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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미학 (美學) 이 사라진 한국에서 (5/5) 문무왕
05/21/2019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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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갑제닷컴의 2018 1 14일자의 컬럼이 흥미로웠으나 다소 길어서 잘라서 싣어 봅니다

읽고난 후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더군요.


남자의 미학 (美學) 이 사라진 한국에서 (5/5)

  남자의 미학/文武王


   三國史記(삼국사기)에 적혀 있는 통일대왕 文武王(문무왕)의 유언은 권력자의 유언으로서는 세계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담담하다. 죽음을 맞아 모든 것을 비운 사람의 담백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일부를 소개한다.


    <(前略) 山谷(산곡)은 변하고 세대는 바뀌기 마련이다. 吳王(손권)北山 무덤에 금으로 채색한 새를 볼 수 없고 魏主(조조)西陵(서릉)에는 오직 銅雀(동작)의 이름만 들을 뿐이라. 옛날 萬機(만기)를 다스리던 영웅도 마침내 한 무더기의 흙이 되고만다. 草童(초동) 목수는 그 위에서 노래하며, 여우 토끼는 그 곁을 구멍 뚫는다. 한갓 자재를 낭비하여 虛事(허사)와 비방만을 책에 남기고, 헛되이 人力 수고롭게 할 뿐 사람의 영혼을 구제할 수 없는 것이다. 고요히 생각하면 마음의 아픔을 금할 수 없으니 이와 같은 것들은 내가 즐겨하는 바 아니므로, 죽은 뒤 10일이 되면 庫門(고문)의 바깥뜰에서 印度 의식에 따라 화장하여 장사지내고, ()輕重(경중)은 규정이 있으나 ()의 제도는 애써 검약하게 하라. 邊城(변성)鎭守(진수)(), ()課稅 꼭 필요치 아니하면 모두 헤아려서 폐하고, 율령과 격식중 불편한 것이 있으면 곧 고치도록 하라. 사방에 포고하여 이 뜻을 널리 알게 하고, 소속 官員(관원)은 곧 시행하라.>


     문무왕의 인감됨을 느끼게 해주는 이 유언은 천하大亂(대란)의 시대에 태어나 山戰水戰(산전수전)을 다 거친 大人物(대인물)의 폭과 깊이를 드러낸다. 죽음을 앞두고도, 전쟁으로 고생한 백성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名文이다. 문무왕이 보여준 권력자의 겸손함은 오늘 대한민국의 공직자들도 참고로 할 만하다.

 바로 이 文武王 모든 것을 걸고 對唐(대당)결전을 선택, 唐軍 축출, 한반도를 韓民族 생존공간으로 확보한 분이다. 50대에 죽은 문무왕 金法敏(김법민)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 그 재를 바다에 뿌리게 한 것은, 권력을 잡았다고 오만과 위선에 빠져 있는 인사들에게 주는 좋은 가르침이 아닌가. 민족사상 최대의 업적을 남긴 인물이 죽음 앞에서 보여주고 있는 인생無常(무상)의 겸허함!

 

 문무왕 8(서기 668) 115, 왕은 멸망시킨 고구려의 포로 7000명을 이끌고 경주에 돌아왔다. 그는 신하들을 데리고 선조의 묘에 배알, '백제와 고구려의 죄를 물어 國運 태평하게 되었다'고 신고하였다. 이듬해 왕은 죄인들에게 사면령을 내렸다. 三國史記 문무왕 적힌 그 요지는 감동적이다.


<지금 두 평정되어 사방이 안정되었다. 적을 무찌를 때 공을 세운 자들에게는 이미 상을 다 주었다. 戰死 혼령들에게도 명예를 추증하였다. 그러나 감옥의 죄수들은 아직 은혜를 입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다. 이를 생각할 때 나는 먹고 잘 수가 없다. 국내의 죄수들에게 특사령을 내리니 오늘 未明 이전에 五逆(임금 아버지 어머니 조부 조모를 죽이는 것)死罪 범하지 않은 자로서 갇혀 있는 자는 범죄의 대소를 불문 다 놓아주라. 죄를 범하여 관직을 박탈 당한 자는 다 복구시키고, 도적질한 자는 석방하되 도적질한 것을 갚을 능력이 없으면 징수를 면한다. 집안이 가난하여 남의 곡식을 취하여 먹은 자로서 농작이 부실한 곳에 사는 자는 갚지 않아도 된다. 농작이 잘 되는 곳에 사는 자는 올해 추수 때 취한 본곡만 갚고 이자는 물지 않아도 된다.'

문무왕이 신상필벌을 엄히 하면서도 백성들, 특히 고통 받는 이들을 극진히 보살피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文武王이란 諡號(시호)처럼 그는 교양을 겸하여 아름다운 균형감각을 가졌던 분이다. 특히 김정은 일당의 同族 살륙 행패와 비교하면 1347년의 時空 뛰어넘는 聖人처럼 느껴지는, 보편적 인간애와 도덕성을 확인하게 된다. 


