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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Railway Man (용서란 무엇인가)
08/28/20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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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ilway Man


        전쟁의 광기에 휩쓸려간 두사람의 이야기.

        용서란 무엇인가.




이 영화는 영국 장교인 Eric Lomax2차 세계대전시 포로가 돼어 격었던 실화를 극화한 2013년의 영화입니다. 상영 시간은 1시간 56.

 

* 영화의 배경은 우리가 콰이강의 다리로 익히 알고 있는 타이랜드에서 버마로 가는 철도 건설로

1942 5월에서 부터 1943 10 17일이라는 최단기로 끝낸 철도 부설의 뒷 이야기입니다. 이 철도는 Burma Railway 라 불리우나 또다른 이름은 Death Railway 라고도 불리웁니다. 철도 건설에 동원된 인원은 동남아에서 강제 징용된 최소 추정18만의 노동자와 6만의 전쟁포로였고 전쟁포로에서만도 12,621명이

철도 부설로 죽었기에 Death railway라는 악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징용된 동남아 노동자들은 대략 절반인 9만 정도가 죽었으리라 추정 될 뿐입니다. 간수나 철도 기술자 자격으로 온 일본군인은 대략 12,000명이고 그 중 800명은 한국인이었습니다. 일본군인은 전쟁포로나 노동자보다도 편한 처우를 받았음에도 1000 (8%) 정도가 죽었으니 전쟁포로들의 열악한 상황은 짐작만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영화는1980 Berwick-upon-Tweed라는 영국의 참전동지회의 모임에서 시작됩니다. 제대한 통신 장교 Eric Lomax는 격식과 관습 그리고 정리정돈이 몸에 배인 전형적인 영국인으로 그려집니다. 그러다 에릭은 철도 통근시에 우연히 만나게 된 Patty와 사랑에 빠져서 결혼을 하게 됍니다.

그리곤 부인이 된 Patty Lomax의 샤워 물소리에도 발작하리만큼의 전쟁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에릭의 과거와 현실이 교차되며 이야기를 풀어 나갑니다.

 

1942 2월 퍼시벌장군이 일본군에 항복하면서 포로가 된 에릭은 통신 장비의 부품 몇개를 빼내어

숨깁니다. 일본군의 무자비한 전쟁포로 대우에 영국인의 기개를 세우느라 인원 점검시 one, two, three…에서 ten 이후 eleven 대신 Jack, Queen, King 이라 소극적인, 그러면서도 매우 위험한 저항도 시도해

봅니다. Eric의 통신분대의 선임 장교 Finlay가 좌절하고 절망하는 분대원들을 고무하며 포로로써의

저항을 포기하지 말자고 대원들을 격려합니다. 그러나 이런 미약한 저항도 점령 일본군의 고압적인

폭력앞에서는 마치 모래성처럼 무너집니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화면은 패티 에릭이 자기 남편이 전후 35년이 지났는데도 그 포로가 되었던 기간에 대해서 끝까지 함구하며 에릭의 내면으로 무너져 가는 것이 안타까워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를 밝혀내려고 합니다. 패티 역시 간호사 출신이었기에 이런 정신적 외상을 치유할 수 있는가 싶어서 같은 참전

동지회의 휜리를 만나서  물어봅니다만 휜리는 ‘war leaves a mark’라며 자세한 이야기를 피합니다.

 

휜리의 대원들은 다른 만여명의 전쟁포로와 함께 며칠을 끌려가서 어느 철도 부설 현장에 투입됍니다.

다행히도 통신대원들은 기술자로 분류되어 철도부설의 중노동은 안하고 이런 저런 기계수리에 투입됍니다. 이 지역의 철도 부설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졌는데 일본군은 버마의 전선에 보내는 군수물자 수송선이 자주 격침되어 피해가 심해지자 육로의 수송로가 절실히 필요하여 제대로의 장비와 식량도 주지

않은채 전쟁포로와 인근의 아시아인들을 동원하여 철도부설을 밀어부칩니다. 노무자들은 소모품처럼

하루에도 수십명씩 기아와 중노동으로 죽어나가도 일본군은 사령부에서 내려오는 독촉에 따라

밀어부치는 잔인성을 드러냅니다.

