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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인과 함께 한 가을 여행(차코 컬쳐, 세번째 이야기)
07/06/2016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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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화이트 샌드를 보고 25번 하이웨이를 타고 북상하여 앨버쿠키(Albuquerque)를 바로 지나면서 550번 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는 바로 눈앞에 보이는 멕도날드에 차를 세웠다. 잠시 쉬기도 하고 커피도 한잔 마시기 위해서이다.

 

내일 볼 곳을 차코 컬쳐(Chaco Culture)로 정하였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서 숙소를 잡으려고 그 곳에서 숙소 잡기

헌팅을 시작하였다. 그때 시각이 저녁 7시쯤 되었다. 한시간 정도 더 운전하여 쿠바(Cuba)라는 도시로 가서 숙소를 잡으려고

전화를 걸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할수없이 나는 Bernalille이라는 이름도 모르는 도시의

멕도날드 근처에 있는 Days Inn 이라는 모텔에 짐을 풀기로 하였다. 다행히 그 곳에는 실내 수영장과 자쿠지가 있어서 아직도

몸에 많이 남아있는 화이트 샌드에서 가져온 모래를 말끔히 씻어 낼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모텔에서 준비한 콘티넨탈 아침 식사를 하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어제 밤 갈까 했던 쿠바(Cuba)라는 시골 마을을 지날땐 차를 세워서 오늘 먹을 점심을 위해서 써브웨이에 들러서

샌드위치로 도시락을 준비하였다. 미국의 시골 마을을 여행할땐 되도록이면 먹을 거리를 미리 준비하는게 좋다.

어떨땐 정말 한나절 동안 식당이나 마켓을 전혀 만나지 못할때도 있다.

 

550번길을 타고 북서쪽으로 다시오다 7900번 길을 만나서 좌회전하여 들어가면 찾아가는 목적지가 나온다. 

 

 

 

이렇게 좌회전하여 21마일을 더 들어가면 차코 컬쳐가 나온다는 싸인이 있다.

중간에는 식당, 주유소 같은 것이 전혀 없다는 그림도 아래에 보인다. 

 

그리고 조금더 가다 7900번 길을 7950번 으로 갈아타야 한다. 여기서 바꿔탈 길을 조심하여 눈여겨 보아야 한다.

길을 바꿔타고 더 가다보면 굉장한 비포장 도로가 나타난다. 내가 오늘의 기상 상태를 염려 했던 것은 이 길 때문이다.

만약 비가 온다면 전혀 진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날씨는 쾌청 그 자체이다.

 

 

 

드디어 흙먼지를 뚫고 입구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공원안의 도로는 포장이 잘되어있다.

 

 

 

세 여인들의 오늘 활약상이 또 기대된다. 언니의 폼이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방문자 센타의 주차장에 내리니 벌써부터 산위의 바위가 위용을 자랑한다.

 

 

 

차코 문화 국립 역사 공원(Chaco Culture National Historical Park)은 미국 뉴멕시코 주 서북부 샌 후안 분지(San Juan Basin)

에 있는 차코 캐년(Chaco Canyon) 지역에 있는 것으로서 서기 900년 부터 1150년 까지 아나사지(Anasazi) 인디언의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 유적지를 국립 역사 공원으로 지정한 곳이다. 1150년경부터 계속되는 가뭄으로 말마암아 아나사지 인디언들은 살기가 어려워지자 이곳을 버리고 생활 여건이 좋은 곳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현재의 나바호(Navajo), 쥬니(Zuni), 푸에블로(Pueblo) 인디언들이살고 있는 지역으로 이동한것 같다고 한다. 그후 차코 캐년은 폐허가 되어버렸고 많은 대형 건물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흙더미에 덮힌채 70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1846년 뒤늦게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07년에 내셔날 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고 1980년에 국립 역사 공원으로 지정 되었으며 1987년 UNESCO에서 세계 유산(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되었다.



 

1896년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굴작업이 시작되어 푸에블로 보니타(Pueblo Bonita)를 발굴했다. 1907년에는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내셔날 모뉴멘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고 1980년에는 국립 역사공원(National Histrical Park)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7년 후인 1987년 UNESCO에서 세계 문화유산 지역 (World Heritage Site)으로 지정되었다.

