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mnkim
닷 드러라(kimnkim)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12.10.2010

전체     139102
오늘방문     47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9 명
  달력
 
제발 사실대로만 써주세요. 부탁입니다" ? ■ 세월호 조타실로 진입 성공했던 海警 朴相旭 경장의 이야기
03/04/2017 12:03
조회  2017   |  추천   25   |  스크랩   1
IP 47.xx.xx.235


아직도 세월호를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 같으면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어린 고등학생 생명을…’운운하는 아이들이 있다.

제발 만화 좀 그만 읽고 그 바다에 가서 3, 4 놋트의 해류에 수영이라도 할 수 있는지 보아라.

 

컴퓨터 게임룸에 앉아서 세상을 보는 세대들아.

무슨 수단이 아니라 네가 직접 그 바다를 보기 바란다.

천여척의 왜적의 배를 삼킨 바다란다.

마징가 젯트나 태권브이같은 만화속의 가공인물이 아니라

한 발자욱씩 움직이는 네 몸을 가지고

그 바다를 겨누어 보아라.

그 어마어마한 공포앞에서 네 몸이나마 움직일 수 있는지.

 

머리가 다소 큰 이이들은 누가 천억이 넘는 세모의 부채를 국고로 탕감해 주고

이로써 세월호의 출현이 가능케 했는지?

시작부터 노후한 선박의 불법 증개축이 세모의 청해진 해운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동안

눈감은 행정당국이 누구였는지 알려고나 하는가?

이 망가진 세월호가 과적과 항행준비 미비의 상태로 출항해도

아무도 나와보지 않은 항만청 공무원들의 공무수행 상태가 이해가 가는가?

 

한줌도 안되는 어리석은 아이들을 상대로 젊은 세대를 비하 할 뜻은 없다.

이제는 그 젊은 세대들이 자유 대한을 버티고 나갈 차례이니까.

다만 단순한 사실 관계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한무리의 세력이

한밤중의 개구리 소리처럼 국민의 화합을 깰가 우려할 뿐이다.

 

다음의 기사를 읽고 이 엄청난 해난의 영웅을 범죄자로 몰아

감옥에 넣은 어둠의 세력이 아직도 활보하며 세상을 넘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이 세력을 모두 뽑아내야 할 것이 세월호가 주는 교훈이다.

 

 

 - - - - -

 

"제발 사실대로만 써주세요. 부탁입니다"

 

■ 조타실로 진입 성공했던 海警 朴相旭 경장의 이야기

“텅빈 조타실 내부엔 붙잡을 게 하나도 없었다. 
“영웅처럼 써 주지 마시고 부디 사실 그대로만 써 주십시오. 부탁입니다.

           

  

○ 총성이 울리는 戰鬪(전투)나 범죄 혹은 대형 사고가 발생하면 보통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그곳에서도망치지만 오히려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군인, 경찰, 구조대원, 그리고 선진국에서는 記者(기자)도 포함된다. 그들은 건강한 신체와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로서 他人(타인)의 생명을 구하고 지키기 위해 惡()과의 싸움을 마다 않는 善()한 戰士(전사)들이다. 우리는 이런 戰士들을 얼마나 키우고 어떻게 대접해 왔는가.

○ 언론들은 목숨 걸고 조타실로 진입한 海警(해경)에 의심의 눈길을 던지기 바빴다. ‘왜 조타실만 들어가고 선체 내부진입은 못했냐’는 것이다. 사실 확인 없는 의심에서 출발한 세월호 유언비어는 머지않아 ‘선원만 구하고 승객을 방치했다’는 ‘海警과 船主(선주)간 유착설’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해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123정 승무원들과 헬기 승무원들은 그 후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아야 했다. 현장을 무시한 채 책상머리에서 이론을 만들고 유포시킨 조작 전문가들이 용감한 戰士를 파렴치犯()으로 만든 것이다. 그러나 목숨 걸고 조타실로 진입에 성공했던 朴相旭(박상욱) 경장의 이야기는 다르다.



