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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심장(keith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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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못한 삶의 방향 4
05/23/202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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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U에서의 마지막 날에는 수술을 집도한 담당의사의 검사를 받았다. 그리곤 그의 결정으로 나는 다시 앰브란스에 실려 처음 입원했던 병원의 일반병실로 옮겨져 추가적인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사실 수술후 나의 생각으론 4-5일이면 퇴원할수 있을것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겪은 급성심근경색의 정도가 상당히 심각한 것이었음을 들었다.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9년전에 나의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분이 병실로 찾아왔다. 병실에 꽂아있는 차트를 살펴 보고는 하는 말이… 앞으로 재활운동을 받아야 하는데 심장의 상태가 정상으로 회복하는데 아마 시간이 많이 걸릴것 같다, 아마 어쩌면 영원히 직장에 복귀를 못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하지 말고 초기의 상태와 달리 회복이 빨리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나는 3-4개월 정도 후면 간단히 조깅정도는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그가 병실을 떠난후 약간의 불안한 느낌이 느껴진다. 


일반병실에 있으니 가족및 친척들의 방문이 시작되었다. 결혼한 딸과 손자, 손녀. 미래의 배우자를 데리고 같이온 아들과 딸. 처형부부 등등.. 거의 매일 방문객들이 들려 나의 모습에 놀래고 곧 좋아질것이라는 기분좋으라는 말들을 한다. 그런데 사실 몸이 아프니, 특히 저혈압으로 인한 피곤함, 머리가 멍한 느낌...등으로  잦은 방문이 불편할때도 있다. 그래도 나를 위해 찾아온 그들인데 돌아갈때까지 웃음을 보여야지. 그런데 잠시 한편으로는 만약 내가 세상을 떠났다면 이곳은 장례식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해짐을 느낄수 있었다. 결국 삶의 방향은 생각치도 않게 전개될수 있구나.


회복병동에 돌아온후 이제 간단한 움직임은 스스로 할수있게 되었다. 아주 작은 걸음이지만 보조기구를 이용해서 가까운 복도를 재활운동을 돕는 간호사와 함께 걷기도 하고 (물론 처음에는 몇걸음 걷고 서고 다시 걷고 하는) 병실의 화장실도 혼자 가서 해결이 가능하고, 음식도 소량이지만 제법 섭취하고. 양팔에 주사기 자욱이 선명한데 특히 오른쪽 팔은 손 부위부터 팔 위까지 거의 어깨선이 닿을부분까지 까맣고 짙은 보라색 멍이 자욱하다. 심장수술을 위해 과거에 다리의 동맥을 이용했던것과 달리 지금은 손목의 동맥을 이용해 심장까지 도달하는 기구들을 사용한 까닿에. 그리고 어느정도의 붓기도 있어 팔목의 두께가 정상때 보다 굵어져 있음을 볼수있었다. 그리고 그 흉칙한 보라색 멍들은 나중에 퇴원후 집에 돌아온 후 거의 한달간 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병원에 열흘넘게 있다보니 이곳 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해 진다. 조금씩 나아지는 기분이 드니 차라리 퇴원해서 집에서 요양을 하는것이 나을듯 하다. 병원 밥 말고 바깥 음식을 먹고 싶다. 담당 간호사가 병실에 들렸을때 언제 퇴원이 가능할까 물었다.  지금은 상태가 좋아지고 있으니 곧 퇴원이 가능할것 같다고, 내일 담당의사가 출근하면 자세히 알려 줄거라 한다. 집으로 돌아 갈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약간 들떠진다. 이곳 회복병실에서 나를 찾아온 세명의 의사분(그리고 십여명의 간호사)을 만나 보았는데 그중 두분, 인도계 의사 한분 하고 또 다른 인도계 간호사 하고는 많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사실 병원에 머물면서 병세에 대해서만 얘기를 나누는것은 시간이 많이 지나면 따분해 질때가 있다. 물론 의료진과의 대화내용이라는것이 거의 그렇지만… 그런데 지금 이렇게 시간이 지내고 보니 가까이 지내고 마음으로 진정 고마움이 느껴지는 한분의 의사와 또 다른 한분의 간호사...이 의사분이 처음 병실을 방문하여 몸의 상태에 대한 설명중에 나에게 무슨일을 하냐고 묻기에 장거리트럭을 운전한다고 했더니 의외의 표정을 지으며 자신은 내가 사업을 하거나 사무업무를 볼것으로 생각했다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시작된 대화… 어떻게 트럭 운전을 하게 되었는지…


