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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나 조 현 길
10/10/20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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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었나

조 현 길

2017강원문학상 신인상 당선작

 

  의도적으로 피했다. 처음에는 조금 미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안한 마음보다 귀찮은 마음이 더 컸다. 이제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일상의 한 부분을 차지하도록 내 버려두었다. 엄마의 전화였다.

  그 날도 어김없이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빤히 보고도 못 본 척 태연하게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이어 걸려오는 전화도 외면한 채 말이다. 보나마나 밥은 먹었냐고 묻는 전화일 테니까.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를 대하던 이런 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싹싹하고 잘 웃기까지 했다.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영락없이 엄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지만 깔끔하게 무시하고는 대학원 동료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밥을 맛있게도 먹었다. 수업 들으랴, 강의 조교하랴, 논문 찾으랴 이리 저리 정신없이 보내는 동안 하루가 저물어갔다. 기숙사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엄마의 전화는 이어졌다. 한 번쯤은 받을 만도 한데 모질게도 내쳤다.

  한밤중에 울리는 전화벨 소리. 제부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폰 화면을 가득 메웠다. 이 시간에 동생도 아닌 제부가 무슨 일로 전화를 했나 싶어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분명 제부의 전화기인데 낯선 남자가 오열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여보세요를 연신 되뇌었다. 그럴수록 마음 한 구석이 불안해졌다. 한참이 지나서야 진정되었는지 한 마디 툭 내뱉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빨리 내려오란다.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어봤다. 당장 내려오라는 소리만 할 뿐이다. 분명 저녁나절까지 엄마가 전화를 건 증거가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지!’ 그럴 리가 없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연결 음만 들릴 뿐 도통 받질 않았다. 자느라고 못 받겠지 싶어 한 번 더 걸었다. 역시 안 받았다. 연결 음이 세 번을 넘기기 전에 받는 양반이 오늘따라 늑장을 부렸다. 통화 횟수가 거듭될수록 안 받는 게 아니라 못 받는 것이라는 사실이 직시되면서 온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기숙사 방을 이리저리 어지럽게 걷다가, 미친 듯이 날뛰다가, 철퍽 주저앉아 방바닥을 치며 엄마를 서럽게도 불러댔다. 집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나 멀었던 적이 있나 싶을 만큼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다.

  유치원 교사 생활을 하다가 느지막이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몇 년의 짧은 교사 생활동안 별 탈 없이 지내며 내가 잘난 줄만 알았다. 나만큼 아이를 잘 다루는 이도 드물었고, 학부모님과 원장 선생님께 인정받으며 행복하게 지내는 교사도 흔치 않았으니 말이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교실 바닥을 닦고 있던 중이었다. 느닷없이 뭔가가 다가와 내 머리를 쿵! 하고 내리치고는 쓱 가 버렸다. 뭔지는 모르지만 순간 유능한 교사라고 믿으며 행했던 내 모습에 아이들의 인생을 망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갑자기 가르친다는 행위가 무섭고 두렵기까지 했다. 고민 끝에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유치원교육현장을 나왔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먼 타지에서 공부한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되는 게 아니었으리라. 엄마는 혼자 갈 수 있다는 딸내미의 말을 마다하고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와서는 짐을 날라주는 것도 모자라, 룸메이트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까지 건넸다.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져 왔다.

  그 날 이후로 엄마의 전화는 내 알람시계가 되었다. 엄마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밤새 잘 잤느냐는 안부 전화를 시작으로 끼니때마다 밥은 먹었는지, 춥지는 않은지, 쓸 돈은 있는지를 묻고 또 물었다.

  그러는 동안 내 학문 세계도 점점 깊어져갔다. 그럴수록 현실 속의 엄마가 물어오는 일상 속의 평범한 안부가 시시하게만 느껴졌다. 내가 배우는 어려운 내용을 얘기해도 대화가 통하는 엄마를 상상하면서 말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상적인 엄마 상()을 꿈꾸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상적인 엄마를 좋아할수록 현실 속 엄마와는 조금씩 멀어져 갔다. 전화를 일부러 피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부재중 통화 목록 7. 엄마가 돌아가신 날 내게 걸었던 전화 횟수이다. 끊임없는 이어지는 통화 연결 음만이 엄마의 마음을 고스란히 알고 있을 것이다. 연결 음이 이어지는 동안 행여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왜 전화를 안 받는지, 어디 아파서 못 받는 것은 아닌지, 혹시 말 못할 고민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일어나지도 않은 온갖 걱정을 하며 마음을 졸였을 그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온다.

  평생을 별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칠남매 중 장남의 아내에서부터 딸만 내리 넷을 둔 탓에 아들을 가지지 못한 죄인 아닌 죄인 엄마로, 거기에다 시집살이도 모자라 치매까지 앓은 시어머니를 둔 며느리로 사느라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하지 못했으리라. 그러니 밥은 먹었냐는 물음으로 수많은 것들을 대신할 수밖에 없었으니 당신 자신은 얼마나 답답하고 속상했겠는가.

  이제는 안다. 엄마가 늘 물었던 길아, 밥은 먹었나?”라는 한 마디에 현실 속 진짜 우리 엄마의 사랑 이 모두 녹아들어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자식에게 건네는 그 한마디만으로도 그녀는 삶의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꼈을 것이다. 또 이상적인 엄마는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말이다.

  오늘따라 엄마의 목소리가 그립다. 너무나도 그립다. 길아, 밥은 먹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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