정리: 李東昱 편집위원


“경사진 철판바닥을 젖은 구둣발로 오르기는 쉽지 않았다”

< 海警 (공채) 216기에 2009 726일자로 임용된 해병대 출신의 朴相旭 경장(37)은 기자에게 자신이 겪었던 구조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몇 번의 조사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기억이 많이 정리되었다고도 했다. 다음은 박 경장의 이야기를 정리한 내용이다.> 

몇시인지도 모릅니다. 123정으로 급하게 달려가다 보니 큰 배가 기울어져 있는 이상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겁니다파도는 안 치는데 배는 기울어져 있었고 간간이 사람들이 바다로 뛰어내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있는 쪽에서는 큰 여객선 치고는 의외로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고 컨테이너들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123 정에서 세월호의 船首(선수)쪽으로 접안시켜 제가 세월호로 올라탔습니다. 123정에서 발진한 고무보트로 이형래 경사도 세월호로 올라왓습니다. 근무복에 단화를 신은 채였지요. 좌현 쪽으로 기울어진 세월호의 3층인지 4층인지 모르지만 아직 거기까지는 물이 차 오지는 않았을 때였습니다.

제가 조타실을 올려다 보고 있을 때 李 경사는 난간에 설치된 구명벌을 발로 차 두 개를 떨어뜨렸는데 한 개만 펴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더 이상 구명벌을 떼내지 못할 정도로 기울었습니다. 즉시 李 경사가 5m 정도 위의 船內(선내)로 진입하려 했지만 얼마 못 버티고 아래 난간 쪽으로 미끄러졌습니다.

그 때 李 경사가 진입 시도하려던 곳이 조타실입니다. 제가 있던 船首 쪽에서 조타실이 잘 보였습니다. 분명 몇 사람이 보였습니다. 조타실 아래에서 위를 보니 동남아인으로 보이는 외국인도 두어 명이 있는 것 같았고요. 그런데 배가 左舷(좌현)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붙잡고 오를 만한 것이 안 보였습니다. 제가 오를 곳을 찾고 있을 때 李 경사가 좌현 쪽에서 접근하려다가 실패한 거지요. 경사진 철판 바닥을 젖은 구두를 신고 오른다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잡을 게 있었다면 완력(腕力)으로 매달리기라도 하면서 오를 텐데 그런 게 하나도 없었어요.

“사람들이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

그러는 사이에 저는 기울어진 조타실 창문으로 어떤 아주머니를 봤습니다. 구명조끼도 걸치지 않았는데 완전히 공포에 질린 표정, 사색(死色) 그대로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보였다 안 보였다 했는데 이 아주머니는 저와 눈이 계속 마주쳤습니다. 그래서 소리 쳤지요.

“내려오세요.” “내려오세요.” “그냥 내려오세요....

고함을 질렀지만 아주머니는 꼼짝을 못해요. 처음엔 답답했다가 나중엔 어떤 감정이 솟구치더군요. 화가 났다는 표현은 안 맞는 거 같고 그게 뭔지 모르겠는데, 제가 옆에 있었다면 그냥 확 밀어버리고 싶었습니다. 차라리 어디 한 군데 부러지는 게 낫지, 저대로 가만있다가는 침몰하는 배와 함께 익사할 게 뻔했거든요. 너무나 위험한 상황이었고 너무나 답답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다시 외국인들이 보이는데 마치 공중에 사람들이 붕 떠 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울어진 조타실 창문으로 사람들을 봐서 그럴 겁니다.