사실 국제마켙팅관련 일을 오래해온 나는 9년전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난후 스스로의 병치래를 2년가까이 한후에 트럭운전 일을 하기까지 본사가 싱가포르에 위치한 회사의 미국지사업무를 맡아 일을 하며 해외 출장근무에 일년의 삼분의 일을 보내던 일을 했다. 회사의 제품을 공급받는 해외 회사들을 방문하고 새로운 바이어들을 만나고 전시회에 참가하고…정말 바쁜 업무였고 아내는 우리 사이에 태어난 연년생 세명의 아이들을(딸 둘, 아들 하나) 돌보며 가끔은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 자원봉사를 하는 전업주부 였고 간혹 석달정도나 소요되는 해외출장을 다니는 남편을 대신해서 모든 가사일을 하고 . 지금도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기억들을 얘기해 보라고 물어보면 어린시절 엄마의 차였던 토요타 랜드크루져 뒷자석에 앉아 아빠 데려다주려 아니면 출장에서 돌아오는 아빠 데리려 공항에 가었던 기억이 많이 난다고 한다. 한번은 내 차가 정비소에 있어 아내의 차를 잠깐 빌려 사무실에 들렸는데 미팅이 끝나고 나를 배웅하는 손님이 랜드크루서 뒷좌적에 놓인 아동용 좌석 셋을 보더니 의아해 하면서 왜 CAR SEAT이 세개나 되지? 하길레, 음... 회사의 연봉이 적어 가끔 주말에는 저것들 세일즈해서 먹고살아… 라고 했더니 그 백인친구 정말인줄. 그런데 사실 다니던 회사의 연봉은 우리가족 생활하기에 충분했고 혜택도 좋아 (지금의 그런 직장 거의 없을듯) 전가족 의료보험에 핼스크럽, 자동차 제공및 모든 정비및 유류비용지불, 일년에 한번 가족 휴가비용까지 제공해주는 회사였다. 은퇴할때까지 다니려 했는데.. 그게 내뜻대로 되는것이 아님을.


회사일 덕분에 정말 많은 나라들을 다녀본 기억이 있다. 서유럽 부터 남미 끝까지, 물론 본사하고 공장들이 있는 여러 동남아 국가들은 자주 들리고…공장이 있는 인도네시아에는 본사소유의 아파트가 있어 자카르타에 갈때는 내가 머물던 방을 관리인이 미리 비워놓곤 했다. 물론 그들 부부를 항상 친절하게 대하고 그곳에 갈때면 꼭 선물을 전해주는 나에게 좋은 감정을 느꼈을수도 있으니까. 나중에 내가 길건너에 있는 샤핑센터에 혼자 간다고 했을때 관리인이 나를 따라나서고 4-5명의 불한당에게 강도 당할뻔 했던나를 구해 준 적도 있다. (그곳에는 오토바이 택시가 많이 있는데 길가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많은 운전자들이 알고 보니 관리인의 친구들, 관리인이 뒤에서 샤핑을 마치고 돌아오는 내 뒤를 몇결음 차이로 따라오다가 강도들이 나를 애워쌓는것을 보고 소리를 질러 구원을 요청하니 이들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뛰어와서 나를 구해줌).


가끔 아내가 투정을 부린다. 나혼자 좋은 구경은 다 다니고 자기는 아이들 돌보느라 집구석에만 있고. 그럴때 마다, 내가 놀러다니나? 일하러 다니지. 몰론 해외출장은 근무가 우선이다. 하지만 가끔은 현지 직원들이 예우 차원에서 그지역을 관광시켜주는 경우도 있다. 유럽쪽은 그러한 (내가 스스로 업무후 시간을 내서 관광을 하면 가능, 그렇지만 거의는 일끝내고는 다음 목적지로 바로 출국) 경우가 드물지만 동남아 나 남미국가의 경우 현지 문화가 낙천적인 바이어여서 인지 사적인 관광을 시켜줄 경우가 있다. 지금도 브라질에서 경험한 그 현란한 삼바 페스티발의 밤은 잊을수가 없다. 나중에 허락이 된다면 아내에게도 그 같은 경험을 심어주고 싶은데...그리고 이태리 밀라노 어느 길가에 위치한 피자 가게에서 자정이 넘은 밤 누군가의 기타선율을 들으며 주문한 아주 얇은 올리브잎에 토마토를 얻은 피자에 포도주를 마시던 기억... 사람은 나이가 들면 기억을 먹고 산다는 얘기가 있던가? 지금의 내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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