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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Departures -일본영화 2008년 130분
01/14/20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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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kuribito (Memory) -Joe Hisaishi



영화를 좋아하는 저에게는 기쁘나 거북한 소식이 있었습니다.

 

우선 '기생충' 이란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작으로 올랐다는 것입니다. 가마니 둘러친 천막 영화관에서

관객을 울리는 변사의 목소리로 시작한 나운규의 아리랑이란 영화로 태동한 한국영화가 이제는 문화의 집대성이란, 영화계에서도 세계 최고로 인정받는 할리우드에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

참으로 부러운 소식입니다. 장안 최고의 변사가 있었으면 아마도 장내의 모든 사람들이 눈물을 흘릴때 

까지 변설을 끌고 갔을 것입니다. 변사의 능력은 얼마나 장내의 관객을 울리느냐에 달려 있으니까요.

 

한동안 (평화의) 위안부 나라란걸 각인시켜주려는듯, 창녀와 변태 성애자와 그들에 기생하는 양아치들만의 영화로 각국의 영화제를 두들기던 한국의 영화가 이제 그만 창녀들 이야기를 벗어나나 싶어서 한 숨 돌린것도 잠시

 

일반론으로는 우리가 외국 영화를 불 때는 그 영화에서 보여지는 배경과 등장 인물의 소품주요 배역이 아닌 인물들의 행동거지로 그 나라에 대한 선입관을 키우게 됩니다. 한국 영화가 국제 영화제에 끊임없이 던지던 기형적인 성애 행태와 SF, LA, NY 등지에서 검거 실적 3위내에 드는 한국 출신 매춘부들. 그 위에 덮혀지는 (overwrap) 평화의 소녀상이라 개명한 위안부 동상들로 만들어지는 한국에 대한 선입관은 어떨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생충은 그보다 더한 나쁜 인상을 은산철벽에 새긴듯 강렬할까 싶어서 지레 걱정이 앞섭니다. 영화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곳에서 펼쳐지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이미 외국 신문에서도 널리 알려진 조국이란 한국 정계의 실력자의 영화 이야기가 아닌 실생활의 파렴치한 이야기로 '이미 한국에서는 평범한 사실이다라고 인식되는것 입니다.

 

한국이 목청 큰 상놈들이 시정 잡배들이나 할 말을 국회나 청와대에서 주저없이 내 뱉는 현실이긴 하지만 그래도 외국에 내 보이는 영화는 다소 고양된 주제라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best foot forward)

 

그런차에 제가 늘 경쟁의식과 시샘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일본()들 영화에서 한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대부분의 일본 영화는 그들이 좋아하는 망가류의 방구석 봉창 두들기는 정도여서 별로 주목을 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나, 그 중 몇몇은 '아 정말--' 이라 할만한 영화도 있습니다.

- - - - -


Departures -2008, 130 min, 

       일본 최초로 아카데미 외국어부문 최고상 (2009년) 수상한 작품     

 

영화는 눈보라속을 달리는 차안에 앉은 두사람을 보여주며 시작합니다. 도쿄에서 두달전에 낙향한 젊은이와 그를 고용한 사장이 함께 고객의 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폭설로 덮힌 산골 도착한 집은 상가집으로, 두사람은 죽은 사체를 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納棺師)

죽은 자에 대한 슬픔과 사체에 대한 경외감을 사자의 가족들이 조용히 사기고 있는 동안, 사체를 딱고 사파 세계의 때를 벗겨 깨끗한 몸으로 이승으로 보낸다는 염습이, 엄숙한 종교의식처럼 진행됩니다.

 

사장은 신출내기인 젊은이에게 일산화탄소로 자살한 젊은 여자의 염을 맡기고 젊은이는 구도자의 자세로 사체를 한뼘씩 딱아 갑니다. 가까이 지켜보는 가족들도 그 경건함에 숨을 죽이고 지켜 봅니다문뜩 젊은이는 딱기를 중지하고 사장에게 가만히 도움을 청합니다. 사장이 잠시 확인한 후에 가족에게 가서 사체의 화장을 여자로 할지 남자로 할지를 묻습니다. 가족의 갈등과 젊은여자의 죽음의 이유가 밝혀집니다. 망자는 남아로 태어났으나 성정체성으로 인하여 여장을 하며 살아 왔고 질풍노도와도 같은 사춘기에 그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져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잠시 이야기를 두달전으로 돌리면, 도쿄에서 훌 스케일의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9번 환희의 찬가를 합창단과 함께 열정적으로 연주를 합니다. 반 너머 빈 객석을 두고 연주를 끝내자, 의욕을 잃은 얼굴의 악단주가 오케스트라단의 해체를 발표합니다첼로를 연주하던 젊은이는 겨우 입단한 교향악단이라 큰 희망으로 분에 넘치는 비싼 첼로를 샀기에 악단의 해체가 더 큰 좌절로 다가옵니다. 결국은 첼로를 팔고 (천팔백만엔) 2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남긴 시골집으로 낙향합니다.

 

이름도 없는 배우들이 아주 적절한 표정과 소박한 실생활의 소품으로 둘러 싸인채 참신한 연기를 합니다으시대는 주연 배우도 따로 없고, 쓸데없이 튀는 표정의 연기도 없습니다. 조명도 화려하지 않지만 장면과 분위기에 맞고 화면의 구성도 눈에 거슬리지 않습니다. 저 정도의 능력으로는 한 장면도 삭제하지 못할것 같습니다.

