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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던 옛날을 돌이켜 보는 영어의 관용구
03/14/20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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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airway to Heaven/ Blowin' in the Wind


가난했던 옛날을 돌이켜 보며 오늘의 풍요함을 고마워하자며 찿아 본 영어 관용구의 뿌리가 있습니다이들 관용구의 기원은 때로 중세 시대로 까지 연결되는듯한데 첨부한 사진은 1929년부터 1939년대의 대공황 시절의 사진입니다. (사진의 copy right 관계로 다른 사진 올립니다)


이 시대에 일본의 조선 점령시대는 1910년에서 1945년 사이의 시간이 되겠습니다우리보다 수백년 먼저 개화한 서구문명의 공황기의 모습이 이럴진대 조선의 백성들의 모양은 어떠 했을까요?


년전에 이북에서 탈출한 북괴군 병사의 몸에서 회충이 많이 나왔다고 온 국민이 호들갑을 떨었든 것을 기억하십니까그 중한 국회의원이란 자는 그 뉴스를 개인의 명예훼손이니 뭐니라고 입에 게거품을 물었던 것 역시 기억하십니까? 1950년대와 1960년대그 자의 부모님 세대에는 대한사람들 모두 그 북괴군과 같았습니다밭에 인분을 뿌려서 냄새도 고약했고 모두들 회충을 한 바가지씩 뱃속에 안고 살아서 아이들그 국회의원의 아버지할아버지들은 너도 나도 모두 통통한 회충배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국민학교에서 회충약을 주면 그 다음 날 회충이 몇마리씩 나오기도 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불과 70년전의 일입니다.


그 시절에는 한국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글귀가 있습니다. ‘한국의 하늘은 정말로 아름답다’ 였습니다저도 그 시절에는 둘러봐도 보이는 것은 모두 부셔진 잔해뿐이어서 하늘을 쳐다보며 정말로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하늘을 갖고 있구나 생각했습니다철이 들어가면서 외로움과 그리움이란 감정을 가지기 시작할 때저는 이 큰 거짓말을 알아내곤 절망과 수치와 함께 분노가 일었습니다.


전후 외국의 고위 인사들이 한국을 방문하면 늘 신문에 실리는 기사가 오우한국의 하늘은 원더풀합네다’ 였는데 나는 왜 그 사람들이 꼭같은 말을 하는가에 의심이 들었습니다어렵게 빌려본 외국 잡지에는 더 아름다운 하늘이 많은데 왜 꼭같은 감탄사를 하는 것인가???


인분냄새 풍풍나는 김포 논바닥옆에 도착한 키큰 외국 인사들에게 우루루 몰려든 작달만하고 가무잡잡한 한국의 기자들이 한국의 첫인상은 어떻습니까?’라고 물었겠지요냄새 고약한 들판에 착륙을 했는지불시착을 했는지 궁금할 지경의 벌판에서 첫인상이라니?  허나 상대는 산전수전을 격은 외교통의 인사들무슨 좋은 소리를 해 주려 하지만 보이는 것은 황량한 논밭뿐인데 쥐뿔이나 무슨 첫인상을 말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중 한 기자가 우리나라 하늘은 어떻습니까?’ 라고 귀띰을 했겠지요지옥에서 출구를 찿은 인사는 기쁘게 화답합니다. ‘오우원더풀합네다!’ 


그 후 모범 답안을 찿은 외국의 인사들은 그 논밭 한 가운데서 한국의 아름다운 하늘을 첫인상으로 말했고혹 상상력이 모자란 인사들이 오면 꼭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며 지키던 하늘아무것도 없고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하늘이었습니다. 하늘외에는 보여 줄게 아무 것도 없던 때의 하늘이었습니다.

 - - - - -   …

 


인류가 삼시 세끼니를 먹기 시작한 때가 불과 일이백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없고 힘들게 살았던 때를 생각해 볼 까 합니다.






               

1900 Korea                                                                          1900 Japan


 

옛날에는 가죽을 무두질 (tanning) 할 때는 사람의 오줌을 사용하였기에 온 가족이 요강에 오줌을 누었습니다그렇게 모은 오줌을 매일 제혁공장 (tannery) 에 가지고 가서 팔았지요그래서 오줌을 팔아서 살만큼 가난한 것을 찰지게 가난하다 (piss poor) 라 불렀다그러나 이들보다 더 가난해서 오줌을 모을 요강도 못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그래서 이들을 오줌 눌 통도 없는 놈들 (didn’t have a pot to piss in) 이라 하며 빈곤층의 바닥의 바닥이라 불렀다합니다.