 

인간이 집단의 광기에 휩싸이면 인간성을 잃은 야차가 돼는 것은 2차세계대전시 독일과 일본이 몸서리치게 보여 주었습니다. 특히 일본군의 잔혹성은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을 정도이며 이후의 150만을 죽인 공산당 크메르루주만이 그 잔인성에 필적할 정도였습니다.

 

에릭과 휜리는 여기저기에서 훔친 부속을 가지고 라디오 수신기 조립에 성공하여 대영 해외방송을 청취하여 연합군의 반격이 시작되었고 유럽 전선에서는 독일이 퇴각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됍니다. 틈틈이 전해지는 이런 소식들이 포로들에게는 생명을 포기하지 않을 큰 희망을 주었겠습니다. 

절망의 끝에 출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 하나가 얼마나 큰 희망을 주고 용기를 주는가는 수많은 기적과 같은 사례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숨겨둔 수신기가 발각되어 에릭을 포함하여 4명이 수사선상에 서게 돼었습니다. 모두들 일본군의 잔혹한 형벌을 예상하여 떨고 있을 때, 에릭이 자원하여 자기가 범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선임장교 휜리는 상상 할 수 없는 공포에 떨면서도 다른 대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에릭의 행위가

가장 용감하고 의로운 행위였다고 말합니다. 2주일후에 돌아온 에릭은 어떤 고문을 당했는지도 모를만큼 온 몸이 부셔지고  찢어져 왔습니다. 남은 대원들이 가능한 모든 치료를 했지만 모두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역시나 악명높은 일본군 방첩대 (kempeitai)에서 나온 장교가 다시 고문을

시작합니다. 때리고 때리고 또 끝없이 계속되는 물고문입니다. 반죽음이 된 에릭은 노천 대나무 징벌방에 가두어집니다. 죽기 직전에 일본이 항복하고 연합군이 돌아와 에릭을 구해냅니다.

 

일본군 장교는 휼륭한 병사는 항복하지 않고 죽는다고 경멸했습니다만 휜리는 복수하기 위해서 살아왔다고 하며 아직도 일본군 전범을 찿습니다. 드디어 찿아낸 그 일본 방첩대원이 아직 살아있고 에릭이

투옥되고 고문받던 감옥( Kanchanaburi)에서 관광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냅니다. 휜리는

자기는 늙고 힘이 없어 에릭에게 죽어간 모두를 대신해 복수해 달라고 합니다만 에릭은 이제 우리는

병사가 아니며 민간인이며 또 책임을 진 가장이어서 안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계속 물고문의

후유증으로 고생하는 에릭과 그를 치료하려는 패티, 복수를 하려는 휜리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차분하게 묘사됍니다. 결국 휜리는 철교 횡단 다리에서 목을 매어 죽음으로서 에릭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한편 일본군 방첩대원 나가세는 자기는 방첩대원이 아니라고 하여 처벌을 면한뒤에  연합군의 전범

색출에 통역관으로 일하면서 처벌을 받지 않았습니다.

 

에릭은 오랜 망설임끝에 다시 Kanchanaburi에 와서 불구의 원수 나가세와 마주합니다. 죽이려고 하는

에릭앞에서 나가세는 자기도 일본군 수뇌부에 속았으며 전후에 전범 색출시에 수많은 주검들을 보았고 그 속죄의 행위로 이 감옥에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에릭은 수없이 죽어간 동료들을 대신해

나가세를 정죄하려 하지만 끝까지 나가세의 팔을 부러트리는 복수의 경지까지 떨어지지를 못합니다.

 

나가세를 만나고 돌아온 에릭은 서서히 지난 수십년간 옭아매져있던 지옥에서 벗어납니다.

