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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경쟁을 머-얼리서 바라보며
06/04/2020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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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나 숲속의 이야기 -Symphonie Orchester der Volksoper Wien


바이러스로 멀리는 못 나가다 보니 Big Sur 까지 가는 도로에 파인 물 웅덩이를 모두 기억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게으름 탓에 뒷뜰도 야생화가 처들어와 집에 돌아 와서도 산행이 필요없게 배경 하나 끝내 줍니다.

                                                 

           

재난 지원금은 받았고 쓸 곳은 별로 없어 통장에 쌓여 가는데, 한가한 시간을 만들어 몇개의 심정을 모아 봅니다.

 

1918년 소위 Spain 독감으로 불리운 H1N1 바이러스로 전세계에서 추정 500 million 이 죽었으리라 

여겨집니다. 전 세계의 통계는 후진국의 통계도 섞여 있어 언제나 추정치일 뿐입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67 5천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같은 방역이나 거리두기, 자택격리 같은 일은 없었지요.

 

지금 미국에서는 우한 바이러스로 10만명이 죽었다고 하며 선진화(?)된 방역탓에 모든 경제 활동이 중지 

되다시피 되었고, 각국 정치꾼들은 서로 눈치 보아가며 경쟁적으로 국가의 돈을 풀기 바쁩니다.

 

대중 민주주의로 타락한 천민 모시기는 얼마나 많은 돈을 없는 자들에게 주어야 다음의 선거에서 표를 걷을 수 있는지를 요량하기 바쁩니다. 천민이던 천재이던 표는 한장으로만 계산되니까, 후일의 대차대조표는 무시하고 

국고를 털어 우선 뿌리고 보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없다는 것도 자랑인양 내 세우는 세태로 되었습니다.

 

대중에 의해 선출된 공직자가 계산도 안되는, 예상을 넘는 지출을 결정해도 반대세력은 반대를 하거나 제동을 

걸지 못하고, 오히려 한발 늦은 발표를 한탄하며 천민들의 표를 의식하여 더 큰 금액을 벹팅합니다

이 후엔 누가 먼저, 누가 더 많이 천민에게 뿌리는 공약을 내 놓고, 더 새로운 명칭의 보조금을 창안하는가 하는 

창조경제(?)의 쳇바퀴에 들어가니, 공적 자금의 고갈로 국가가 부도로 무너져 내리기 전까지는 그 쳇바퀴 안에서 

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공적 자금으로도 표를 살 수 있다는 걸 발견한 정치꾼들,

-투표권을 가진 천민들은 더 많은 공짜를 약속한 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중,

-이러한 대중으로 표현되는 천민의 시대를 민주주의라 이름을 차용하고,

-들어오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쓰겠다는 가족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데,

-국가는 예외인줄 아는 천민들 앞에 불현듯 던져지는 국가 부도의 실상,

-그럼에도 노예들은 파산의 비바람을 걱정하지 않고

-저녁 밥그릇에 담아지는 밥덩어리의 크기만 관심이 있을 뿐인데...

 

이런 또 샛길로생각은 많으나 시간이 없고 글 재주가 모자라 곁가지로, 샛길로

 

집중하고, 다시 우한 바이러스로.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미국에서만 67 5천명 사망. 그 당시의 미국 인구는 106.5 백만명 (일억육백오십만명 -한국의 단위는 어디서 빌려와 쓰고 있는지 ㅊㅊ)이니 사망자 비율은 0.0063% 입니다.

2020년 우한 폐렴으로 5월까지 10만명 사망. 오늘의 인구는, 백만 단위로 논의되는 불법 체류자를 제외하고도, 331.8 백만명(삼억삼천만명)이니 사망자 비율은 0.0003% 입니다. 1918년의 비율로 대비하면 

29만명의 사망자가 나와야 됩니다.

        

           세계 인구 증가표

 

비교 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합니다만, 1918년에는 바이러스의 존재를 모른채 생강물이나 끓여 먹거나, 바이러스엔 듣지도 않는 항생제나 먹고 넘어 갔을 뿐이며 당시의 인구 수가 적었음에도 오히려 사망자가 많았고; 2020년에는 온갖 이론으로 무장하여 방역은 하였으나 집단 재배, 집단 양식의 시류대로 집단 거주를 한 탓에  바이러스의 전파가 광범위하게 퍼졌으나 다행히 집단 폐사는 면하고 이제 10만명의 사망을 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10만명의 사망자가 아닌걸로 보입니다.

 

바이러스가 없이도 2017년엔 미국의 사망자는 2,813,503명(이백팔십일만명) , 10만명당 863, 0.0086% 입니다.

2019 우한 바이러스의 사망자 (0.0003%) 는 대다수가 기저질환이 있는 건강상태가 신통치않은 노약자들이 집단 거주를 하고 있는 요양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야박한 소리이겠지만 방어능력이 떨어진 전선이 먼저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45세에서 64세 사이의 사망자중에서도 기저질환이 있었던 사람은 84%에 달합니다 (* New York city health as of 

May 13, 2020)  2017년 미국민의 평균 수명은 78세 였으니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자의 대부분은 평균 수명에 

근접한 노인, 그 중에서도 기저질환을 가지고 있는 병약자인 것으로 보여집니다. 