우리로서는 조타실에 보이는 사람들이 선원인지 승객인지 구분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배에서 처음 본 사람들이었으니 구해야 했고요. 어떻게든 사람들을 빨리 구해내야만 하는 절박한 순간이라고 느꼈으니까요. 조금 전 이형래 경사가 조타실로 올라가다 주루룩 미끄러지는 걸 지켜보던 123정에서 계류삭(繫留索)인 ‘홋줄’을 건냈습니다. ‘홋줄’은 배를 부두에 정박시킬 때 육지의 ‘비트’라 불리는 쇠기둥과 배의 ‘비트’끼리 연결하는 두터운 밧줄인데 우리 ‘홋줄’은 직경이 약 5cm 정도 됩니다. 이걸 李 경사가 받아서 아래에서 조타실로 던져 올렸지요. 다행히 조타실 내 승객 중 한 사람이 이 줄을 받아서 문 짝 어딘가에 고정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李경사를 보며 이제 곧 올라가겠구나 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조타실과 연결된 ‘홋줄’에서 줄줄이 사람들이 내려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李 경사는 오르던 걸 포기한 채 조타실에서 탈출해 내려오는 사람들을 받아서 123정으로 옮겨 타도록 도와주는 일에 전념합니다. 저도 그 일에 몰입했지요.

기억나는 것이, 123정으로 옮겨 타려면 발판을 밟고 올라서야 하는데 여자들이 근력(筋力)이 없어서인지 자기 신체를 지탱할 힘이 없더군요. 제가 발 하나 하나를 발판에 옮겨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123정과 세월호와의 높이가 달라져 가더니 세월호가 너무 낮아지는 겁니다. 이 장면이 동영상에 나오던데 우리는 그 때까지 123정에 옮겨 타는 사람들이 선원인지 승객인지 구분할 틈이 없었습니다. 아마 이 과정에서 선원들이 옮겨 탄 듯합니다.

“텅 빈 조타실에서 홋줄 매듭은 끝나고…”

이렇게 옮겨 태우고 나니까 더 이상 승객들이 안 내려 오는 겁니다. 그 때 저는 세월호에 타고 있었는데 123정에 승선하고 있던 대원들이 저더러 뭐라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소리를 치는 겁니다. 헬기 소리 때문에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는데 하도 긴박하게들 소리치는 모습을 보면서 제 나름대로 해석했지요.

‘아, 조타실로 들어가서 남은 승객들에 대한 모든 조치를 다 취하라고 지시하는 모양이구나.

저는 조타실 아래쪽으로 이동해 승객들이 타고 내려 온 밧줄을 잡고 올라갔습니다. 그게 조타실 左舷 측문입니다. 머리 위로 기울어진 방으로 들어가는 거지요. 이미 바닥은 벽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진 採證을 한 어떤 분의 말씀에 의하면 그 때 바닥이 적어도 70도에서 80도는 돼 보였다고 했지만 저로서는 그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줄을 잡아야만 겨우 두 발을 바닥에 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줄을 단단히 잡은 채 조타실 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조타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더구나 문 안쪽에서 ‘홋줄’ 매듭은 끝이 나고 있었습니다. 뭐라도 잡을 게 있었더라면 그걸 잡고 船室 내부로 더 들어갈 수 있었을 테지만 船室 벽은 대부분 두꺼운 철판이거나 합성수지계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둘 다 표면이 매끄럽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게다가 더 이상 잡을 것이 안보이니 무엇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아예 줄을 놔 버렸습니다. 몸이 거의 선 채로 미끄러져 내려갔지요. 아래 난간 쪽에 몸이 부딪히면서 정지할 수 있었지만 빨리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보통 저희 같은 구조대원이나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근육을 많이 키우는 이유가 있습니다. 웬만한 충격을 견디기 위해서 입니다. 충격으로 근육이 파열되면 타박상은 입게 되지만 임무는 완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한 근육을 가지면 충격을 근육이 막지 못해 골절상을 입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임무는커녕 오히려 우리가 구조대상이 돼 버립니다. 그날 저희 대원 모두가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지만 우리로서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조사받을 때 보니까 저희가 일부러 선체 내부 진입을 안했다고 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때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다면 들어가지 안 들어가겠습니까? 매끈한 바닥이 벽으로 변하고 있는데, 손톱이라도 걸 데가 있다면 모를까 잡을 곳이 하나도 안 보이는 겁니다. 그래도 의심나면 船體 비슷한 걸 세워두고 한 번 올라가 보라고 해 보세요. 하여간 저는 더 이상 어떻게 버틸 수도 없어서 줄을 놓고 미끄러져 내려 온 겁니다.

