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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나무 김근혜
10/10/2017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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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나무

김근혜

제11회 산림문화작품 공모전 대상

 

  육수산은 소소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좋다. 어느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작은 들풀조차도 환희를 자아내게 한다. 하찮게 보이는 돌멩이도 디딤돌이 된다. 돌돌거리는 냇물소리는 또 어떠한가. 세상과 겉놀던 마음을 말끔히 씻어준다.

  돌탑을 보면서 짧으나마 느끼게 되는 숙연함, 오형제, 삼형제 나무를 지나 산 중턱에 이른다. 잘 닦아 놓은 계단 길을 오르다 갑자기 울퉁불퉁한 돌무더기 길을 만난다. 돌부리가 많은 산이어서 넘어지지 않을까 조심조심 산에 오른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구청에서 뭘 하고 있느냐'는 식으로 투덜거렸는데 등산길은 묵언 수행의 여정일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왔다. 가파른 길도 있고 평평한 길도 있다. 오르막을 한참 오르면 잠시 쉴 수 있도록 너럭바위도 있다. 또 예고 없이 다가오는 인생의 장애물 같은 가파른 길도 나타난다. 이렇듯 산을 오르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던진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면서 헤쳐 나가는 인생길과 비슷하지 않은가.

 서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이 부부를 닮은 나무가 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다정한지 시샘이 난다. 부러움으로 걸음이 안 떨어질 때도 있다. 살뜰함을 받아보지 못한 나로서는 주책없이 눈물도 난다. 그 앞을 지날 때면 우리 부부 사이를 돌아보게 된다.

 남편은 무뚝뚝하지도 살갑지도 않다. 그저 자신의 일에만 골몰하는 일중독자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러다 보니 가족에겐 늘 소홀하다. 가정은 사랑이 없어도 주기적으로 월급만 주면 부도가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기념일조차 돈 봉투를 건넨다. 그렇다고 돈을 잘 버는 사업가는 아니다. 월급쟁이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든지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 부부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다정한 채 행동한다. 그런 걸 보고 자란 아이들은 결혼은 재미없다면서 혼자 살겠다고 한다. 귀감이 되지 못해서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좋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남편과 떨어져 살고 있었다. 그런데 가정을 돌아보는 시간이 터졌다.

 둘째아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자신이 만든 해킹프로그램을 시험하기 위해 모 사이트에 접근했다. 해커로 단정한 서울 사이버 수사대가 집으로 들이닥쳤다. 조사서를 쓰던 중에 아빠, 엄마 사이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아이를 보면 그 부모를 안다는 식으로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자존심이 상했다. 맞벌이 부부라서 바쁘다 보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합리화를 했지만 속마음은 뜨끔했다.

 자녀양육 프로그램인 P.E.T(부모교육)를 하는 내가 낯이 뜨거울 정도였다. 내 가정, 내 아이 교육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서 자녀가 올바른 성장을 하고 위해서는 부모가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남들에게 외친 내 모양이 우습게 되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달라지고자 마음먹었다. 몇 년 떨어져 있는 기간 동안이 우리에겐 몇 십 년의 간격으로 느껴졌다. 낯선 사람과 맞선 보는 기분이었다. 뇌의 쾌감조절중추를 자극해 기분을 흥분시키는 술을 먹는다면 서먹함이 사라질 것 같았다. 엔돌핀의 힘을 빌려 분위기를 돌려보고자 애썼다. 술이 몇 잔 들어가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지난 일이 기억나서 잘잘못을 따지다가 역효과만 났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부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취미였다. 남편은 골프를 같이 해보자고 했지만 그런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선뜻 내키지 않았다. 외려 산을 오르면서 자연스레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손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24년 동안 살면서 둘이서만 오붓하게 지내 본 일이 없었다. 어색해서 그냥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인 양 앞만 보고 걷는 것이 전부였다. 부부간에 그렇게도 할 말이 없을 줄은 몰랐다. 맨송맨송 오르내리기를 서너 달 정도 흘렀을까. 조금씩 굳었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두터운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남편과 부부 나무 앞을 지나다 걸음이 멈췄다. 나무는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같은 생명체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부나무만도 못하게 살았던 것 같다. 사랑하고 살아도 짧은 인생인데 소중히 가꾸지 못하고 젊은 시간들을 냉랭하게 심리전으로 다 허비해 버렸다.

 대나무가 올곧게 자라기 위해선 마디를 만드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떨어져 있었던 기간도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지금부터라도 마음을 다진다면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이 더 많으니까 아직 늦은 것은 아닐 터이다.' 내가 느끼고 있는 것처럼 남편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변화는 내 쪽에서 먼저 달려가야 한다고 했던가. 우리도 잘 살아보겠다는 증표를 남기듯이 부부나무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산은 우리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 한없이 베푸는 피톤치드와 테르펜이세포 하나하나를 활기차고 건강하게 해 주었다. 심신의 불순물 찌꺼기까지 남김없이 정화시켜주었다. 산을 찾는 이들이 왜 그렇게 산을 오르는가를 알 것 같았다.

 아이들이나 남편이나 주말에만 한 번 볼 수 있는 형편이라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남편은 산이 새삼 다시 보이며 어머니 품 같다고 한다. 일요일이면 먼저 산에 오르자고 서두른다. 가족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서로 못했던 동정에 대해 얘기도 하고 오순도순 보내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가정이 해체되면 가족이라는 의미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앞서 가던 남편이 아들에게 한마디 던진다. '자신에게 할 말이구만.' 웃음이 나왔지만 못들은 체했다. 겸연쩍어 아들에게 던진 말일 게다. 남편도 떨어져 살면서 가정의 소중함이나 자신의 역할을 생각해보았는지도 모른다. 나도 남편에게 잘한 것은 없는 것 같다. 현미경을 들이대고 단점 하나하나를 캤으면서 나에겐 정작 돋보기조차 대지 않은 세월이었다. 닫혔던 마음의 문이 열리니 비로소 내 허물이 보였다. 남편의 허물이 곧 내 허물이었다.

 산은 성경이었고 불경이었다. 말은 없으되 많은 말로 우리 부부의 마음을 교화시켰다. 산과의 대화는 신과의 교감이었다. 이젠 가족과 산을 오를 때가 행복하다. 가정이란 퍼즐조각이 제 멋대로 흩어져 있다가 겨우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

 소중한 것을 잊고 살 때가 많았다. 행복은 스스로 추구하는 자의 몫일 것인데 곁에 있는데도 보지 못하고 멀리서 찾으려 애썼다는 걸 새삼 느꼈다.

 산은 덧셈법칙이 적용된다. 나무에서 나오는 유익한 물질이며 맑은 공기, 새소리는 자연의 음향이며 심신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것은 유산소운동이며 마음공부이다. 땅의 기운과 천기를 받아 심신이 맑아진다. 먼저 깨달은 사람들도 산에 올라 세속의 때를 씻고 도량을 넓혔다. 산은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도 자랑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군자의 덕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산을 좋아하고 산을 닮으려 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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