 5·18 기념식에서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보수·진보 진영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습니다.

최근엔 그 논란이 더 거세졌습니다. 국회 3당 원내대표단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5·18 기념곡으로 지정하고 제창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지만 보훈처는 “현행대로 합창으로 하겠다”는 방안을 밝혔습니다. 소통 무드를 조성했던 국회와 청와대는 다시 냉각상태가 됐지요.

사람으로 치면 이제 서른네 살 청년이 된 이 노래의 운명은 참 기구하다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20~30대 젊은이들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쟁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었던 청춘 세대가 함께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2016년 대한민국의 청춘들은 더 이상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지도 부르지도 않습니다. 아니, 안 부른다기보다는 못 부른다는 편이 더 맞는 얘기일 겁니다. 들어본 적 없는 노래를 부를 수는 없겠지요.

청춘리포트팀이 20~34세 청년 200명에게 물어본 결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어본 적 있다고 답한 사람은 41.3%에 불과했습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젊은이가 37.8%, 들어본 적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20.9%였습니다. 대학이며 야학이며 골방부터 광장까지 80~90년대 대학생·노동자 선배들이 할 수만 있다면 목청 돋워 부르던 노래를 더는 듣기 힘들게 된 탓입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아는 사람은 더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아느냐고 묻자 65.2%가 ‘전혀 모른다’고 대답했습니다. 일부 구절을 안다는 응답은 27.8%, 전부 다 안다(부를 수 있다)는 대답은 7%에 그쳤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어떤 사건과 관련된 노래인지’ 질문했더니 61.7%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도 답했습니다. 31.8%는 모르겠다고 대답했고요. 작사·작곡자는 ‘모른다’는 답이 65.7%였습니다.

역사에 조금 관심 있는 청년들은 말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우리 세대의 노래가 아니다. 2000년대 학번 이후에는 학교에서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다”(직장인 김모(32)씨), “‘아침이슬’이나 ‘바위처럼’ 같은 민중가요는 아는데 ‘임을 위한 행진곡’은 낯설다”(대학원생 류모(27)씨)고요. “운동권 노래로 알고 있다”(대학생 김모(25)씨), "들어는 봤는데 흥얼거릴 정도는 아니다”(직장인 김모(30)씨)고도 얘기합니다.

물론 처음 들어봤다는 이도 많습니다. 최모(29)씨는 “설문을 하면서 처음으로 찾아 들어봤는데 군가같이 느껴진다. 멜로디가 힘이 있다”고 했고, “임을 위한 행진곡? 그게 뭐냐?”는 반응, “실시간 검색어에 하루 종일 올라와 있어 클릭해 봤다”는 대답도 나옵니다. “가수 고(故) 김광석씨의 노래인 줄 알았다”는 답변도 있었습니다.

요즘 청춘 세대에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이토록 낯선 노래입니다. 보훈처와 국회가 5·18 기념식에서 해당 곡을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를 두고 거센 기싸움을 벌이고 있으나 청년들과는 동떨어진 이슈인 셈이죠.

사회나 학교 분위기도 과거에 비해 많이 변했습니다. 민주화 투쟁을 하다 죽어갔던 80년 광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역사를 되돌아보기에 요즘 청춘은 너무나 바쁩니다. 대학생들은 취업 준비를 하느라 분주합니다. 갓 직장에 들어간 청춘들 또한 작은 집 한 칸이라도 마련하고자 정신없이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의 거센 논란과 상관없이 앞으로 20~30년 뒤 지금의 청춘 세대가 기성 세대가 되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박물관 유물로만 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채윤경 기자 pch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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