“눈에 안 보이는 거대한 힘과 싸우는 중”

그 때 ‘윙 브릿지’라 부르는 左舷 날개 쪽에서 승객 한 분을 발견했습니다. 구명조끼도 없이 난간을 붙잡고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겁니다. 급히 제 구명조끼를 벗어 입혔습니다. 저는 맨몸으로 수영해 갈 자신이 있었거든요.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뭐든 잡으면 절대 놓지 않으려 한다는 거지요. 구명복을 입히려 하는데 난간을 붙잡고 놓질 않으니 무척 애를 먹어야 했습니다. 겨우 제걸 입히면서 보니까 비닐봉지가 뜯어지지도 않은 세월호 승객용 구명조끼 한 벌이 구석에서 뒹굴고 있는 겁니다. 얼른 이걸 집어서 뜯고 제가 걸쳤습니다. 그리고 승객에게 말했지요.

“자, 같이 뛰어 내립시다.

우리는 그렇게 해상투신(海上投身)을 한 겁니다. 나중에 뉴스 영상을 보는데 바다로 뛰어내리는 승객이라고 설명하던데 그게 두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승객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저였습니다. 바닷물로 뛰어들었지만 솔직히 물이 찬지 뜨거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 걸 느낄 만한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물속에서 구두를 벗어버리고 승객의 호흡을 유지한 채 수영을 하려다 보니까 옆에 단원고 학생 세 명이 떠 있는 겁니다

침몰 중에 있는 큰 배 옆으로 작은 배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法이 아니라 自然의 힘을 아는 사람들의 經驗입니다. 큰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는 거대한 소용돌이가 생겨 웬만한 어선들도 빨려들거든요. 그러면 세탁기 속의 소용돌이처럼 물살이 생겨서 매우 위험해집니다. 123정 같은 110톤급 함정도 소용없습니다. 그래서 초기에 어선들도 구조에 참여하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가까이 근접하지 못한 겁니다. 모두 공포에 질린 채 사태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현장을 모르고 방송만 보면 구조하는 모습이 답답하게 보일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힘과 싸우는 중이었습니다. 거기에 걸리면 누구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행히 그 상황이 오기 전에 123정의 고무보트가 신속하게 다가와서 학생들과 우리를 건져 올렸습니다.

고무보트에서 123정으로 옮겨 탄 뒤에 저는 신발을 대신할 운동화를 찾아 신었습니다. 그리고 승객용 구명조끼를 벗고 배에 있던 해경용 구명조끼로 갈아입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고무보트가 쉴 새 없이 승객들을 건져 날랐습니다. 고무보트가 이때부터 어선에도 승객들을 나눠 태웠을 겁니다.

우리는 고무보트에서 123정으로 승객들이 올라오도록 잡아당기곤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리 배에 타고 있는지 알 도리가 없었지요. 무조건 실어야 했습니다. 시시각각 침몰 순간은 다가오니까 이탈 시간을 놓치면 우리 배도 침몰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호흡이 정지된 승객이 실려 왔습니다. 먼저 온 승객은 젊은 남자였는데 李 경사가 저와 같이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습니다. 그때 우리 배에서 근무중이던 義警 중 하나가 환자의 팔 다리를 주물러 주곤 했습니다. 그렇게 한 오 분 정도 했을까요? 갑자기 구토를 하면서 호흡이 돌아왔습니다. 이 친구는 소생(蘇生)한 겁니다.