 

 

 

이 공원내에는 약 2400개에 달하는 엄청나게 많은 유적지가 발견되었지만 발굴 작업을 한 유적지는 소수에 불과하고 앞으로 발굴해야 할 유적지는 많지만 되도록 발굴을 서두르지 않고 미루어 고고학적 과학 기술이 더 발전될 후 세대에 가서 하도록 유적지 보존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차코의 인디언들은 한 건물에 수백 개의 방이 있는 지금의 아파트와도 같은 대형 건물을 다층구조로 여러채를 지었다. 벽을 쌓는 

건축 재료로 현지에서 나오는사암돌을 벽돌같이 잘라서 층층이 쌓아서 건물을 지었는데 4-5층 구조로 짓기 위해서는 많은 석가래용 통나무가 필요했다.

 

 

 

그들이 사용한 통나무 수는 약 20만개였을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부근은 비가 오지 않는 황야여서 큰 나무가 자라지를 않는곳이다.

 

 

 

그들은 80km나 되는 먼 거리에 있는 산에서 벌목을 해서 통나무를 운반해 가져왔어야 했는데 그 당시에는 마차라는게 없었고

바퀴 자체가 발명되지 않았으니 인적 노동력에 의존했을텐데 어떻게 이 엄청난 일을 했는지 알수가 없다.

 

 

 

애초에 집단 거주 지역을 왜 산밑이나 강가 같은 입지 조건이 좋은곳을 택하질 않고 이와 같이 사막 같은 황야의

고원 지대에 정했는지도 알수가 없다.

 

 

 

대표적인 건물 유적지로 푸에블로 보니토(Pueblo Bonito), 킨 크렡소(Kin Kletso), 푸에블로 알토 (Pueblo Alto),

우나 비다(Una Vida) 등이 있다.

 

 

파일:Pueblo Bonita Ruin.jpg

 

차코 문화 역사공원중 가장 규모가 큰 푸에블로 보니타에 둥근 모양의 키바(Kiva)들이 여러개 보인다

 

 

 

키바(kiva)는 미국 남서부 푸에블로 인디언이 제의와 사교의 목적으로 사용하는 지하방을 말한다.

 

 

 

색색의 벽화로 특히 유명하다. 키바가 씨족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 푸에블로 인디언 사이에서는 한 부락에 2개 이상의

씨족 집단이 살기 때문에 부락마다 적어도 2개 이상의 키바가 있다.

 

 

 

키바의 바닥에 있는 시파푸(sipapu)라는 작은 구멍(때로 나무판자를 뚫어서 만듦)은 예전에는 부족의 상징적인 기원지로 여겨졌다.

키바의 주요목적이 의식을 치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 제단이 만들어지지만 남자들의 정치적 회합이나 일상적인 모임을 위한

장소로도 사용된다. 여자들은 키바에 들어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4각형 또는 직4각형의 다른 푸에블로 건축물과는 달리 

초기 키바의 전통적인 원형 구배(勾配)는 호피족이나 주니족의 문화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는 선사시대 배스킷메이커 문화의 원형 구덩이 집을 연상하게 한다.

 

키바의 벽화는 신성한 형상이나 부족의 일상생활을 그린 것들이다. 이 벽화들은 곡선보다 직선을 강조한 기하학적 모습이며,

모든 벽화는 벽 둘레의 직선을 따라 그려졌다. 벽화의 재료로는 아도비 분말과 이 지역에 풍부한 무기 침전물로 만든 색색의

물감을 이용했다.

 

푸에블로 인디언들은 예전에 그린 벽화 위에 여러 번 덧칠하여 그림을 그렸는데, 최근에 여러 개의 벽화가 새로 복원되었다.

