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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에서 만난 이승만 -좌익 재 교육용
07/23/2020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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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개원 100주년 기념식을 하면서 초대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이 보이지 않게 가려 논 문재인 정권.

광화문에서 김일성 만세를 외쳐도 표현의 자유라던 박원숭이가 원하지 않게 자살 당했으니 

이제 또 어떤 자가 그 촛불 이어들기를 할까?  글쎄, 지금의 문정권하에서는 후보자가 차고 넘친다. 

임종석이도 대학생 시절 북에서 온 전화를 벌떡 일어서서 받았으니 붉은 깃발을 광화문에서 휘두르는 

것 쯤이야 못 할 일 있겠나. 그 말고도 곧 사면 받고 나올 자가 줄을 서 대기하고 있는데.


대중이나 국민이란 것들은 배우고 깨치지 못하면 금수만도 못한 것이다. 성선설을 믿는다면 가르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들은 것 없는 백지의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고, 성악설을 믿는다면 사방에 개차반같은 댓글로 

독을 풀고 다니는 자가 될 것이라.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종 잡을데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공자 말씀이라.


보수라 하고 권세를 누리던 자들이 궁민(窮民)을 다스리지 못하고 저들의 감투 놀이에 희희낙락하고 있는 동안

전교조라 칭하는 노동자 무리가 역사를 가리고 말을 바꾸어 키운 세대가 이제 3-40대가 되었다.

여기 그대들이 평생 들어 보지 못한 역사의 한 장면이, 반일을 최대의 구호로 정한 공산주의자들이 싫어하는 

일본의 수도 한 복판에서 펼처지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전교조밑에서 길러진 자들아. 그대들이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대한의 국부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가 동남아 국가들

보다 못 살고, 필리핀은 감히 넘겨 보지도 못할만큼 가난했던 전후의 혼란과 폐허에서도 국가의 미래를 내다보고 한 점, 한 점 선점해 나간 업적을 보라. 선지자의 혜안이 없었다면 우리의 자유대한은 존재하지 못했다.  


전 세계가 탁월한 학자이자 정치가라고 존경하는 이승만 대통령을, 한국을 인민공화국으로 못 만든 공산주의자들만이 친일파라고 매도한다. 전교조밑에서 바꿔치기한 역사로 배운 세대들이 광우병이니, 반일이니를 부추기는 기치에 휘둘려 촛불들고 몰려 다닌다. 이 Zombie 들에게 친일파라고 부르는 이승만 대통령이 하신 일을 공산주의자들의 적국 일본의 입을 통해 확인해 볼까한다.   



조선일보의 이하원 도쿄특파원이 2020.07.23 에 작성한 기사이다.
"서거 55주년을 맞은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에 대해 집권 세력의 폄훼가 잇따를 때 이곳을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정부의 영토주권전시관. 일본 측 의도와는 달리 이승만이 일본에 맞서 독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업적이 부각돼 있는 장소다. 아베 내각은 지난 1월 독도와 센카쿠열도, 쿠릴열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전시관을 도쿄 한복판에 확대해 재개관했다.

21일 다시 방문한 이곳은 코로나 사태에도 개관 중이었다. '독도관'에는 여전히 가로 10m, 세로 3m 대형 패널에 '한국의 독도 불법 점거' 과정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전후로 이승만 정부와 국제사회의 움직임을 일지(日誌) 형태로 전시 중이다.

독도는 1945년 일본의 패망(敗亡)과 함께 자동으로 한국 영토로 인정받지 못했다. 미국의 오락가락하는 입장으로 독도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가 될 뻔한 위험천만한 상황도 있었다. 이때 이승만의 강단(剛斷)과 국제적 감각이 빛을 발했다. 일본의 영토주권전시관은 한국의 '불법행위'를 강조하면서 '1952년 이승만 라인(평화선)'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이승만 한국 대통령은 해양주권선언을 만들어 이른바 이승만 라인을 공해상의 광범위한 해역에 일방적으로 설정함과 함께 이 라인 안에 다케시마를 포함했다." "그 후, 이 라인을 침범한 일본 어선을 나포하는 사안이 제주도 남방 어장을 중심으로 다수 발생하게 돼 선원들이 억류되는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승만 평화선이 선포되던 1952년은 어떤 상황이었나. 당시는 김일성의 동족살해(同族殺害) 남침(南侵)에 따른 전쟁 중이었다. 개전 초기의 절체절명 위기는 면하고 휴전협상이 시작됐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모두가 38선 근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때에도 이승만은 해외 상황을 면밀히 봐가며 국제사회를 놀라게 하는 결정을 내렸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 석 달 전에 평화선을 선포, 독도에 대한 실효적 조치를 취했다. 이어서 1954년엔 독도에 등대를 설치했다. 경찰 경비대도 파견했다. 일본이 이에 항의하는 구술서를 보내왔지만 일축했다. 오히려 독도 풍경을 담은 기념우표 3종을 발행, '독도는 한국 땅'임을 명백히 했다.

이런 역사가 서술된 독도관을 찬찬히 보고 있노라면 일본 정부가 이승만을 얼마나 미워했는지가 느껴진다. 식민지배 청산을 위해 1951년부터 시작된 한일협상에서는 사죄와 배상을 강하게 요구, 일본이 골머리를 앓았다. 재임 시기가 이승만과 겹쳤던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총리는 이승만에 대해 진절머리를 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로 정적이었던 고노 이치로(河野 一郞·고노 다로 현 방위상의 할아버지) 농림대신과 이승만을 꼽은 것은 일본에서는 잘 알려진 얘기다.

이승만은 35년간 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 재건을 위해 집권 초기 일제 시대의 전문 관료들을 기용했다. 이 때문에 '친일파'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썼으나 사실은 일본 측이 상대하기 껄끄러운 인물이었다.

그런 이승만이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적으로 보는 문재인 정권의 법무장관으로부터는 제헌절에 조롱을 당했다.

19일 추모식에서는 보훈처장으로부터 건국 대통령으로 온전하게 불리지 못햇다. 여당 의원들은 단 한 명도 추모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공로자에게 침을 뱉는 행태와 다름없다. 최근 대한민국 국민의 민심이 급속히 현 정권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은 단지 '미친 집값' '() 인지 감수성'부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논어에 있는 글을 박정희 대통령이 굳센 기상으로 쓴 글을 본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중공놈들과 좌익의 댓글이 역겨워 블로거만 댓글 허용했습니다.
 




*음악 한번만 나오게 할 때, 높이와 길이는 원하는 만큼 조절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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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계속하여 나오게 할 때나, 두가지 음악이 나오게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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