잠시 뒤에 또 한 사람이 의식불명인 채로 배로 옮겨졌습니다. 학생이었는데 제 기억이 맞다면 이름표가 ‘정찬웅’이었을 겁니다. 이형래 경사와 제가 즉각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떠 있어 건졌는데 눈과 코에서 피가 흘렀다”고 구조대원 중 누군가가 전해 주었습니다. 뇌진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죽음의 神이 끌어가기 전에 제가 살려내야 한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시도해도 이 친구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심폐 소생술이 예상외로 무척 힘이 듭니다. 제가 지치면 李 경사가 시도하는 식으로 교대로 했지만 더 이상 바이탈 사인(Vital sign·호흡, 맥박, 체온, 혈압 등 活力 징후-)이 생기질 않아서 헬기로 후송시켜야 했습니다. 그럴 때의 절망감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뉴스를 들으니 사망했더군요

유리창 부수고 구조하다

이런 와중에 누군가가 “선실 유리창 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우리 배가 船首 쪽으로 돌면서 발견한 모양이었습니다. 제가 급히 망치를 들고 세월호로 옮겨 탔습니다. 이형래 경사와 이종훈 경사 그리고 제 곁의 한 분은 구조된 승객이라 기억하는데 그 분도 저와 같이 유리창 깨는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제가 들고 있던 30cm 정도 되는 나무자루에 주먹 만한 쇠뭉치가 달린 망치였는데 이걸로 몇 번 가격해도 유리창이 멀쩡했습니다. 아마 가격할 때 자세가 불안정해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기울어진 바닥에서는 망치질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이종운 경사가 망치를 들고 저는 123정에서 전해준 쇠파이프 지주봉을 들고 때렸습니다. 지켜보던 123정에서 鐵製 지주봉을 뽑아 저에게 전해 준 겁니다. 함정에 추락방지용으로 설치한 鐵製 봉이었지요. 제 옆에 서 있던 승객도 망치를 건네 받은 뒤에 같이 몇 번을 내리 쳤습니다. 그래도 유리창은 멀쩡했습니다. 그때 제 곁에 있던 승객이 망치를 내리치는 순간 ‘퍽’ 하고 유리창이 깨져 나갔습니다. 거의 동시에 船室에서 두 손이 번쩍 올라왔습니다. ‘만세 자세구나’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오는 손 마다 잡고 끌어냈습니다. 하지만 이도 두 사람이 끝이었습니다. 세 번째 사람부터는 손이 잡히질 않았습니다. 배가 더 기울어지면서 사람들의 손이 유리창 부근으로 다가오질 않는 겁니다. 이번에도 123정에서 ‘홋줄’을 건네 주었습니다. 이걸 내려주어 사람들이 줄을 잡고 올랐습니다. 이들을 끌어올리면서 오른 손등에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보니 피가 제법 나오고 있었습니다. 유리창을 깨면서 파편에 베인 줄 알았습니다. 다음날 퉁퉁 붓기 시작해서 병원엘 갔더니 부분 근육 파열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기억해 보니 유리창을 깨던 도중에 123정과 세월호 사이에 제 손이 끼었던 겁니다. 경황이 워낙 없어 그 장면을 기억해내는 데도 시간이 걸린 모양입니다

나중에 조사받으면서 다른 쪽 유리창을 안 깼냐고 하는데 우리로서는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인원은 제한돼 있었고, 그래서 視覺도 제한됩니다. 더구나 유리창 위로 물결이 일렁이면 뻘물이어서 잘 안보이게 되는데다가 전반사(全反射)로 인해서 보는 각도에 따라 하늘만 비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유리창을 깨고 선실에서 승객을 구출해 낼 무렵에 배의 기울기가 점 점 더 심해져 갔습니다
船首쪽으로는 컨테이너들이 계속해서 물위로 떨어지고 있었고요. 이때쯤 123정에 탄 구조자들을 다른 어선으로 분산해서 진도 팽목항으로 실어 날라야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123정 정장님의 지시대로 낚싯배 한 척을 맡아 28명의 구조자들을 옮겨 태운 뒤 팽목항으로 인솔하는 임무로 전환했습니다.

