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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수(kis41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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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일원론적 비전이 선불교의 공(空)이다.
05/29/2014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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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재의 일원론적 비전이 선불교의 공()이다.                  

 

 

 

<1>

인간의 삶은 무엇이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을 이성의 중심에 올려

놓고, 불교인들은 오랫동안 진실한 삶으로 가는 길을 모색했다. 진실한 삶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불교인들은 자연과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과제를 해결하고자 이성(理性)

동원하여 존재의 궁극적 실체를 규명하고자 노력했다. 존재의 궁극적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

는 일관된 목표를 설정한 불교인들은 시간과 공간의 변화는 물론 시대의 변천과 문화의 변

모에 따라 원시불교, 중관불교, 유식불교의 과정을 거처 선()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선으로 가는 길로 접어든 불교인들은 일체 존재의 일원론적 비전을 준비하고자 노력했다.

고정된 개념으로 서술할 수 없는 자연 전체(全體)와 부분(部分) 간의 상즉상입(相卽相入)

원융회통(圓融會通)을 총칭하는 비전으로서 '()'을 상정(想定)하게 되었다. 일의적이며

확정적인 실체가 없이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는 일체 존재의 양상을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한 불교인들은 전체와 부분간의 회통을 상정하는 동시에 그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게 되었

.

 

 

<2>

()을 존재의 일원론적 비전으로 상정한 선불교(禪佛敎)는 존재의 본질(本質)과 실체(

)를 공()으로 기술(記述)하기 시작했다. 시간과 공간의 변천에 따라 시시때때로 변모하

는 존재를 공으로 상정한 선불교는 이것과 저것의 극단(極端)을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

었다.

 

사람에 따라 선불교의 공()을 존재의 양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

존재의 일원론적 비전으로 상정한 선불교(禪佛敎)의 참다운 뜻을 이해하는 입장이라면 존재

에 관한 일원론적 비전이 불교의 관점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선불교의 공()은 존재(存在)의 부재(不在)를 언급하거나 존재의 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일률적이며 확정적인 단일한 개념으로 서술할 수 없는 우주 전체(全體)와 부분

(部分) 간의 상즉상입(相卽相入)과 원융회통(圓融會通)을 총칭하는 비전이라는 점을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불교의 공()은 전체와 부분의 간극(間隙)을 좁히는 동시에 전체와 부분 간

의 상즉상입은 물론 자연(自然) 전체가 갖춘 보편성(普遍性)과 부분(部分)이 갖춘 특수성(

殊性)의 원융회통을 총칭하는 비전이다.

 

불교의 우주관(宇宙觀), 자연관(自然觀), 존재관(存在觀)을 표현하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空)”은 궁극적으로 전체와 부분을 따로 따로 분리하고 분별할 수 없는 하나

의 우주, 자연, 존재를 총칭하는 불교의 비전이다. 그러므로, 선불교는 일체개공(一切皆空),

천지동상(天地同相), 만물일체(萬物一體), 무분별지(無分別智), 물아일여(物我一如) 등의 어

휘로 우주 자연 존재에 관한 일원론적(一元論的) 비전을 언급하고 있다.

 

선불교의 일원론적 비전은 부분의 합이 전체이며, 전체로부터 부분을 분리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갖춘 현대과학의 기계론적(機械論的) 비전과 대치되는 것이다.

 

<3>

 

진실한 삶의 길을 모색하는 수행자(修行者)들은 존재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규명해나가는 동

시에서 전체가 갖춘 보편성과 부분이 갖춘 특수성이 원융(圓融)회통(會通)하는 장()을 주

시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전체의 보편성과 부분의 특수성이 소통하는 스페이스(space)

를 중시하는 동시에, 보편성과 특수성이 융합하는 과정을 유도하는 주도적인 관건이 성()

이라는 것을 깊이 성찰하기 시작했다.

 

()은 무엇인가. 보편성(普遍性)과 특수성(特殊性)을 관류하는 성()의 본질은 무엇인가

를 주시했다. 성의 본질을 주시하게 되면서, 가장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성의 본

질을 직시하는 동시에 성()의 작용(作用)을 알아차리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견성성불(見性

成佛) 성재작용(性在作用)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라는 것은 좁히면 겨자씨 속에 들어가지만, 펼치면 우주에 가득하다는 것을 체득한

수행자(修行者)들은 견성(見性)하여 성불(成佛)하는 것을 자신들의 목표로 설정했다.

 

견성(見性)을 삶의 목표로 설정한 수행자들은 자신의 옥리(屋裏)로 시선을 되돌리는 동시에

되도록 번다한 성의 작용을 멀리하려는 의취를 살려 단순하고 간편한 생활로 전환했다.

잡한 관계를 끊고, 일의(一衣)와 일발(一鉢)로 삶이 가능한 공동체(共同體)를 찾아 나섰다.

 

자연과 존재의 일원론적 비전이 공()이라는 선불교의 비전을 구체적인 몸짓으로 나타내고

자 하는 수행자들은 번다한 도시를 떠나 동일한 이념을 가춘 동지들과 공동체를 결성하여

단순하고 간편한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게 되었다. 이것이 오늘의 승가공동체이며 단순

하고 소박한 수행자들의 삶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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