 

 

 

차코인들은 이곳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직선 도로를 여러 개 만들어 주변의 다른 마을과 연결되게 해놓았다. 최근에 와서 공중사진과 인공위성에서 찍은 사진으로 옛날에 만든 도로의 흔적을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차코 캐년을 중심으로 거미줄 같이 사방으로 뻗어나간 직선 도로가 모두 합치면 약 400마일(640km)이된다. 말이란 동물이 없었고 바퀴 자체나 마차가 발명되기 이전에 폭이 30ft(10m) 나 되게 직선 도로를 계획적으로 만든 이유가 무엇인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중 하나다. 도로를 만들때 산이나 언덕같은 장애물이 있으면 이를 피해 돌아가는게 일반적인 상식인데 이들이 만든 도로는 계단을 만들더라고 직선을 고집하며 굽힘이 없는 직선 도로를 만든 이유를 아직 알길이 없다.

 

또 도기를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였고 터키석(Turquoise) 보석 공예품을 개발하여 그들의 제품은 멀리 남쪽 멕시코의 정글과

태평양 연안에까지 거래하였다고 한다.

 

 

 

파일:Pueblo Bonito Aerial Chaco Canyon.jpg

푸에블로 보니타의 원경 : 건물이 D자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그들은 달과 태양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춘분과 추분의 날짜를 알았고 천문학적 지식을 건축 공사와 농사짓는 일에 적용시켰다.

파하다 뷰트(Fajada Butte)라고 부르는 뾰죽한 산 봉우리는 당시의 천문관측을 해온 유적이 있는 곳이다. 해의 위치에 따른 돌판

사이로 비치는 그림자의 이동을 관측하여 동지와 하지, 춘분 추분을 알아내는 나선형의 페트로그립(Petroglyph) 그림이 있는데

이를 썬대거(Sun Dagger)라고 부른다. 유적의 보호를 위해 일반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뉴멕시코 박물관에서 만든 웹사이트에서

실제로 가 보는것 이상의 체험을 할수 있게 되어 있다.

 

 

파일:Fajada butte in the Chaco Canyon.jpg

 

파하다 뷰트(Fajada Butte)에는 태양 관측에 쓰인 유적 썬대거(Sun Dagger)가 있다

 

 

 

 

푸에블로 보니토(Pueblo Bonito)는 이곳 공원에 있는 유적지 중에서 가장 크고 차코 문명을 대표할수 있는 중요한 유적지다.

푸에블로 보니토의 뜻은 “아름다운 마을” 이란 뜻이다. 4층 구조로 지은 대형 아파트 같은 건물로서 651개의 방과 40개의

키바(Kiva)를 가진 건물 유적지이다. 반달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고 “D” 글자 모양으로도 보이는 설계로 지었다고 말할 수 있다.

 

 

 

 

건물의 배치가 남향이 되도록 지었는데 반원의 직경 부분이 되는 전면의 벽이 춘분과 추분때의 해뜨는 지점과 해지는 지점을 이은

선에 일치하게 배치를 했다. 이 건물은 주택지로 쓰인 것이 아니고 종교적 또는 정치적 목적으로 쓰여진 건물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 유적지에서 5년간 발굴한 결과 6만여점의 유물이 나왔고 이 유물들은 여러 차례 화물차에 실어 뉴욕 박물관으로 보내졌다.

 

 

파일:San Juan Basin Prehistoric Roads.jpg

 

차코 캐년 인근의 방사형으로 뻗은 직선 도로망과 인근 부락들.

 이 곳은 네개 주가 서로 만나는 지점과 아주 가까이에 있다.

 

 

파일:Chaco Canyon Pueblo Bonito doorways NPS.jpg

 

푸에블로 보니타의 거주지 방과 방을 연결한 문.

 

 

 

 

옛날의 뉴멕시코는 아나사지(Anasazi) 인디언 들만이 살던 땅이였다. 서기 800년에서 1300년 사이에는 아나사지 인디안이

뉴멕시코 서북부에 있는 차코 캐년 지역을 중심으로 도시를 형성해서 차코 문명(Chaco Culture)을 이루며 살았다.

그러나 1276년부터 1299년사이에 있었던 심한 가뭄으로 그들은 챠코 캐년의 도시를 버리고 리오그란데 강가로 내려와서

소 집단을 이루는 푸에블로(Pueblo)를 형성해서 농사를 위주로 하면서 흩어져 살게 되었다. 서기 1500년경에는 캐나다 지역에서

살던 나바호(Navajo)와 아파치(Apache) 인디언이 뉴멕시코로 이주해 내려왔다. 나바호 인디언은 리오그란데강의 서쪽 지역에

정착했고 아파치 인디안은 뉴멕시코의 남부, 동부에 흩어져 살았다.