부모 잃은 여섯 살바기 少女

팽목항으로 가는 도중에 구조자들을 보니 모두가 혼이 빠진 모습이었습니다. 학생들은 체온이 떨어져 입술이 진한 보라색으로 변한 채 벌벌 떨고 있었고 노인 한 분은 기진해서 일어나 앉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더 가슴 아픈 장면은 6살짜리 여자아이였습니다. 다행히 그 아이는 구조되었지만 부모님의 生死가 그 순간까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엄마를 찾는 그 아이의 우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한 채로 제 가슴을 아리게 합니다.

제가 그날 시계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팽목항에 도착한 뒤엔 기자 4명을 태우고 다시 123정으로 복귀합니다. 다시 돌아온 바다에 세월호는 이미 배를 벌렁 뒤집은 채 가라앉고 있었고 인근 해역에는 수많은 경비정과 해군 함정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더 이상 水上 구조는 없었던 겁니다. 이제부터 탁한 물속을 더듬어서 찾아야 하는 水中 수색이 남아있을 겁니다. 잠수요원들의 분투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첫 날 구조에 참여했던 이야기입니다.

끝으로 기자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영웅처럼 써 주지 마시고, 부디 있는 사실 그대로만 써 달라는 겁니다. 전부 구조하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뿐입니다. 그런데 海警이 해체된다니까, 그래서 제가 더 조심스럽습니다.

제발 사실 그대로만 알려 주셔도 저희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요? 정말 사실 그대로만 전해질 수 있는지,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https://encrypted-tbn2.gstatic.com/images?q=tbn:ANd9GcSOmNqtEW0F-uibGuj3Bx-08087U0Wt8qrDjvNI_NZBOYE72pBE 

<추가 포스팅> #2

          "보이는 사람은 다 살렸다."

“선실이건 복도건 딱 눈빛이 마주치면 그 눈길을 그냥 두고 돌아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구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거든요.

■ 항공 구조사  柳規錫  경장의 경우
  

  “보이는 대로 전부 건져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렇게 많이 타고 있는 줄…”
  
  표류 승객이 안 보였다.
  
  4 16일 오전 9. 제주지방 해양경찰청 항공대 소속의 7인승 팬더 513호 헬기는 계획대로 불법외국어선 단속 임무를 위해 제주공항에서 이륙해 제주 북방 약 3마일 해상에서 비행 중이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 정비사와 전탐사(電探士) 그리고 항공 구조사(救助士) 5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9 8분 경. 상황실에서 무선통신으로 배가 좌초 중이라 현장으로 이동하라는 상황실의 지시를 전달받고, 제주해경 소속 513호는 급히 機首를 사고현장으로 돌렸다
  
  9 32분경 제주海警 513호는 좌현 약 60도로 기울어진 여객선을 발견하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미 목포 海警 소속의 팬더 511호가 도착해 船尾에서 바스켓(구조 바구니)으로 승객들을 구조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柳規錫(류규석) 경장(해경 211기·37)이 내려다보니 기울어진 船尾의 난간을 붙잡고 있는 두 명의 승객을 갑판으로 내려온 항공 구조사들이 바스켓에 싣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보였다. 柳 경장이 탄 513호 헬기가 세월호 船尾 쪽 해상에 표류중인 사람들을 발견하고 고도를 낮춰 접근했다. 가까이 가 보니 사람이 아니고 각종 부유물들이 떠다니는 중이었다. 이때까지도 제주 海警 513호는 물론 목포 海警조차 세월호의 탑승객에 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다. 511호가 구조를 하는 동안 513호는 세월호 주변을 살피기 위해 선회 수색을 시작했다. 구조사(救助士)인 柳 경장이 육안으로 海面을 샅샅이 살폈다. 그러나 그때까지 바다위로 표류중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머물 곳이 아니었다’
  