  671년 문무왕의 答薛仁貴書 계속된다. 그는, 신라가 백제 지방에 주둔한 唐兵 고구려 원정 唐軍 대한 군량미 수송의 2중 임무를 어떻게 수행하였는가를 사실적으로 적고 있다.

    <6월에 先王 돌아가서 장례가 겨우 끝나고 상복을 벗지 못하여 부름에 응하지 못하였는데, (황제의) 勅旨(칙지)에 신라로 하여금 평양에 軍糧(군량)을 공급하라고 하였소. 이때 웅진에서 사람이 와서 府城 위급함을 알리니, 劉德敏(유덕민) 총관은 나와 더불어 상의하여 말하기를, 『만역 먼저 평양에 군량을 보낸다면 곧 웅진의 길이 끊어질 염려가 있고, 웅진의 길이 끊어지면 머물러 지키는 漢兵 적의 수중에 들어갈 것입니다』라고 하였소.

      12월에 이르러 웅진에 군량이 다하였으나 웅진으로 군량을 운송한다면 勅旨 어길까 두려웠고, 평양으로 운송한다면 웅진의 양식이 떨어질까 염려되었으므로 노약자를 보내어 웅진으로 운송하고, 강건한 精兵 평양으로 향하게 하였으나 웅진에 군량을 보낼 때 路上(노상)에서 눈을 만나 人馬(인마)가 다 죽어 100에 하나도 돌아오지 못하였소.

      총관은 김유신과 함께 군량을 운송하는데 당시에 달을 이어 비가 내리고 풍설로 극히 추워 사람과 말이 얼어죽으니 가지고 가던 군량을 능히 전달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평양의 대군이 또 돌아가려 하므로 신라의 병마도 양식이 다하여 역시 회군하던 중에, 병사들은 굶주리고 추워 수족이 얼어터지고 노상에서 죽는 자도 이루 헤아릴 수 없었소. 이 군사가 집에 도착하고 한 달도 못 되어 웅진 府城에서 곡식 종사를 자주 요청하므로 前後 보낸 것이 수만 가마였소.

      으로 웅진에 보내고 으로 평양에 바쳐 조그마한 신라가 양쪽으로 이바지함에, 인력이 극히 피곤하고 牛馬 거의 다 죽었으며, 농사의 시기를 잃어서 곡식이 익지 못하고, 곳간에 저장된 양곡은 다 수송되었으니 신라 백성은 풀뿌리도 오히려 부족하였으나, 웅진의 漢兵 오히려 여유가 있었소. 머물러 지키는 漢兵 집을 떠나온 지 오래이므로 의복이 해져 온전한 것이 없었으니 신라는 백성들에게 勸課(권과)하여 철에 맞는 옷을 보내었소. 都護(도호) 劉仁願(유인원)이 멀리 와서 지키자니 四面 모두 적이라 항상 백제의 침위가 있었으므로 신라의 구원을 받았으며, 1만 명의 漢兵 4년을 신라에게 衣食(의식)하였으니, 仁願 이하 병사 이상이 가죽과 뼈는 비록 나라 땅에서 태어났으나 피와 살은 신라의 육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오.>


      「당신들 唐軍 皮骨(피골)은 당나라 것이지만 당신들의 血肉(혈육)은 신라 것이오」라고 부르짖듯이 말한 문무왕의 이 대목이야말로 신라가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견디면서 삼국통일의 대업을 위해 희생했던 심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문장이 答薛仁貴書 한 클라이맥스이다.

      신라가 백제지역 주둔 唐軍 고구려 원정 唐軍에게 동시에 군량미를 공급하기 위하여 노약자까지 동원하여야 했던 상황에 대한 묘사는 르포 기사를 읽는 것처럼 생생하다. 이런 고통을 지배층과 백성들이 장기간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신라 사회의 내부 단결이 잘 유지되었다는 것이 증명된다. 신라 지배층 내부의 분열을 기다렸으나 일어나지 않았다.


      신라가 對唐 결전을 통해서 삼국통일을 완수할 수 있었던 데는 내부 단합과 이에 근거한 동원체제의 유지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신라의 승리는 정치의 승리인 것이다.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명예심, 다양한 구성원의 통합, 특히 軍官民(군관민)의 일체감이 장기간의 통일전쟁 중에서도 신라의 체제를 지켜냈다.

   문무왕이 피를 토하듯이 쓴(문장가 强首 대필인 듯) 答薛仁貴書에는 그동안 신라가 과의 연합을 위하여 참았던 굴욕을 털어놓고 쌓인 울분을 품위 있게 드러내는 내용들이 많다. 신라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모욕을 참아낸 것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힘을 빌린 다음에 보자는 스스로의 기약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참다운 승리는 굴욕을 참아낸 뒤에 온다는 것을 보여 주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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