They used to use urine to tan animal skins, so families used to all pee in a pot. Once a day it was taken and sold to the tannery. If you had to do this to survive, you were  piss poor.  But worse than that were the really poor folks who couldn’t even afford to buy a pot. They didn’t have a pot to piss in’ and were considered the lowest of the low.

 


         

1904 Korea                                                                      1904 Korea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월에 결혼하였는데 그 이유는 일년에 한번씩하는 목욕을 오월에 했기에 유월에는 아직 몸의 냄새가 나뻐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럼에도 조금씩 냄새가 나기 시작했기에 신부는 몸에서 나는 냄새를 감추려고 꽃다발을 안고 식을 올렸습니다연이나 이것이 결혼식에 꽃을 안고가는 의식이 된 것입니다.

Most people got married in June because they took their yearly bath in May, and they still smelled pretty good by June.  However, since they were starting to smell, brides carried a bouquet of flowers to hide the body odor. Hence, the custom today of carrying a bouquet when getting married.

 


              

1940 Great depression, 미국 대 공황기

                        

목욕은 큰 욕조에 더운 물을 채워서 행하였지요가장이 첫번째로 깨끗한 물로 목욕을 한 뒤아들과 남자들이 하고그 뒤로 여자들이 하면 마지막은 아이들의 순서로 목욕을 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이 아기들 이었는데 그 때쯤 되면 물은 정말로 더러워져서 그 속에 뭐가 빠져도 못 알아 볼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그리하여 목간물 버릴때 아기도 같이 버리지 말라는 속담이 생겨났다고 전해집니다.

Baths consisted of a big tub filled with hot water.  The man of the house had the privilege of the nice clean water, then all the other sons and men, then the women, and finally the children. Last of all, the babies. By then the water was so dirty you could actually lose someone in it. Hence the saying, ‘Don’t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 water!’

 



  

1910 대 공황기이전의 미국


집은 초가지붕을 덮었는데 짚단을 두껍게 올리고 나무 천정은 하지 않았습니다이 초가 지붕밑이 동물들이 따습게 지낼 수 있는 곳이어서 고양이와 그 밖의 작은 동물들 (벌레들)이 지붕밑에 살았다합니다그런데 비가 오면 지붕이 미끈거려 동물들이 천정에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그리하여 생긴 말이 고양이나 개가 떨어지듯 비가온다 (It’s raining cats and dogs) 란 말이었습니다천정에 나무판자가 없었기에 집안으로 떨어지는 걸 막는 수가 없었지요심각한 문제는 침실에 벌레나 기타 부스럭지가 떨어져 깨끗한 침대를 망쳐놓는 것이었습니다거기서침대 네 모서리에 세운 기둥에 천을 올려 보호를 하게 됐고 이것이 ‘canopy bed’의 원조가 돼었다더라 전해집니다. (무슨 전설따라 삼천리가 되어 갑니다)

Houses had thatched roofs with thick straw-piled high and no wood underneath. It was the only place for animals to get warm, so all the cats and other small animals (mice, bugs) lived in the roof. When it rained, it became slippery and sometimes the animals would slip and fall off the roof. Hence the saying,   It’s raining cats and dogs.’  There was nothing to stop things from falling into the house. This posed a real problem in the bedroom where bugs and other droppings could mess up your nice clean bed.  Hence, a bed with big posts and a sheet hung over the top afforded some protection. That’s how canopy beds came into existence."

 


   

1900 년대초의 한국


집안의 바닥은 땅바닥 그대로입니다돈 좀 있는 사람들만이 땅바닥에 뭔가를 깔아 놓습니다그래서 생긴 말이 ‘땡전없이 가난하다’(dirt poor) 는 말입니다부자들이 바닥에 석판을 까니 겨울에는 미끄러워져 thresh (밀짚)을 깔아서 미끄러짐을 방지합니다겨울이 깊어 갈 수록 thresh 를 더 깔고 깔고 하다보니 어느 날 문을 열면 밖으로 thresh 가 날라 갑니다방지책으로 문간에 나무를 대니 문지방 (thresh hold) 란 건축용어가 탄생합니다.

The floor was dirt. Only the wealthy had something other than dirt. Hence the term, ‘dirt poor.’ The wealthy had slate floors that would get slippery in the winter when wet, so they spread thresh (straw) on the floor to help keep their footing. As the winter wore on, they added more thresh until, when you opened the door, it would all start slipping outside. A piece of wood was placed in the entrance-way.  Hence,  thresh hold.