  선회수색을 하는 동안 목포 海警(해경) 511호가 연신 승객을 실어 올렸다. 7명 정원을 초과해서 최대한으로 승객을 실은 511호가 뒤로 빠질 준비를 했다. 그 자리를 대신해 513호가 들어갈 계획이었다. 柳規錫 경장은 재빨리 바스켓에 몸을 실었다. 팬더 513호는 조금 전 511호가 머물던 상공으로 진입해 하버링(hovering·공중 정지 제자리 비행)을 하며 柳 경장이 탄 바스켓을 기울어진 세월호 後尾로 내려보냈다. 세월호에서 柳 경장을 맞이한 사람들은 목포 海警 소속의 항공 구조사 박훈식 경위와 김재현 경장이었다. 이들은 승객들을 바스켓에 태워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가 柳規錫 경장과 합류한 것이다. 이때까지 海警소속 구조대원은 이들 세 명이 전부였다
  
  류규석 경장이 보니 기울어진 船尾의 3층 데크 쪽 20 m 떨어진 곳에 구명조끼를 입은 몇 명이 웅크리고 있었다. 柳 경장과 金 경장이 그곳으로 이동을 시도했다. 두 대원은 최대한 미끄러지지 않도록 애를 써야 했다. 미끄러졌다가는 30 m 아래 바다 속으로 처박히게 된다. 그 정도 높이에서 바다 속으로 떨어지면 부상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난간도 없어서 최대한 조심해서 이동했다. 柳規錫 경장은 “그곳은 사람이 머물 곳이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이들이 얼마 뒤 승객들과 조우했을 때 그들은 겁에 질린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승객들이 모인 곳은 평상시엔 옥외 복도였던 곳이었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은 아주머니와 노인들이었다. 김재현 경장은 난간 위를 맡고 柳 경장은 난간 뒤편으로 넘어가 헬기로부터 복도까지 바스켓을 내리게 했다. 그 때까지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으리라고 柳 경장은 생각지 않았다. 여섯 명 째를 바스켓으로 올려 보내고 마지막 일곱 번째 사람을 실으려는데 그 승객이 “저 아래 칸에 아주머니와 몇 명 더 있어요.”라고 했다. 이제 바스켓에 승객을 싣는 일은 金 경장에게 맡기고 柳 경장은 아래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조에 성공하는 것 같았다
  
  柳경장은 船尾쪽 난간을 잡고 아래 칸으로 이동했다. 평소 같으면 3층 후미 갑판이었을 텐데 배가 기울어지는 바람에 같은 3층임에도 아래층이 돼 있었다. 3층 통로쯤에 중년 여성 한 사람과 남성 두 사람이 앉아서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柳 경장은 난간을 붙잡은 채 “나오세요”라고 소리쳤다. 겁을 먹은 세 사람은 柳 경장의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柳 경장에게 세 사람이 붙다시피 왔을 때 柳 경장은 갑자기 걱정이 됐다고 한다.
  
  “이분들을 구하려면 다시 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연세로 보나 그게 쉽지 않겠더라고요.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마침 後尾(후미) 쪽으로 어업 지도선과 다른 어선들이 주위를 선회하다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분들에게 아래로 내려가 배를 타자고 설득하면서 後尾 쪽으로 유도해 갔지요.
  
  기울어진 배 後尾 쪽으로는 어업 지도선이 쉽게 접안할 수 있었다. 柳 경장은 이들 세 사람을 어업 지도선에 승선시킨 뒤 자신은 다시 세월호 船室로 비틀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거기서 柳 경장이 난간을 의지한 채 아래로 더 내려가니 와글거리는 소리, 우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더 다가서자 큰 공간이 나오는데 패닉에 빠진 수십 명의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바로 거기서 柳 경장은 목포 海警 항공 구조사인 權在俊 경사와 조우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인사조차 없이 학생들을 구조하기 바빴다. 이들 두 구조사는 학생들을 세월호에 접안한 어선들로 실어 날랐다
  
