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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자리/목성균
05/06/2018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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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자리/목성균  

 

 

 눈이 하얗게 내린 새벽 뜰에 비닐봉지에 담긴 신문이 떨어져 있었다. 대문을 열고 골목을 내다보았다. 들끓는 세상사를 새벽 뜰에 던지고 신문배달부는 하얀 눈 위에 정갈한 발자국만 오목오목 남겨 놓고 간다. 눈은 사뿐사뿐 수직으로 내려앉는다. 제 성미를 못 이기고 흩날리던 삼동의 마른눈(*비와 섞이지 않고 내리는 눈) 에 비해서 다소곳이 제자리를 찾아 내려앉는 촉촉한 눈송이가 봄눈임을 느끼게 한다.

신문을 집어들고 일어서는 내 정수리 위로 ‘끼-룩 끼-룩-’ 하는 기러기떼의 울음소리가 뚝 떨어졌다. 깜짝 놀라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쳐다보니 눈발만 가득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기러기는 구름 위로 높이 날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남도 어디서 겨울을 나고 시베리아로 돌아가는 기러기떼의 대장정(大長征) 소리였다.

겨울 철새 도래지인 주남저수지의 갈대밭에 농부들이 해충을 태워 죽이려고 들불을 놓았다고 한다. 저 새들은 거기서 불안한 겨울을 나고 돌아가는 것일까? 농부가 아닌 사람들은 철새 도래지에 들불을 지른 농부들의 처사를 잘못이라고 했지만 영농의 일환이라는 농부들이 말도 일리가 있다. 겨울 철새들이 주남저수지를 찾아오는 것은 농부들의 풍년 농사를 돕기 위한 것은 아니다. 새들의 도래 조건에 맞기 때문일 것이다. 농부들은 조류학자도, 탐조가도 아니다. 따라서 영농에 지장을 받아 가면서 철새 도래 환경을 보전해야 할 의무는 없다. 철따라 자릴 옮겨 살아야 하는 철새들의 숙명이 딱할 뿐이다.

‘끼-룩 끼-룩-’하는 소리가 눈발 속으로 멀어져 갔다. 겨울 서식지를 훼손당하고 전전긍긍 겨울을 나고 가는 기러기떼가 불쌍하다. ‘끼-룩 끼-룩-’ 밤낮 없이 날아가야 할 구만리 장천의 먼 노정을 서로 격려하는 돈독한 집단의 그 소리가 무리의 일체감을 느끼게 한다.

어느 해 초겨울 까치내 강둑에 서서 차가운 대륙성 고기압이 확장돼 오는, 노을 진 빈 들판의 넓은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기러기떼를 본 적이 있다. 기러기떼는 V자 대형을 지어서 가물가물 북쪽 하늘에서 나타나 ‘끼-룩 끼-룩-’ 소리를 내 머리 위에 떨구고 남쪽 하늘로 사라져갔다. 기러기 떼의 V자형 편대가 내 머리 위에 이르렀을 때 고공 무용을 한번 연출했다. 대형을 쭉 펴서 一자로 날다가 다시 V자 대형을 짓는 것이었다. 유연하고 우아한 무리의 움직임이 발레의 군무처럼 감동적이었다. 그건 맨 앞자리에서 나는 새의 자리바꿈 의식인 것이다.

기러기 떼가 V자 대형으로 날아가는 것은 앞에 나는 기러기의 날개 끝에서 발생하는 상승기류를 타기 위해서 사슬을 지어 나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새들은 대각선의 편대를 짓는 것이다. 그러면 맨 앞자리에서 나는 새는 앞에 나는 새가 일으키는 상승기류를 타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날갯짓만으로 날아갈 것이다.

자신의 양 날개 끝에 따라오는 두 줄의 대각선, 그 편대의 대장은 고스란히 바람의 저항을 다 받으면서 무리를 이끌어 간다. 맨 앞자리는 얼마나 힘이 들까! 그래도 가끔 불쑥 앞자리로 나서는 새가 있다. 그러면 그 새의 뒤를 따라서 V자 대형이 새로 이루어진다.

기러기 떼의 앞자리는 영광의 자리일까? 희생의 자리일까? 영광의 자리든지 희생의 자리든지 맨 앞자리에서 나는 새가 한 마리 있어야 무리가 형성된다. 앞으로 불쑥 나선 새의 뒤를 따라서 무리(無理) 없이 재편성되는 기러기떼의 대형으로 보아서 그 앞자리는 자기를 희생하는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러기들이 무리의 맨 앞자리를 영광의 자리로 탐냈다면 다툼으로 대형이 흔들려 대장정은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하고 까마귀떼처럼 흩어졌을지 모른다.

늦가을 빈들 위를 나는 까마귀떼를 보면 혼란스럽다. 거기에는 선두가 없든지, 전부 다 선두든지 하다. 오합지졸(烏合之卒)인 것이다. 선두가 없는 것은 선두가 살신성인(殺身成仁)하는 자리로 인식되어 기피하기 때문일 것이고, 전부 다 선두인 것은 선두가 영광의 자리라서 서로 탐을 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정도 의식 수준의 무리라면 통제나 질서 유지가 안 된다.

기러기들은 맨 앞자리의 필요성을 잘 안다. 그래서 존중한다. 기러기떼의 앞자리는 선거법에 의해서 선출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서슴없이 앞으로 나서고, 죽지의 힘이 떨어지면 서슴없이 물러난다. 임기 5년의 단임제의 자리가 아니다. 연임도 할 수 있고 2년만 하고 말 수도 있다. 힘의 본능으로 자리를 서로 교대하면서 시베리아의 저희들 서식지로 돌아간다. 기러기떼의 앞자리-. 기러기들은 그 자리에서 나는 기러기를 고마워할지언정 선망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날지 못하는 자신의 힘 모자람이 부끄럽다기보다 미안할 뿐이다. 그 자리는 유세(有勢)하는 자리가 아니고 살신성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노을진 광활한 허공에서 물결의 너울처럼 재편성되는 V자 대형의 균형, 그 무리의 질서가 눈물겹다. 기러기떼는 높이 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말은 비단 시계(視界)에 국한된 말은 아니리라. 안데스산맥 높이 나는 독수리는 눈으로 사냥감을 보는 정도지만 추운 밤하늘을 높이 날아가는 기러기떼는 가슴으로 구만리 장천 너머에 있는 도래지를 본다. 그것은 관점(觀點)을 말하는 것이다.

신문은 들끓는 이 시대의 지리멸렬한 실상으로 가득 차 있다. 눈 위에 남긴 신문배달부의 발자국만치도 신선하지 못한 신문. 그 신문 첫 장은 대통령 출마 예정자들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앞자리로 나서려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알 수 없다. 누가 맨 앞자리에 서는지는 어차피 끝에서 앞사람의 날갯짓이 일으킨 상승기류를 얻어 타고 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앞에서 항로를 잡아주려는 제일인자에 대한 믿음이 서지 않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기러기떼는 어디쯤 날아가고 있을까? 서식지까지 무사히 돌아가기를 빌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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