 


                                 1953 한국                                                                             1953 일본


그 옛날에는 부억에 큰 솥을 불 위에 늘 걸어놓고 음식을 했습니다매일 불을 지피고 그 솥에 무엇이든 더하였지요대부분 푸성귀를 먹었고 고기는 별로 없었습니다저녁에 stew를 먹고 남은 것은 밤새도록 솥에 두었다가 아침에 다시 끓여 먹었습니다어떤때는 stew 안에는 아주 오래도록 남아 있는 음식물도 있게됍니다그리하여 생긴 운문 (rhyme)이 ‘Peas porridge hot, peas porridge cold, peas porridge in the pot nine days old’ 랍니다간혹가다 돼지고기가 생기면 큰 경사가 생긴듯 했겠지요방문객이 오면 잘 사는 것을 보여 주려고 베이컨을 걸어 놓습니다이 부유함의 표시가 집주인이 성공적으로 밥벌이를 한다’(bring home the bacon) 라는 것입니다그리곤 방문객과 함께 작은 조각을 떼어내서 모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눕니다’.(chew the fat)

In those old days, they cooked in the kitchen with a big kettle that always hung over the fire.  Every day, they lit the fire and added things to the pot. They ate mostly vegetables and did not get much meat. They would eat the stew for dinner, leaving leftovers in the pot to get cold overnight and then start over the next day. Sometimes stew had food in it that had been there for quite a while.  Hence the rhyme,  ‘Peas porridge hot, peas porridge cold, peas porridge in the pot nine days old.’ Sometimes they could obtain pork, which made them feel quite special.   When visitors came over, they would hang up their bacon to show off. It was a sign of wealth that a man could  ‘bring home the bacon. ’ They would cut off a little to share with guests, and would all sit around and  ‘chew the fat.

 


                 

1953년대의 미국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백랍으로 만든 식기를 썼습니다.  산성의 식품들은 백랍의 식기에서 납성분을 녹여서 납중독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이런 식중독사는 대부분 토마도로 인하였기에 400여년 동안 토마도는 독음식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빵 또한 사회적 계급이 따라 나눠 졌습니다일꾼들은 식빵 (큰 덩어리입니다)의 밑의 탄 부분을 먹고집안 식구들은 중간 부분을 먹고손님은 빵의 윗부분, ‘최고급부분’ (upper crust) 를 먹습니다.

Those with money had plates made of pewter. Food with high acid content caused some of the lead to leach onto the food, causing lead poisoning death. This happened most often with tomatoes, so for the next 400 years or so, tomatoes were considered poisonous. 

Bread was divided according to status. Workers got the burnt bottom of the loaf, the family got the middle, and guests got the top, or the  upper crust.

 



납으로 만든 컵은  맥주나 위스키를 마시는데 쓰였습니다때로 이 납과 알콜의 작용으로 이런 컵으로 마신 사람이 하루 이틀 뻗을 때도 있습니다길가던 사람이 이들이 죽은 줄 알고 매장준비를 합니다식구들은 뻗은 자를 식탁에 이삼일 올려두고 그 주변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고 하면서 혹 다시 깨어날까 기다립니다.  그리하여 생긴 풍습이 죽은 사람 밤샘하기’ (holding a wake) 랍니다.

Lead cups were used to drink ale or whisky. The combination would sometimes knock the imbibers out for a couple of days.  Someone walking along the road would take them for dead and prepare them for burial. They were laid out on the kitchen table for a couple of days and the family would gather around and eat and drink and wait and see if they would wake up.  Hence   the custom of   holding a ‘wake.’

 


 오래된 작은 마을에선 무덤으로 쓸 땅이 모자라져 갑니다그래 다시 관을 파내고 뼈를 추려서 납골당에 모시고 묘지를 재사용합니다그런데 관을 다시 열고 보니 25개중 하나쯤에는 관뚜껑 안에 긁은 자국이 있어 아직 산 사람을 묻었다는 걸 알게 돼었습니다그 후로 시신의 손목에 끈을 매고 그 끈을 땅위로 빼어 작은 종에다 매어 놓습니다누군가가 묘지에 남아 밤을 새면서 (the graveyard shift) 종소리 울리는가 지켜봅니다그래서 어떤이들이 천만다행으로 살아나고 (saved by the bell)  또는 ‘dead ringer’ 라 불리게 되었다 전해집니다.

In old, small villages, local folks started running out of places to bury people. So they would dig up coffins and would take the bones to a bone-house, and reuse the grave. When reopening these coffins, 1 out of 25 coffins were found to have scratch marks on the inside, and they realized they had been burying people alive. So they would tie a string on the wrist of the corpse, lead it through the coffin and up through the ground and tie it to a bell. Someone would have to sit out in the graveyard all night (graveyard shift) to listen for the bell. Thus, someone could be ‘saved by the bell’, or was considered a ‘dead ri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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