 

제가 보는 큰 문제는 사망자의 수가 아니라 봉쇄로 인한 경제의 몰락입니다

어차피 사망자의 수치는 백만 단위를 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이는데 경제의 몰락은 백만단위 사망자의 피해보다 더 큰 파괴력이 있습니다. 표를 계산하는 정치 지도자의 입장으로는 대놓고 사망자의 무게를 가볍게 놓고, 바이러스 이후의 국가와 사회의 존망에 더 큰 무게를 놓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천민이나 노예들에겐 내일이 아니라 오늘 저녁이 더 중요하고 이들의 한표 역시 귀중한 한표로 인정되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민주주의를 논할 때, 박사 학위자나 사회에 공헌을 한 자들에게는 표를 더 주자고 했다가 놀림감이 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사람의 죽음은 개개인에게는 큰 손실이며 비극이나, 통계상에서는 숫자 하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느끼기엔 비극이나, 생각하기엔 희극이다란 통찰력있는 말을 남긴 아재들도 있습니다

바이러스로 죽는 죽음은 이제 십만인데 매년 폐질환으로 죽은 이들은 65만명, 암으로 죽은 이들은 60만명, 심지어 노망 (알츠하이머) 하여 죽는 사람만도 12만명입니다만 아무도 범 사회적인 재난으로는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인구증가란 시한폭탄이 임계점을 지나가고 있으면서도 (상기 도표 참조) 그 시한폭탄을 두려워 하기보다는 

엘리베이터안에서 기침하는 사람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이 우한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경제 활동의 쇠락보다 더 두려운 것이 이번 사태로 생기고, 그 결과로 

인류의 재난시계가 더 빨리 가게 되었습니다

전 세계의 78억의 인구가 별안간 미친듯이 쓰레기를 버리기 시작했거든요.

 

바다에 가라 앉고 육지에 매몰되는 쓰레기를 제외하고도, 이미 5개의 쓰레기 섬이 대양에 떠 있습니다

(인도양에 1, 대서양에 2, 태평양에 2)  그 중 태평양 쓰레기 섬 하나의 크기는 600,000 평방마일입니다 (텍사스 2배 또는 프랑스의 3배 크기) 여기에 지금까지의 쓰레기보다 몇배나 많은 쓰레기들을 방역이라는 이름아래 

전 세계의 인류라 불리우는 유인원들이 버리는 것입니다.

 

그 언젠가는 이 쓰레기들이 분해되어 없어 질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있겠지요. 이미 연구에 의하면 분해된 미립자들은 먹이 사슬을 통해 우리의 식탁에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겁니다. 물이 끓을 때 임계점을 지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은 까맣게 탄 라면 냄비로 할머님 한테서 혼나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구에 기생하는 인류의 숫자가 임계점을 지나면 어떻게 되는가를 알려주는 할머님은 안 계십니다.

 

       평화로운 Tadpole(?) 과 Big Brother 


인간이 10억이 될때까지 대략 20만년이 걸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은 인구의 증가율(년 1.5% 전후)이 변동없으면서도  70억이 되는데는 겨우 200년이 걸렸습니다.

이제 2030년에는 86억이 될것이라고 UN의 보고서가 말합니다.

사람이 설 자리가 점점 작아지는 섬나라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호되게 경치던 할머님 자리에  제가 대신하여 대책없는 할애비로 들어 앉는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끔찍합니다.


*이 글을 끝내기도 전에 선민의식에 거들먹 거리던 순경 한명의 강압적인 체포방식에 의해 죽은 한 위폐 사용범에 대한 애도가 전국을 휩쓸고,

마치 일사불란한 지도에 의거한 듯 이 위폐 사용범은 평화의 전파자가 되고, 그를 지지하여 시위한다던 공정을 요구하는 시위대는 어느 틈에

몇몇 흑두건들에 의해 looter가 되고, 아니지요, undocumented shopper 들이 되어 철문과 창문을 부수고 들락거립니다. 그 평화적인 시위로 인해

약탈 당하고, 집단 린치를 당하는 장면은 보도가 안되고 경찰이 쏘는 최류탄의 연막만이 저녁 식탁위로 보도됩니다. 연기 가라 앉으면 또 한 줄 시답지 않은 글을 쓸터이니 제발 Antifar 나 진보주의자들은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한국은 좌익의 손에 떨어졌고, 미국은 이제 좌익과의 본격적인 대결로

들어가는 때입니다.


백만단위의 죽음을 이야기하다 보니 한명의 위폐 사용범과 한명의 덜 떨어진 경찰을 연결하여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또 차 한잔 하고나서 다시 들여다 보겠습니다. LA에서는 시장이란 자가 평화로운(?) 시위군중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네요. 또 어느 곳에서는

경찰 국장이란 자가 시장터 장돌뱅이 장사치같은 손짓 몸짓으로 자기가 입고 있는 제복의 의미를 무색하게 하는 중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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