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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히스패닉 몰표 ‘첫 여성 대통령’ 꿈 실현 눈앞에
03/05/2016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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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메일 스캔들·벵가지 사건 악재 극복
▶ 공화당 카운터 파트가 최종 시험대


■ 대세론 올라 탄 힐러리 클린턴

2016년 대통령 선거의 최대 관전포인트는 바로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탄생할지 여부다.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이는 2007년 대선에서 ‘첫 흑인 대통령’을 배출하며 미국 역사를 새로 쓴 대기록 못지않게 미국 정치·사회 전반에 메가톤급 변화를 가져 올 일대 사건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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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그동안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이메일 스캔들’과 ‘벵가지 사건’ 악재를 딛고 대세론 부활의 신호탄을 다시 쏘아 올리면서 그 어느 때보다 여성 대통령의탄생 가능성이 커진 상태다.

클린턴은 지난 1일 치러진 수퍼화요일 경선에서 11개 주에서 7개 주를 차지하면서 대세론에 더욱 힘을실어줬다. 비록 4개주를 차지한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의 도전도 만만치는 않지만 역시 거물급 정치인으로서의 관록을 앞세워 대선을 향한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클린턴은 특히 히스패닉과 흑인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흑인들은 2008년 민주당 경선 당시 버락 오바마 당신 일리노이 연방상원의원에게 몰표를 주다시피 하며 클린턴 낙선에 앞장섰었다. 하지만 이번엔 클린턴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극단적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샌더스보다는 정치 경력이 많은 클린턴이 훨씬 더 소수계를 위해 일을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때문이다.

그러나 거칠 것 없는 클린턴에게도 난관은 있다.

‘클린턴재단’의외국인 후원금논란을 비롯해 언제든 시한폭탄으로 작용할 수있는 변수가 곳곳에 잠복해 있는데다가, 민주당 내부 경선을 통과한다고 하더라도 장차 공화당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본선구도가 180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 대선 고지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특히 국무장관시절 사용했던 사설 이메일 문제가 아직도 연방범죄수사국(FBI)에 계류돼 있어 언제라도 그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말이다.

요즘은 클린턴의 월가 또는 대학 강사료가 도마위에 올라 있다.

이름에 걸맞는 거액의 비용을 받았지만 이로인해 제대로된 개혁을 추진 할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품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하나의 난제는 건강이다. 올해 69세의 나이인데다가 종종 뇌진탕 증세로 병원신세를 지고해 대통령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수 있는지에도 의문점이다.

공부벌레, 법조인, 주지사 부인과 대통령 부인, 상원의원, 국무장관, 그리고 두 번째 대통령 선거 도전이라는 화려한 이력의 힐러리 클린턴이미국의 새 역사를 써갈지 관심거리다.

▲어린시절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1947년10월 26일 아버지 휴 엘즈워스 로댐과 어머니 도로시 하월 로댐 사이에서 태어났다.

감리교 신자인 아버지는 웨일스이민 후손으로, 펜실베이니아 주 스크랜턴 출신이며, 시카고 시내에서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 힐러리가 3살 때 가족은 시카고 교외의 파크리지로 이주했으며, 힐러리는 그 곳에서 두 남동생과 함께 성장했다.

▲대학시절
1965년 매사추세츠 주 웰즐리 대학교에 입학하여 정치학을 전공했다. 1968년 여름, 아버지의 영향으로 공화당의 하원의원 밑에서 인턴으로 일했으며, 대통령 선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도 업무 보조를 했지만 민주당의 유진 매카시 후보를 심적으로 지지했다. 1968년 가을, 졸업반학생으로 웰즐리 대학교 학생회 회장으로 당선됐다. 1969년 졸업식 대표 연설에서 힐러리는 이 때 상투적인 졸업 연설 대신 여성·흑인민권문제 등에 진보적인 입장을 피력해 라이프 지에 소개되는 등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1960년대 미국 전역에 들불처럼 번졌던 반전운동과 흑인 민권운동은 클린턴을 ‘공화당 지지자’에서‘민주당 지지자’로 바꾸는 결정적인계기가 됐다.

웰즐리 졸업 후 예일 로스쿨에 입학했으며 1971년 같은 예일 로스쿨학생이던 아칸소 주 출신의 빌 클린턴을 도서관에서 만나 교제했다.

힐러리는 빌보다 한 학년 선배여서1972년 졸업예정이었으나 빌의 졸업때까지 1년간 같이 지내기 위해 졸업을 1973년으로 미뤘다.

▲졸업후 경력
워싱턴 D.C.와 아칸소 주의 변호사 시험을 쳤는데 아칸소 주에서만합격해 아칸소 주의 변호사 자격을얻었다.

1978년 남편 클린턴이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됐다. 1979년 로즈 법률회사의 공동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했고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어 백악관에 들어가기전까지는 그녀의 수입이 항상 남편보다 많았다. 이때 여러 투자로 재산을 불렸다. 후일문제가 된 화이트워터 개발 회사의 부동산 벤처 사업에 투자하기도 하였으나 이는 좋지 않은 결말로 끝났다.

▲르윈스키 추문
1998년 백악관 인턴이었던 모니카 르윈스키와 클린턴 대통령과의혼외정사에 대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결국 빌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에 이르기까지 사건이 번졌다. 힐러리는 이러한 소문에 대해 우익의음모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이러한의혹이 사실로 밝혀지자 빌 클린턴과 힐러리 사이의 결혼에 대한 위기설이 퍼졌다. 힐러리는 2003년의 저서전에서 결혼을 유지하기로 한 이유에 대해서 “빌처럼 나를 웃게 만들고 이해하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습니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났어도 그는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가장흥미로우며 정렬적이고 활발한 사람이었습니다.”라고 했다.


<한국일보 김정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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