자기를 철저히 고문한 적을 용서함으로서 악몽과 증오에서 해방됍니다.   

다시 부인 패티와 함께 찿은 칸차나부리에서 에릭은 나가세를 이렇게 용서함니다.

 

비록 내가 여기 칸차나부리에서 일어난 일을 잊을 수 는 없어도

나는 그대를 완전히 용서합니다.

이 증오심은 언젠가는 끝내야 하니까요

(while I cannot forget what happened in Kanchanaburi,

I assure you of my total forgiveness.

Sometime the hating has to stop)

 

          *****

 

영화는 이렇게 끝납니다.  이 영화를 길게 묘사한 이유는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격이 부럽기 때문입니다. 악악 울고 짐승처럼 몸부림치고 악다구니를 하는 장면도 없고 또 애국심이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해

질질 끌어가는 신파류의 눈물도 없습니다.

 

일본군의 잔혹함, 희망을 잃은 포로의 눈동자, 공포에 떨면서도 인간의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 어둠의

저 건너편에서 문득 문득 불어오는 슾한 찬바람, 이런 모든 것을 차분히  내 보여주며 그러면서도

짐승의 자리까지 떨어지지 않는 인간의 격을 진실되게 그린 영화입니다.


One's dignity may be assaulted. vandalize and cruelly mocked,

but cannot be taken away unless it is surrendered.

과연 몇사람이나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있는지 물어보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이며 에릭과 나가세는 그 후 죽을 때까지 친구가 돼었습니다.

Takashi Nagase 2011년에 죽었고, Eric Lomax 2012 10월에 친구를 따라 갔습니다.

Patti Lomax2013년 이 영화 개막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이 철도부설 한곳에서만도 10만이 넘는 사람이 생지옥에서 처럼 죽었습니다.

지금도 콰이강에는 조용히 기억하는 이들이 던지는 꽃이 흘러갑니다.

눈물과 비통함이 있으나 통곡과 악다구니는 없습니다.

         *****



종군 위안부로 끌려가서 죽지 못하고 몇년간 군표 몇장에 욕보다 온 이들중 몇몇이 아직 생존해 있습니다. 이제 그 일본군인들도 거의 다 죽고 없는데 일본 정부에게 사죄하라, 돈 내 놓으라, 보상하라 악을 씁니다. 사죄를 받겠으면 보상을 바라지 말든가, 보상을 받으면 욕본 일로 끝내야 할 터인데 어디가 요구의

끝인줄 모를 행태입니다.

심지어 자기들의 정부와 국가에 까지 보상을 도와주지 않는다고 촛불세워 데모도 합니다. 일제의 식민지 시절 몇 안돼는 살신의 독립 유공자보다 더한 대우를 받겠노라 작정한 할머니들도 있습니다. 강제 동원

종군위안부중에 어떤 분은 정치에 입문하려합니다. 욕된 일을 많이 겪었으니 견문이 넓어진 까닭인가요?

 

평화의 소녀상이랍시고 세계 만방에 쭞아다니며 치욕의 역사를 내 세우는 오직 하나의 민족입니다.

식민지로 살았다는 것을 스스로 외국에 알리는 단 하나의 민족입니다.

종군 위안부상을 이국의 도시에 세운 것이 애국인양 기념사진들 찍으며

손가락으로 V자 만드는 해괴한 행태를 봅니다.

 

나는 이 멍청한 세력들, 눈만 뜨면 식민지인이 돼어 개 돼지 취급을 받았노라 광고하고,

민족의 못난 일만 들썩이는 이 세력들을 에릭처럼 용서를 못 할 것 같습니다.

 

좋은 영화를 보며 내 민족의 격을 부끄러워 하게 돼었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부디 어두운 과거에 눈 돌리지 말고 발전해가는 미래를 보며

공명정대하게, 당당한 인간의 격을 지니고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2016년 여름의 끝자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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