  학생들을 거의 다 어선으로 옮겨 태운 柳 경장이 주변을 살피는데 위층 갑판에서 성인 남자 세 명이 헬기를 기다리다 柳 경장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밑으로 내려가도 돼요?”라고 소리쳐 물었다. 柳 경장은 “여기 배 있으니 빨리 오세요”라며 재촉했다. 결국 이들은 柳 경장의 지시대로 내려와 배로 구조되었다. 그 때까지 柳 경장과 權 경사는 한 사람도 남김없이 구조했다고 믿었다. 柳 경장은 船首에서 구조작업 중인 123정을 볼 수 있었다. 주변 해역은 어선들과 해경 함정 등이 몰려 있었다. 다들 구조에 성공하는 것 같았다
  
  柳경장의 이야기. “선실이건 복도건 딱 눈빛이 마주치면 그 눈길을 그냥 두고 돌아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구해주어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거든요. 
  
  한 명도 남김없이 다 건졌다고 자신했는데…
  
  그들은 그렇게 쓰러진 배를 훑어 나갔다. 헬기는 공중에서 하버링을 하며 혹시라도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있었다. 두 사람은 뒤집혀 진 배 위로 올라와 다른 쪽으로 이동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배가 쑥 꺼지면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더 이상 머물렀다가는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두 구조대원은 거의 동시에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배로부터 멀리 떨어지기 위한 필사적인 수영을 했다. 50m를 헤엄쳤을 때 어선이 다가와 柳 경장을 건져 올렸다
  
  어선의 갑판위에서 기진맥진한 류 경장은 구조에 대한 성취감에 부풀었다. 사람들이 계속 나왔지만 보이는 대로 한 명도 남김없이 다 건졌다고 자신했다. 기울어지던 세월호 위에 내려선 이후 구조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었다. 선실 내부도 나름 돌아봤고 거기서 마주친 사람들은 모두 어선으로 옮겨 태웠다. 더 있다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柳 경장은 멍하니 하늘을 보고 누워 텅 빈 배가 가라앉게 될 모양을 상상하며 쉬고 있었다. 그때 라디오 뉴스를 들으며 어선을 몰던 선장이 걸어 나오더니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직도 저 안에 학생들이 한 300명 가까이 있다는디?
  
  그소리를 듣는 순간 류 경장은 온 몸이 감전된 느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많이 탔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갑자기 황당하고 참담한 심정이 됐지요.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벌떡 일어나 앉아서 거꾸로 처박힌 배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질 질 흘렸습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구조대원도 심리적 상처를 입는다. 심리적 상처란 쉽게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의미한다. 분명 柳 경장이나 權 경사는 그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 온 뒤엔 언론이 그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려 댔다. 급기야 대통령도 가세해 海警 해체를 공표했다. 보다 못한 柳 경장의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구조대원도 죽어야 한다는 말인지, 왜 구조대원이 욕을 먹어야 하고, 왜 海警이 해체되어야 하는지,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지 당췌 알 수가 없어요.

 

https://encrypted-tbn2.gstatic.com/images?q=tbn:ANd9GcSHR3MtwvAhoh2-euptpvOZEI_yWO5yWP0k7aUojN3E5NvsXFreEw https://encrypted-tbn0.gstatic.com/images?q=tbn:ANd9GcRe6sfGSiVa0syczCNbW20RckHcYGY4C_de2gS_0T1r9fphi3ry

                                                   ***

                               

 -----                                                      


개혁의 우선이 언론이고, 좌익의 첫번째의 목표가 언론조작인 것을

국가의 지도자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알면서도 모른척 하는가?
국민들은 눈을 뜨고 현실을 보며 자유 대한민국을 보전하기 바란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제발 사실대로만 써주세요. 부탁입니다" ? ■ 세월호 조타실로 진입 성공했던 海警 朴相旭 경장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