 

 


차코의 중심엔 '포에블로 보니토 Pueblo bonito 와 체트로 케틀 Chetro ketl'이라고 하는 집단 주거 시설이 있다.  

이곳에는 2~5층으로 되어있는 800여개의 방과 32개의 종교시설인 원형의 공동방으로 이루어져있다. 




차코 컬쳐 국립역사공원 Chaco Culture National Historical Park 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어마어마하게 큰 바위산 아래에 위에서 보는것과 같은 허물어진 아즈텍 문명이 역사를 말해주며 이렇게 자리를 잡고 있다.  

천년전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살던곳으로 AD850부터 약 300년동안 그들은 광활안 뉴멕시코 주에 그들만의 문명의 꽃을 피웠다.  

미국 남서부에 사는 모든 인디안들은 이곳에서 살다간 후손들이라고 한다. 1150년 차코인들이 이 마을을 버리고 떠난 뒤 700년

뒤인 1849년 미 육군 중위에 의해 발견되었다. 이 곳은 북미 원주민들이 이룩한 문화중 가장 발달한 문화로 평가 받는 곳이다.  

 

 

 

산타 페(Santa Fe) 시에서 서쪽으로 190km 떨어진 곳에 있는 아나사지 Ananazi 족의 고도로 발달한 문화를 볼 수 있는 이곳에는 

이들의 건축물중에서 종교의식을 치르던 키바 Kiva 는 지하에 있는 원형 또는 타원형의 건축물로 큰것은 22m나 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3.6~6.6m 이다.  키바의 천장 한가운데에는 출입구 또는 환기구로 추정하는 구멍이 남아있다.  

 

 


큰마을이 12개가 있고 작은 마을은 400개 정도가 있으며 이 마을들 사이로 방사선으로 뻗은 도로는 4~6m 넓이에 길이는 무려 600km 에 달해 당시 교역이 매우 활발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12세기 이곳에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약 2천여명으로 추정되는 아나사지 족은 갑자기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라지고 말았는데 그들이 어떤 이유로 사라졌는지는 지금도 수수께끼로 남아있을 뿐 알려진 것은 없다.  그들이 사라지고 수백년이 지난 17세기에 나바호족이 이곳에 정착했었다. 발견 이후 계속 발굴된 그들의 유적은 북미 아메리카 인들이 이룩한 문화중 가장 발달한 문화로 밝혀졌다.  


바위산에서 바라보는 차코 인디언 유적지는 보는 이를 압도한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 우뚝 솟아있는 타원형의 요새는 보는이로 하여금 경건함을 느끼게 만든다.  철옹성으로 만들어진 요새는 다른 부족으로부터 자기들의 종족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큰 감동을 남겨준다.  아파치족과 더불어 가장 용맹스런 인디언 부족으로 알려진 차코 인디언들이 얼마나 치밀한 계획으로 요새와 주거지역을 건설했는지 잘 보여주는 유적지이다.

 

 

 

 

유적지 입구에 있는 바위안에 새겨 만든 기념판을 사진으로 찍어서 여기에 올려본다.

 

 

 

 

카메라를 손에 든 나의 모습에서 무슨 탐험가나 아니면 여행 작가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냥 나 혼자만의 생각(착각)인가?,,,ㅎㅎㅎ)


그러나 이런 결과물과 인해서 2014년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미국 어드벤쳐 회사인 트렉아메리카(TrekAmerica)

에서 투어리더일을 한국인 최초로 하고있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전부가 인디언의 후예들이다.

 

 

 

보수 공사를 하는데 물어보니 흘러내린 흙만 보수 한다고한다.

 

 

 

건물 뒤편에는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하여 나무로 만든 기둥을 받혀놓았다. 

 

 

 

차코 캐년 역사의 중간 지점에 앉아서 아내와 나는 기념 사진 한장을 남겨보기로 한다.