 

실직하여 낙향한 젊은 부부. 탁월한 재능이 없어 연주자의 꿈을 버리고 가장의 책임을 진 젊은이는 신문에서 ‘Departure’ 구인광고를 보고 여행사인가 싶어 찿아간 NK Agent 란 회사에 어리벙벙하게 취업을 하게 됩니다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면서 취직한 회사사장과 여비서. 그리고 관이 세개 견본으로 있는 사무실에서 사체를 관에 넣는 일이라고는 알게 되는데

 

출근 첫날, 사장은 소 공연장으로 부른뒤에 별 설명도 없이 우물쭈물 옷을 벗기고 사체역의 모델을 시킵니다. 찍는 영화는 염을 하고 입관을 하는 절차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아무도 보지 않을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아무 일도 아닌듯 하는 바람에 어영부영 조금씩 새 직업 환경에 익어 갑니다.

 

영화는 알듯 모르게 복선을 깔고 조금씩 과거에 대한 힌트를 흘려가며 계속됩니다

최초의 일은 죽은지 2주가 넘은 독거녀의 사체 처리였는데 반쯤 썩은 시체에 토하고 토하고- 몸에 배었을 시체 냄새를 씻기 위해 피부가 벗겨지도록 비누칠을 하고- 저녁식사에 올라온 생닭에서 연상되는 부패한 시신- 그 때 잡아오는 부인의 손에서 살아 있는 육체를 느끼며 삶과 죽음을 대비시킵니다.


그날 밤, 사체 처리라는 충격에서 벗어 나려고 어렸을때 켜던 아동용 첼로를 꺼내 연주를 합니다잊었던 기억들이 안개속처럼 조금씩 살아나나, 6살때 엄마와 자기를 버려두고 젊은 여종업원과 떠나버린 아버지의 얼굴은 기억도 안납니다. 첼로속에는 그 아버지가 남겨준 돌맹이 한개가 있고.

 

어떤 장례에서는 온갖 풍상으로 짓눌린 부인의 얼굴과 영정의 웃는 얼굴이 너무나도 틀립니다. 특히 정성을 드려 염을 마치고 화장을 끝내, 살아 있을 때 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줍니다. 부인이 무슨 색갈의 입술 연지를 쓰는 줄도 모르고 무관심속에 지쳐 죽게 만든 남편 대신 어린 딸이 가져다 준 립스틱으로 화장한 얼굴이 곱게 살아나자, 그제야 자신의 잘못를 알게된 남편이지만 부인은 이미 폭군같은 남편과의 싸움에 지처서 자진한 터라 후회가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젊은이는 경건히 세신(洗身)하여, 망자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넣어서 이승의 마지막을 곱게 단장하여 죽음에 굴하지 않고 추함이 없이 피안으로 보내는 일에 큰 감명을 받고, 사체의 염을 하는 것을 천직으로 받아드려 갑니다. 본디 사체 처리는 백정이나 형장의 망나니같은 최하층 천민의 일이라 가까히 하지 않아야 되는 일이라 인식되어 있었지만 이 젊은이는 염을 끝내고 곱게된 망자를 보고 기뻐하는 식구들을 보면서 작은 보람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첼로의 음율과 상대를 배려하는 어투와, 남편을 의심하면서도 조심히 결과를 기다리는 부인의 마음가짐, 초면의 이웃과의 따뜻하고 예의바른 응대. 일본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일본에 호감을 갖게되고 부러워 하게 될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지방 도시에서도 삶의 질이 한국의 지방처럼 떨어지지 않는 것과 알듯 모를듯 부리는 텃세와 갑질이 보이지 않는것도 부러웠습니다.

 

남편의 직업이 싫고 부끄러워서 처가로 돌아갔던 부인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 돌아 와서, 남편에게 다른 직업을 갖자고 애원합니다. 그 때, 전화가 왔는데 이 젊은이의 직업이 창피하다고 무시하던 옛 친구의 어머니, 목욕탕 주인의 장례입니다. 이 장례에 같이 참관하게된 부인은 참선하듯 정성을 다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죽음과 사체가 두렵고 더럽다고 생각하던 마음이 어느덧 망자에 대한 예우로 바꾸어 지는 것을 느끼며 그 일을 하는 남편을 이해하게 됩니다.

 


          


화장장에서 만난 화장터의 주인은 지난 50년동안 매일 찿아와 목욕하던 단골이었습니다. 그는 죽음이란 다음 생을 향해 가는 길목이며 자기는 그 문을 지키는 사람이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이승의 삶과 피안의 세계 사이를 가르는 경계가 꼭 무서운 것만이 아니고 정성을 다해서 보내고 나니, 오히려 망자와 생자사이를 더욱 단단히 엮어주고, 삶이 힘들고 어렵지만 죽음이란 것이 꼭 무섭게 피해야 할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는듯 합니다.

 

주검과 죽음을 일상의 한 부분으로 보고 있는 일본인의 의식세계가 조금 보여 집니다활짝 핀 수십년 생의 벗꽃 나무를 잘라와서 백화점 입구에 두고, 죽어가는 벗꽃나무의 벗꽃이 눈물처럼 흩날리는 것을 몇시간씩, 며칠씩 지켜보는 일본인의 의식도 연상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미 죽은 어머니 앞으로 보내온 통지서에는 30년 전에 가족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의 

사망이 적혀있었습니다. 그 긴 세월 아버지는 쓸쓸히 혼자 살며 작은 어촌에서 잡일을 거들어주며 어민 협동조합 수위실에서 살았다는데.... 이 아들은 과연 화장을 치르기 전에 찿아가 볼 것인지



(다음에는 같은 주제로 만든 한국영화를 소개하겠습니다. 물론 양아치와 창녀, 기생충은 나오지 않습니다.) 


                                                                                                Joe Hisai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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