 

 

 

 

사실 이 사진은 방문자 센타 안에 유명 사진 작가가 전시 한 것을 찍은 것이다. 겨울철 석양때 찍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을 좀 가까이서 찍어 보도록 한다. 돌의 모양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을 따라서 한바퀴를 돌면 건물의 외관을 다 볼수있다.

 

 

 

가다가 약간 높은 지점에서 아래를 볼수도 있다.

 

 

 

아래로 내려와 다시 바깥쪽을 걷는다.

 

 

 

하늘에서 내리는 한 낮의 햇살은 강렬함 그 자체이다.

 

 

 

구르는~돌 님은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이 역사적인 사실 앞에서 정성을 다하여 기록을 남기고 싶어한다.

 

 

 

 

건물 내부쪽으로 들어가서 보는 모습이다. 보면서 나는 잠시 한국서 보았던 구들장 모습이 떠올랐다.

 

 

 

대형 키바의 모습이다.

 

 

 

이 곳을 현대의 아파트 단지로 비유하고 생각하면 될 것같다.

 

 

 

 

 

 

 

여기 저기를 다니며 잘 보존된 옛 터전을 보면서 인디언의 과거 안정된 거주지를 볼수 있다는 것은

인디언들의 거주에 대한 편견을 깨고 전혀 알지 못한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는  특별한 체험이고 기쁨이다.

 

 

 

레인저가 안내하는 프로그램도 마련되어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고 영어를 소화 한다면 강력히 권하고 싶다.

 

 

 

이곳은 뒤편이 큰 바위산으로 확실히 보호하고 지켜주는 청통같은 요새라 아니할수없다.

 

 

 

고개를 다른곳으로 돌려도 인디언 냄새가 나는것 같은 풍경의 바위산을 볼수있다.

 

 

 

방문자 센타에 있는 사진인데 여기 거주지는 역시 물이 흐르는 지역임에 틀림없다.

인류의 모든 문명이 강을 끼고 형성되었다는 역사적은 사실을 이 사진은 증명한다.

 

 

 

보는 것을 다 마치고  세 여인의 옷차림을 보니 모두의 상의가 같은것으로 통일 되어있는 것을 알수있다.

카키색 레인저 조끼를 구입하여 자연과 더 친숙해지려는 노력을 하려는 것을 알아차릴수 있다.

 

나도 같은 것을 구입하려 하였지만 불행히도 내 몸에 맞는 사이즈가 없었다.

그들은 주니어 사이즈를 입고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은 어른 사이즈이기 때문이다.

 

이 곳 탐험을 마친 일행들은 아직은 우리가 뉴멕시코 주에 있지만 비포장 도로를 타고 왔던길로 되돌아가서 

다시 550번 길을 타고 계속 북상하면 콜로라도 주로 갈수있다. 두랑고(Durango)를 지나 실버톤(Silverton)까지는 

아마 오늘 갈수 있을것 같다. 만약 시간이 허락 한다면 유레이(Ouray)까지 가면 좋겠다. 그러면 거기서 온천이

있는 숙소을 잡아 미국의 알프스를 제대로 즐길수도 있을테니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계속 힘차게 엑셀을 밟고 실버톤을 지나 어두움을 안고 유레이를 향해

달려가는데 그만 밖엔 눈이 오기 시작하였다. 점점 굵어지고 밖은 깜깜해져서 전혀 안보이는데 아무리

백만불 짜리 길(?) 이 좋다하지만 이런 무리는 삼가는게 좋다고 판단하여 차를 다시 실버톤으로 돌렸다.

 

거기서 그림 같이 좋은 숙소를 구하고 하루를 유하기로 하였다. 그럼 내일은 분명히 백만불 짜리 길(?)

을 갈수 있을것으로 기대한다.

 

 

다음편에선 실버톤에서 유레이까지 24마일 구간의 "밀리언 달러 하이웨이"를 보여주기로 하겠다.

또 콜로라도의 가을 풍경도 미국의 스위스 라고 하는 곳과 더불어 함께 알리려고 한다.

 



 

  글 & 사진: Kenny Chi(세울림) 투어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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